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읽는 예배] “하나님 나라와 어린 아이들” (눅 18장) 
[영상&읽는 예배] “하나님 나라와 어린 아이들” (눅 18장) 
  • 윤사무엘 목사
  • 승인 2023.07.01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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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다음 설교문과 2023년 7월 2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다섯째 주일, 맥추감사절), 대한예수교장로회 로이교회(인천 송도) 주일예배용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납되는 주일예배를 준비합시다. 7월은 '수양의 달'로 지키며, 다음 예배 자료를 나눕니다. 샬롬샬롬!!! (로이교회 / 합동). [참조 :로이교회는 합정동교회(담임 김효성 목사)와 말씀사역을 협력하는 교회로 한국교회를 위해 자료를 함께 기꺼이 공유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26) “하나님 나라와 어린 아이들” (눅 18장) 
                               “The Kingdom of God and Children.” (Luke 18)

본문: 누가복음 18:1-43
요절: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니라” (눅 18:16) 
주제: 하나님의 나라는 정직, 청결, 겸손의 어린 아이들의 것이다.
교독문: 105번(감사절 1), 예배의 부름: 시 100:1-5
찬송: 590장(통 309장), 591장 (310장), 566장(통 301장)

일자: 2023년 7월 2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다섯째 주일, 맥추감사절)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로이교회 담임, 예장 합동, 평남노회 소속)
  [예배시간: 매일새벽기도(월-금) 오전6시, 주일예배 오전 11시, 오후 1:30]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번지, IBS Tower, 11층 11호(지하철 인천1호 국제업무역, 5번 출구)

윤사무엘 목사
윤사무엘 목사

오늘은 2023년 하반기가 시작되는 첫 주일로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이번 7월달은 “수양의 달”로 지키며, 오늘은 7월 첫주일로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본래 맥추감사절은 지난 5월 28일 주일입니다.

이날 오순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라비아 시내산(라오즈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역사적 사건과 관련한 명칭이라면,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한 가나안 농경문화와 관련한 명칭으로 한국교회에서는 1970년대 말부터 7월 첫째 주일로 맥추감사주일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오순절이 계절적으로는 보리수확과 같은 때이기 때문에 보리수확을 뜻하는 맥추절이라고 부릅니다. 룻기에 보면, 모압 여인이었던 룻이 유다지파의 엘리멜렉(Elimelech)의 큰아들 말론(Mahlon)과 결혼했다가 남편이 죽은 후에 시어머니 나오미(Naomi)를 따라 베들레헴에 왔습니다. 마침 맥추절(보리수확)이어서 시어머니를 위해 보리밭에 나가 이삭을 줍다가 밭의 주인이며 유다지파이며 살몬-라합의 아들인 보아스(Boaz)를 만나게 되었고, 그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방여인이었던 룻은 후에 다윗왕의 증조할머니가 되었으며, 예수님의 족보(마 1:5)에까지 기록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여인이 되었습니다.

룻기는 오순절에 읽는 성경 두루마리인데, 룻기의 배경이 보리수확 때인 맥추절입니다. 성경적으로 맥추절과 오순절은 같은 날인데, 한국교회에서는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맥추절은 7월 첫 번째 주일로 구별해서 지킵니다. 맥추절에 특별히 "감사"라는 말을 붙여 "맥추감사절"로 지키면서 가을에 지키는 "추수감사절"과 구별합니다. "맥추감사절"은 보리(대맥)와 밀(소맥)의 수확, "추수감사절"은 "쌀 수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교회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은 한국의 농경문화와 관련한 절기의 토착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올해 전반기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주일로 지킵시다. 열명의 나병환자들이 고침을 받았지만 사마리아 환자만 주님께 돌아와 발을 엎드려 감사를 드릴 때 주님은 “아홉을 어디에 있느냐?”고 찾으시고, 감사를 드리는 이의 영과 혼의 죄사함을 선포하심으로 그는 전인적인 구원을 받았습니다. 감사를 생활화 합시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오늘 저녁 4시반부터 본당에서 로이교회 새출발 1주년 간단한 감사예배 및 만찬(potluck dinner=각 가정에 접시를 가져와 함께 나눠먹는 식사)을 가집니다. 작년 7월 4일부터 매일새벽기도로 시편, 욥기, 잠언 강해를 줌(Zoom)을 통해 전세계(뉴질랜드, 미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남미, 오스트리아 등)와 연계되고, YouTube를 통해 나눈지 1년이 되었습니다. 코로나가 아직 끝나지 않았던 시절인데 무더운 여름철에 시작된 기도열기가 1년 동안 지속된 것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교회가 이곳 황앤씨 로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 이름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시편23:1의 히브리어 단어인 “로이 Roi”교회로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이승진성도의 도움으로 교회로고도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 누가복음 18장을 강해합니다.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 바리새인과 세리비유, 천국와 어린 아이들, 한 부자의 구원에 대한 고민, 죽음과 부활을 예고, 그리고 여리고에서 시각장애인의 치유에 대해 하나씩 묵상합시다.


1. 재판장과 끈질긴 여인의 비유 The Parable of the Persistent Widow (눅 18:1-8)
(1)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될 것을 그들에게 비유로 하여(2) 말씀하시기를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6) 주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1-5절.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될 것을 교훈하십니다. 우리는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가 낙심하게 되는 것은 고난의 현실이 너무 커 보이고 자신의 부족과 무능만 생각하고 또 우리의 현실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주권적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는데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 재판장을 찾아가서 그녀의 원수에 대한 그녀의 원한을 풀어 주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는 얼마 동안 그 과부의 말을 듣지 않았으나 후에 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에이스 텔로스 εἰς τέλος)[끝까지]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그 판사는 마침내 그 과부가 그를 끝까지 괴롭게 할 것이므로 그의 탄원을 들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귀찮아할 정도로 기도가 이뤄질 때까지 아룁시다. 포기하지 맙시다.

6-7절. 주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비록 오래 참으실지라도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재판장은 판결의 권세를 가진 자입니다. 그는 죄인을 감옥에 보낼 수 있고 극악한 죄인을 사형시킬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의 억울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자들로 불의한 재판장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과부과 같은 자가 아닙니다.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이 억울한 일 때문에 밤낮 부르짖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잘 들어주실 것입니다. 진실되고 참된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을 것입니다.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예레미야 29:12-1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라는 구절은 전통본문에는 KJV처럼 “비록 저희에게 오래 참으실지라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8절. 하나님께서는 속히 성도들의 원한을 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시행입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습니다(롬 12:19).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악을 반드시 벌하실 것입니다.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주님의 재림(Second Coming = Parousia) 직전에는 믿음 없는 시대, 배교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3, “재림 직전에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디모데후서 3:1-5,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주님께서는 멸망할 세상보다 교회를 더 염려하십니다. 

2. 바리새인과 세리 The Pharisee and the Tax Collector (눅 18:9-14)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저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12) 저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나(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9-10절.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는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의롭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의 높은 수준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의롭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게 됩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바리새인은 그 당시 성경을 믿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로 알려져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지탄했었으나 그들 중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깨닫고 인정하고 고백하고 자신을 낮추는 자들입니다.
11-12절.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따로’라는 원어(프로스 헤아우톤 πρὸς ἑαυτὸν)는 ‘자기 자신에게’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지만, 실상 자신에게 하는 독백과 같은 기도입니다.

그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은 자’로 표현합니다. 그는 자신을 토색하고 불의하고 간음하는 죄인들과 구별합니다. 토색(extortioners)은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는 것이며, 불의는 법을 어기는 것이며, 간음은 부부관계를 벗어난 것입니다. 그는 또 자신을 성전 한쪽 구석에서 기도하고 있는 세리(tax collector)와도 구별합니다. 그는 세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고 그를 멸시하는 마음뿐입니다. 그는 한 주간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보고합니다. 그러나 그의 금식은 자신의 죄악성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의 금식을 하나님 앞에 자랑하듯이 말하였습니다. 그의 금식은 그의 종교적 의(義)와 공로를 쌓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본문은 사람이 금식이나 십일조까지도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앙심 없이도 할 수 있음을 보입니다. 

13-14절.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한편,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선함을 자랑할 것이 없었고 마음으로 자신이 죄인인 것과 죄악된 성질들을 많이 가지고 있음을 깨닫고 통회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것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부족을 깨닫는 자마다 하나님 앞에서 그의 긍휼을 구할 것밖에 없습니다. 이 세리의 기도가 주님의 마음에 합했습니다. 

오늘날도 예배당에 드나드는 자들 중에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리새인처럼 외적으로는 종교적 의식을 잘 지키지만 자신의 부족에 대한 깨달음이 없고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남을 멸시하는 자요, 다른 하나는 세리처럼 자신의 죄와 부족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여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입니다. 

예수 영화 장면
예수 영화 장면

3. 어린 아이를 주님께 오게함을 허락하심 Let the Children Come to Me (눅 18:15-17)
(15)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16) 예수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5-16절.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는 어린 아기들을 가진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왔고 주님께서 그들을 만져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그 부모들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린 아이들을 무시했으며, 그 부모들이 예수께서 자기 아이들을 사랑해주시기를 원하는 인간적 욕심을 가지고 그를 번거롭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어린아이들을 자기에게로 가까이 부르시면서 아이들이 주님께 오는 것을 환영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신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그 어린아이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입니다. 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인 교회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구약시대의 할례에 대한 규정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가정에서 태어난 남자아이를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게 하심으로 그 아이가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의 일원임을 증거합니다(창 17:10-14). 믿는 가정에서 출생한 아이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요 하나님의 기업과 상급입니다(시 127:3).  

17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어린아이의 성품은 천국 백성에게 필수적입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의 단순하고 순진한 성품을 가리킨다고 생각됩니다. 어린 아이들의 정직, 순결, 겸손은 어른들이 배워야 할 덕목입니다. 경건했던 요시야는 8살에 왕이 되었고 왕이 된 지 8년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구하였습니다(대하 34:1-3). 사도 요한의 제자요 순교자인 폴리갑은 아홉 살에 하나님을 믿었고, 영국의 청교도 지도자 리차드 백스터는 여섯 살에, 18세기에 유명한 조나단 에드워즈는 일곱 살에, 유명한 찬송저자 아이삭 왓츠는 아홉 살에 각각 하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저도 9살 때 성령[성신]체험을 했습니다. 사람은 어릴 때에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고 그런 자는 커서도 그 믿음을 쉽게 떠나지 않습니다.

4. 한 부자 공무원 The Rich Ruler (눅 18:18-30)
(18) 어떤 공무원이 질문하기를 “선한 선생님이여, 제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9)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분이 없느니라.(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21) 그가 대답하기를 “이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2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물이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23) 그 사람이 큰 부자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24)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25) 낙타(camel)가 바늘귀(a needle‘s eye)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26) 듣는 자들이 말하기를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27) 말씀하시기를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28) 베드로가 말하기를 “보옵소서 저희가 저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좇았나이다.”(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30)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18-20절. 어떤 공무원이 주님께 와서 묻기를 “선한 선생님이여, 제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는 고급 공무원입니다. 그는 지식이 있고 사회적 신분이 있는 자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속이는 자,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 사형에 해당하는 자라고 보았으나 그는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예수님께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는 선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 죄인이며 악합니다(롬 3:10). 오직 하나님만 선하시며 죄와 불결이 전혀 없으십니다. 사람은 죄성이 있어서 항상 거룩하게 살지 못하며 오직 거듭난 자는 그 속에 계신 성령[성신]님의 도우심으로 조금 거룩의 열매를 맺지만, 예수께서는 신성(神性)의 도움으로 항상 거룩하십니다.

20절에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영생의 길이 계명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십계명 즉 율법의 내용입니다. 레위기 18:5,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신명기 5: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이 사실은 사도 바울도 증거합니다(롬 10:5; 갈 3:12). 

21-22절. 여짜오되 “이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그가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키는 생활을 힘썼던 것을 보면 기본이 되어 있고 꽤 경건하고 도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0:21에 보면,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관원의 계명 준수는 실상 영생을 얻을 만큼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을 완전한 의가 되기에 부족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사람마다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관원의 경우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의지한 것이 부족이었습니다. 재물에 대한 그의 애착은 하나님의 명령이나 주님의 초청보다 더 컸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세 가지를 권면하십니다.

첫째,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주님께서는 모든 제자들에게 이것을 요구하지는 않으십니다. 모든 제자들이 자기들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재물을 초월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며, 또 선행과 구제를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재물은 좋은 것이지만, 재물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며 따르는 일에 재물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대신에 우상이 되기 쉽습니다. 구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며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한 일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인들은 자발적으로 자기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가난한 교우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행 2:45). 그것은 형제 사랑의 실천입니다.

둘째,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물이 네게 있으리라.” 우리가 재물을 가지고 구제와 선행을 실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천국에서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자원적 선행과 구제는 우리로 천국에서 상을 얻게 할 것입니다(고전 9:17). 

셋째,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주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이런 초청을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는 특별한 초청입니다. 실상, 여기에 구원의 참된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시며 영생의 길이십니다. 로마서 3:21-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대언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절.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이 공무원은 큰 부자이었기 때문에 주의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여 재산을 나눠주는 것을 포기하니 영생도 포기한 것입니다. 그는 영생을 얻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그 많은 재물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의 근심은 재물 사랑과 영생 소원의 충돌에서 생긴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마 6:24). 그러므로 누가복음 14:33에 보면, 주께서는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24-25절. 예수님께서 그가 심히 근심하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재산이 많은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십니다.부자는 재산이 많은고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그것은 낙타가 예루살렘 성문가운데 가장 작은 문을 “바늘귀”라 별명하는데 그 문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바늘귀라는 작은 문에 들어가려면 모든 짐을 다 내려 놓고 낙타가 바짝 엎드리어 이리저리 비집고 들어가야 겨우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합니다(딤전 6:9-10). 

26-27절. 듣는 자들이 말하기를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영생을 얻는 것,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구원얻는 것은 다 같은 사실입니다. 사람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하나님께서는 가능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28-30절.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저희가 저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좇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사도들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모든 것 곧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서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5.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죽으심과 부활을 예고하심 Jesus Foretells His Death a Third Time (눅 18:31-34)
(31)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대언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33) 그들은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그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31절. 예수님께서는 며칠 후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아시면서도 그리로 올라가십니다. 그분은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시기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셨습니다. 선지자[대언자]들은 메시아에 대해 증거하였고 그것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제사 제도나 유월절 어린양이나 성막 등의 예표들을 통해 메시아에 대해 증거하였고 직접적 예언들을 통해서도 증거하였습니다. 구약성경은 한마디로 오실 메시아에 대해 증거합니다. 
32-33절. “인자(人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생애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건 곧 그의 죽음과 그의 부활에 대해 예언하셨는데, 이 두 가지 사건은 구약성경에서 예표 혹은 예언된 바입니다. 

34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말씀이 감추였으므로 그들이 그의 말씀하신 바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고(마 11:27), 또 그에 대해 바른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17).

6. 시각장애인 걸인을 치유하심 Jesus Heals a Blind Beggar(눅 18:35-43)
(35)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시각장애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 무리의 지남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37) 그들이 “나사렛 예수님께서 지나신다” 하니(38) 그 시각장애인이 외치기를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he should hold his peace)”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0) 예수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으시기를(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가 말하기를 “주님, 보기를 원하나이다”(4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느니라” 하시매(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좇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35-37절,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시각장애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무리의 지남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저희가 나사렛 예수님께서 지나신다 일러줍니다. 마태와 마가는 예수님께서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라고 보다 정확히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이 시각장애인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는데 그는 가족도, 친구도, 아름다운 세상도 볼 수 없었고 물질적으로 도와줄 가족도 없었습니다. 그는 무리의 지남을 듣고 나사렛 예수님께서 지나심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그에게는 다시 없을 절호의 기회이었습니다. 

38절.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는 말은 이 시각장애인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음을 나타냅니다. 구약의 선지자[대언자]들은 메시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는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라”고 예언하였고(사 11:10), 예레미야는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고 예언하였고(렘 23:5). 또 에스겔도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고 예언하였고(겔 34:23), 호세아도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호 3:5). 그 시각장애인 거지의 마음 속에는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39절.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앞서 가는 자들의 태도는 잘못되었습니다. 그들은 꾸짖을 것이 아니라 그를 동정하고 그를 주님 앞으로 인도해주어야 했을 것입니다. 믿음의 길에는 때때로 방해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시각장애인은 주님께 부르짖는 것을 중단치 않았고 더욱 크게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질렀습니다. 

40-41절. 그의 낙심치 않는 부르짖음은 마침내 응답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머물러 서셨고 그를 데려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뜻과 예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간구하는 자를 외면치 않으시고 불러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고, 그는 “주님,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소경은 보기를 원하는 분명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여’라는 그의 말은 그가 예수님을 자신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으로 믿었습니다. 오늘날도 모든 죄인들은 자신이 하나님도, 구원도, 내세도 알지 못하는 영적 시각장애인인 것을 알고, 보기를 원하는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영적 시각장애인 것을 알아야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42-43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좇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예수님의 치료는 단순하고 즉각적이었습니다. 그가 “보아라”라고 말씀하시자, 그 시각장애인은 곧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씀 한마디로 치료하셨습니다. 그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시각장애인은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말씀처럼 우리는 기도 응답을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 기도드립시다. 바리새인처럼 기도하지 말고 세리처럼 회개하며 가슴을 치고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죄인입니다”고 기도드립시다.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사모합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가족이나 부모나 자녀를 다음 순서로 미루고 영생을 쟁취합시다. 우리의 영적 시각장애를 고침받아 주님의 나라를 보게 합시다. 오늘 맥추감사절에 더욱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주님앞에 나아갑시다. 아멘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로이가 되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어린 아이들의 신앙을 회복하여 정직하고 겸손하며 정결하게 하사 주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게 하옵소서. 지난 1년간 로이교회를 지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더욱 새벽기도와 주일 오전, 오후예배에 힘쓰게 하시며 우리 교회를 천국행 열차가 되어 한사람도 지옥에 가게 하지 말고 구원받게 하는 역사가 100개나라 100개 교회이상에 확산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공부를 위한 질문들]
1. 불의한 재판장이 과부의 요청을 들어주었던 이유는? (5절)
2.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의 뜻은? (8절)
3. 바리새인 기도의 문제점은? (14절)
4. 왜 하나님 나라가 어린 아이들 것이라고 하셨나? (16-17절)
5. 부자 공무원이 하나님 보다 무엇을 더 사랑했는가? (23절)
6. 누가 현세에 여러 배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을 수 있나? (29절)
7. 여리고의 시각장애인이 주님께 말씀드린 소원은? (4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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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수양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매일 주님의 겸손과 온유, 순종을 배우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7월 3일 월 찬 64장(통 13) 창 15 아브라함의 언약
    4일 화 찬 68장(통 32) 창 16 하갈과 이스마엘
    5일 수 찬 69장(통 33) 창 17 할례 언약
    6일 목 찬 66장(통 20) 창 18 세 천사의 방문
    7일 금 찬 70장(통 79) 창 19 소돔과 고모라 멸망
    8일 토 찬 71장(통 438) 창 20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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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us06web.zoom.us/j/7049077483?pwd=UzNvdldBM04xMFlWQSswVWxDT3YvQT09,  회의 ID: 704 907 7483 / 암호: 12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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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신학교 Gethsemane Mission Seminary

◉2023년도 가을학기 개강(2023년 8월 28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종강(2023년 11월 27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장소: 수원 향기나는나무 교회(이태환 목사 시무), 본당과 디모데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네이비에 ‘겟세마네신학교’ 검색]
  연락처: 010-3288-2878, 010-9367-7605, 010-9113-1127
◉로이교회 후원계좌: 농협 302 0280 1002 11 YunSam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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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임직 감사예배 초청 ▣

성삼위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기원합니다.
아래와 같이 목사 임직 감사예배를 거행합니다. 공사다망하신 가운데 꼭 참석하셔서 주님의 종으로 부름 받은 분들을 축하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임직자: 이상희, 이연향, 김대은, 오선화
일시: 2023년 7월 9일 주일 오후 8시 (저녁식사는 6시 반부터)
장소: 부여새움교회(CITS)
       충남 부여군 충화면 오덕로 27번길 100
주관: 겟세마네세계선교총회 서울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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