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거룩한 십자가를 ‘왼뺨 한대’에 팔지 말자
[나관호목사 칼럼] 거룩한 십자가를 ‘왼뺨 한대’에 팔지 말자
  • 나관호
  • 승인 2020.01.09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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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목사의 행복발전소 101]
십자가...기독교와 성경의 핵심/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악한 자 대하는 '지혜'
십자가의 길, 자기 부인, 목숨을 잃는 길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뉴스제이】  작금에 새롭게 등장한 사회적 언어가 ‘초갈등 사회’라는 말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모든 곳에서 통용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교회와 크리스천이 ‘초갈등 사회 해결 해법’으로 ‘십자가 정신’을 말하고, ‘교회는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을까?’라며, 역시 해법으로 ‘십자가의 길’을 말하고 설교하고 글을 씁니다.

졸은 소리, 바른 소리인데 ‘해석을 잘못하면’ 부족한 소리가 되어, ‘십자가’와 ‘십자가의 길’을 ‘구호’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크리스천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삶을 보여야 한다”라는 밑그림을 그려놓고, 밑그림과 다르게 덧칠해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경우입니다. 이런 그림입니다.

‘오른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돌려대는 삶’, ‘고발하여 속옷을 빼앗으려고 하면 겉옷까지도 내어주는 삶’,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라도 동행해 주는 삶’, ‘

처음 밑그림인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삶”은 옳습니다. 그러나 ‘오른 뺨, 속옷, 억지로 오리’ 예화는 “십자가의 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팔복’에 이어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하신 부분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른 뺨, 속옷, 억지로 오리, 주고 꾸는 자 비거절’ 예화를 “십자가의 길”이라고 말하고, 가르치고, 설교하고, 칼럼을 씁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가난’과 ‘고난’, ‘핍박‘과 쫓기는 피난의 길’이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목숨을 잃는 길’이고, ‘머리 둘 곳’ 없는 집 없이 사는 ‘나그네 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피면,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중간대지 제목이 있은 후에 그 아래에 “(38절)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절)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절)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절)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42절)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태복음 5:38-42)고 하신 예수님의 설교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 [원수를 사랑하라]는 중간 대지가 나오고 말씀이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악한 자에게) 왼뺨을 돌려대고, (악한 자에게) 겉옷까지도 주고, (악한 자와) 억지로 십리를 동행하고, 구하는 (악한 자에게) 주고, 꾸는 (악한 자를) 거절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것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일종의 방어책이며, (악한 자가) 더 악한 행실을 하지 못하도록 하시려는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로 해석할 그림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면 ‘십자가’가 잘못 해석되어 ‘뺨 한대’의 싼값에 팔리는 취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핵심이고 성경의 핵심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입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길입니다. 우리의 운명과 삶을 변화시킵니다. 저주가 축복으로, 미움이 사랑으로, 원수 맺음이 화해와 평화로 변화됩니다. 그렇게 십자가는 값을 가늠할 수 없는 하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온갖 죄악을 범함으로 심판과 저주를 받아 마땅한 우리 죄인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영광스러운 “하늘의 길”을 버리시고 떠나셔서 ‘고난’과 ‘죽음’의 길인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셨습니다. 실제로 ‘못 박히는 처절한 고통’을 담당하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와 십자가의 길은 ‘구원과 복의 길’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죽음, 심지어 실제로 죽는 것을 말합니다, 악인에게 왼뺨을 돌려대고, 겉옷 좀 더 주고, 억지로 십리 동행하고, 달라면 주고, 꾸어 주고, 거절하지 않는 정도의 행동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태어나실 때부터 ‘가난’과 ‘고난’, ‘피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성경은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누가복음 2:6-7).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마태복음 2:14-15)고 말씀하십니다.

33년 동안의 예수님의 삶도 ‘가난’과 ‘고난’, ‘나그네 길’의 연속이었습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태복음 8:20)고 선포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시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때가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리셨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마태복음 16:21).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목숨을 잃는 길’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6:24-25).

“십자가의 길”이 ‘오른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돌려대는 삶’, ‘고발하여 속옷을 빼앗으려고 하면 겉옷까지도 내어주는 삶’,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라도 동행해 주는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악한 자를 대적하는 지혜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가난’과 ‘고난’, ‘핍박‘과 쫓기는 피난의 길’이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목숨을 잃는 길’이고, ‘머리 둘 곳’ 없는 집 없이 사는 ‘나그네 길’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십자가의 길"이 왼뺨 한대와 겉옷과 십리, 주고 비거절 행위’로 바꿀 길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을 말하고, 제시할 때 신중하고, 진중하고, 귀하고 조십스럽게 십자가를 대해야 합니다.   (다음에 《십자가 2》로 이어집니다)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발행인 / 말씀치유회복사역(LHRM) 대표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조지뮬러영성연구소 소장 / 치매가족 멘토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기윤실 선정 한국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세계선교연대’ 경기북부 노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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