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읽는 예배]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요 1장)
[영상&읽는 예배]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요 1장)
  • 윤사무엘 목사
  • 승인 2022.09.23 06: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제이】 다음 설교문과 예배자료는 9월 25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열여섯 번째 주일), 대한예수교장로회 겟세마네교회(인천 송도) 주일예배용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납되는 주일예배를 준비합시다. 9월은 '기도의 달'로 지키며, 다음 예배 자료를 나눕니다. 샬롬샬롬!!! (겟세마네교회(합동) :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 IBS Tower 11층 6호)

하나님께 더 가까이(39):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요 1장)

  “Behold the Lamb of God!”

본문: 요한복음 1:19-51
요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The next day John seeth Jesus coming unto him, and saith, Behold the Lamb of God, which taketh away the sin of the world.”(요1:29)
주제: 세상의 모든 죄들을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되신 예수님.
교독문: 86번(계14장), 예배의 부름: 사 1:18~20
찬송: 615장(통 없음), 200장(통 235장), 259장(통 235장)

일자: 2022년 9월 25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열여섯 번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교회 담임)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 IBS Tower, 11층 7호 
       [예배시간: 매일새벽기도(월-금) 오전6시, 주일예배 오전 10:30]

윤사무엘 목사

요한복음 서언(Prologue)에 해당하는 “로고스(Logos) 찬가”는 생명의 빛, 진리의 빛(참빛), 성육의 빛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흔히 요한복음은 영어로 3L로 중심단어(key word)로 요약하는데 Life(생명), Light(빛), Love(아가페 사랑)의 첫글자를 모은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the purpose of the Gospel according to John)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들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들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입니다.

예수님(예슈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않고 멸망치 않고 무궁한 생명을 얻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전도와 선교할 때 요한복음의 요절 두 개를 제시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무궁한 생명(everlasting life)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무궁한 생명(everlasting life)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이 요절을 반드시 암기합시다.
 
1. 세례 요한의 증거 Testimony of John the Baptist(요 1:19-34)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인가요?”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저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하니 (21) 또 묻기를 “그러면 무엇, 당신이 엘리야인가요?” 대답하기를 “저는 아닙니다” 또 묻기를 “당신은 그 대언자인가요?” 대답하기를 “아닙니다."(22) 또 말하기를 ”누구세요? 우리를 보낸 분들에게 대답하게 해 주세요. 당신은 자신에 대하여 무엇이라 생각합니까?”(23) 말하기를 “저는 대언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하니라.(24)그들은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 사람들이라.

(25) 또 물어 말하기를 “당신이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대언자도 아닌데 어찌하여 세례[침례]를 줍니까?”(26) 요한이 대답하기를 “저는 물로 세례[침례]를 주지만 여러분들 가운데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계시니(27) 곧 제 뒤에 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저는 그분의 신들메(신발끈 shoe’s latchet) 풀기도 자격이 없습니다” 하더라.(28) 이 일은 요한의 세례[침례] 주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29) 이튿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Behold, the Lamb of God, which taketh away the sin of the world. (30) 제가 전에 말하기를 제 뒤에 오는 분이 계시는데 저보다 앞선 것은 그분이 저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분을 말했습니다.

(31) 저도 그분을 알지 못하였으나 제가 와서 물로 세례[침례]를 주는 것은 그분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니라.(32)요한이 또 증거하여 말하기를 “제가 보니 성령님(the Spirit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분의 위에 머무르십니다. (33)저도 그분을 알지 못하였으나 저를 보내어 물로 세례[침례]를 주라 하신 그분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님(the Spirit)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분께서 곧 성신님(the Holy Ghost)으로 세례[침례]를 주시는 분이신줄 알라’ 하셨기에(34) 제가 보고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하니라.

세례[침례자] 요한은 예수님 당시 예수님보다 일찍 나타나 유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그는 육신적으로 따지만 예수님의 이종사촌 형(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귀한 대언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였습니다. 지난 주일 읽었던 요 1:6-8에서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그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그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가 바로 세례[침례자] 요한을 말합니다. 

19-21절. 세례 요한이 예루살렘 출신이지만 지금은 요르단강 하류인 베다니(여리고성에서 요르단강 건너편에 위치)에서 회개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바리새인들이(요 1:24) 몇명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부터 파송받아 조사관으로 온 유대인들이 요한에게 “당신은 누구시오?”라고 조사를 시작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 바리새인들이 보낸 조사관들의 질문에 대해 대답하면서 그 자신에 대해 드러나게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드러내어 말하기를 “저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계속 됩니다. “그러면 누구시오? 당신이 다시 오신다는 엘리야인가요?(말 4:5)”고 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저는 아닙니다.” 그들이 또 묻기를 “당신이 그 대언자인가요?”고 하자, 그는 또 대답하기를 “아닙니다”고 했습니다. “엘리야인가요?”고 물은 것은 구약성경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말라기 4:5에 보니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대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 대언자[선지자]인가요?”라는 말은 신명기 18:18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대언자[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라고 하신 말씀에 예언된 인물을 가리킵니다. 

세례[침례자] 요한은 자신에 대해 바르게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항상 자신을 바로 알고 자기 위치를 지켜야 존경받습니다. 자기 위치를 벗어나는 것이 교만의 시작입니다. 이단 종파들의 교주들은 자신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것은 흔히 교만이나 열등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런 것을 다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부족하고 죄성을 가진 피조물임을 고백하고 항상 겸손하게 처신해야 합니다. 

22-23절. 그 조사관들은 집요하게 세례[침례자] 요한에게 묻기를 “당신은 누구인가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해주세요. 당신은 자신에 대하여 무엇이라 하나요?”하니 그는 대답하기를 “저는 대언자[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대언자들의 일차적 임무는 외치는 소리 즉 설교 사역에 있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의 일차적 임무도 그러합니다.

목사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하나님의 뜻만 바르게 전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외칠 내용은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뒤에 오실 메시아를 위하여 길을 닦고 길을 준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당시 왕이 행차할 길을 고르게 바르게 닦았습니다. 골짜기는 메우고 높은 산은 깍아내고 울퉁불퉁한 길은 고르게 하고 굽은 길은 곧게 한 것처럼 요한은 메시야의 길을 그렇게 준비한 것입니다. 회개운동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온유함으로 구원을 사모함을 가리킵니다.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모든 죄인들이 거쳐야 할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다시 올 엘리야의 사역을 말라기 4:5-6에서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대언자 엘리야(Elijah the prophet)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And he shall turn the heart of the fathers to the children, and the heart of the children to their fathers, lest I come and smite the earth with a curse.”고 한 말씀이 세례 요한을 통해 성취된 것입니다.

24-27절. 그 조사관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에게 또 묻기를 “당신이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대언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침례]를 주나요?” 요한은 대답하기를 “저는 물로 세례[침례]를 주지만 여러분들 가운데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 한 분이 섰으니 곧 저보다 앞선 자시니, 저는 그분의 신들메[신끈 shoe’s latchet] 풀기도 감당치 못합니다.”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메시아가 신적 인격이시며 자신은 연약한 인생에 불과함을 바로 알고 인정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부족을 알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 위치를 지켜야 한다. 로마서 12:3은,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28절. 이런 조사와 세례[침례자] 요한의 회개사역이 일어난 곳은 요르단강과 염해가 만나는 근처인 베다니(오늘날 현지명칭은 와디 알-카라르 Wadi al-Kharrar, 1940년부터 고고학 발굴됨으로 알려지기 시작)에서 된 일이라고 증거합니다. 요한복음서에는 베다니라는 지명이 두 군데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곳으로 요르단 강의 하류로, 엘리야가 승천한 장소요 세례 요한의 사역센터가 있는 곳입니다. 또 다른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2km 떨어진 곳으로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가 살던 집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실 때마다 머무시며 식사를 제공받은 것입니다. 

29절. 요한이 조사받은 다음날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요한은 군중들에게 소개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한 첫 번째 증거는 그분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메시아께서 구약의 제사제도에서 보인 대로 속죄제물(막 10:45 ransom, 롬 3:25 propitiation)이 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 사역을 가리킵니다. 세상 죄를 짊어지신 어린양은 유월절 어린양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고린도전서 5:7의 증거대로, 유월절 양의 죽음입니다. 그분은 세상 죄, 정확히 말해 세상에 흩어져 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죄를 짊어지신 속죄제물로 죽으셨습니다. 

30절. 요한은 또 말하기를 “이전에 제가 말씀드리기를 제 뒤에 오시는 분이 계시는데 저보다 앞선 것은 그분께서 저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분이십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기보다 앞서신 분'이시며 '자기보다 먼저 계신 분'임을 증거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요 1:15과 27절에서 증거된 것이며 예수님의 무궁한 신성(神性)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단지 한 인간이 아니시고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신적인 존재이십니다. 그분은 요한복음 1:1에 증거된 대로 '태초에 이미 계셨던 분'이십니다.

31-33절. 요한은 계속 예수님을 소개하기를 “저도 그분을 알지 못하였으나 제가 와서 물로 세례[침례]를 주는 것은 그분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입니다.” 그는 또 증거하여 말하기를 “제가 보니 성령님(the Spirit)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분의 위에 머무르십니다. 저도 그분을 알지 못하였으나 저를 보내어 물로 세례[침례]를 주라 하신 그분께서가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님께서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분이 곧 성신님(Holy Ghost)으로 세례[침례]를 주시는 분이신 줄 알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성령님이라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프뉴마”로 “하나님의 영”(즉 성부 하나님의 영, 성자 예수님의 영, 성신님의 영)을 뜻하며, 성신님이란 삼위일체 하나님 중 삼위에 해당하시는 하나님을 지칭합니다. 세례 요한은 물 세례[침례]를 통해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메시아를 드러내고 증거하려 하였습니다. 그의 임무는 두 가지이었는데,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회개케 하여 메시아께 대한 믿음을 준비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신님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물세례[침례]는 죄사함의 상징이며, 성신님 세례는 그 실체입니다(엡 5:26). 성신님께서 실제로 죄인들을 불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들의 모든 죄를 씻으시고 새 생명을 주십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성신님으로 행하시는 중생(重生) 사역입니다(요 3:5; 딛 3:5).

34절. 세례 요한은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이 책의 서두에서부터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초에 계셨던 하나님'(1:1)이시며 '사람이 되신 독생자'이십니다(1:14). 성경은 그분의 신적 명칭, 신적 속성, 신적 사역, 신적 영광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이심을 밝히 증거합니다. 물론 이것은 신비한 사실입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님,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대속을 위해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 지금도 성신님을 통해 죄인들의 죄를 씻으시고 새 생명을 주셔서 거듭나게 하시는 예수님이 바로 무궁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예수 영화 한장면
예수 영화 한장면

2. 예수님의 처음 제자들(요 1:35-51)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36) 예수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좇아가다.(38)예수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구하느냐?” 이들이 대답하기를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39)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와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시쯤 되었더라.(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Peter)의 형제 안드레(Andrew)라.(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기를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42) 데리고 예수님께로 오니 예수님께서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Cephas)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3) 이튿날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Philip)을 만나 말씀하시기를 “나를 좇으라” 하시니(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Philip was of Bethsaida, the city of Andrew and Peter.) (45) 빌립이 나다나엘(Nathanael)을 찾아 말하기를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대언자[선지자]가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니라(46) 나다나엘이 말하기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말하기를 “와 보라” 하니라(47)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in whom is no guile).” (48) 나다나엘이 말하기를 “어떻게 저를 아시나이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49) 나다나엘이 대답하기를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50)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51) 또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35-37절. 또 세례[침례자]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성신님으로 세례를 주는 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한 이튿날, 요한은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님의 다니심을 보고 말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Behold, the Lamb of God!) '하나님의 어린양'은 하나님의 예비하신 속죄 제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죄인들에게 죄사함과 평안과 영생의 구원을 주시기 위해 속죄 제물로 오셨습니다. 두 제자는 훗날 사도 안드레와 사도 요한인데 이들은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세례 요한도 이를 허락합니다. 대개 내 제자들이 다른 선생님을 따라가면 시기가 나고 나무라지만, 세례 요한은 그렇지 않음은 참빛에 대해 증거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어제 예수님에 대해 증거했을 때는 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가 예수님에 대해 다시 증거했을 때 그의 두 제자들이 그의 말을 듣고 따랐습니다. 그들은 죄를 회개하고 요한의 세례를 받고, 그가 증거한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준비된 자는 때가 되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도구입니다(고전 1:21). 우리는 한 번 전도하여 반응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때까지 다시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38-39절. 이에 예수님께서는 안드레와 요한이 자기를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다 아시지만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사람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를 따라야 함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왜 교회에 나왔는가요? 물질적, 세상적 복을 원해서인가? 아니면, 정말 하나님을 알고 더욱 알고 그분을 만나고 믿고 죄사함과 영생을 얻고 그분을 섬기며 따르기 위함인가요? 그들은 대답하기를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님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랍비여'라고 부른 것은 그를 아직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인격적이며 영적인 깊은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였습니다.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그들은 예수님이 과연 세례 요한의 증거대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지 알기를 원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초청하십니다. “와 보라(come and see).” 그러므로 그들은 가서 예수님께서 유숙하신 곳을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10시쯤 (오후4시경)되었습니다. 그 제자들은 그 날 그들의 생애에서 가장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만난 일이었습니다. 그 교제를 통해 그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던 상태에서 '메시아'라고 부르게 됩니다.

40-42절.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입니다. 다른 하나는 아마 본서를 쓴 요한입니다. 본서의 저자는 자신을 항상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있으나 이 모든 일을 본 자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그 날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해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확신케 되었습니다. 안드레는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 전도했습니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안드레는 베드로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임을 확신한 자는 그를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먼저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 읽기와 듣기, 성경 묵상과 연구를 통해 예수님을 확신하고 또 다른 이들에게 그를 전하거나 또 그들로 하여금 성경책을 읽고 공부하게 하거나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를 듣게 함으로써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드레가 데려온 그의 형제 시몬을 알아보시고 “네가 요한[요나]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게바는 아람어로 번역하면 베드로이다.) 게바는 '반석'이라는 뜻인데, 그것은 시몬의 믿음과 인격이 반석같이 견고해질 것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43-44절. 이튿날 예수께서는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튿날'은 안드레와 아마 요한이 예수님을 따랐던 날로부터 계산됩니다. 처음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랐던 그 날은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요2:1에는 그날부터 계산하여 '사흘 되던 날'이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셨고 그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유대 지방에 계셨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아직 세례 요한이 사역했던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부근에서 되어진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을 만나자마자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람보기에 갑작스럽게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세상의 모든 일을 작정하시고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그 작정하신 바를 다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시편 115:3은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빌립도 세례 요한의 제자로서 요한이 세례주는 곳 부근에 있었고 그의 인격에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회개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메시아에 대한 상당한 지식과 기다림이 있었습니다(45절). 예수님께서는 이런 빌립을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함께 한 동네 벳새다 (of Bethsaida)사람이었습니다. 벳새다는 갈릴리 바다 북쪽 해변의 마을입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갈릴리의 어부이었습니다(마 4:21-22). 다음에 언급될 나다나엘도 갈릴리 가나 사람입니다(요 21:2).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이나 유대 지방 출신자들을 부르시지 않고 갈릴리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다. 그것은 아마 당시의 교회가 매우 부패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의 사람들은 그 종교적 부패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대체로 환경의 영향을 쉽게 받습니다. 교회들이 부패되어 있을 때는 홀로 떨어져서 주님을 섬기는 것도 유익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갈릴리 사람들 중에 순박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참된 경건을 가졌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셨고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셨고 전도사역을 시작하실 무렵에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신 갈릴리 사람이셨습니다(마 4:13).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다 북쪽 해변 마을로서 벳새다 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어릴 때에도 흠이 없는 인격이셨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어릴 때부터 보고 들어서 알았을 것입니다.  

45절. 빌립은 예수님을 따르게 된 그 날 친구 나다나엘[바돌로매]을 찾았습니다. 그는 나다나엘에게 말했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대언자가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라고 전도합니다. 빌립는 메시아에 대한 성경 예언의 지식이 있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메시아를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대언자가 기록한 그분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메시아는 모세가 율법에서 예언하였고 유월절과 성막 제도와 제사 제도 등에 예표(豫表)된 인물이며 또 그 후의 여러 대언자[선지자]들이 예언한 인물입니다. 그는 자기 친구 나다나엘에게 이제 그 예언된 메시아를 만났는데, 그가 바로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확신있게 말하였습니다. 

46절. 그러나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대답합니다. 그의 처음 반응은 많은 사람들의 반응처럼 부정적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이나 예루살렘은 성경에 예언된 바가 있지만(미 5:2; 말 3:1), 나사렛은 예언된 바가 없습니다. 나다나엘에게 나사렛은 메시아를 기대할 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빌립은 와 보라(come and see)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인격적,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은 그를 알 수 있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와 보라'는 말은 언제나 최선의 전도 방법입니다.  

47-48절.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은 경건하고 진실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에 적합한 준비된 인물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은 주님께 묻기를 “어떻게 저를 아시나이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은 아마 그 무화과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였던 것 같습니다. 흔히 유대인들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토라 공부를 즐겨 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성도의 중심을 보시고 받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의 마음과 모든 죄를 버리고 흠과 점 없이 살고자 하는 그의 진실한 중심을 보셨을 것입니다. 

49절. 이에 나다나엘은 대답합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주님의 말씀은 나다나엘로 하여금 모든 의심을 떨쳐버리고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확신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간절한 그의 중심을 보신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이 분명합니다. 안드레와 아마 요한과 베드로와 빌립에게 생겼던 동일한 믿음이 나다나엘에게도 생겼습니다. 이 믿음과 확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도 있고, 우리뿐만 아니라 오늘도 진지하게 성경을 읽고 듣고 묵상하며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50-51절.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대답하시기를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人子)(단 7:13-14)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주님께서는 나다나엘뿐 아니라, 여러 제자들이 장차 그의 신적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증거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가 됩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시다. 안드레처럼 형제들에게, 또 빌립처럼 친구들에게 증거합시다. 아니, 모든 사람에게 증거합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6:15).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확신하는 자마다 다른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시다. 전도는 모든 성도의 사명입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요한복음을 통해 세례 요한의 증거인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저의 모든 죄악을 담당하시는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믿습니다. 죄를 자백하며 그때 그때 용서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님과 동행하며 양육을 받고 성화를 이루어 천국 백성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공부를 위한 공동 질문들]
1.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소개했나?
2. 세례 요한의 제자들 중 누가 예수님을 따랐나?
3. 베드로를 전도한 사람은?
4. 나다나엘을 전도한 사람은?
5. 첫 번 제자들이 예수님을 누구라 믿고 따랐는가?
6. 베드로, 안드레, 빌립의 공통점은? 나다나엘의 고향은?
7.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한다는 일은 어떤 사건을 말하나? 
------------------------------------------------------------
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1) 기도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더 가까이 나아가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는 믿음, 소망, 사랑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금주기도제목: (1) 기도의 달에 나라 사랑으로 매일 24시간을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2) 보혈의 능력으로 무장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가 날마다 부흥하게 하소서!
             (3) 하나님께 더 가까이 믿음, 소망, 사랑이 부요롭게 하소서!
9월26일(월) 찬 60장(통67), 198장(통284) 눅15장(잃은 양, 동전, 아들)
   27일(화) 찬 60장(통67), 198장(통284) 눅16장(옳지 못한 청지지 비유)
   28일(수) 찬 66장(통20), 204장(통379) 눅17장(치유받은 나병환자들) 
   29일(목) 찬 66장(통20), 204장(통379) 눅18장(과부와 재판장 비유)
   30일(금) 찬 67장(통31), 208장(통246) 눅19장(예수님과 삭개오)
10월1일(토) 찬 67장(통31), 208장(통246) 눅20장(예수님의 권위에 도전)
--------------------------------------------------------
◉ 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us06web.zoom.us/j/7049077483?pwd=UzNvdldBM04xMFlWQSswVWxDT3YvQT09,  회의 ID: 704 907 7483 / 암호: 123456

겟세마네신학교

◉가을학기 개강 
  개강 2022년 8월 29일 월 오전 10시-오후 5시 반
  종강 2022년 11월 28일 월 오후 5시
강의 시간표: 오늘 오후(2022년 9월 25일 주일)부터 내일까지 OT (서산)
오늘 오후 8-9:30 강의 고대근동학(윤사무엘 교수)
          9:30-10:30 기도회 및 신앙간증
내일 오전 9:00-10:20 학석사반 테필린(김인자), 박사반 창세기(이종훈)
         10:40-11:50 복음신학(송인성)
         12-1시 점심식사
     오후 1-4시 원우회 시간(친교, Teamwork), 해산 
◉장소: 서산, 수양관 (단톡으로 광고)
◉편입학구비서류: 입학원서(본교소정), 고교졸업 이후 모든 학교 졸업증명 및 성적증명(영문), 신앙간증문, 여권 사진페이지 사본, 명함판 사진2매, 입학전형료 10만원, 편입학비 30만원, 학비(학기당 학사 100만, 석사 120만, 박사과정 150만), 졸업장을 미국학교 원할 때 학사비 별도. 
◉특전: 
     1) 본교 졸업자는 학사협정으로 미국 신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2) 교역자 석사(M.Div) 졸업자는 목사 안수, 선교사 파송 받을 수 있다.
     3) 1년 3학기 공부를 할 수 있다(계절 학기)
     4) 장학금 신청할 수 있다(부부, 작은 교회 목회자, 목회자 가족) 
학기: 학사 8학기, 석사: M.Div 6학기, Th.M. 4학기, MCC 혹 MCE 4학기, 박사: D.Min. D.C.C. , D.C.E. 5학기, D.Miss 6학기, Th.D. 7학기, Ph.D. (Th.D. 후 2학기) <계절 학기를 1년에 한 차례 개설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안보면 후회할 기사
카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