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회의사당 ‘빌리 그레이엄 목사 동상’ 공개됐다
美 국회의사당 ‘빌리 그레이엄 목사 동상’ 공개됐다
  • 케이티 나 & 에쉴리 나
  • 승인 2024.05.17 0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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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참석/
동상, 7피트(2.13m) 높이 ... 받침대에 요한복음 새겨져/

【미국=뉴스제이】 케이티 나 & 에쉴리 나 통신원 =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였던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의 동상이 목요일, 미국 국회의사당(Capitol Visitor Center)에서 공개되었다. 

성경책을 가리키고 있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 동상 모습.    ⓒ영상캡처

그레이엄 목사의 고향인 노스캐롤라이나를 대표하여 미국 국회의사당에 서 있는 청동 조각상은 ‘미국의 목사’라고도 알려진 복음전도자를 기리는 것이다.

뉴스맥스(Newsmax)에 따르면,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성경을 손에 들고 전형적인 몸짓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레이엄 목사의 청동상 제막식은 마이크 존슨(Mike Johnson) 하원의장, 로이 쿠퍼(Roy Cooper) 주지사, 마이크 펜스(Mike Pence) 전 부통령, 주 하원의원과 입법부 의원 그리고 그레이엄 목사의 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조각상홀’(National Statuary Hall)에서 진행됐다. 

7피트(2.13m) 높이의 동상은 노스캐롤라이나와 각 주에서 역사상 주목할만한 인물을 기리기 위해 홀 내부나 국회의사당의 다른 곳에 전시하는 두 개의 동상 중 하나다. 노스캐롤라이나의 동상 중 하나를 그레이엄 목사의 동상으로 교체하는 과정은 9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레이엄 목사의 청동상을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로이 쿠퍼 주지사,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주 하원의원과 입법부 의원 그리고 그레이엄 목사의 가족 등이 바라보고 있다.    ⓒ영상캡처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헌정식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마침내 미국 민주주의의 신성한 땅에서 정당한 자리를 차지했다”라고 말했다. 다른 연설자들과 마찬가지로 존슨 하원의장은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기독교 복음 전파 사역이 그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미친 개인적인 중요성을 회상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내 인생에서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우리 삶 전체에서 그러하듯이말입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2018년 9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빌리그레이엄전도협회(Billy Graham Evangelistic Association)에 따르면, 그레이엄은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기독교 전도자였으며 전 세계 거의 2억 1,500만 명에게 직접 설교했다. 그의 마지막‘ 십자군집회’는 2005년 뉴욕에서 열렸다.

마이크 펜스(Mike Pence) 전 미국 부통령이 앞자리에서 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영상캡처
마이크 펜스(Mike Pence) 전 미국 부통령이 앞자리에서 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영상캡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부터 조지 W. 부시(George W. Bush)까지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목회 경력 동안 정치적, 영적 영역 모두에 영향을 미쳤다. 그 연합의 상징으로 그레이엄 목사의 동상이 국회의사당 원형홀에 명예롭게 안치된 네 번째 민간 시민의 영예를 받았다.

노스캐롤라이나주는 2015년 의회 위원회에 그레이엄 목사의 동상을 홀에 전시할 것을 승인하도록 요청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규정에 따르면 사람의 동상은 사후에만 설치될 수 있다.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그의 아버지가 목요일에 그곳에 있었다면 모든 관심이 불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자신이 설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기를 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집중을 원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위에 있게 하려 하심이입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 동상은 20세기 초 교육 옹호자로 알려졌으나 당시 백인 우월주의 운동과의 연관으로 인해 인기를 잃었던 찰스 에이콕(Charles Aycock) 주지사 동상을 대체한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부터 조지 W. 부시까지 대통령의 고문이었다. (왼쪽부터) 조지 부시 대통령, 클린턴 대통령, 빌리 그레이엄 목사 그리고 카터 대통령(오른쪽)이 한자리에 모였다.       ⓒBilly Graham Evangelistic

사회 운동가는 아니었지만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대법원의 학교 통합 판결 1년 전인 1953년에 남부 십자군을 통합했다. 그리고 백인 정권이 인종적으로 분리된 회의를 고집하는 동안 그는 오랫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 방문을 거부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나중에 자신이 시민권을 위해 더 강력하게 싸우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레이엄 조각품은 샬럿에 거주하는 예술가 채스 페이건(Chas Fagan)이 제작했으며 주에서 청동으로 제작되었다. 역시 현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받침대에는 그레이엄 목사의 전도 사역을 강조하는 요한복음의 두 구절, 요한복음 3장 16절과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국립조각상홀을 위해 의뢰된 또 다른 노스캐롤라이나 동상은 남북전쟁 시대의 주지사 제불론  밴스(Zebulon Vance)와 유사하다. 그는 또한 남부 연합군 장교이자 미국 상원의원이었다.

남북전쟁 시대의 주지사 제불론  밴스(왼쪽) 동상과 1973년 한국 방문 때,  박정희 대통령에게 성경을 전달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오른쪽)

한편,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20세기에 복음주의가 미국 생활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공산주의 국가를 포함해 전 세계의 기독교 신자들과 리더들에게 강력한 연결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1973년 우리나라에 처음 방문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에게 성경책을 선물한 것은 후에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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