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왜 악인은 회개를 못하는 걸까?
[나관호목사 칼럼] 왜 악인은 회개를 못하는 걸까?
  • 나관호 발행인
  • 승인 2022.10.04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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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 목사의 행복발전소 185]

유다가 회개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악인, 끝까지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
화개는 하는 것이 아니라, 돠어지는 것/

【뉴스제이】 우리나라 드라마는 복수극(?)이 많습니다. 착한 주인공이 모함당하고, 거짓으로 당하다가 막판에 뒤집기 한판으로 악인을 이기고, 악인을 감옥 보내는 등, 속 시원한 상황으로 마칩니다. 9월이면 드라마들이 종영되고 10월에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하는 시기라서 드라마들이 막바지에 달합니다. 칼럼 소재를 찾을 수 있다는 아내의 권유로 드라마 몰아보기를 했습니다. 

드라마는 교통사고로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고, 사람을 죽이고, 기업자금을 횡령하고 착한 중인공을 모함하고 죽이려는 계속도 세우고 시행도 합니다, 드라마 속 악인의 끝은 감옥이거나 죽음일 것입니다. 드라마의 결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듭니다.

드라마 속에서 악인들은 회개를 하거나, 돌이켜 착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인들은 끝장을 봅니다. 끝까지 망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악인 ‘가룟 유다’는 배신의 상징이요 아이콘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br>
악인 ‘가룟 유다’는 배신의 상징이요 아이콘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드라마를 본 후,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악인들은 회개를 못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생각을 주셨습니다. 먼저는 ‘회개는 하는 것일까?’ 아니, ‘회개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그분이 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거지’ 그렇습니다. 회개는 내가 하고 싶다고 자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아래에서 타의적(하나님)으로 행해지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 넘긴 가룟 유다가 생각났습니다. ‘유다가 회개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유다는 목매달아 스스로 죽는 것으로 후회를 표시했지만, 회개를 못했습니다. 아니, 회개하도록 만들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위대하신 그분이. 유다의 자유의지가 자살을 택했습니다. 

‘유다’라는 히브리 이름은 유대인들에게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후대에 영어권에서는 ‘가룟 유다’를 뜻하는 '유다' 이름과 다른 이름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어단어를 보면, '가룟 유다'를 뜻하는 단어는 'Judas'로 '(우정을 가장한) 배반자, 배신자'라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일반적인 이름의 ‘유다’라는 이름은 ‘Judah' 혹은 ’Jude'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가룟 유다는 악인이며 배신자의 표본이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좌우에 있던 강도들 중, 우편 강도는 구원을 받았고 좌편 강도는 회개를 못해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편 강도의 마음에 긍휼을 부어 넣어 주셨고, 회개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 깊은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분명 천국과 지옥이 있어 회개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천국에, 회개치 못한 악인들은 지옥에 있을 텐데.... 악인은 하나님의 앞에서 심판의 근거가 될 증거가 있어야 하기에 회개하지 못함으로 십자가 앞에서 그 죄가 사면되지 못한 상태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회개치 못한 악한 증거'를 가지고 분명히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유다가 심판받지 않고, 회개하게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유다는 반드시 예수님을 배신하고 돈으로 판 악인으로서 심판을 받고, 대가를 치르는 것이 공의일 것입니다. 만약, 성경에 “유다가 회개하였더라”고 쓰여져 있었다면, 세상은 가인의 세상, 유다의 세상이 되어 범죄만 남아 있는 ‘악의 소굴’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유다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졌지만, 유다는 회개를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와 비교됩니다. 베드로는 진정한 회개를 했습니다. 아니, 회개가 되어졌습니다.  

정말 심판받아야 할 악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회개를 못해야 하고, 안될 것입니다. 입으로 잘못을 시인해도 마음 깊은 곳에서의 돌이킴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정말 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에덴동산에서 생겨난 악의 표본은 ‘거짓말과 이간질’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을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라고 말하며 의문문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너희들이 선악과를 먹으며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기에 못 먹게 하는 거야“라며 거짓말을 덧붙입니다. 그렇게 사탄은 거짓말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일부지만, 목사들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짓말쟁이와 이간질쟁이가 있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이 부분은 쓸까 말까 하다가 씁니다. 그런 목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입혀져, 정말 회개가 되어져, 이 사회와 교회의 ‘공기’(公器)가 되길 바랍니다. 목사는 누구보다도 엄격한 도덕성과 윤리적 잣대를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 전체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악은 ‘거짓말과 이간질’입니다. 물론, 배경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기도를 하고 내 주변을 살펴보니 악인이 있었습니다. 오래전 내가 도움을 많이 줬던 여자 아이인데, 당시 내 상사와 내 사이를 이간질했습니다. 결국 그 상사는 나를 공격했고, 나를 궁지에 몰아 넣었습니다. 이제야 그 상사분도 그 여자이이에게 속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아이는 지금도 그런 짓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거짓말과 이간질로 살아온 것입니다. 그 아이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큰 교회 담임 목사도 속았습니다. 

그 여자 아이는 회개를 못합니다. 아니 회개를 하고 싶어도 안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계속 거짓말과 거짓정보를 들고 이간질을 하는 것입니다. 

나관호 목사(뉴스제이 발행인)

여러분의 주변을 살펴보십시오. 거짓말과 이간질쟁이가 있는지. 억울한 일 당하신 분들이여! 거짓말쟁이와 이간질쟁이는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그들은 회개를 못합니다. 결국, 심판을 받아야할 근거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냥 놔두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들의 악은 더 쌓여져 갈테니까요. 

 

나관호 목사 (뉴스제이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말씀치유회복사역원 원장 / 치매가족멘토 / 칼럼니스트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제자선교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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