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견(犬)생’과 ‘인생’
[행복칼럼] ‘견(犬)생’과 ‘인생’
  • 나관호 발행인
  • 승인 2022.10.12 0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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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 목사의 행복발전소 187]

나에게 강아지는 친밀한 친구/
입양견 아이들 있어 행복하다/

【뉴스제이】 우리 집 식구 목록에는 ‘깐지’, ‘대박이’, ‘조이’가 있습니다. 예쁜 강아지들입니다. 아내와 내가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 입양했습니다. 나 또한 형제없이 삼대독자로 살다보니 어린시절 강아지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세퍼트와 누렁였습니다. 삼대독자인 나에게 강아지는 친밀한 친구였고, 내 발을 핥으며 늘 친밀하게 다가왔던 강아지들입니다. 

세 마리 반려견, ‘깐지’, ‘대박’이와 가장 나중 입양된 ‘조이’까지 모두 나름의 사연(?)이 있습니다. 모두 다 원집에서 키울 수 없는 강아지들을 데려왔습니다. 검은 푸들 ‘깐지’는 ‘안락사’까지 생각했던 강아지입니다. 다행히 우리 집에서 여섯 살 ‘깐지’는 사랑스럽고 귀엽고 순종 잘하는 강아지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는 푸들 ‘깐지’, 슈나우저 ‘대박’, 비글 ‘조이’가 있다.    Ⓒ뉴스제이   

그리고 ‘깐지’ 동생으로 막내 처제에게서 입양 온 슈나우저 ‘대박'이도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제 집에는 이미 두 마리의 푸들이 사이좋게 살고 있는데, 슈나우저 ‘대박'이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냥개 본능을 가진 슈나우저 ‘대박'이는 푸들을 점령하고 위에서 누르고 심하게 장난을 치곤 했습니다.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어 우리집으로의 입양을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집에도 검은 푸들 ‘깐지’가 있으니 서열이 문제였는데, 8개월 슈나우저 ‘대박'이가 세살 ‘깐지’를 만나자마자 형제가 되었습니다. ‘대박'이가 스스로 서열을 지켜준 것입니다. 같은 검은색 털을 가져서 그런지, 서로 대면하자마자 얼굴을 맞대고 서로 살피더니 그냥 오랜 형제처럼 친밀감을 보여주었습니다. 

‘깐지’는 착하면서 무게감 있는 아이입니다. 글을 쓰고 있으면 내 옆에서 보디가드 역할을 합니다. '깐지' 동생, 슈나우저 ‘대박'이는 순수합니다. 순진하고 머리가 좋습니다. 생김새도, 하는 행동도 너무 맘에 듭니다. 에너지가 넘치고 먹성이 좋습니다. 사람의 말을 거의 알아 듣는 것 같은 아이들입니다.

천국가신 치매 어머니는 강아지를 좋아하셨습니다. 치매 환자에게 움직임이 있는 강아지는 치매를 늦추는데 도움이 됩니다. 강아지를 좋아하셨던 어머니를 천국으로 보내드리고 허전했던 마음에 웃음을 만들어준 ‘깐지’입니다.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나에게는 필연이었습니다. 원래 강아지를 좋아하고 자주 강아지를 키우기는 했지만 ‘깐지’는 특별한 아이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처제가 개척한 교회에 청빙설교자로 가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처제가 집사람에게 강아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같은 빌라 윗층에 사는 이웃이 이번에 비글 9마리 강아지를 출산했답니다. 그래서 처제에게 한 마리 입양하라고 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내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집에는 ‘깐지’와 ‘대박'이가 있지 않은가. 아내는 “비글 얼굴이 잘생겼다”며 입양하면 어떨지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비글이 태어난 집에는 이미 다섯마리를 키우고 있어, 입양할 집에 없으면 그냥 죽게(?) 놔둘지 모른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와 집사람은 눈으로 말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또 죽을 강아지란 말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집에서 세 마리를 키우는 것이 어려울 상황이었기에 안타까운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데, 처제가 비글을 데려와 만났습니다. 4개월 수컷, 남자아이였습니다. 보자마자 속으로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기쁨을 주는 ‘조이’(Joy)라고. 오래전에 전에 키웠던 강아지의 이름입니다. 

아내와 내가 눈이 마주쳤습니다. 집사람이 말했습니다. "참 예쁘고 귀엽기는 한데, 우리집에 두 마리 강아지가 있어서 세 마리를 키우는 것은 무리죠". 나는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입을 연 것은 ‘조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큰소리(?)였습니다. 내가 ‘조이’라는 이름을 말하자 아내눈 이미 내가 입양을 결정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아내도 예전에 키웠던 ‘조이’를 생각했으니까요.
 
당장 차에 싣고 ‘조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차 안에서 집사람의 품에 안긴 ‘조이’는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후에 처제에게 들은 말은 남았던 ‘조이’ 형제 두 마리 비글이 결국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음 앞에서 사연을 가지고 우리지에 오게 된 ‘조이’입니다. 아내와 나는 세 마리를 키우는 것이 사실좀  부담스럽고 어렵지만, ‘조이’를 데려오기를 잘했다는 말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조이'는 잘생긴 외모에 장난감 같고, 어린아이 같은 애교가 있습니다.

강아지를 좋아한 삼대독자 나의 돌잔치(왼쪽)와 지금도 강아지를 좋아해 깐지를 안고 있는 나.    Ⓒ뉴스제이

그렇게 ‘깐지’, ‘대박이’, ‘조이’는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우리집에 왔습니다. 다른 곳에서 살 수 없었던 강아지들입니다. 우리집에 와야만 했던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잘 생긴 ‘조이’, 영리한 ‘대박'이, 포스 있는 ’깐지‘의 얼굴을 보면서 웃고, 행복한 부부 대화도 합니다. 

‘깐지’의 너그러운 마음과 ‘대박이’의 순수한 행동 그리고 ‘조이’의 아기 같은 애정 표현이 조화를 이룹니다. 화해와 사랑, 이해와 배려, 나눔과 보호행동을 하는 ‘깐지’와 ‘대박이’ 그리고 ‘조이’를 보면서 기쁨과 행복을 누립니다. 

충성스럽고 순수한 강아지들의 행동을 경험하면서, 인생사에 빗대어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견(犬)생’과 ‘인생’.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왜 사람들은 그럴까?’

강아지의 충성심과 애정 표현 그리고 주인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이 삶의 에너지를 줍니다. 사람에게 솔직한 편인 나에게 때론 사람들이 상처를 던져줍니다. 나는 그냥 사람 자체를 누구나 좋아합니다. 형제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서 사람 자체를 너무 좋아하는 것이 장점이면서 단점입니다. 속마음도 잘 전하기 때문입니다.

강아지들은 배신도, 뒤통수치는 일이 없어서 더욱 좋아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익만을 좇아 살고, 이용하고, 당을 지어 공격도 합니다. 예수님은 당을 짓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느날, ‘예수님이 지금 시대에 사신다면 강아지를 좋아하실까’라는 질문을 나에게 해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이니 당연히 좋아하셨을 것입니다. 아마 강아지 이름을 ‘크로스’, ‘해피’, ‘러브’ 같은 이름으로 지으셨을 것입니다,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해합니다. 나와 아내 그리고 우리 딸들도 강아지를 너무 좋아합니다. 그냥 끌리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우리집 강아지를 바라보며 사람들의 행동을 빗대어 가끔 생각하곤 합니다. ‘견(犬)생과 인생’..... 결론이 금방 나옵니다.

 

나관호 교수목사 (뉴스제이 대표 및 발행인 / 치매가족 멘토 / 말씀치유회복사역원(LHRM) 원장/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제자선교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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