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진정한 '영적 분별력'이란? ..... "거짓말과 이간질을 분별하는 것"
[나관호목사 칼럼] 진정한 '영적 분별력'이란? ..... "거짓말과 이간질을 분별하는 것"
  • 나관호
  • 승인 2020.09.23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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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 목사의 행복발전소 118]
사단은 거짓말쟁이, 이간질쟁이/
아담과 하와, 거짓말에 ‘선악과’ 먹어/
사단, 하나님과 인간 사이 ‘이간질’/
하와에게 ‘거짓정보’로 이간질/
회개할 수 있는 힘은 은혜이며 축복/

【뉴스제이】 원죄. 에덴동산에서 생긴 인간의 타락입니다. ‘영혼육’에 이상 작용이 생긴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결과는 ‘영’은 죽고, ‘혼’은 죄와 욕심으로 가득하고, ‘육’은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소통이 단절된 것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육’은 원래대로 돌아가는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육체의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하늘과 땅의 권세를 위임받고 모든 동물의 이름을 지으며, 에덴의 경작권을 지녔습니다. 그런 그가 어쩌다 모든 권세를 잃어버리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단의 말을 듣고, 믿고 행했기 때문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세기 3:4-6)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7).

‘선악과’를 따 먹기 전, 아담과 하와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외에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고 하셨으니, 그중에는 동산 변방(?)에 있을 것 같은 ‘영생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영생과’를 먹고 영원히 살아가야 했던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쟁이, 이간질쟁이 사단에게 속아 ‘선악과’를 먹게 된 것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세기 3:4-5)

‘선악과’가 아담과 하와에게 가져다준 가장 큰 오류는 ‘거짓말’입니다. 거짓의 아비, 사단이 뱀의 형상으로 나타나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세기 3:4)고 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7).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은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거짓말로 유혹했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세기 3:5)고, “하나님 처럼 되는 것을 하나님이 알기에 일부러 먹지 말라”고 하신다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간질’을 했습니다. ‘이간질’은 더 무서운 거짓말입니다. 만약 사단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단이 선악과를 따 먹으면 될 것인데.... 올바른 선악의 판단자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단의 유혹에 반응한 하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와는 사단의 거짓말과 이간질을 듣고 ‘선악과’를 다시 바라보자,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하와의 눈과 마음에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로 보인 것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세기 3:6)

사단의 거짓 유혹을 듣지 않았을 때는 아무리 동산 중앙을 지나 다녀도 ‘선악과’는 못생기고, 볼품없고, 접근하기 싫고, 탐스럽지 않은 열매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것아니까요.  그러나 하와는 달콤한 사단의 거짓말과 이간질을 분별하지 못하고 빠져든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불신함으로서 관계를 스스로 멀어지도록 만든 것입니다.

사단의 거짓말 유혹과 이간질은 달콤합니다. 달콤하다는 것은 “그럴 듯하고, 정말 그런가?, 그럴 수도 있나?, 그렇게 못도록 하는 건가!”등등 상대가 넘어갈만한 ‘거짓정보’로 마음을 흔들어대는 것입니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에게 거짓말을 넘어 ‘거짓정보’를 줍니다. 그것은 특히, 하와에게 한 말입니다. “네가 먹으면 선악을 판단할 줄 아는 사람된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셔. 그래서...”, 이것은 이간질을 하기 위한 ‘거짓정보’입니다. “죽지 않아”라는 말은 거짓말이지만, “하나님이 아셔. 그래서...” 이간질은 상대방과 누군가 관계에서 ‘불신과 의심’를 유발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의 관계를 흔들고, 끊어 놓기 위한 ‘거짓 이간질’이기에 '질이 더 나쁜 거짓말'인 것입니다.

‘영적 분별력’이란 ‘거짓말과 이간질’에 넘어가지 않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을 거짓정보에 넣어 이간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말을 듣는 그 사람도 그 이간질쟁이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거짓말’과 ‘이간질’을 병행하는 사람 말입니다. 나는 내 인생에서 그런 사람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에게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그 사람의 경우는 어쩌면 회개의 은혜를 성령님이 주셔도 거부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진지하게 다윗을 그렇게 괴롭혔던 사울왕과 세명의 아들들이 같은 날에 죽었다는 사실을 살펴봐야 합니다. 습니다. 아들들이 블레셋에 의해 먼저 죽고, 사울은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잡으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은지라.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사울이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사무엘상 31:1-6)

사울왕이 죽고, 사울의 아들들 중 한명이라고 살아 있다면, 다윗의 왕권 계승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암투가 있었을 것이고, 피를 부르는 싸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때론 죽음도 하나님이 악과 거짓을 끊는데 사용하십니다.

20여년 전, 희한한(?) 사람을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회개를 하고 싶은데, 회개가 안된다’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회개하고 싶은데, 기도도 안나오고 답답하다는 말이었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사실 회개의 과정은 ‘성령님의 감동과 은혜’가 있어야 되는 '칭의' 과정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와 힘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영적 분별력’을 가지게 됩니다. ‘영적 분별력’이란 ‘거짓말과 이간질’에 넘어가지 않고, 분별하는 것이며, 회개할 수 있는 힘은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그래서 또한 회개의 기회를 아는 것도 ‘영적 분별력’입니다.


나관호 교수목사 ( 뉴스제이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말씀치유회복사역(LHRM) 대표 / 119긴급기도운동본부 대표 / 조지뮬러영성연구소 소장 / 대중문화 및 교회사 연구교수 / 치매가족 멘토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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