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읽는 예배] “야곱의 우물가에서” (요4장) 
[영상&읽는 예배] “야곱의 우물가에서” (요4장) 
  • 윤사무엘 목사
  • 승인 2022.10.13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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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다음 설교문과 예배자료는 2022년 10월 16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열아홉 번째 주일), 대한예수교장로회 겟세마네교회(인천 송도) 주일예배용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납되는 주일예배를 준비합시다. 10월은 '말씀의 달'로 지키며, 다음 예배 자료를 나눕니다. 샬롬샬롬!!! (겟세마네교회(합동) :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 IBS Tower 11층 6호)

하나님께 더 가까이(42): “야곱의 우물가에서” (요4장) 
                         “At the well of Jacob” (John 4)

본문: 요한복음 4:1-54
요절: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결코(never)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무궁한 생명(everlasting life)으로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주제: 주님은 생명수로 무궁한 생명으로 솟아나는 샘물이시다
교독문: 80번(고후4장), 예배의 부름: 고전 10:1-4
찬송: 38장(통 없음), 526장(통 316장), 526장(통 316장)

일자: 2022년 10월 16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열아홉 번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교회 담임)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 IBS Tower, 11층 6호 
       [예배시간: 매일새벽기도(월-금) 오전6시, 주일예배 오전 10:30]

윤사무엘 목사

지난 주일에는 요한복음 3장을 통하여 바리새인 지도자인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1) 물(생명수)과 성령(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남 2) 바람과 같은 성령으로 태어남 3) 모세의 지팡이에 달린 구리뱀을 쳐다보듯이 인자가 달리신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살 수 있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분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무궁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을 성취하심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요한복음 4장을 통하여 계속 생명수의 축복을 나누겠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수가 성의 한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영원무궁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에 대하여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무궁토록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는 자이심을 증거하십니다.

1. 야곱의 우물을 방문하신 생명수이신 예수님 (요 4:1-18)
(1) 예수님의 제자를 삼고 세례[침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님께서 아신지라(2) (예수님께서 친히 세례[침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시니 (4)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Sychar)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님께서 여행에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니 예수님께서 “물을 좀 달라 Give me to drink.” 하시니(8) 왜냐하면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기 때문이라.(9) 사마리아 여자가 말하기를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저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교제를 아니함이러라.

(10)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1) 여자가 말하기를 “선생님(Sir)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습니까?”(12) 저희 조상 야곱께서 이 우물을 저희들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그분과 그분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으니 선생님꼐서 야곱보다 더 크십니까?” (13)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지만 (1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무궁한 생명으로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5)여자가 말하기를 “선생님(Sir) 이런 물을 제게 주셔서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16) 말씀하시기를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17) 여자가 대답하기를 “저는 남편이 없나이다 I have no husband.”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잘 하였도다.(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5절. 유대 땅 요단강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세례[침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침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님께서 아셨는데 사실 예수님께서 친히 세례[침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를 떠나셔서 다시 사역지인 갈릴리로 가려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참 경건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일찍부터 충돌하기를 원치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로 가시기 위해 사마리아를 지나가야 하셨습니다. 사마리아는 남쪽 유대 지방에서 북쪽 갈릴리 지방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한 곳입니다.  예수님의 일행은 사마리아 지방에 수가라는 한 동네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세겜(Shechem)지역이며(수 24:32), 오늘날 아랍어로 나브러스(Nablus)라고 부릅니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30마일(49km) 떨어진 곳으로 단과 브엘세바의 중간지역입니다.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며 이 우물은 야곱의 유물입니다. 

6-9절. 예수님께서 여행으로 인해 피곤하여, 야곱의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셨고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마을로 갔습니다. 때가 제6시쯤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의 시간은 로마 사람들의 방식을 따릅니다. 그러면 제6시는 오후 6시 즉 저녁시간입니다. 저녁은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우물에 나오는 시간입니다(창 24:11). 공관복음에 나오는 시간은 여섯 시간을 더해야 오늘날 시간입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때를 새벽으로 기록하고 있으며,(마 27:1, 막 15:1)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을 제 삼시로, 제 육시부터 제 삼시까지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계속되더니 제 삼시에 예수께서 운명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 27:45-46, 막 15:25, 33, 34, 눅 23:44, 46). 한편 요한복음에서는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았던 때를 제 육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 19:14). 유대인들이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준 때가 새벽이고, 빌라도에게 재판받은 시간이 제 육시라면 새벽 여섯시와 일치하기 때문에 요한복음이 로마시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저녁시간에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하루 종일 걸으셨다면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분은 자유롭게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할 수 있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의아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반문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그것은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과 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반쯤 이방인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의 혼을 사랑한다면, 어떤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12절.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대답하시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예수님의 참된 관심은 물을 얻어 마시는 것이 아니고 그 여자의 혼의 구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그녀에게 하나님의 선물과 생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요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롬 6:23). 사마리아 여인이 그분에게 물을 좀 달라는 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안다면, 그 여자는 도리어 그에게 생명의 물을 구하였을 것입니다. 이 생수는 성령께서 죄사함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무궁한 생명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여인은 대답하시기를 “선생님(Sir), [당신은]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습니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그분과 그분의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으니 선생님이 야곱보다 더 크십니까?”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어떤 물질적 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13-14절.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무궁한 생명으로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의 물과 자신이 주는 물을 대조시키셨습니다. 그분께서 주시는 물은 영적인 생명수를 가리킵니다. 사람은 물을 마시지 못하면 갈증을 느끼고 그것이 심하면 몸에 힘이 빠지고 더 계속되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말라 죽을 지경이었던 삼손이 물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며 소생했듯이(삿 15:18-19), 

목말랐던 자가 물을 마시면 힘이 생깁니다. 물은 생명에 필수적 요소입니다. 사람에게는 영과 혼의 갈증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로 인하여 생긴 여러 가지 슬픔과 불안과 불만족입니다. 그래서 죄인에게는 안식과 만족이 없습니다. 그것이 심하면 삶의 의욕과 기쁨을 잃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이 갈증을 가진 채 멸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슬픔과 불만을 해소하는 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목마르지 않는 기쁨과 힘을 주는 영원한 생명수입니다. 그 물은 그분께서 주시는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요 7:37-39, 초막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셔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성령께서는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과 무궁한 생명을 얻게 하십니다. 

15절. 이에 여인은 말했습니다. “주님(Lord) 이런 물을 제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물을 아직도 물질적 차원의 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녀는 한번 마시면 다시 목마르지도 않고 또 이 우물에 와서 물을 길을 필요도 없는 그런 물이 있다면 자기에게도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영적인 물에 대해 말씀하고 계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영적인 생명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며 그 사마리아 여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6-18절.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실상 그 여인에게는 영적인 깊은 갈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서 그것을 일깨우기를 원하셨습니다. 네 남편을 불러 오라는 말씀은 그 여자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습니다. 그러나 병자가 자신의 병을 알아야 살 길이 있듯이,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아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 여인은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으나 그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 될 수 없는 남자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너의 남편’(ἄνδρα σου)이란 너가 믿는 종교, 주인, 신이란 번역도 가능합니다. 이 여인은 어쩌면 구도자의 삶을 살면서 여러번 종교도 바뀌고 지금 가진 사마리아 종교도 자기의 만족을 채워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영화 장면
예수님 영화 장면

2.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요 4:19-26)
(19) 여인이 말하기를 “주님 제가 보니 대언자[선지자]이십니다.(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합니다.(2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인이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안에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안에서 예배할지니라(25) 여인이 말하기를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분이 오실 줄을 제가 아노니 그분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26)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19-20절. 여인이 말하기를 “주님, 제가 보니 대언자[선지자]이십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 여인은 자신의 과거를 훤히 아시는 예수님께서 대언자[선지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예배의 장소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그것은 평소에 그 여자가 가졌던 관심거리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배에 대한 관심은 경건함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 여인의 마음 속에는 경건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은 이 산 즉 세겜 서쪽에 있는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즉 성전이 있는 시온산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 둘 중에 어느 말이 옳은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이 여인은 진리의 구도자였습니다. 

21~24절.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여인이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하시니다. 구약시대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Ortsgebundheit)에서, 그분께서 정하신 방식으로 행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떤 장소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예배드리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약시대를 말합니다. 신약시대의 예배는 어떤 장소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조용한 장소이면 어디나 예배의 장소가 될 수 있고 정숙한 방식이면 됩니다. 이방종교는 옛날부터 남녀 혼음적 방식으로 그들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게 예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시므로 하나님께 대한 예배도 인격적이고 거룩해야 합니다. 요즘 많은 교회들에서 예배 형식이나 찬송이 세속화되었습니다. 예배나 찬송이나 기도는 보다 정숙하게 거룩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십니다. 23절에도 두 번 그런 호칭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라는 명칭은 그분께서 만물의 근원이 되심과 그분의 권위와 위엄, 또한 그분의 사랑과 긍휼을 나타냅니다. 22절에서 “또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이후 북방 이스라엘 나라에는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이 없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대하 15:3은 [북방] 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 지가 이제 오래였다고 합니다. 그들이 앗수르에 멸망하여 온 세계로 흩어진 이후에는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마리아 예배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참된 진리의 경건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사야 2:2-3에서 구원이 유대 땅에서 나올 것을 암시하였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23-24절에서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참된 예배자들](원문)은 영과 진리안에서(in spirit and in truth)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주님께서 참된 예배자들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는 형식적 혹은 위선적 예배자들도 있음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열납되는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참된 예배의 방식은 '영(pneuma)과 진리(aletheia)안에서' 드리는 예배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예배는 진리안에서의 예배라면, 그리심산의 예배는 영안에서의 예배인데 진정한 예배는 이 둘을 합한 진리안에서 영안에서 드려지는 예배여야 합니다. 참된 예배가 시행될 시기는 '이 때' 곧 메시아의 오심으로 시작된 신약시대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상징적 형식들이 많았습니다. 그것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예표하였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속죄사역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 안에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예배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함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진리로, 또 영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감동을 구하며 진리의 말씀에 입각해서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심 산이나 예루살렘 성이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디서나 언제든지 자유로이 예수 그리스도[예슈아 함마시아흐]의 이름으로, 그분의 십자가 공로를 힘 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며 그분에게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25-26절. 이에 여인이 말하기를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분이 오실 줄을 제가 아노니 그분이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I that speak unto thee am he.” 사마리아 여인에게 메시아에 대한 지식과 소망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무지와 고난의 긴 과정속에서도 이런 깨달음과 소원을 주셨습니다. 이 여인은 메시야를 만난 것입니다. 이를 깨닫는 순간 이 여인은 결코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받게 되고 평생 진리를 찾아 이 종교 저 종교를 헤매고 다닌 영적 방황이 종지부를 찍게 되고 바른 진리를 찾은 것입니다.

3. 수가 성 사람들의 구원(요 4:27-42)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님께서 여인과 말씀 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녀와 말씀하시니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28)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제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분이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님께로 오더라(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말하기를 “랍비여 잡수소서”(32) 말씀하시기를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33) 제자들이 서로 말하기를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34)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35)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39) 여인의 말이 ”그분께서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니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는지라.(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41) 예수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42) 그 여인에게 말하시니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당신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직접 듣고 그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하였더라.

27-29절. 이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님께서 그 사마리아 여인과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녀와 말씀하시나이까?” 하고 묻는 이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지 않은 것은 그를 신뢰하고 경외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물긷는 것보다 더 큰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메시아를 만난 것입니다. 그녀는 이 놀라운 사실을 수가성 동네 사람들에게 알리러 달려갔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평소에 하나님을 사모하고 구원과 메시아를 기다렸다는 것을 잘 나타냅니다. 그녀는 가서 동네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행한 모든 일을 제게 말한 사람을 와 보세요. 이분은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그 여인은 예수님께서 그녀의 행한 모든 일을 자기에게 말씀한 것을 증거로 제시하였습니다. 

30-34절. 수가 성에 살고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은 동네에서 나와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그들도 평소에 하나님을 경외했고 메시아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사모하고 기다렸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준비되지 않고서는 그 여자의 말에 그렇게 반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자들에게 만나주십니다. 31-34절. 동네 사람들이 주님께 몰려오기 전에 제자들이 “랍비여, 잡수소서(Master, eat)”하고 청하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게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은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며 그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그분의 일은 사람들의 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요 6:29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말씀하셨고, 요 6:39에, “그분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하십니다. 혼의 구원을 위한 전도와 세계 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을 행하며 그것을 완수하는 것이 예수님의 양식이요, 그것은 우리의 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루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프고 만족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35절.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이스라엘 땅에서 추수는 4월초에 보리 추수가 시작되고 5월말~6월초에는 밀 추수가 시작됩니다. 추수 시기는 지역이 산지냐 계곡이냐에 따라서 조금씩 따를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과일추수는 보통 8월말까지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셨으므로, 그때는 12월이나 1월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건은 요 2:13에 언급된 첫 번째 유월절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때에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유월절은 4월초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요 3:22에 이후에라는 표현에서 암시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또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는 말은 요 5:1에 나오는 '유대인의 명절'을 또 다른 하나의 유월절로 볼 수 있게 만들며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3년 이상으로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이미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다음절에 나오는 '이미'라는 말은 여기에 붙여져야 합니다(전통본문). 이것은 영적인 의미입니다. 곡식 추수는 넉달이 지나야 하지만, 영적인 추수는 이미 때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36절.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뿌리는 자는 모세와 대언자들과 세례 요한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다 씨를 뿌리는 자들이었습니다. 거두는 자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씨를 뿌리는 일도 있고 곡식을 거두는 일도 있습니다. 물론 그 둘은 다 수고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일꾼들은 그 일한 대로 상을 받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말하였고(단 12:3), 사도 바울은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합니다(고전 3:8). 거두는 것은 영생에 이르는 열매들입니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는 함께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37-38절.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은 거두는 일을 할 것입니다. 이미 앞서간 자들은 심는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도 심는 일을 했습니다.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노력한 것을 거두러 보냄을 받았습니다. 

39-42절. 수가성 여인의 말이 “그분께서 저의 행한 모든 것, 즉 저의 부끄러운 과거를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여인의 증거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켰습니다. 수가 성에는 낫만 대면 추수할 곡식이 많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 여인의 간증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말씀을 듣고나서 그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므로 거기서 이틀을 유하셨고 예수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졌습니다. 그들은 그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당신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주 [그리스도]신 줄 앎이니라.” 많은 사마리아인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준비된 마음이 있었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4. 가나에서 왕의 신하의 아들(Official's Son)의 병을 고치심(요 4:43-54)
(43) 이틀이 지나서 예수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44) 친히 증거하시기를 “대언자[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45) 갈릴리에 도착하시니 갈릴리인들이 그분을 영접하니 왜냐하면 그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46) 예수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47) 그가 예수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초청하되 “내려오셔서 제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48)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49) 신하가 말하기를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50)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51)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니(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으니 어제 제 칠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하는지라.

(53) 아비가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줄 알고 그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54) 이것은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43-45절.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수가 성에 이틀을 유하셨고 그 후에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원문에는 44절에 '왜냐하면'이라는 말(가르 gar)이 있는데, 그것은 그분께서 전에 대언자[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바가 있었고, 그래서 유대 땅에서 뿐만 아니라 또한 갈릴리에서도 자신을 증거하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이르시자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였습니다. 이는 그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명절 중에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명절은 요한복음 2:13, 23에 언급된 유월절을 가리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계시며 여러 가지 표적들(ta semeia)을 행하셨습니다(요 2:23). 그 후 유대 땅에 약 8개월 가량 지체하신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갈릴리 전도 사역은 그 후에 시작된 것 같습니다. 

46-54절. 예수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오셨습니다. 그곳은 전에 물로 포도주[생명수]를 만드신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왕(지방장관)의 신하인 한 사람이 있었는데, '왕의 신하'라는 헬라어(바실리코스 basilikos)는 '왕에게 속한 높은 관리'로 군수와 같은 지방관리입니다. 그는 사회적 신분이 있고 부요한 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어 있었습니다. 갈릴리 가나와 가버나움은 나사렛을 경유하여 약 40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그의 집무실은 가나에 있었으나 그의 집은 가버나움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49, 51절에 '아이'라는 말(파이디온 paidion)[어린아이]을 사용한 것을 보면, 그의 아들은 아직 나이가 어렸던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초청하였습니다.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이는 그가 거의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예수님께 와서 그렇게 청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유대 땅에서 기적 행하셨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소문에 의해 예수님께 대한 약간의 믿음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신하의 간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분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라고 하니 그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그는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는 것을 만나니 그들은 아이가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으니 어제 제7시에 열기가 떨어졌다고 하였는데 제7시는 오후 7시를 가리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시간임을 확인하고 그분께서 과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신하와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에 관해 듣고 믿는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와 간청하였습니다. 그의 믿음은 비록 약할지라도 예수님께 나아와 무엇을 구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믿는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고 갔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들을 직접 읽고 듣고 묵상함으로써 믿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함으로써 그를 믿는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고 그와 온 가족들이 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말씀의 달을 맞이하여 이 가을에는 성경책을 정독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로 저의 영과 혼과 육이 온전하게 회복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수로 모든 질문이 해결되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주님께 대한 믿음이 날마다 더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공부를 위한 질문들]
1.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마을인 수가성(=세겜)에 방문하신 목적은?
2. 수가성의 여인이 우물로 물길러 온 시간은? 오늘날 시간으로는?
3. 여인이 예수님에 대한 이해(유대인 청년, 랍비, 선지자, 메시야)에 대해 나누자.
4.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무궁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물이란?
5. 여인이 예수님을 대언자[선지자]로 인정한 후 질문한 내용은?
6.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란?
7.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해 나누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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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1) 말씀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더 가까이 나아가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는 믿음, 소망, 사랑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금주기도제목: 
(1) 기도의 달에 나라 사랑으로 매일 24시간을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2) 보혈의 능력으로 무장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가 날마다 부흥하게 하소서!
(3) 하나님께 더 가까이 믿음, 소망, 사랑이 부요롭게 하소서!
10월17일(월) 찬 71장(통438), 263장(통197) 요9장(실로암에서 눈씻음)
    18일(화) 찬 71장(통438), 263장(통197) 요10장(주님은 양의 문)
    19일(수) 찬 150장(통135), 270장(통214) 요11장(부활과 생명) 
    20일(목) 찬 150장(통135), 270장(통214) 요12장(한 알의 밀알 교훈)
    21일(금) 찬 171장(통없음), 265장(통199) 요13장(서로 씻어주어라)
    22일(토) 찬 171장(통없음), 265장(통199) 요14장(보혜사 성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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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us06web.zoom.us/j/7049077483?pwd=UzNvdldBM04xMFlWQSswVWxDT3YvQT09,  회의 ID: 704 907 7483 / 암호: 123456

겟세마네신학교

◉2022학년도 가을학기 
  개강 2022년 8월 29일 월 오전 10시-오후 5시 반
  종강 2022년 11월 28일 월 오후 5시
◉내일(10월 17일): 
1교시(10:00-11:30) 고대근동학(윤사무엘), 기도회(11:40-12:00), 점심(12:10-13:00), 2교시(13:00-14:30) 종말론(유석근), 3교시(14:40-16:00) 박사반 창세기(이종훈), 학,석사반 테필린(김인자), 4교시(16:10-17:00) 학/석사반 신약성경(오선화), 박사반 목회신학(이성환)
◉장소: 수원 향기나는나무 교회(이태환목사 시무), 본당과 디모데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네이비에 ‘겟세마네신학교’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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