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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시간, 6시간을 더하면 오늘날 시간/ 요한복음, 로마시간 사용 ... 현재 같은 시간/
[영성칼럼] 먼저 된 자 '나중', 나중 된 자 '먼저' 될 수 있다
2024. 04. 26 by 윤사무엘 박사
윤사무엘 박사

【뉴스제이】 '품꾼과 포도원‘ 천국비유는 마태복음 19장의 마지막 장면에 나타난 한 부자 청년이 탐심으로 영생을 포기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라고 별명하는 예루살렘의 좁은 문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포도원'은 영적으로는 '이스라엘', 또는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합니다(참고, 사5:4). 교회를 '포도원'으로 비유하신 것은 포도원이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심는 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 하나님이 교회를 설립하는 자라는 것(참고, 사5:2, 행20:28)과 포도원은 목재나 잎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원하는 까닭입니다(참고, 갈5:22). 그러므로 '포도원'의 일꾼은 교회의 성도를 뜻합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수확철이 된 포도를 따려고 품꾼(laborers)을 찾으려고 이른 아침(일출 sunrise, 흔히 아침 6시경, 유대 시간으로 낮의 시작이 아침 6시임)에 품꾼들이 모여 있는 광장으로 나갔습니다. 광장(혹 장터)이란 agora(아고라)는 로마의 포럼(forum, 공회, 광장)으로 직업을 구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이나 구경나온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성 북문에 가면 다메섹 문이 나오는데 여기에 아침마다 많은 품꾼들이 자기를 고용할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포도원의 주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마다 장터에 나가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을 부릅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의 범죄 이후부터 종말 때까지 쉬지 않고 온 백성들을 일꾼으로 부르십니다(벧후3:9, 행2:39). 

이 주인은 몇 사람을 고용하여 일당 한 데나리온(당시 하루 노동 댓가로 받는 은화) 지급을 약속받고 일하였습니다. 제삼시에 나갔는데 당시 유대 시간은 6시간을 더해야 오늘날 시간입니다.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나오는 시간은 AD 70년경 예루살렘 함락 전이어서 유대 시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AD 70년 후에 기록되어 있고 그때 시간은 로마시간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같은 시간입니다(요 4:6 수가성 여인이 주님이 쉬고 계시는 야곱의 우물로 나온 시간은 오후 6시(일몰 sunset)였음; 요 19:14 예수님께서 빌라도 법정에 서신 시간이 오전 6시,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은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루의 시작을 밤 자정시간(0시)으로 정하고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어서 사용하고 있는 현재의 시간법은 바로 ‘로마 시간법'에 의한 것입니다. 

이러한 '로마 시간법'으로 온 세상이 통일되기 이전에는 당시의 각 지역과 나라마다 시간법이 모두가 달랐습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유대 시간이 나오고, 요한복음에서는 로마 시간법이 나옵니다. 이를 혼돈하면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오늘 내에 수확을 마치려는 주인의 뜻대로 일군이 더 필요하여 거의 3시간 단위로 인력 시장에 나가봅니다. 3, 5, 6절의 제3시와 6시와 9시, 11시 유대 시간을 오늘날 개념(로마시간)으로 바꾸면 각각 오전 9시와 12시, 오후 3시, 오후 5시 곧 해지기 시작(오후 6시, 마감) 전입니다. 

제십일시(오후 5시경)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어서 주인이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하니 주인이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였습니다라. 사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일꾼들은 1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으나 최선을 다해 종일 일할 양을 채웠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오후 6시 해가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행17:31, 살전4:16)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습니다.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받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와서 일한 품꾼들이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고 불평하자 주인이 꾸짖습니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여기서 ‘선하므로 ἀγαθός’(아가쏘스)는 ‘선한, 은혜, 친절한, 좋은 것’을 말하며 일반적인 의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어의 같은 단어가 나타나는 곳은 행9:36, 롬9:11, 고후5:10, 딤전5:25, 히10:24, 계18:17입니다. 

‘악하게 보느냐 πονηρός’(포네-로스)는 ‘적개심을 느끼냐?’란 뜻으로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사2:12, 눅19:17)고 하십니다.

윤사무엘 박사(겟세마네신학교 총장 / 로이교회(예장합동 평남노회) 담임/ 하버드대 고대근동학 전공 / 뉴스제이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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