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 칼럼] 500억 기부 91세 배우 신영균, "내 관에 성경책만 넣어달라"
[나관호 칼럼] 500억 기부 91세 배우 신영균, "내 관에 성경책만 넣어달라"
  • 나관호
  • 승인 2019.11.12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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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10 붙잡고 살아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중앙일보, ‘91세 배우 남기고 싶은 이야기’ 타이들로 연재/
모교 서울대에도 시가 100억원 상당 대지, 발전기금으로 쾌척/
60~70년대, 1년에 30편씩 영화 찍어 가며 모아 온 재산/

그저 남은 거 다 베풀고 가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어요.

나중에 내 관 속에는 성경책 하나 함께 묻어 주면 됩니다.

【뉴스제이】 중앙일보의 <500억 기부한 91세 배우 신영균 "내 관에 성경책만 넣어달라"> 제목의 원로배우 신영균 선생님에 대한 삶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91세 배우 남기고 싶은 이야기’ 타이들로 이번 주 시작, 연재된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영균 선생님은  “앞으로 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것은 원로배우 신영균(91·사진) 선생님이 인생 말미에 띄우는 편지다. 1960~70년대 한국 영화계를 이끈 신영균 선생님은 아직 구체적 계획까지 세우진 않았지만 “영화계 지원과 후배 육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겠다”고 말했다.

신영균 선생이 지난 6일 서울 명보아트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흔하나인 신 선생은 카메라 앞에선 여전한 현역 배우였다. 1960~70년대를 주름잡았던 카리스마가 남아 있었다. (사진 중앙일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연예계 최고의 자산가로 이름난 신 선생님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꼽힌다. 2010년 명보극장(명보아트홀)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등 500억원 규모의 사유재산을 한국 영화 발전에 써달라며 쾌척해 화제가 됐다. 모교인 서울대에도 시가 100억원 상당의 대지를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배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60~70년대에 많게는 1년에 30편씩 영화를 찍어 가며 모아 온 재산이다.

신영균 선생님은 평생 술·담배·도박 멀리하고 살았고, 남편이 영화배우가 되는 것을 결사반대했던 아내에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말로 설득해 은막의 스타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잘 나가는 스타시절에도 오직 가족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사업과 인생의 성공 비결(?) 은 '절대 무리하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신영균 선생의 전성기와 함께한 영화. 사진은 미워도 다시 한번’ 포스터. [중앙포토]

신영균 선생님은 인터뷰 서두에서 “91년 영화 같은 삶 후회는 없다, 남은 것 다 베풀고 갈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제 내가 나이 아흔을 넘었으니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그저 남은 거 다 베풀고 가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어요. 나중에 내 관 속에는 성경책 하나 함께 묻어 주면 됩니다. 크진 않지만 내 노후생활을 위해 조금 가지고 있는 것이 있어요. 그걸 베풀고 싶은 거죠. 자식들은 다 먹을 게 충분하고….”
 
신영균 선생님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술·담배는 물론 여자와 도박도 멀리해 왔다. 구순의 신 선생님은 지금도 규칙적으로 사신다. 오전 10시 서울 명동 '호텔28' 사무실에 출근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호텔28은 영화 촬영장 분위기가 물씬한 부티크 호텔로, ‘28’은 이곳 명예회장인 신 선생님이 태어난 해(1928년)를 가리킨다. 그의 삶을 돌아보는 중앙일보의 첫 인터뷰도 그곳에서 진행됐다. "1m72㎝에 68㎏, 회색 재킷 정장에 중절모를 쓴 신 선생의 첫인상은 ‘28년생’보다 ‘28청춘’에 가까웠다"고 대담자 중앙일보 박정호 논설위원과 김경희 기자는 기록하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원로배우 신영균 선생은 ’나중에 내 관 속에 성경책 하나만 함께 묻어달라“고 말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이다. (사진 : 중앙일보 김경희 기자)

인터뷰 후반을 장식한 감동의 말이 있다.
“60~70년대에는 내 영화를 맘껏 틀 극장이 너무나 갖고 싶었죠. 하지만 이제 욕심이 없어요. 그저 마지막으로 내가 가지고 갈 거는 40~50년 손때 묻은 이 성경책 하나예요. 혜진아(딸을 보며), 이걸 나랑 같이 묻어 다오.” 

신 선생님은 가죽이 다 해어진 성경책 한 권을 만지며, 딸을 바라보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소리 내 읽었다고 한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이에요.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이 수고를 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오 오직 하나님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이런 말씀 때문에 오늘날 신영균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허허.”

형님 김봉준 목사님의 집안과 신영균 선생님과의 오랜 인연이 있기에 조금은(?) 알고 지내셨다. 신영균 선생님이 국회의원 시절, 형님 김봉준 목사님과 같은 헬스장에서 운동하며 두분이 가끔 인사와 대화를 나누셨다. 그 때 형님에게 전한 신영균 선생님의 권면을 나에게도 해주셨다, 

"인품이 훌륭한 어른이었지. 서울대 치대 출신으로 병원을 하다 배우의 길에 들어섰고. 평생 스캔들 한번 없이 삶에 충실한 분이었지. '크리스천은 신사가 되어야 해요. 목사 이전에 젠틀한 인격을 가져야합니다''라는 말이 귓가에 아직도 남아 있어. 나목사! 우리 그렇게 살자."

내 아버지와 작고한 원로배우 김진규 선생님이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어린시절 아버지와 만나는 김진규 아저씨를 다방에서 뵈면, 용돈을 주셨고, 일본에서 사오신 갈색 가죽 헌팅캡 모자를 선물해 주셨다. 그리고 전국민을 울렸던, 어린시절 영화를 보며 나도 울었던  ‘미워도 다신한번’의 주인공 신영균 선생님을 김진규 아저씨와 함께한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 가끔 대화의 주제,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신 하신 신영균 선생님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다. 나에게도 ‘멋쟁이 치과 선생님’이 되라고 하셨다. 나는 치과 가는 것을 제일 무서워 했기에 얼굴을 찡그리곤 했다. "선생님! 건강하십시오"

원문보기 - https://news.joins.com/article/23630120

 

나관호 교수목사 ( 뉴스제이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치매가족 멘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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