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 선교관 부지는 우리 할아버지 땅”
“양화진 선교관 부지는 우리 할아버지 땅”
  • 뉴스제이
  • 승인 2019.07.0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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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인 장로 후손들, 백주년기념사업회 측과 ‘기념사업’ 협의 중
소유권 반환 대신 최 장로 관련기념사업을, 백기념사업회에 요구

【뉴스제이】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144번지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공동묘지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1985년 6월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회에서 묘지소유권을 경성구미인묘지회로부터 인수하고 묘지 경내에 ‘한국기독교100주년선교기념관’을 건축하였다.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회’(이하 ‘백주년기념사업회’)는 2005년 7월 이 선교기념관을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를 설립하고, 이 교회에 묘역과 선교기념관 관리운영에 관한 일체의 책임과 권한을 위임했다.

그런데 이 선교기념관이 세워진 땅이 자신들 할아버지 소유였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7년 전에 나타나 자칫 땅 소유권을 놓고 소송전이 벌어질 상황에 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최봉인 장로 부부(사진 제공: 최지연 원장)
▲ 최봉인 장로 부부(사진 제공: 최지연 원장)

최지연 원장(샛별 한국문화원)은 지난 1일 저녁 기자회견을 갖고 현 양화진교회 선교관 터는 자신의 시할아버지인 최봉인 장로(서교동교회 초대 장로)의 사유지임을 주장하면서 그러나 소유권 반환 대신 최 장로와 관련한 기념사업을 백주년기념사업회에 요구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최지연 원장에 의하면, 최봉인 장로는 16세에 홀로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와 양화진에 정착했다. 지금의 아현동과 합정동, 당인리 발전소까지 땅이 퍼져 있을 정도의 부자던 최 장로는 친구(이원순)의 전도를 받아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됐다.

1890년 헤론선교사가 죽으며 자신의 집 뒤에 묻게 되고, 이후 묘가 1년에 80개씩 늘어나며 하인과 소작인들과 함께 묘를 관리해 선교사들이 감검관(관리자, 묘지기) 직분을 주었다. 일제 때 선교사들이 다 쫓겨나간 후에도 긴 세월을 수백 개의 묘지를 믿음으로 관리했다.

최 장로는 1896년 10월 31일 발행된 <독립신문> 기사에 ‘이곳은 개인 자산이 아니라 모든 외국인들을 위하여 제공된 땅이다’라는 기사를 보고, 당시 5개국 공사 대표였던 러시아 위베를 공사에게 가로 70자, 세로 100자(200평 규모)인 자신의 땅에 대한 소유를 문서로 작성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위베르 공사는 이를 공식문서를 통해 외부대신 이완용에게 요청했고, 외부대신 이완용이 궁내부대신 이재순에게 다시 공문으로 요청하고 그에 대한 회신이 오간 기록이 당시 궁내부(宮內府)와 외부(外府)사이에 오고 문서를 모은 문서철인 ‘궁내부 래안(宮內府 來案)’에 남아 있다.

1927년 5월 20일자 <매일신보>는 “양화진 묘지는 옛날 이태앙 전하로부터 외국인들에게 묘지로 사용하라고 하사하신 것이니 그 묘는 보성전문학교 교수 최등만 씨의 부친 최봉인(65)시가 약 삼십년 전부터 맡아서 간호하여 내려오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대부분 유학을 간 이후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최 장로의 후손들은, 백주년기념사업회와 유니온교회가 법적 대립을 한창 하던 2012년 국가외교문서를 통해 선교관 자리가 최봉인 장로 땅이라는 증거를 찾았음을 알린 후, 땅에 대한 소유권 주장 대신 백주년기념사업회 측에 최 장로와 관련한 기념사업을 요구했다.

후손들의 요구사항은 총 다섯가지로 △최봉인 장로의 역사를 바로 써 줄 것 △선교관 2층 예배당을 '최봉인 장로 기념예배당'으로 명명 △양화진 연구를 위한 공간으로 제공, 최봉인 장로 후손들의 출판기념회 및 추모 음악회 공간으로 사용 △양화진 교회가 사용치 않는 시간에는 선교사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케 해 줄 것(유니온교회의 특별한 행사에 장소를 제공해 줄 것) 등이다.

최지연 원장은 “할아버지의 땅을 돌려 달라는게 아니었다. 그저 할아버지가 한국교회 초창기 선교에 기여하셨고, 재정적으로 헌신하셨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했다”면서 “그간 몇 번이라도 소송을 통해 땅을 찾을까도 했지만, 세상에 비춰질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해 일단 대화를 우선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 원장은 “사업회측은 후손들의 이러한 주장과 요구를 수용치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위원장인 김경래 장로를 통해 여러 차례 이를 협상해 왔지만, 아직까지 받아들여지지 않다”며 7년 간의 섭섭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최 원장은 “결코 돈이 목적이 아니다. 양화진이 과거 복음을 주었던 원적지였다면, 오늘의 선교사들과 미래의 선교사들을 연결시키는 선교의 1번지로 만들고 싶다”면서 사업회 측의 적극적인 반응을 촉구했다.

[협력사 뉴스앤넷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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