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비움의 영성
[나관호목사 칼럼] 비움의 영성
  • 나관호 목사
  • 승인 2023.10.03 0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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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목사의 행복발전소 228]
하나님 나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어야 들어가/
‘비움의 영성’은 ‘영생의 길’과 연결/

【뉴스제이】 ‘올 것이 왔다’. 그것은 카카오톡의 단체방이 너무 많고, 내용도 차고 넘쳐 저장용량의 한계가 와서 보내온 자료를 모두 지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대화 내용 모두 지우기’ 버튼이 멈춰졌습니다. 안지워집니다. 그래서 카톡방 전체를 ‘나가기’를 해야 했습니다.

지난달, 특정 인물의 카톡을 읽고 답장을 하면 카톡 작동이 안되고 까만 화면이 나오면서 스마트폰이 멈추기도 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위장된 국가기관 사람인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제자 중 전문가가 있어 물어봤더니, 모르는 링크 잘못 접속하면 그속에 숨겨진 코드로 개인정보도 노출되고 위험하다고 말해줬습니다. 
 
“아무개야! 카톡화면이 왜 까맣게 되지?”
“교수님! 모르는 링크나 이상한 문자 열지 마시고, 카톡 단체방 데이터 삭제 자주 하세요.” 
“고맙구먼. 그래서 깨달았네. ‘비움의 영성’에 대해서” 

아시안게임 준국과의 8강전에서 경기 시작 전 기도하는 백승호 선수(왼쪽)는 프리킥을 후배 홍현석 선수에게 양보했고, 골을 넣고 환호하는 홍현석 선수(오른쪽)
아시안게임 준국과의 8강전에서 경기 시작 전 기도하는 백승호 선수(왼쪽)는 프리킥을 후배 홍현석 선수에게 양보했고, 골을 넣고 환호하는 홍현석 선수(오른쪽)

이번에 여러 일을 겪으면서 카톡 내용 데이터를 적당히 삭제해줘야 작동도 잘되고, 속도도 느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카톡 자체를 지우고 다시 다운로드 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일단 단체방 모두 나가기 하세요”라며 긴급조치 방법을 가르쳐줘 그대로 했더니 잘 작동됐습니다. 

마침, 아시안게임 중국과의 축구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고 있었습니다. 홍현석 선수의 왼발 감아차기로 첫골을 넣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프리킥은 주장 백승호 선수 차는 것으로 알았는데 홍현석이었습니다. 

그런데 경기 시작전 기도하는 백승호 선수의 모습이 화면을 채웠던 것을 기억한 나는 박수를 쳤습니다. 백승호 선수는 후배 홍현석 선수가 프리킥을 잘 차도록 마음을 비웠던 것입니다. 결과는 골인. 백승호 선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어릴적 부터 교회에서 살았던 선수입니다. 백승호는 ‘비움의 영성’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기사를 보니 후배 홍현석이 “형! 오늘은 제가 찰게요”라며 양보를 원했고, 이에 주장 백승호는 쿨하게 후배가 차도록 했던 것입니다. 나는 백승호의 펜이 되었고 백승호 선수의 미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어릴적 있었던 유럽으로 다시 돌아가 더 넓은 곳에서 축구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잠시 눈을 감고 ‘비움’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비움’은 ‘진리’였습니다. 비워야 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입으로 먹은 것도 찌꺼기는 비워야 삽니다. 소변과 대변 배출은 살기 위한 비움입니다. 

대박이와 조이
우리집 강아지 대박이(슈나우저)와 조이(비글)   ⓒ뉴스제이

비움을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집 귀염둥이 강아지 대박이의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대박이는 우리집 경찰과 같아서 다른 강아지 행동에 대해 주위를 줍니다. 책상 위 과자를 조이가 먹르려고 하면 짖어댑니다. 그래서 거실로 가봤더니 조이가 대변판에 응가를 해놓았습니다. 조이의 응가를 보면서 강아지도 비워야 사는 것이니 건강하다는 신호였습니다. 더 귀엽게 조이를 안아주었습니다. 

“우리 조이가 건강하네. 잘 쌌다. 잘 했어”
“으르릉. 앙앙. 

‘비움’. 알고 있던 것이지만 ‘진리’라는 것에 맞춰 생각해 보니 더 깊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눔’도 ‘선물’도 ‘섬김’도 ‘구제’도 비움의 일종이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립보서 2:5~7)

‘비움’을 신앙적으로, 기독교적으로 바라보니 ‘비움의 영성’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막 10:15)고 하셨습니다. 구원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한 사람이 달려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 한 사람은 마태에 의하면 부자였고 또 청년(마19:22)이었고, 누가에 의하면 관원이었습니다(눅18:18). 돈도 많고, 젊고, 권력까지 가지고 있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는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자일 뿐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있는 지각이 있고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부자청년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가복음 10:17b)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가복음 10:21b)

​예수님께서는 청년을 보시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부자 청년에게 “네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자 청년에게 부족한 한 가지는 '율법'이 아니라 '재물'이었습니다. 물론 그에게 많은 부족함이 있었겠으나 재물은 그에게는 영생의 길을 가로막는 치명적인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충고가 아니라 명령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의 삶의 한 가운데 물질주의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음을 아셨습니다. 그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비움의 영성’이 필요했습니다. 물질에 대한 의존이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의존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비움의 영성’은 ‘영생의 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관호 교수목사 (뉴스제이 대표 및 발행인 / 치매가족 멘토 / 말씀치유회복사역원(LHRM) 원장/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제자선교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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