[나관호목사 칼럼] 내 인생을 바꾼, ‘보이스카우트 잼버리대회’
[나관호목사 칼럼] 내 인생을 바꾼, ‘보이스카우트 잼버리대회’
  • 나관호 목사
  • 승인 2023.08.17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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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목사의 행복발전소 221]

부모님에 대한 효심과 존중함이 더 강하게/
누군가를 도와주고, 자원하는 마음이 커져/
사회와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생겨/  

【뉴스제이】 '보이스카웃 잼버리대회’. 지난 몇주간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외신의 뉴스가 되었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자세한 뉴스를 듣기보다 멀리서 들리는 뉴스의 주요 단어만 들었습니다.

그런 중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열었더니 잼버리대회 중 콘서트와 폐회된 잼버리대회 기사가 보였습니다. 어젯밤 집사람의 폰으로 유듀브를 보던 중, K-pop콘서트와 잼버리대회 폐회 소식에 대한 기사의 제목을 보았습니다. 

‘잼버리’는 단어 속에서 그 순간, 1977년 나의 중학교 2학년 시절이 소환되었습니다. 46년전 기억, 잼버리대회 참가했던 시절의 추억입니다. 나는 보이스카우트 대원이었습니다. 별스카우트로 계급도 높아 리더였습니다. 멋진 제복과 베레모 그리고 허리 옆에 채어진 로프와 목에 걸쳐 내려온 수건 넥타이까지. 보이스카우트 제복을 입고 등교하면 많은 아이들의 눈이 모아지곤 했습니다.   

내가 보이스카우트로 참가했던, 1977년 무주 구천동 덕유산 제5회 잼버리대회
내가 보이스카우트로 참가했던, 1977년 무주 구천동 덕유산 제5회 잼버리대회.    ⓒ영상캡처

1977년 중학교 2학년이던 나는 무주구천동 덕유산에서 개최된 잼버리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지금도 46년전 잼버리대회에 참가했던 기억과 힘겹게 오르던 덕유산, 무주구천동을 기억합니다. 잠시 중학교 2학년 시절 덕유산 보이스카우트 잼버리대회에 대한 기억들을 모아보았습니다. 행사에 대한 기억보다는 몇 가지 개인적인 재미있는 추억들이 생각났습니다. 더구나 잼버리대회 후 나의 변화가 생각났습니다.

먼저, 첫날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는데 일어나 보니, 내 몸이 텐트 밖에 있었습니다. 잠을 험하게 잤는지 아이들이 장난을 쳤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텐트 밖에서 기상을 했던 기억입니다. 기상을 알리던 대장 선생님이 깨워주셨습니다, 두 번째 기억은 덕유산에 뱀이 많으니 주의하라는 권고였습니다. 그래서 텐트 주위에 백반을 놓고 담뱃가루도 놓았던 기억입니다. 세 번째 기억은 잼버리대회에 아버지 갈색 썬글라스를 가져갔던 기억입니다. 행군할 때 눈의 피로를 덜어 주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둘째날 어디론가 아버지 썬글라스가 없어졌습니다. 당시는 귀한 물건이었는데...... 

제일 중요한 기억은 중학교 2학년 시절의 보이스카우트 잼버리대회가 나의 인생을 성숙시킨 기회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 시절에 인생을 대입하는 것이 좀 그렇지만, 나에게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삼대독자라서 부모님을 떠나 집에서 멀리 가본 적이 없고, 더구나 일주일 동안 집을 떠나 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덕유산잼버리대회 훈련 모습.    영상캡처
덕유산잼버리대회 훈련 모습.     ⓒ영상캡처

당시 어머니는 내 위로 네명의 자식을 낳았지만 낳은지 1-2년 사이에 모두 저 세상으로 보냈기에 다섯째로 태어난 나는 금보다고, 세상 그 무엇보다도 부모님에게는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를 보호한다고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아주 어린시절에는 집에서 조금만 멀리 가든지 사람이 많은 곳 가면 꼭 부적을 주머니에 넣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곳에 ‘살짝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지 주머니에 구멍을 내고 ,걸어 가면서 자연스럽게 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큼 소중한 키웠던 나인데. 아버지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를 무주구천동 덕유산잼버리대회에 나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잼버리대회를 마치고 나서 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인생의 변화입니다. 먼저는 부모님에 대한 효심과 존중함이 더 강하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을 잘 도와주고 우리 동네, 즉 사회를 귀하게 바라보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덕유산 잼버리대회 야영과 지역학교의 학생들의 축하공연 모습.      ⓒ영상캡처

그래서 반장으로서의 명예가 아니라 아이들의 도우미로 자청하고 나서, 화장실 청소도 같이 해주고, 휴지도 줍고, 복도 바닥을 초로 반들거리게 만드는 일도 알아서 했습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자원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잼버리대회에서 매일 외워서 복창하는 보이스카우트 선서도 인생에 큰 변화를 주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보이스카우트 선서:
나는 나의 명예를 걸고 다음의 조목을 굳게 지키겠습니다.
첫째, 하느님과 나라를 위하여 나의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둘째, 항상 다른 사람을 도와주겠습니다.
셋째, 스카우트의 규율을 잘 지키겠습니다.

나관호 목사

그리고 당시 방송반이기도 했던 나는 아침 일찍 등교해, ‘새마을 운동 노래’를 틀곤 했습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 새아침이 밝았네 ♬ 너도나도 일어나 ♬ 새마을을 가꾸세”

온 동네에 들리도록 방송하던 시절인데, 그 방송반 일을 혼자서 자원해 내내 했습니다. 섬기고 헌신하는 마음, 사회와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렇게, 중학교 2학년 덕유산 보이스카우트잼버리대회는 내 인생과 인격, 그리고 삶을 바꾼 계기였습니다. 집을 떠나, 가족과 떨어져 보고, 규율과 책임을 배우며, 몸과 정신을 단련하고, 공동체 생활을 하고 나서 배운 나의 인생이었습니다. 세계잼버리대회가 나의 중학교 2학년 시절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해줘서 고마웠습니다.

“보이스카우트 화이팅!”

 

나관호 교수목사 (뉴스제이 대표 및 발행인 / 치매가족 멘토 / 말씀치유회복사역원(LHRM) 원장/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제자선교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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