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예배] “생명과 성령의 법” (롬8장) 
[읽는 예배] “생명과 성령의 법” (롬8장) 
  • 윤사무엘 목사
  • 승인 2021.12.2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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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다음 설교문과 예배자료는 2022년 1월 2일 주일 (주현절 두번째 주일, 신년주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켓세마네교회(인천 송도) 주일예배용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납되는 주일예배를 준비합시다. 1월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달'로 지키며, 다음 예배 자료를 나눕니다. 샬롬샬롬!!!

하나님께 더 가까이(1): “생명과 성령의 법” (롬8장)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본문: 로마서 8:1~39
요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 (롬 8:1-2)  
주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부터 해방을 받자
교독문: 94번(새해 2), 예배의 부름: 시 100:1-5
찬송: 550장(통 248장), 551장(통 296장), 554장(통 297장)

일자: 2022년 1월 2일 주일 (주현절 두번째 주일, 신년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대한예수교 장로회 겟세마네 교회) 

Blessed New Year! 희망찬 새해(壬寅年)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현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이번 주 목요일(1월 6일)은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한 날로 지키며 AD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12월 25일 성탄절로 확정하기 전에는 1월 6일이 성탄절이었답니다. 연초부터 연말까지 하나님의 눈이 우리 교회와 여러분 가정위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신 11:12).지난 주일에 이어서 오늘은 로마서 8장을 강해합니다. 개혁자 요한 칼빈(깔뱅)은 성경에서 꿀단지(honey pot)에 해당하는 책이 로마서라면 8장은 ‘꿀’에 해당된다고 할만큼 8장은 중요합니다. 개혁신앙의 핵심인 칭의, 성화, 영화의 구원론이 성령론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거룩한 삶, 곧 성화의 과정이 성령[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루어짐을 증거하는데 믿음(1-17절), 소망(18-30절), 사랑(31-39절)이 잘 융합되어있는 말씀입니다. 몸과 혼과 영의 전인격적 성화를 완벽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암기하기를 바랍니다. 신년주일에 성경의 꿀에 해당되는 말씀을 받습니다.

 1. 믿음: 생명의 성령의 법(롬 8:1-17)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님[하나님의 영 the Spirit]을 따라 행하느니라. (2)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 (3) 율법이 육신을 통하여서는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 그 육신에 죄를 선고하셨으니 (4) 이는 율법의 의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라. (5) 육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나 성령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성령님의 일들을 생각하느니라. (6)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나,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화평이니라. (7)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로 할 수도 없음이라. (8) 그러므로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님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분의 사람이 아니니라. 

(10) 만일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성령님은 의로 인한 생명이니라. (11)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으로 인하여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들이나 육신에 져서 육신을 따라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나 성령님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이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15) 너희는 다시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 되는 성령님을 받았으므로 그에 따라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거니와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들이니 하나님의 상속자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 상속자들이니,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하리라.

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님[하나님의 영 the Spirit]을 따라 행하느니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 
용어문제를 정리하고 시작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영(God is a Spirit 요 4:24)이시기에 롬 8:9에 있는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 그리스도의 영(the Spirit of Christ)을 성령님(the Spirit, Holy Spirit, 엡 4:30, 살전 4:8)이라 합니다. 성신님(Holy Ghost, 롬 9:1, 14:17, 15:13, 고전 2:13, 6:19, 12:3, 고후 6:6, 13:13, 살전 1:5, 6, 살후 1:14, 딛 3:5, 히 2:4, 3:7, 6:4, 9:8, 10:15, The New Strong’s Concordance)의 영이 포함된 말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영, 성자 예수님의 영, 성신님의 영을 통칭해서 성령님(Holy Spirit, the Spirit)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으로 말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예수님은 저주받았다고 말하지 아니하며, 또 성신님(Holy Ghost)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누구라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말할 수 없느니라.” (고전 12:3)

‘그러므로’(so, then, therefore, consequently)로 번역된 아라(ἄρα)는 바로 7장 25절을 연결하는 말로 ‘그래서’라는 뜻입니다. 1-4장과 6-11장을 요약하면서 새로운 내용이 시작할 때에는 ‘그러므로’(οὖν, 롬 5:1, 12:1)를 사용합니다. 앞서 롬 7:25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므로 내 자신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는 구절과 이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절이 바로 롬 8:1입니다. ‘이제’(νῦν 뉜)는 구원받은 후를 말합니다. ‘육신’(ἡ σὰρξ)은 사람의 죄성을 가진 몸을 말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들이요 육신을 따라, 즉 육신의 죄성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형식적으로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아니고 진실히 주님을 믿고 성경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비록 부족과 연약은 있지만 결코 정죄(katákrima κατάκριμα “results of judgment” “condemnation”)함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복음 안에서 자유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개역, 개역개정, 현대역에서는 생략(삭제)했는데 개혁자의 성경(다수사본, 전통사본, 안디옥사본)에는 1절 끝에 8:4 후반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님을 따라 행하느니라περιπατοῦσιν.”가 있습니다. 누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가 하면 육신을 따라(κατὰ σάρκα “after the flesh”) 살지 않고 성령님을 따라(κατά πνεῦμα.“after the Spirit”) 사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심판에 따른 정죄함이 없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킵니다. 2절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란 성신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주시는 영생을 말합니다. ‘죄와 사망의 법’은 율법을 말합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우리로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복음으로 우리에게 의를 주시고 죄와 사망의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했고, 영원한 생명을 은혜로 주셨기 때문에 성도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2절에 ‘너’(개역과 현대역)이 아니고 ‘나’(킹제임스역)입니다. 바울을 포함한 우리 성도를 지칭합니다. 

3-4절. “율법이 육신을 통하여서는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 그 육신에 죄를 선고하셨으니 이는 율법의 의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라.” 사람은 본성의 죄성과 연약성 때문에 ‘어찌 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연약 때문에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고 그분에게 우리의 죄를 담당시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이며 복음의 중심적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은 이제 육신의 죄성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님을 따라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성령님을 좇아 행하는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집니다. 율법의 요구는 모든 율법을 항상 지킴으로 얻는 의, 곧 완전한 의(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이 의를 이루셨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자들에게 이 의를 은혜로 주셨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나 성령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성령님의 일들을 생각하느니라

5-8절. “육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나 성령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성령님의 일들을 생각하느니라.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나,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화평이니라.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로 할 수도 없음이라. 그러므로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6절의 육신과 영(carnally, spiritually)은 단지 사람의 육체와 영을 가리키지 않고 사람의 죄성을 가진 몸 혹은 몸의 죄성과 혼을 가리킵니다.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단순히 몸과 영의 대립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중생한 사람의 영이라도 영육이 결합되어 있는 동안에는 몸의 죄성의 영향을 받아 영의 기능인 생각과 감정과 의지(혼 soul)에 있어서 연약과 부족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내면적 싸움은 죄성을 가진 몸 혹은 몸의 죄성과 하나님에게 속하려는 영의 대립입니다. 

사람은 육신의 죄성을 따라 살면 그 결과는 죽음이지만, 성령님에 속한 영을 따라 육체의 소욕을 죽이며 산다면 그 결과는 의와 생명과 평안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에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몸의 죄성을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는 하나님과 원수가 될 것입니다. 몸의 죄성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심히 죄악되며 무능력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본성 그대로의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성화는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 됩니다. 

9절.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님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분의 사람이 아니니라.”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영의 사역입니다. 또 성령님께서는 구원받는 자 속에 오셔서 영원히 거하십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복이며 신약 성도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이렇게 성령님께서 그 속에 거하시는 성도는 더 이상 육신 즉 죄성을 가진 육체에 불과한 자가 아니고 성령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요?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님입니다. 성신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이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여기에 삼위일체의 신비가 있습니다. 참 성도는 이미 성신님을 받은 자이며 성령님을 받지 못한 자는 참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성신님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지 자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성(理性)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10-11절. “만일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성령님은 의로 인한 생명이니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으로 인하여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리스도는 지금 하늘에 계시지만 신성으로 그분의 영 곧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속에 계십니다.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해 죽은 것과 같고 또 어느 날 죽게 될 것이지만,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께서는 생명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자이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생명을 시작하시고 유지시키시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성령님은 의로 인한 생명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아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성도 속에 계시다면 성도의 영은 장차 그분의 영으로 인해 부활할 것입니다. 성도의 미래의 몸의 부활은 확실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빈 무덤을 남기고 부활하셨듯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얻은 모든 성도들도 빈 무덤을 남기고 부활할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 속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그 일을 보증하십니다. 성도는 반드시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12-14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들이나 육신에 져서 육신을 따라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나 성령님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이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구원받은 우리는 죄성을 가진 몸에 빚을 져서 몸의 욕구대로 살아야 할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은혜의 하나님께 빚을 진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값없이 주신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시고 새 생명을 주십니다. 이것은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큰 빚입니다. 

지옥 갈 죄인을 천국 가게 하신 구원의 은혜의 값을 어떻게 환산할 수 있겠는가요? 그러나 성도가 죄성을 가진 몸의 욕구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가상적 경고입니다. 이 말씀은 중생한 성도가 죄 가운데 살다가 지옥 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는 말씀이 사람이 율법을 행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이 말씀은 하나의 경고이지 구원받은 자가 그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음을 증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택한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시는 것입니다(요 6:39).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부르신 모든 사람은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롬 8:30). 그러나 성도가 계속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성도는 성령님으로 몸의 죄악된 행위들을 죽여야 합니다. 그것이 성화의 삶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성화를 위해 우리 속에 거주하십니다. 우리의 성화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죄성을 극복하는 과정입니다. 14절의 ‘하나님의 영’이라는 말은 13절의 ‘영’이라는 말이 성령님을 말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입니다. 성도의 거룩한 생활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화를 위해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사모하며 의지해야 합니다. 

15-16절. “너희는 다시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養子) 되는 성령님을 받았으므로 그에 따라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거니와”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은 ‘양자(養子)의 영’ 곧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는 영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친자(親子)이시고 예수님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양자들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 근거하여 우리를 양자로 삼으셨고 우리 속에 하나님을 ‘아빠(Abba 아람어) 아버지’라고 부를 마음을 일으키셨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영의 진심의 고백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입니다. 

17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들이니 하나님의 상속자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 상속자들이니,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하리라.” 자녀들이 부모의 기업을 이어받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기업 곧 천국을 이어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의 상속자로 묘사되었고 우리도 그분과 함께 천국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영광의 천국은 바로 성도를 위하여 예비되었습니다. 마 25:34,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해 영광에 들어가셨듯이, 우리도 고난을 회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많은 고난을 받으셨듯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받을 것이며, 그분께서 고난 후에 영광을 받으셨듯이 우리도 장차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고난은 영광에 이르는 한 과정입니다.

롬 8:1-17을 요약하면,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속에는 성령님께서 거하십니다. 성도라도 육신의 죄성을 따라 살면 죽을 수밖에 없으나, 성도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이며 성령님으로 몸의 죄악된 행실들을 죽여야 합니다. 성도의 성화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집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성화가 이뤄집니다.

2. 소망: 양자됨과 영광(롬 8:18-30)

(18) 이는 현재의 고난들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될 영광에 감히 비교되지 못한다고 내가 여기기 때문이라. (19) 피조물이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나니 (20) 이는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의가 아니요, 오직 소망 가운데 그것들을 굴복케 하시는 그 분 때문이니라. (21) 이는 피조물 자체도 그 썩어짐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 (22) 모든 창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받는 것을 우리가 아노니 (23) 그들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첫 열매들을 가진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되는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느니라. (24) 이는 우리가 소망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음이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 사람이 보는 것을 왜 바라리요? (25) 그러나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란다면 인내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님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이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나 성령님께서 친히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 성령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과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그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또한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 가운데서 첫 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그리하여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18절. “이는 현재의 고난들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될 영광에 감히 비교되지 못한다고 내가 여기기 때문이라. For I reckon that the sufferings of this present time are not worthy to be compared with the glory which shall be revealed in us.”17절의 연속입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은 천국 영광이며 부활과 영생 영광입니다. 고전 15:42-43,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빌 3:20-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분께서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요계 21:10-11, “영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성도가 장차 누릴 영광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크고 아름답고 영원할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가 현재 당하는 많은 고난과 감히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19-21절. “피조물이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나니 이는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의가 아니요, 오직 소망 가운데 그것들을 굴복케 하시는 그분 때문이니라. 이는 피조물 자체도 그 썩어짐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 ‘피조물’은 주로 동식물의 세계를 가리키며, ‘하나님의 아들들’은 영광스런 부활체를 입은 자들, 곧 영화(榮化)된 성도들을 말합니다. 피조 세계는 부활의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지금은 동물들도 식물들도 그 영광의 날을 기다리며 허무한 데 굴복하고 썩어짐에 종노릇하고 있지만, 그 날이 오면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처럼 영광의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는 피조물들에게도 죽음이나 질병이나 썩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22-23절. “모든 창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받는 것을 우리가 아노니 그들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첫 열매들을 가진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養子)되는 것, 곧 우리 몸의 구속(救贖)을 기다리고 있느니라.” ‘성령님의 첫 열매(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로 중생한 성도를 가리킵니다. 모든 피조물과 중생한 성도는 함께 탄식하며 몸의 구속(救贖) 즉 영광스런 부활을 기다리며 사모합니다. 우리는 죄와 죽음과 불행이 영원히 사라질 그 날을 사모합니다. 중생(重生)과 칭의(稱義)로 시작된 구원은 성화(聖化)로 진행되며 마침내 영화(榮化)로 완성될 것입니다. 택함 받은 모든 자들은 다 중생되고 칭의되고 성화되어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 

24-25절. “이는 우리가 소망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음이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 사람이 보는 것을 왜 바라리요? 그러나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란다면 인내로 기다릴지니라.” 우리의 법적인 구원 곧 칭의와 양자는 영화의 단계에서야 죄로부터의 완전한 구원, 즉 죄가 실제로 전혀 없는 구원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죄의 세력과의 싸움이 있지만, 그때에는 그런 싸움이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그 영화의 단계는 아직 미래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소망 가운데 소유합니다. 성도는 법적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으나 장차 그것을 완전히 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영광의 구원을 참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결코 실패치 않는 완전한 구원이며 그 영광은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낙심치 말고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26-27절. “이와 같이 성령님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이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나 성령님께서 친히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라.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 성령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라.” 성령님께서는 성도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성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어떻게 기도할지를 알지 못하지만, 이때 성령님께서는 성도 안에서 탄식하시며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십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중보 사역이십니다. 성령님의 중보 사역으로 성도는 실패치 않고, 그의 영적 생활은 쇠잔해지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의 신앙은 자라며 그의 심령은 힘을 얻습니다. 성령님의 중보 사역은 효력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시며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생각을 아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는 효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성도의 믿음은 성장하고 성도의 인격과 삶은 거룩하여질 것입니다.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과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알거니와’라는 표현은 이 진리가 확실함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회개시키고 믿게 하심을 가리킵니다. 성도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모든 것’은 성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그것 안에는 낙심할 만한 일도 있고 실패한 일도 있고, 심지어 실수하고 범죄한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조차도 선을 이루는 데 사용됩니다. ‘선’은 성화를 가리킵니다. 성도의 일생은 영적 훈련과 성장 즉 성화의 과정입니다. 

29절. “그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또한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 가운데서 첫 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미리 아신 자들’이라는 말은 미리 관심과 사랑을 베푸신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회개와 믿음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우리를 택하셨다는 뜻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시는 주권적 행위이십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 곧 선택된 자들만 그에게 나아와 그를 믿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요 6:37, 44, 65).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예정하셨습니다. 그분의 예정의 목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목표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범죄함으로 그것을 상실하였고 이제 구원으로 그것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은 죄 없는 거룩한 형상입니다. 그것은 또한 온유하고 겸손하며 사랑이 넘친 형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의 낮은 몸은 그의 영광의 몸같이 변화될 것입니다(빌 3:2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구원의 목표는 영화(榮化)라고 표현됩니다. 또 본문은 예수님께서 많은 형제들 중에 맏아들이 되셨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감히 그의 동생들이라고 표현될 수 있습니다.

30절. “그리하여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에서 말한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불러 회개시키고 믿게 하심을 뜻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은 장차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영화롭게 하셨다’는 과거시제를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확실한 미래의 사건을 나타내는 표현법입니다. 성도를 영화롭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확실히 예정하신 바이며 지금 섭리하시는 바입니다. 영광은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입니다. 이 일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고 이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의가 선언되었고, 또 이 일을 위해 성령께서 성도 안에 오셔서 도우십니다.

롬 8:18-30을 요약하면 소망을 주는 메시지인데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양자(養子)로 삼으시고 영광의 기업을 상속받게 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고난 중에 있고 부활의 영광은 아직 미래에 있지만, 우리는 그 영광을 확신하며 낙심치 않고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위해 중보하시며 영화의 단계로까지 성화해야 합니다. 

3. 사랑: 영화의 확실성(롬 8:31-39)

(31) 그렇다면 이런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값없이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누가 혐의를 씌우리요?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은 그리스도시라. 그분은 또한 하나님 오른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박해나 기근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와 같이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온종일 죽임을 당하였으며 도살당할 양으로 여김을 받았나이다."라고 하였느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기는 자들보다 더 나으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나 권세나 현재 일이나 다가올 일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

31절 “그렇다면 이런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다’는 세상이나 어떤 권력자라도 하나님과 동행한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요? 온 우주의 최고권력자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신가요? 그렇다면 그 하나님께서 위하시는 자를 대적할 자가 누구이겠는가요? 인간의 최대의 대적자는 사탄인데 심지어 그도 욥기 1장에 증거한 대로 하나님의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습니다. 사탄도 성도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값없이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하시는 증거는 그분의 아드님을 주신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요 3:16; 롬 5:8).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인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그 외의 무엇이든지 주시지 않겠습니까?

33-34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누가 혐의를 씌우리요?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누가 정죄하리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은 그리스도시라. 그분은 또한 하나님 오른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 칭의는 과거의 사건이지만, 그 효력이 지금도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를 송사하거나 정죄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죄 때문에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속죄를 확증하셨고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 오른편에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간구하심은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완전한 속죄를 계속 적용하시는 행위입니다. 

35-37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박해나 기근이나 헐벗음(赤身)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와 같이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온종일 죽임을 당하였으며 도살당할 양으로 여김을 받았나이다.’라고 하였느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기는 자들보다 더 나으니라.” 성도의 구원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너무 크고 확실합니다. 아무도 그 사랑의 줄을 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사랑에 근거한 성도의 구원은 영원한 보장을 가집니다. 

성도의 삶은 고난과 핍박의 삶이지만, 성도는 어떠한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낙심치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赤身,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도의 구원은 빈약한 구원이 아니고 성도의 승리는 추측적 승리가 아닙니다. 성도의 구원과 승리는 완전하고 풍성하고 확실합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깁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실패치 않고 끝까지 보존되고 마침내 영광스럽게 완성될 것입니다.

38-39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나 권세나 현재 일이나 다가올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기에 성도의 넉넉한 승리를 단언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도는 영광의 구원에 이를 것입니다. 아무것도 우리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선택과 그리스도의 속죄와 성령의 인치심에서 확증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성도에게 부어졌고 그 사랑에서 끊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고난의 현실에서도 낙심치 않고 담대히 행할 수 있습니다. 

롬 8:31-39절을 요약하면 성화는 인간의 본성적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성도는 몸의 죄성을 따라 살지 않고 성신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므로 점점 거룩하여집니다. 성신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특히 사랑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인 영화(榮化)는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성도의 마지막 승리는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특권과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오직 성신님을 따라 거룩한 삶을 힘써 이룹시자. 아멘.

[오늘의 기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하나님, 로마서 8장의 말씀을 통하여 성화의 단계, 과정, 열매를 보여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새해 2022년 한해는 오직 말씀과 기도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성화의 열매인 영광을 바라보며 달려가게 하옵소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 생명과 성령님의 법으로 날마다 해방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라는 표어로 한해동안 성화를 매일 이루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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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1) 신년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는 믿음, 소망, 사랑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1월3일(월) 찬 550장(통 248장), 554장(통 297) 렘 33장(시위대 구금)
   4일(화) 찬 550장(통 248장), 554장(통 297) 렘 34장(느부갓네살 침공)
   5일(수) 찬 551장(통 296장), 563장(통 411) 렘 35장(레갑의 자손, 경건)
   6일(목) 찬 363장(통 479장), 563장(통 411) 렘 36장(바룩의 성경기록)
   7일(금) 찬 552장(통 358장), 540장(통 219) 렘 37장(시드기야가 왕 즉위)
   8일(토) 찬 552장(통 358장), 540장(통 219) 렘 38장(시드기야와 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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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신학교 겨울방학 중(2021년 12월 1일~2022년 2월 13일)
◉겨울특강: 2022년 1월 10일 오전 10시~11일 오후4시 (1박2일)
     과목: 성경 사본학, 킹제임스 성경 통독, 경건신학 (동문회, GDM과)
  ◉장소: 수원향기로운나무 교회(이태환목사 시무), 본당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전철: 1호선 성균관대역 4번 출구, 택시로 기본 요금이면 교회 도착함]   
  ◉연락처: 010-9113-1127, 010-4907-7483. 010-7307-3589

◉편입학구비서류: 입학원서(본교소정), 고교졸업 이후 모든 학교 졸업증명 및 성적증명(영문), 신앙간증문, 여권 사진페이지 사본, 명함판 사진2매, 입학전형료 10만원, 학비(학기당 학사 100만, 석사 120만, 박사과정 150만), 졸업장을 미국학교 원할 때 학사비 별도.

◉2022년 봄학기 
개강: 2022년 2월 14일(월) 오전 10시~오후 5시
종강: 2022년 5월 16일(월), 종강 채플

2022년 봄학기 신입.편입생 모집
(신학사, 교역학석사, 상담학석사, 목회학 박사, 상담학 박사, 신학박사 등)
특전: 1) 본교 졸업자는 학사협정으로 미국 신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2) 교역자 석사(M.Div) 졸업자는 목사 안수, 선교사 파송 받을 수 있다.
     3) 1년 3학기 공부를 할 수 있다(계절 학기)
     4) 장학금 신청할 수 있다(부부, 작은 교회 목회자, 목회자 가족) 
입학전형료: 10만원, 편입학 학사비: 30만원
등록금: 학기당 학사과정 100만원, 석사과정 120만원, 박사과정 150만원 (미국학위를 원하는 이는 미국 신학교에서 정하는 졸업비는 별도로 납부해야 함)  [농협 302 0280 1002 11 Yun Samuel]  등록마감: 8월 20일
학기: 학사 8학기, 석사: M.Div 6학기, Th.M. 4학기, MCC 혹 MCE 4학기, 박사: D.Min.  D.C.C. , D.C.E. 5학기, D.Miss 6학기, Th.D. 7학기, Ph.D. (Th.D. 후 2학기) <계절 학기를 1년에 한 차례 개설할 수 있다>
입학문의: 010-9113-1127, 010-4907-7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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