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산다
[나관호목사 칼럼]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산다
  • 나관호
  • 승인 2019.01.21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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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 목사의 행복발전소 48]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가슴 떨리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 살피시는도다” (시편 33:13-14)

작년 어느 날, 사람들을 모아놓고 나에 대해 만들어진 루머와 부정적인 말들을 하고, 지도급 목사님들에게도 흠집내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목사가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는 한번도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커피 한 잔도 같이 먹어 본 일이 없는 목사입니다. 같은 모임에서 얼굴정도 알지만, 뒤돌아서면 기억이 나지 않는 그런 관계입니다.

그래서 혹여, 모임에서 부딪치면 의도적으로 내가 먼저 다가가 “나관호 목사입니다” 라고 말하고 눈을 바라보고 목례로 인사를 하곤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살아야하고, 그를 이해하며 ‘별일도 아닌데’라는 생각과 사랑마음으로 품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니까요. 사랑으로 서너 번, 그렇게 지나 간 것 같습니다. 그의 반응과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서’ 그 목사를 용서하고 사랑마음으로 바라봅니다. 그에게 아이디어를 주려고도 했습니다. 서로 흠집 낼 이유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고, 무엇보다 서로 섬겨주고 높여주는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실 더 차원 높은 ‘명품 삶’이기 때문입니다.

바티칸 미술관에 소장된 '조르쥬 루오'의 '이 사람을 보라'(좌)

그런데 해가 바뀌고 어느 모임에서 그 목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어느 단체의 회장과 인사를 나누기에 나도 그 단체 회장분과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는데, 마음에서 ‘그래도 그 아무개 목사를 사랑해야지’라는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그래서 방설이지 않고 다가가 늘 같은 방법, 같은 언어로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반응이 그에게서 나왔습니다.

“누구시지요? 처음 뵙는데요. 저를 아세요?”
“예! 저 나관호 목사입니다. 나관호 목사요? 허허허.”

그렇게 말하고 자리로 돌아와 웃음이 나왔습니다. 속으로 “치매에 걸렸나”라며 한번 더 웃었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가면서 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뭐, 이젠 마음에 찔리는 것이 있어서 그랬나.’
‘좀 웃기네. 왜 그런 태도를 보였지?’
‘그러면 이젠, 다음부터 나도 모르는 사람하면 되지. 허허허.’

그렇게 말하고 잠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 하나가 흘러갔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닌가?’
‘하나님은 다 아시고, 보셨을 텐데. 코람데오를 모르는 사람인가! 문제가 있네.’

그 순간, ‘하나님 앞에서’라는 의미를 가진 ‘코람데오’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마침 형님 목사님이 담임하는 교회의 올해 성도들을 향한 ‘신앙주제’라서 자주 생각하던 말이었습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가슴 떨리는 말입니다.

코람데오(Coram Deo)라는 말은 라틴어 ‘코람’(coram)과 ‘데우스’(Deus)가 합쳐진 합성어로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입니다. ‘코람’은 ‘앞에서’라는 단어이고. ‘데오’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이 용어가 사용된 곳은 사무엘이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자 앞에서”(삼상12:3)라고 말한 대목이나,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행10:33) 등의 말씀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옆에서, 앞에서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실제로 보이는 분처럼 인식하고 산다면 삶과 신앙이 달라질 것입니다. 바로 앞에서 아버지가, 선생님이 지켜보고 계신다면 나쁜 짓, 나쁜 행동, 나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을 모르는 목사는 없습니다. 나도 그 목사를 통해 교훈을 얻었습니다. “나부터 ‘하나님을 의식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지”. 작은 소리로 읊조렸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시 기도했습니다. 옆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의식하며 아빠에게 말하듯, 친구에게 말하듯 친밀하고 다정하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곁에 계심을 믿고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하소서” 

그 후부터, 식사 할 때도 식탁 한자리에 주님이 계시다는 의식, 차를 운전하고 나아갈 때도 옆자리에 주님이 앉아 계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잠을 잘 때 성경책을 침대 위에 놓고 자는데, 더 나아가 방안에서 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평안하고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어두움에도 보이는 형광빛이 나는 ‘예수님 얼굴 벽걸이’ 선물 받은 것이 생각나, 그것을 다시 꺼내 침대 옆 장식장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목사와의 경험을 통해 ‘반면교사’로서 귀한 것을 다시 깨닫고, 좋은 신앙과 믿음을 실천하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오늘도,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옆에서 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를 실천하고 의식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분의 따스함이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미소도 지어집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데살로니가전서 3:9)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3: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 살피시는도다” (시편 33:13-14)

‘코람데오’. 한국교회 목사들이 먼저 철저하게 실천하면 좋을 신앙고백입니다. 신앙 리더들이 먼저 그분을 의식하고 살아간다면 교회도, 사회도, 나라도 변화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을 맞으며 어느 포럼 기관에서 ‘나부터’라는 실천 주제어를 발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시한번 ‘나부터 코람데오’가 실천되면 행복할 것입니다.

‘코람데오’ 정신은 세 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사는 것이며, 셋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나부터 코람데오’, ‘나부터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과 삶을 가지기로 결단한다면.....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문화평론가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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