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읽는 예배]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다” (눅 9장)
[영상&읽는 예배]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다” (눅 9장)
  • 윤사무엘 목사
  • 승인 2023.05.0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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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다음 설교문과 예배자료는 2023년 4월 30일 주일 (부활절 후 세째 주일), 대한예수교장로회 로이교회(인천 송도) 주일예배용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납되는 주일예배를 준비합시다. 4월은 '부활기쁨의 달'로 지키며, 다음 예배 자료를 나눕니다. 샬롬샬롬!!! (로이교회 / 합동)

여호와는 나의 목자(17):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다” (눅 9장)
                       “Jesus Feeds the Five Thousand.” (Lk 9)

본문: 누가복음 9:1-62
요절: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시니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 열 두 바구니를 거두니라” (눅 9:16-17) 
주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 베드로가 주님을 메시야로 고백하다
교독문: 67번(잠3장), 예배의 부름: 이사야 42:1-4
찬송: 210장(통 245장), 212장 (347장), 215장(통 354장)

일자: 2023년 4월 30일 주일 (부활절 후 세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로이 교회 담임)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 IBS Tower, 11층 11호
      (지하철: 인천1호선 국제업무역, 출구 5번, 좌측 7분 거리 빌딩) 
  [예배시간: 매일새벽기도(월-금) 오전6시, 주일예배 오전 11시, 오후 1:30]
 

윤사무엘 목사

4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다음 주부터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합니다. 5월 28일 주일은 성령(성신)강림주일입니다. 가정의 달에 성신충만 받도록 기도에 전혀 힘쓰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 누가복음 9장을 강해하겠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베드로의 신앙고백, 변모산에서 일어난 일, 사마리아 마을에서 주님의 일행을 영접하지 않음 등 많은 사건들과 제자의 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1. 열두 제자들을 보내심 Jesus Sends Out the Twelve Apostles(눅 9:1-6)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마귀(all devils)를 제압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숙하다가 거기서 떠나라.(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6)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1절.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모으시고 모든 마귀를 제압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그들에게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능력과 권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역은 단지 사람의 말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役事)로 확증됨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 합니다(고전 4:20). 사도들에게 주신 병고침의 능력은 그들의 복음 사역에 권위를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들로서 그들의 신임장입니다(고후 12:12). 열두 제자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도 포함되었을 것이며 그도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고 그것을 행사하였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며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고 말할 수 있느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밝히 말할 것이라고 하실 것이랍니다(마 7:22-23).

2절.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병든 자를 고치게 하려고 파송하십니다. 그는 사도들에게 특히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사명과 직무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민주국가가 아닙니다. 민주국가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어서 국민에 의해 다스려지며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국가입니다. 이런 개념은 사람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존적 존재인 것처럼 가정하는 맛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존적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심으로 존재케 되었고 부모가 낳음으로 출생되었고 또 이웃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매우 의존적(dependent)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바실레이아 투 쎄우 βασιλείαν τοῦ Θεοῦ)는 하나님께서 왕이시며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신정(神政) 국가입니다. 그 나라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물론 그분의 백성의 참된 행복을 위하여 섭리하십니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복종함으로 그 나라에 소속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불경건하고 우상숭배적이고 부도덕하고 음란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사탄과 악령들의 활동하는 처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은 사람들이 창조주와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에게로 돌아와 그분 앞에 겸손히 순종하며 그분의 뜻을 행하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3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 그분께서 제자들이 가지지 말아야 할 것들을 몇 가지 열거하십니다. 첫째는 지팡이입니다. ‘지팡이’는 길 갈 때 의지하는 지팡이와 자기의 몸을 방어하는 데 쓰는 호신용 막대기를 포함하는 것 같습니다. 둘째는 주머니입니다. 그것은 물건들을 집어넣을 수 있는 가죽 가방이나 지갑을 가리킵니다. 셋째는 양식이며, 넷째는 돈이며, 다섯째는 두 벌 옷입니다. 그러나 그가 후에 전대나 주머니 등을 허용하신 것을 보면(눅 22:35-36), 전도자가 평생 그런 것을 가지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전도자가 세상 염려나 세상의 물질 생활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이라고 봅니다. 

4절. 예수님께서는 또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숙하다가 거기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전도자는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만족하며 활동해야지 더 나은 집을 찾아 옮겨 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적, 환경적 조건을 찾아다니는 자는 전도자답지 못합니다. 세상에서도 직장인이 가능하면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합니다. 대우가 더 좋은 곳을 찾아 옮겨다니면 그의 career에 흠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일도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일반적으로 좋습니다. 전도자나 목회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세상의 것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나선 자가 세상의 조건에 마음을 쓴다면 중심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언제 어디서나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5-6절.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제자들은 나가서 각 마을에 두루 행하여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쳤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그런 곳에 오래 머물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도자는 여러 곳에 두루 행하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도자는 그를 영접지 않는 곳을 떠날 때 그의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림으로 그들에게 증거를 삼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에 제시된 구원의 복이 그들과 상관없다는 것을 생생하게 증거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2. 헤롯의 당황함 Herod Is Perplexed by Jesus(눅 9:7-9)
(7) 분봉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여 하니 이는 혹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8) 혹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혹은 옛 선지자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9) 헤롯이 말하기를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분을 보고자 하더라.

7-9절. 분봉왕 헤롯은 “그분에 의해”(전통본문) 이루어진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해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이는 [세례=침례자]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어떤 이는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이는 옛 선지자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었습니다. 헤롯은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고?” 말하며 그분을 보고자 하였습니다.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기 때문에 죄를 짓고는 편안할 수 없습니다. 

영화 '선택받은 자' (The Chosen) 오병이어 기적 장면    The Chosen
영화 '선택받은 자' (The Chosen) 오병이어 기적 장면.     ⓒThe Chosen

3. 5병 2어(五餠二魚)의 기적 Jesus Feeds the Five Thousand(눅 9:10-17)
(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의 모든 행한 것을 예수님께 보고하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11) 무리가 알고 따라오니 예수님께서 그들을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12) 날이 저물어가니 열두 사도가 나아와 부탁하기를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숙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 있는 여기가 빈 들이니이다”(13)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여짜오되 “저희에게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는 할 수 없삽나이다” 하였으니

(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명씩 앉히라 하시니(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16)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시니(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 열 두 바구니를 거두니라. 
10-11절. 사도들이 돌아와 그들의 행한 모든 일을 그분께 고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고 불리는 동네에 속한 한 한적한 곳으로 떠나가셨다. 벳새다(Bethsaida)는 갈릴리 북동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골란고원 아래에 위치한 어촌입니다. 베드로, 안드레, 빌립의 고향이기도 합니다(요 1:44, 12:21). 주님께서 이들을 따로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신 것은 그들에게 쉴 시간을 주기 위함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엄청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이곳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들의 열심은 대단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부흥을 주시면,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간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시면 사람들의 마음은 냉냉하고 거칠고 반항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접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셨습니다. 세상 나라는 죄악되며 장차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나 다니엘이 예언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며 그 나라는 영원하며 영원히 멸망치 않을 것입니다. 다니엘 2:44,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소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육신의 병들도 고쳐주셨습니다. 천국에서 우리는 영육으로 건강하게 영생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가장 복된 소망입니다.

12-17절. 날이 저물어 가자 열두 사도가 나아와 말하기를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 있는 여기가 빈들이니이다.” 이것은 갈릴리 호수 부근 벳새다 들판에서 이날 날이 저물어 가는 시간에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그들은 말하시기를 “우리에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는 할 수 없삽나이다.” 요한복음의 증언에 의하면, 그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도 한 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요 6:9). 남자가 한 오천 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그 작은 빵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게 보였습니다. 

여기서 5000명이란 군인의 수로 남자나이 20세 이상 60세 이하되는 숫자입니다. 20세이하 어린아이들, 60세 이상 노인들, 모든 여성들 숫자는 2-3만명이 될 것입니다.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제자들이 무리를 오십명씩 질서정연하게 앉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저녁에 거기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다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나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사복음서들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말할 것 없이, 이 사건은 예수님의 다른 모든 기적 사건들과 더불어 예수님께서 하나님 즉 그리스도 되심, 즉 그분의 신적 인격과 메시아 사역을 증거합니다. 

4.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Peter Confesses Jesus as the Christ(눅 9:18-27)
(18) 예수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있더니 물으시기를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9) 대답하기를 “세례[침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어떤 이들은 옛 선지자[대언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20)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Christ of God) 하니 (21) 경계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22)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23) 또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신을 부정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25)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31)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시니 

(32)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피곤하여 졸다가 아주 깨어 예수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기를 “주님, 저희들이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저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그의 하는 말을 그도 알지 못하더라.(34) 이 말씀을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36) 소리가 그치니 오직 예수님만 보이시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18-20절. 주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시시때때로 기도하신 이유는 본을 보여주십니다. 그때 그분은 제자들에게 물으시기를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들은 대답하기를, “어떤 이는 세례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대언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 예수님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에 대해 세계적 종교의 창시자나 역사상 훌륭한 선생 등의 여러 견해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시니, 베드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말은 ‘하나님 즉 그리스도’ 혹은 ‘신성(神性)을 가진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21절.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심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이스라엘 나라를 로마 제국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또 물질적 가난과 궁핍으로부터 건져내어 줄 것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일차적 사명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메시아 왕국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풍요함을 가질 것이지만, 그는 우선 정치와 경제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인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셔야 했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죄로부터 건져 주시는 구세주이십니다. 사람들이 이런 메시아의 사명을 이해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습니다. 

22절.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인자’(人子)라는 명칭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그분의 인성(人性)을 가리킵니다. 인성을 가지신 그분은 많은 고난을 당하시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부활을 예언하셨습니다. 

23절.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신을 부정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모든 신자에게 적용됩니다.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자신을 부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본래의 인생관과 가치관은 허무하고 죄악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고 올바르지 못한 것들이었습니다. 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십자가를 날마다 지고 가야 합니다. 

24-25절. “이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할 것임이니라.” ‘나 때문에’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할 이유는 우리가 육신의 목숨만을 위해 산다면 결국 무궁한 생명을 잃어버릴 것이지만, 우리가 주님을 위해 육신의 목숨을 잃는다면 무궁한 생명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두 종류의 생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육신의 목숨이고, 다른 하나는 무궁한 생명입니다. 육신의 목숨만을 위해 살려는 자는 무궁한 생명을 잃어버릴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육신의 목숨을 잃는다면 그는 무궁한 생명을 소유한 자가 될 것입니다. 고난과 죽음과 부활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제자들의 삶의 과정이다. “이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함이라.” 우리가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할 이유는 영생의 가치가 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었다 해도 자기의 혼이 지옥에 던지운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영생을 얻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26-27절. “이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할 것임이니라.”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예언된 대로 눈으로 볼 수 있게 또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부끄러워하던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인정치 않으시고 하나님의 백성의 수에서 제외하실 것입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이 말씀은 다음에 나오는 변화산 사건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그 사건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하신 사건이라고 봅니다. 

28-31절. 이 말씀을 하신 후 8일쯤 되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이 산은 다볼산(Mount Tabor, 해발 588미터)으로 요르단 강에서 이스르엘 평야를 지나 18km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셨는데 그분의 용모가 영광스럽게 변화되고 그분의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 이것이 본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때 문득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하였습니다. 세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살아 있으며 천국에서 영광을 누리고 있음을 잠시 동안이라도 보게 되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해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그분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대속(代贖)하기 위한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32-36절.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은 피곤하여 졸다가 아주 깨어 예수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두 사람이 떠날 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말씀드리기를 “주님, 저희들이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저희들이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그는 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 너무 좋아서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었습니다.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였는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분의 말을 들으라.” 

소리가 그치자 오직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제자들은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해 후에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이 사건에 대해 말하였습니다(벧후 1:16-18 16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17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18이 소리는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구름 속에서 들린 음성은 하나님의 친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 음성으로 예수에 대해 증거해주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그 어떤 증거보다 더 확실하고 시원한 증거입니다. 그 내용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시라는 것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아는 자라면, 마땅히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그분의 보내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에도 순종해야 합니다.

5. 저 낮은 곳을 향하여 Jesus Heals a Boy with an Unclean Spirit (눅 9:37-48)
(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으니(38)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소리질러 말씀드리기를 “선생님 청컨대 제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는 저의 외아들이니이다.(39) 마귀가 그를 잡아 졸지에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심히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41)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믿음이 없고 삐뚤어진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42) 올 때에 마귀가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님께서 더러운 마귀를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비에게 도로 주시니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강력한 권능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라워 하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 하시되(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였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김이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47) 예수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48)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분을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자가 큰 자니라.”

37-39절. 이튿날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았습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소리지르기를 “선생님, 간청하건대 제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는 제 외아들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에게 불행을 주심으로써 세상의 헛됨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 아버지는 말하였습니다. “마귀가 그를 잡아 졸지에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심히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 마태복음은 그 아이의 병을 간질이라고 합니다. 이 병은 악마의 활동이었습니다. 악마는 그 아이 속에서 활동하며 소리를 치며 부르짖고 거품을 흘리며 경련을 일으키고 그 몸을 심히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마태복음은 그가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졌다고 합니다(마 17:15).

40-41절. 그의 아버지는 말하기를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예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믿음이 없고 삐뚤어진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제자들은 그 아이의 병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제자들도 병을 고치며 마귀를 내어쫓는 권세를 받았지만 이 아이의 병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믿음이 적기 때문에 못했다고 하십니다(마 17:20). 

42-45절. 그 아버지가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올 때 마귀는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마귀를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셨습니다. 그는 그 아이를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십니다.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고 그분의 행하시는 모든 일을 기이히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신성의 영광을 다시 한번 나타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 주님께서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그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이었고 이 세상에서 하실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도록 숨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였습니다.

46-48절. 제자들 가운데서 누가 더 크냐는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경쟁심은 인간의 뿌리깊은 죄악성인 교만과 명예심에서 나온 것이며, 그것은 결국 자기를 사랑하며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런 것들 때문에 남을 시기하고 다툽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시려고 종으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는 너무 다릅니다. 주님과 함께 지내며 많은 말씀들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아직 제자들 속에는 연약성이 그대로 있고 아직 주님을 본받는 자 되기에 부족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들이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았을지라도 그는 그들의 마음의 욕심과 복잡함을 아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의 중심을 다 아십니다(요 2:24). 그분은 제자들의 문제점을 고쳐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위해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이는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 이가 큰 자임이니라.” ‘내 이름으로(에피 토 오노마티 무 ἐπὶ τῷ ὀνόματί μου)’라는 원어는 ‘내 이름에 근거하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어떤 어린아이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접하든지, 혹은 그 어린아이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를 영접하는 것은, 우리가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또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가운데 자신을 낮추고 작은 일 하나를 즐거이 행하는 그 사람이 큰 자입니다. 모든 종류의 명예심과 욕심을 버리고 오직 겸손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그분의 이름으로 이웃을 돌아보는 자는 큰 자로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6. 제자의 길 Anyone Not Against Us Is For Us (눅 9:46-62)
(49) 요한이 응답하여 이르되 “주님,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50)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51)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니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니 그들이 가서 예수님을 위하여 예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5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고로 그들이 받아 들이지 아니하는지라(54)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말씀드리기를 “주님, 저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그들을 멸망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55) 예수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56) 함께 다른 촌으로 가시니라(57)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58)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말씀드리기를 “나로 먼저 가서 제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60) 예수님꼐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61) 또 다른 사람이 말씀드리기를 “주님, 제가 주님을 좇겠나이다마는 저로 먼저 제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62)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49-50절. 요한이 말하기를 “주님,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있었던(막 3:17) 요한은 성격이 급했던 것 같습니다. 사도 시대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내어쫓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가 자기들과 함께 따르지 않기 때문에 그의 행위를 금지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금하지 말라. 이는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임이니라.” 전통본문에는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관용의 정신이 있습니다. 물론 관용에는 한계선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라는 한계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가진 자들을 향해 ‘우리 교회에만 속해야 한다’는 좁은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진실히 부르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관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12:30에서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누가복음 본문의 말씀과 반대되지 않고 보충적입니다. 그 말씀은 어떤 사람이 생각과 입장을 예수님과 그 제자들과 같이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들을 반대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51-53절. 예수께서는 그분의 승천의 날들이 차 가므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앞서 보내셨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는 표현은 그분의 인간적 모습을 잘 나타냅니다. 그분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죽음의 길을 향해 즐거이 나아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의 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긴장하셨을 것이지만, 아버지의 뜻을 따라 굳게 결심하며 그 길을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가서 예수님을 위해 예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것을 알고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그들을 반쯤 이방인으로 여기며 낮추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마리아인들의 육신적 혈통이나 종교 생활은 순수하지 못하고 혼합되어 있었습니다. 

54절. 야고보와 요한은 이를 보고 말하였습니다. “주님, 저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그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전통본문에는 ‘주님’라는 말 다음에 ‘엘리야도 했듯이’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열왕기하 1장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대언자]는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자기를 잡으러 보낸 50명의 사람들을 저주하므로 두 차례나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 그들을 멸하게 하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엘리야의 일을 기억하면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멸하는 것이 어떻겠는가고 주님께 물은 것입니다. 

55-56절. 예수님께서는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어떤 사본들과 역본들에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도다. 이는 인자가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음이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십니다(마 5:39, 44). 

57-58절.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그것은 귀한 결심이며 고백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격려하는 대신 매우 부담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보잘것없는 여우나 새도 집이 있지만, 예수님은 안정된 집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자신이 소유한 집이 없으셨습니다. 그분은 전도 활동의 마지막 때에 제자들과 함께 가진 유월절 식사도 어떤 이의 다락방에서 하셨고 그 밤의 휴식도 올리브산[감람산]에서 하셨습니다. 주님의 전도 사역에는 물질적 안정이 없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주님의 가신 길을 따를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디든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한 그 사람은 이런 각오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59-60절]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말하기를 “주님, 저로 먼저 가서 제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두 번째 사람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했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뜻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가서 그의 부친을 장사하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주님께 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처음의 ‘죽은 자들’이라는 말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두 번째의 ‘죽은 자들’이라는 말은 육신적으로 죽은 자들 곧 장례를 행해야 할 대상자들을 가리킵니다. 부모를 공경하며 그들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잘 행하는 것은 자식으로서 당연한 도리입니다. 단지, 주님의 말씀은 더 높은 명령, 더 크고 더 중요하고 더 급한 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대제사장에게 명한 말씀과 비슷합니다(레 21:10-11). 대제사장은 부모로 인해서도 더러워지게 말고 성소에서 나오지도 말아야 했습니다. 

[61-62절] 또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주님, 제가 주님을 좇겠나이다마는 저로 먼저 제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이 사람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했고 그분을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것도 귀한 결심이며 고백이었으나, 그는 ‘먼저’ 자기 가족들과 작별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주님께 요청하였습니다. 사람이 자기 가족들과 작별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절차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주님의 대답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우선순위의 혼란이 문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그분은 그 사람의 마음의 혼란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밭 가는 자가 앞을 바라보며 밭을 갈아야 할 것이라는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밭 가는 자가 밭을 갈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면 이랑이 비뚤어지고 말 것입니다. 

손에 쟁기를 잡았다는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맡았다는 뜻입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세상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으면서도 세상의 일에 대해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는 옛날 롯의 아내와 같다.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본 것은 세상 애착을 끊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창 19:26). 복음의 일꾼들이 세상의 애착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천국의 직무에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들은 그것을 가장 크게 여기고 그 직분에 지장되지 않도록 처신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염려나 세상 애착 때문에 직분을 다하지 못하는 자는 천국에 합당치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제자로서 하나님 나라의 일에 가장 우선 여기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깊이 새깁시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매일 자신을 부정하고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나 변모산상에서 하늘에서 나는 소리처럼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사랑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님으로 승리를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내일부터 가정의 달을 맞아 어린이 주일, 어버이주일, 청년주일, 가정주일, 성령[성신]강림주일를 통해 매주일 승리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신 말씀을 깊이 간직하여 제자도를 실천하게 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적극 참여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공부를 위한 질문들]
1.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주신 사명과 은사는?
2. 헤롯왕이 왜 예수님을 세례 요한의 환생이 아닌가라고 걱정했나?
3. 오병이어의 기적(miracle of multiplication)과 하나님 나라는?
4.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5. 변모산상에서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은?
6. 예수님께서 최초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말씀은?
7.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에 대해 두가지 실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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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부활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부활절 후 기간동안 주님의 겸손과 온유, 순종을 배우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5월 1일 월 찬 510장(통 276 장) 약 4 형제를 비방하지 말라
    2일 화 찬 515장(통 256장)  약 5 재림하실 때까지 인내하라
    3일 수 찬 516장(통 265장)  벧전 1 히늘의 상속 유업
    4일 목 찬 518장(통 252장)  벧전 2 산 돌이신 그리스도
    5일 금 찬 565장(통 300장)  벧전 3 선한 양심을 가져라
    6일 토 찬 566장(통 301장)  벧전 4 그리스도를 본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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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us06web.zoom.us/j/7049077483?pwd=UzNvdldBM04xMFlWQSswVWxDT3YvQT09,  회의 ID: 704 907 7483 / 암호: 12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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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신학교 Gethsemane Mission Seminary
⊙2023년도 봄학기 개강(2023년 2월 27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종강 2023년 5월 29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2023년 5월 1일 월 수업 일정표
   1교시 10:00-11:30 조직신학(윤사무엘), 요한계시록(박호용)
   점심과 체조, 친교 시간 (11:40-1:00)
   2교시 (1:00-2:30) 심볼리즘(류재이), 중독치유(김도형/이미숙)
   3교시 (2:50-4:20) 목회신학(이성환), 성경학(오선화), 논문지도(윤사무엘)
   4교시 (4:30-5:20) 원어강독(이종현/윤사무엘)  
⊙장소: 수원 향기나는나무 교회(이태환 목사 시무), 본당과 디모데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네이비에 ‘겟세마네신학교’ 검색]
  연락처: 010-3288-2878, 010-9367-7605, 010-9113-1127
⊙로이교회 후원계좌: 농협 302 0280 1002 11 YunSam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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