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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설교
【뉴스제이】 다음 설교문과 예배자료는 2023년 2월 12일 주일 (주현절 일곱째 주일), 대한예수교장로회 로이교회(인천 송도) 주일예배용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납되는 주일예배를 준비합시다. 2월은 '경건의 달'로 지키며, 다음 예배 자료를 나눕니다. 샬롬샬롬!!! (로이교회 / 합동)
[영상&읽는 예배] “예수님은 화목제물로 돌아가셨다.” (요19장) 
2023. 02. 11 by 윤사무엘 목사

여호와는 나의 목자(6): “예수님은 화목제물로 돌아가셨다.” (요19장) 
      “Jesus died on the cross as the propitiation” (John 19)

본문: 요한복음 19:1-42
요절: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말씀하시기를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 τετέλεσται)’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혼이 돌아가시니라” (요 19:30) 
주제: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화목제물로 바쳐져 돌아가셨다
교독문: 83번(빌 4장), 예배의 부름: 막 10:45
찬송: 150장(통 135장), 151장 (통 138장), 149장(통 147장)

일자: 2023년 2월 12일 주일 (주현절 일곱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로이교회)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 IBS Tower, 11층 11호 
  [예배시간: 매일새벽기도(월-금) 오전6시, 주일예배 오전 11시, 오후 1:30]

윤사무엘 목사

2월을 “경건의 달”로 지키면서 내일부터 25일 토요일 저녁까지 4개국(이집트, 사우디 아라비아, 요르단,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시작합니다. 순례자 41명이 출애굽 여정과 주님의 고난을 체험하고 돌아오는 경건훈련이 되게 기도합시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요한복음 19장을 묵상합니다. 요한복음은 18-19장은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심을, 20-21장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시작할 때 총론으로 소개했듯이 주님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구원의 주님이십니다(요 14:6).

요한복음 1-12장은 이 세상 전도를 다루고 있으며[길=성전 뜰 예배, 1:29 요절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13-17장은 제자들에게 최후의 교훈을 주신 다락방 강화이며[진리=성소 예배, 요절 17:17 “진리로 저희들을 거룩하게 해 주소서”], 18-21장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 말씀[생명=지성소 예배, 요절 19:30 “다 이루었다”]입니다.  

1. 빌라도의 판결 Jesus Delivered to Be Crucified(요 19:1-16)
(1) 이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2)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a purple robe)을 입히고(3) 앞에 와서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기를 “보아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다” 하더라.(5) 이에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아라, 이 사람이로다” 하니(6) 대제사장들과 군병들이 예수님을 보고 소리질러 말하기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말하기를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7) 유대인들이 대답하기를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다.(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 다시 관청에 들어가서 예수님께 말하기를 “당신은 어디 출신이뇨?” 하기를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10) 빌라도가 말하기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당신을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줄 알지 못하느냐?”

(11)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말하기를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끌고 나와서 박석 (Pavement. 히브리 말로 Gabbatha 가바다)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더라.(14) 이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기를 “보아라 너희 왕이로다.(15) 그들이 소리지르기를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말하기를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기를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16) 이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그들에게 넘겨주니라. 

1-6절.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의 사건을 재판함에 있어서 우유부단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았으나 그분을 데려다가 채찍질하였습니다. 군병들은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분의 머리에 씌우고 왕이 입는 자색 옷을 장난치며 입히고 그분 앞에 와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말하며 손바닥으로 때렸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희롱하고 학대했습니다. 빌라도는 이 일을 허용하고 방치하였습니다. 그는 다시 밖에 나가 말하기를 “보아라, 이 사람을 데리고 여러분에게 나오나니 왜냐하면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여러분들로 알게 하려 하기 때문이라.”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자, 빌라도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보아라, 이 사람이로다. Ecce homo” 이에 대제사장들과 병사들은 예수님을 보고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하고 소리질렀습니다. 빌라도는 말하기를 “여러분들이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그는 무책임했습니다. 그의 말과 행동은 논리일관하지 않고 모순되었습니다. 그가 참으로 예수님을 죄 없다고 생각했다면 그를 보호했어야 했습니다. 그는 정의롭고 용기 있는 재판관이 아니었습니다. 

7-11절. 유대인들은 대답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했노라.”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총독은 다시 관청에 들어가서 예수님께 묻기를 “당신은 어디로서냐?”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여 주지 않으셨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정죄할 수밖에 없도록 그를 몰아대고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말하기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당신을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빌라도가 가진 권세는 실상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유대 지도자들의 죄는 더 컸던 것입니다.

12절.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님을 석방시키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말하기를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았습니다. 그는 심지어 예수님께 대한 어떤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은 그가 예수님을 놓아준다면 가이사에게 불충성하는 것이라고 압박하였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교묘한 압박입니다. 악한 자들은 악한 일에 놀라운 지혜를 발휘하였습니다. 그들의 악한 지혜는 빌라도가 잘못된 판결을 하도록 몰아대었습니다. 그는 이성과 양심의 판단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총독직의 안정을 구할 것인가라는 갈림길에서 잘못된 길로 이끌리고 있었습니다. 

13-16절.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끌고 나와서 박석(히브리 말로 가바다 Gabbatha)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놓을 수 없었고 이 재판을 회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끌고 나와서 재판석에 앉았습니다.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새벽 6시이었습니다. 매우 이른 시간에 재판이 열린 것이었습니다. 그 재판은 공정한 심리와 냉철한 판단과는 거리가 먼 재판이었습니다. 거기에는 군중의 부르짖음만 있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군중을 선동하는 지혜가 있었습니다(마 27:20).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말했습니다. “내가 여러분의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기를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권을 포기하였습니다. 빌라도는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는 재판관의 지위를 이성과 양심에 반대되게 사용하였습니다.

1-16절의 교훈을 요약하면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의 주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채찍질을 당하셨고 가시면류관을 씌우셨고 조롱과 매맞음과 학대를 당하셨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가 죄를 찾지 못했던 주님, 유대인의 왕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께서 죄인들처럼 취급을 당하셨고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내어준 바 되셨습니다. 거기에 대속의 이치가 있습니다. 그는 죄인들의 대속물로 고난을 당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유대 지도자들처럼 악한 지혜자가 되지 맙시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일을 위해 그들의 지혜를 총동원하였습니다. 그들은 악을 연구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빌라도를 궁지에 몰아넣었고 군중을 성공적으로 선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악한 지혜자가 되지 맙시다. 로마서 16:19,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셋째로, 우리는 범사에 성경의 교훈대로, 또 이성적이고 양심적이게, 행합시다. 그것이 의로운 행위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본래 창조하신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로마 총독 빌라도처럼 이성과 양심을 억누르고 악을 택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육신적, 물질적 안정을 위해 이기적이게, 계산적이게 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적, 이성적, 양심적 판단을 따라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영화의 한장면 

2. 십자가에 달리심 The Crucifixion (요 19:17-30)
(17) 그들이 예수님을 맡으니 예수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히브리 말로 골고다 Golgotha)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니 다른 두 사람도 그분과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님은 가운데 있더라(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20) 예수님의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깝기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22) 빌라도가 대답하기를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니라.(23)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분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군병들이 서로 말하기를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26) 예수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기를 “어머님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어머니라” 하시니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28) 이후에 예수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말씀하시기를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거기에 식초(vinegar)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식초를 머금은 스폰지(spunge)를 우슬초(hyssop)에 매어 예수님의 입에 대니(30) 예수님께서 식초를 받으신 후 말씀하시기를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혼이 돌아가시니라.(gave up his ghost)

17절.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맡았고 예수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는 곳에 나오셨습니다. 십자가형을 받는 사형수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라는 사형장으로 나가셨습니다. 다른 복음서들에 보면, 군병들은 구레네인 시몬을 잡아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워 그와 같이 가게 하였습니다(마 27:32; 막 15:21).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셨고 구레네인 시몬은 그의 뒤에서 십자가를 같이 졌던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육신의 체력으로 혼자서 무거운 십자가 형틀을 지실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18절. 그들이 거기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에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혔고 예수님은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처형되는 극악한 죄수처럼 취급되셨습니다. 그분의 좌우에는 큰 죄를 짓고 십자가형을 받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죄인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역사상 세계 여러 곳에서 존재했던 십자가형은 로마 시대에는 주로 큰 죄를 지은 노예들에게 적용되었고 로마 시민들에게는 그런 형벌이 제외되었습니다. 사형수는 땅에 있는 십자가틀 위에 누인 채로 양손과 발에 날카로운 못이 박혔고 형틀은 밧줄로 들어올려 곧바로 세워졌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4:39). 십자가형에 의한 죽음은 오랜 시간을 끌었습니다. 그것은 심장에서 가장 먼 손과 발에 못을 박으므로 피가 서서히 흘러나와 마침내 죽게 되는 형벌이었습니다. 36시간 전에 죽는 것은 드문 일이었고 어떤 경우는 9일 동안 끈다고 합니다. 그동안 날짐승들이 와서 눈을 파 먹고 살을 뜯어 먹는다고 합니다.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은 극심했을 것입니다. 

19-20절. 십자가형을 받는 죄수들은 그 십자가 위에 그의 죄패가 붙는다고 합니다.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였는데,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입니다. 예수님의 못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우므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어와 로마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역사상 유대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야 할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그분의 이름은 단지 한 시대, 한 민족에게만 복된 이름이 아니고 모든 시대, 모든 민족에게 복된 이름이요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사도 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말하였습니다(딤전 1:15). 

21-22절.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의 죄패에 ‘유대인들의 왕’이라고 쓰인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보내신 메시아를 죽였다고 인정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양심은 평안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고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것을 고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의 쓸 것을 썼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사형받을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교묘한 요구를 물리치지 못하고 허락했을 뿐입니다. 그는 죄패의 글을 고쳐달라는 유대인들의 요청은 거절하였습니다.

23-24절.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분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었습니다. 그들은 네 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속옷도 취하였는데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입니다. 군병들은 서로 말하기를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시편 22:18에는 “그들은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십자가 위에서 겉옷과 속옷을 벗기운 채 수치스런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25절.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 즉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서 있었습니다. 원문에는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사이에 ‘와’라는 접속사가 없는데, 그것은 그 둘을 같은 인물로 보는 것 같습니다. 다른 복음서들은 많은 여인들이 멀리서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합니다(마 27:55; 막 15:41). 그들은 남자 제자들보다 더 용감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했고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위하여 열심이 있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나오는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는 그의 모친 마리아를 가리키며(마 13:55),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는 사도 요한의 모친으로서 마가복음 15:40에 언급된 살로메와 같은 인물인 것 같습니다. 

26-27절. 예수님께서는 그 모친과 그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십니다. “어머님, 보시옵소서. 당신의 아들이니이다.” 그분은 또 그 제자에게 “보아라, 네 어머니라”고 하십니다. 그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그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표현은 요한복음의 다른 곳에서 네 번이나 나옵니다(13:23; 20:2; 21:7, 20). 그는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 요한임이 분명합니다. ‘어머님’이라는 호칭은 당시에 존경심을 가진 말로 쓰인 말로 헬라어로는 ‘구네이’ 입니다. “당신의 아들이니이다”라는 말은 그 사랑하시는 제자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그가 모친을 그의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하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 양 어머니로 모시면서 효도를 다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그는 육신의 모친에 대한 사랑과 공경심을 끝까지 가지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은 후 다른 여러 자녀들을 낳았었음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님을 ‘맏아들’이라고 표현하며(마 1:25 전통사본; 눅 2:7) 

또 성경에는 ‘그분의 모친과 동생들(혹은 형제들)’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며(마 12:46; 13:55, 56; 요 2:12; 행 1:14) ‘주님의 형제 야고보’라는 표현도 나오기 때문입니다(갈 1:19). 
양아버지인 요셉은 여러 해 전에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모친을 왜 육친의 동생들에게 부탁하지 않으셨는지는 불명확하지만 그분의 동생들은 믿음이 없었고(요 7:5) 사도 요한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돌볼 만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영적 관계는 육신적 관계보다 더 낫습니다. 요한은 마리아를 잘 모셨고 소아시아 수도였던 에베소로 함께 이민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AD 50년경에 마리아는 죽어 에베소 공동체 무덤이 있습니다. 

28-30절.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고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십니다(시 22:15, 69:21). 인간 예수님의 육신적 고통은 헤아릴 수 없이 컸을 것입니다. “내가 목마르다”는 그분의 말씀은 그 고통을 단적으로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육신의 고통을 십자가 위에서 당하셨습니다. 많은 피를 흘리신 그는 목마르셨습니다. 거기 식초(vinegar)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었습니다. 개역과 개역개정 성경에는 이를 신 포도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ὄξους를 ‘식초’로 번역하는데 바른 번역입니다. 군병들은 식초를 머금은 해융(스폰지)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의 입에 대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식초를 받으신 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의미인가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 곧 택자들을 위한 속죄사역을 다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헬라어 테테레스타이(τετέλεσται)의 뜻은 ‘모든 죄짐이 속량받았다’ 혹은 ‘모든 죄가 탕감받았다 All debts of sins are forgiven’이며 요 1:29에 나오는 ‘보아라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의 말씀의 결과입니다. 히 9:12은, “그리스도께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무궁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합니다. 그런 후 예수님께서는 머리를 숙이시고 혼이 돌아가셨습니다(gave up the ghost).  

17-30절의 교훈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그분은 극악한 죄인처럼 십자가에 달리셨고 속옷까지 벗기운 채로 수치스럽게, 또 심한 갈증을 느끼실 정도로 고통스럽게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고난을 잊지 말고 그분을 진실히 믿고 사랑합시다. 
둘째로, 우리는 모친을 배려하신 그분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그분은 고통과 수치의 죽음을 죽으시는 십자가 위에서도 그분의 육신의 모친을 그분의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부모 공경의 실천이며 부모 사랑의 모범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며 육신의 부모님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합시다. 

셋째로, 우리는 십자가의 참 뜻을 깨달읍시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왕 즉 메시아로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것은 인류 구속(救贖)의 일을 가리킵니다. 그분은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참 뜻입니다. 이것은 인류를 위한 기쁘고 복된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십자가 죄패는 히브리어와 로마어와 헬라어로 쓰여졌습니다. 이 구원의 소식은 온 세상에 알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첫째,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며, 둘째, 말씀과 성신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화(聖化)이며, 셋째, 하나님의 택자들을 다 구원하는 전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됩시다.

3. 예수님의 장례식 The Burial of Jesus(요 19:31-42)
(31)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병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못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33) 예수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34) 그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35)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줄 알고 여러분들로 믿게 하려함이니라(36)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37)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비밀로 하고,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니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39) 일찍 예수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40) 이에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41)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42) 이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고로 예수님을 거기 두니라.

31-33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날은 안식일 바로 전 날인 예비일이었습니다. 예비일은 유월절-무교절 주간의 안식일의 예비일 즉 금요일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고 하였습니다. 사형수들의 다리를 꺾는 것은 그들이 도망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군병들은 가서 예수님과 함께 못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었습니다. 좌우의 죄수들의 다리를 꺾은 군병들은 예수님께 와서 그가 이미 죽은 것을 보고 그분의 다리는 꺾지 않았습니다. 

34-35절. 다리를 꺾는 대신 그중 한 군병이 창으로 그의 옆구리(side)를 찔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곧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이 증거하였으므로 이 증거는 참됩니다. 그는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사람들로 믿게 하려고 증거했습니다. 성경은 목격자들의 진실한 증거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거짓 증인이 아니고 진실한 증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고 옆구리가 찔려 물과 피까지 흘리셨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쓴 머리에도 피가 흘렀고 못이 박힌 그의 손과 발에도 많은 피가 흘렀을 것이고 또 옆구리도 창에 찔려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그분은 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그분은 확실히 죽으셨습니다.

36-37절.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고 하였습니다. 위의 사실들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두 구절의 성취입니다. 하나는 출애굽기 12:46의 말씀인데, 거기에 보면 유월절 어린양에 대해 “뼈를 꺾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또 하나는 스가랴 12:10의 말씀인데, 거기에는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리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찔림을 받을 것이라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이사야 53:9는 그가 부자와 함께 묻히겠다고 예언하였는데 그 예언도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는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요 5:39). 또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대로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들과 시편에 그에 대해 예언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눅 24:44). 이와 같이 성경은 어떤 사건을 예언하였고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그것이 성취되었습니다. 성경의 여러 예언들은 놀랍게도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성경의 이러한 성격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한 증거입니다. 

38절. 아리마대 사람 요셉(Joseph of Arimathaea)이 예수님의 제자이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비밀로 하였습니다. 이 일 후에 그는 빌라도더러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였고 빌라도는 허락하였습니다. 당시 십자가 처형을 받는 자들은 장례식을 하지 못했는데 예수님 경우는 예외였습니다. 그는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례식은 특이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평소에 드러나 있지 않았던 두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상한 때에는 비상한 방식으로 그의 일을 행하십니다. 그는 예수님의 장례식을 위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사용하셨습니다. 다른 복음서들에 의하면, 그는 부자요(마 27:57) 존귀한 공회원이었고(막 15:43; 눅 23:50) 선하고 의로운 자이며 예수님을 정죄한 유대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않았던 자이었고(눅 23:50, 51)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이었습니다(막 15:43; 눅 23:51). 마가복음 15:43에 보면, 그는 빌라도에게 용감히 들어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그분의 시체를 받아 세마포를 사서(막 15:46) 그것으로 싸서 그 시체를 자기의 새 무덤에 장사하였습니다(마 27:60). 

39-42절. 예수님의 장례식을 수종든 다른 한 사람은 니고데모이었습니다. 그는 수년 전에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거듭남에 대한 말씀을 들었던 공의회원입니다(요 3장).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aloe, 알로에) 섞은 것을 백 근(100리트라, 약 34킬로그램)쯤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들과 함께 세마포로 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 속에 판(마 27:60; 막 15:46; 눅 23:53) 새 무덤이 있었습니다. 이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무덤이 가까웠기 때문에 예수님을 거기 두었습니다. 예수님의 장례식은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장례식은 매우 조촐한 장례식이었으나 당시 십자가 형을 받은 자의 장례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다른 사형수들처럼 다리를 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단지 한 군사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그분은 정말 다시 회생할 수 없게 죽으셨습니다. 거기다가 그분은 무덤에 시신을 두었습니다. 그분은 확실히 죽으셨고 인간의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짐을 모두 짊어지시고 속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고 십자가에 달리셨고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히셨고 피를 흘리셨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신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저희들의 모든 죄짐을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속죄를 이루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와 사랑을 100%로 믿게 하셔서 무궁한 생명을 얻게 하옵소서. 지상의 사역 가운데 최고의 사건이 십자가임을 알고 십자가를 볼때마다 최고의 감사를 드리게 하옵소서.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출애굽 여정이 예수님의 구원사건의 그림자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공부를 위한 질문들]
1.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면서 사형에 처한 중요한 죄목은?
2. 예수님을 재판한 총독 관청의 재판석을 히브리어 말로?
3.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린 죄패에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나?
4. 예수님의 겉옷이 네 깃으로 나뉘어 가지고 속옷은 제비뽑는 것 예언한 책?
5.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양 어머니로 부탁한 제자는?
6.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인 “다 이루었다”의 뜻은?
7. 예수님의 장례를 치룬 유대인 두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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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경건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는 믿음, 소망, 사랑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2월 13일 월 찬 246장(통 221장) 갈 5장 성령의 열매
    14일 화 찬 245장(통 228장) 갈 6장 예수님의 흔적
    15일 수 찬 243장(통 224장) 엡 1장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16일 목 찬 242장(통 233장) 엡 2장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
    17일 금 찬 391장(통 446장) 엡 3장 구원의 경륜의 비밀 
    18일 토 찬 393장(통 447장) 엡 4장 옛 사람과 새 사람

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us06web.zoom.us/j/7049077483?pwd=UzNvdldBM04xMFlWQSswVWxDT3YvQT09,  회의 ID: 704 907 7483 / 암호: 12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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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신학교

◉2023년도 봄학기 개강(2023년 2월 27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종강 2023년 5월 22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2023년 2월 27일 1교시(10:00-11:30 개강예배, 성지순례 보고)
                  점심식사(11:40-12:50) 점심식사 및 휴식

                  2교시(13:00-14:30) 송인성(복음신학), 유석근(은사신학)
                  3교시(14:50-16:20) 이종훈(무궁신학), 김인자(테필린)
                  4교시(16:30-17:00) 성경원어강론(윤사무엘)
◉장소: 수원 향기나는나무 교회(이태환 목사 시무), 본당과 디모데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네이비에 ‘겟세마네신학교’ 검색]
  연락처: 010-3288-2878, 010-9367-7605, 010-9722-4548

◉로이교회 후원계좌: 농협 302 0280 1002 11 YunSam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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