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 선교사 손자, 리처드 언더우드 별세
언더우드 선교사 손자, 리처드 언더우드 별세
  • 배성하
  • 승인 2023.07.12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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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 이틀 전, 전화를 걸어 직접 장례식 부탁/
"자신의 가문이 한국을 미국보다 사랑했다"/
장례식, 샴페인-어바나한인교회에서 열려/
리처드 언더우드 (원득한) 장로

【뉴스제이】 배성하 기자 = 조선말 미국 장로교 선교사인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한국이름 : 원두우 / 1859-1916) 선교사의 손자인 언더우드 3세, 리처드 언더우드(Richard Underwood, 한국이름 : 원득한) 전 서울외국인학교 교장이 지난 6월 25일 오전 10시에 미국 일리노이(Illinois) 어바나시(Urbana) 자택에서 심부전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천국환송예배는 현지시간 지난 8일(토) 오후 1시 샴페인-어바나한인교회(담임 함종헌 목사)에서 열렸다.

특히 미국교회가 아닌, 샴페인-어바나 한인교회에서 천국환송예배를 드리게 된 것은 리처드 언더우드 장로가 소천하기 이틀 전, 샴페인-어바한인교회 함종헌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가문이 한국을 미국보다 사랑했기에 함종헌 목사에게 장례식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국환송예배는 리처드 언더우드 장로의 가족과 친지, 동료 외에도 샴페인-어바나 한인교회 전교인이 참여하여 축제와 같이 진행됐다. 이날 예배는 리처드 언더우드 가족 친지의 추모의 시간을 통해 고인의 행적 속에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시간으로 시작됐다.

천국환송예배에서 함종헌 목사는 고린도전서 15장 51절로 58절을 본문으로, ‘부활 안에 있는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함 목사는 “리처드 언더우드 장로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은 주 안에 우리도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라며 “우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것을 믿으며 우리도 믿음 생활 가운데 승리하자”고 유가족들과 참석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

천국환송예배 후 유가족, 참석자들은 샴페인-어바나한인교회 ‘한국선교센터’(Korean Mission Center)에 모여 고인의 삶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원득한(리처드 언더우드) 장로는 한국 선교의 선구자인 조선말기 미국 선교사인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한국이름 : 원두우)와 의사인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 (Lillias Horton Underwood)의 손자이며, 호레이스 호턴 언더우드(Horace Horton Underwood, 한국이름 :원한경)와 에델 반 와그너 언더우드(Ethel Van Wagonor Underwood)의 장남이다.

유족으로는 아내 캐롤 러츠 언더우드, 4명의 자녀 프레더릭, 마릴린, 데이비드, 엘리자베스, 그리고 손자 9명, 증손녀 1명, 여동생 그레이스 언더우드 하크니스 등이 있다.

1927년 서울에서 출생한 리처드 언더우드는 그의 어머니가 1912년에 초대 선생님이었던 서울외국인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이후 경력의 대부분을 서울외국인학교에서 보냈다. 그의 타고난 한국어 구사 능력과 성품을 형성 시켜준 곳은 연세대학교 신촌 캠퍼스 근처의 연희 마을이었다. 1942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들어간 그는 브루클린의 아델피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해밀턴칼리지에서 학사 학위를, 컬럼비아대학와 럿거스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리처드 언더우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와 한국전쟁 동안에 美 육군전략국(Office of Strategic Services)에서 복무했다. 그는 한국전쟁 휴전 회담 동안 통역관으로 그의 큰 형 호레이스와 함께 근무하여 브론즈(Bronze, Oak Leaf Cluster) 훈장을 수여 받기도 했다. 

할아버지 언더우드 선교사의 초상화 제막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리처드 언더우드는 미국 한국재단(America Korea Foundation)에서 근무했으며, 이후 미국 장로교회의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며 1961년에 서울외국인학교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1992년 학교장을 은퇴하고 미국 일리노이주 어바나로 거처를 옮겨 지역 사회와 교회에서 활동했으며 샴페인-어바나 한인교회 고문으로 활동했다. 그는 남편, 아버지, 교육자,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한국과 미국에서 사랑받는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지난 2016년 한국을 방문해 할아버지 언더우드 선교사가 고종황제에게 받은 유물 ‘사인참사검’을 연세대에 기증하기도 했다.

척박한 현실 가운데 실망과 좌절보다는 오히려 열정을 다해 조선의 교육과 의료사업을 위해 헌신했던 언더우드 가문. 특히 4대에 걸쳐 한국에서 선교사로 봉사하며 교육, 의료, 정치 및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한국의 근대화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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