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칼럼] 역경 속에 핀 꿈을 이룬 사람
[김영진 칼럼] 역경 속에 핀 꿈을 이룬 사람
  • 김영진
  • 승인 2019.09.08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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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선 국회의원과 53대 농림부 장관을 역임한 관록과 인생역정
'1946년 해방둥이'...1945년 8월 15일 해방, 부모님의 기쁨으로 인해 잉태

【뉴스제이】 1945년 해방 이듬해에 태어난 진정한 '해방둥이'다. '1946년 해방둥이'를 극구 말하는 이유는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으로 인한 기쁨으로 인해, 부모님의 정열적인 사랑 안에서 임신되어 태어난 온전한 환희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1946년 해방둥이'가 진정안 '해방둥이'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의 탄생 목적과 시기를 귀중하게 생각하고 기뻐한다.  

꿈 없이 꽃은 피지 않는다. 고난과 역경을 넘어야 삶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생긴다. 나에게 몸이 아픈 것보다는 더 고통스러운 것이 가난이었다. 전남 강진군 도암면에서 누구든 붙잡고 제일 가난한 집을 물으면 열이면 열이 모두 김영진 전 장관의 집이 가난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학업을 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잠결에 부모님 말소리를 들었다. 졸음이 가시지 않아 눈을 감고 가만히 들어 보았다. 두 분은 말다툼을 하고 계셨다.

"영진이는 중학교 졸업하면 무릎을 꿇려야겠소"

무릎을 꿇린다는 것은 상급학교에 보내지 않고 학업을 중단한다는 뜻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친구들은 다 고등학교에 가는데 나만 뒤쳐지는 것도 너무 싫었다. 당황스럽고 서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가난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도 그만둬야 한다니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어머니께선 떡 장수를 하든 뭐를 하든 가르칠 테니 영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생각은 하지 마시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고마워서 가슴이 먹먹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 해야 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어린 나는 우체국을 찾아 들어가 국장님께 스탬프 찍는 일을 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조그만 녀석이 내가 뭐가 뭘 할 수 있냐“는 말씀만 하시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지만 이내 스탬프를 빠르게 찍는 열정을 보고 일하라고 허락하셨다.

나는 스탬프를 잘 찍어서 학비를 벌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도와 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간구했다.

간절함은 빛도 뚫을 수 있다. 그때 만약 국장님께서 타박을 했더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옛생각을 하면 언제나 눈시울이 적셔진다. 당시 어린 가슴에 묵직한 감사함이 뭉클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우체국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한 달에 5천 원씩 받는 월급을 쓰지 않고 꼬박꼬박 모았다. 우체국 통장에 넣어서 1년치의 돈을 모아 강진 농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떳떳하게 교복을 입고 교문을 당당히 들어갔다. 온 세상이 부럽지 않았으며 가슴이 벅차고 뿌듯해서 눈물이 났다.

농협 임시직을 거치며 10년의 농협생활, 농민운동, 통금해제운동, 5급 청문회 의정활동 이야기는 내 인생의 노른자다. 인생에 있어 세 번의 기회가 있다. 첫 번째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두 번째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세 번째는 좋은 친구와의 만남이다. 이런 기회의 삶을 살리며 진솔함과 진실을 기초한 감사함의 삶을 살면 그것이 행복인생이요, 승리인생이다. 나는 그렇게 진솔함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누구보다 감사의 마음과 열정으로 지켜나갔다. 그래서 난 행복인생이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진단과 처방,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제도 그렇다. 국제관계도 마찬가지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한일 문제 해결의 길도 진단과 처방,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내가 국회의원 시절 한·일 의원간의 세계 기록의원연맹을 제안하고 경험에 의한 문화적 종교적 교류를 했던 경험이 하나의 좋은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

나는 농촌 출신 국회의원으로 우르과이라운드 입장 반대를 하기 위해 제네바에 갔다. 한국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미국대표를 만나 람보식 협상을 했다. 쌀 수입이 불가능하다는데 충격을 받아 문화인으로서 가장 강력한 항의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한 장로가 말씀하셨다. “죽는 거라고. 죽을 수는 없었기에 또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며, 외치라”고 했다. 그대로 나는 그대로 실천했다.

아스팔트위에서 무릎을 꿇고 세 가지 방법을 시작했다. 주변에서의 얼마나 가겠냐는 반응이었지만 결과는 있었다. CNA방송, KBS방송국에서 촬영하러 오기 시작했다. 고집스럽게 밀어 붙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원안대로 고스란히 채택되었다. 마침내 UR이행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렇게 모든 인생이 역경 속에서 열매를 맺는다. 겨울에 춥지 않으면 동백꽃은 피지 않는다. 고난이 동백꽃을 피게 한다. 지나친 고난에 무릎 꿇지 않으면 기어코 꽃으로 핀다. 나는 고난을 이기고 입지(立志)한 사람이다. 나는 역경 속에 핀 꿈을 이룬 사람이다. 

 

김영진 이사장 ( 5선 국회의원 / 53대 농림부 장관/ 국회재단법인 '3,1운동 UN/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 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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