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23가지 죄악 분별하고 멀리하기 ... "죄인에서 의인으로 방향 전환을 하라"
[영성칼럼] 23가지 죄악 분별하고 멀리하기 ... "죄인에서 의인으로 방향 전환을 하라"
  • 윤사무엘 박사
  • 승인 2021.11.10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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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의 생각은 하나님의 표준에 미달/
의에서 벗에나고 정도에서 떠나는 탈선은 죄/
악한 마음을 버리고 선한 마음을 간직해야/
윤사무엘 박사
윤사무엘 박사

【뉴스제이】 죄인들은 세상의 많은 지식은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가지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이 모든 지식의 근본임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은 그 지식을 거절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버림받은 생각대로 내버려두셨다. ‘버림받은 생각’이라는 원어(아도키모스 누스 adokimos nous)는 ‘실패한, 무가치한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죄인의 생각은 하나님의 표준에 미달하고 무가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려두셔서 그들로 합당치 못한 일들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거절하는 자들은 결국 여러 가지 죄악에 떨어집니다. 욕심, 교만, 불순종, 불경건, 우상숭배는 모든 죄악들의 뿌리입니다(창 4:7, 신 30:19, 롬 14:23, 약 1:15).

성경 로마서 1장 29절로 31절은 23가지의 죄악이 열거됩니다(vice list).

“또한 그들이 자기 지식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림받은 생각에 내주사 합당하지 못한 일들을 행하게 하셨으니 (29) 그들은 곧 모든 불의와 음행과 사악함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하며 시기와 살인과 논쟁과 속임수와 적개심으로 가득하고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뒤에서 헐뜯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업신여기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한 일들을 꾸미는 자요,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자요, (31) 지각이 없는 자요, 언약을 어기는 자요, 본성의 애정이 없는 자요, 화해하기 어려운 자요, 긍휼이 없는 자라. (32) 그들이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도 같은 일들을 행할 뿐 아니라 그런 일들 행하는 자들을 기뻐하느니라.”(로마서 1:28-32)

죄의 종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죄악을 멀리하게 됩니다, 이런 죄를 짓지 맙시다.

① 불의(不義 unrighteousness)는 죄에서 제일 처음 나옵니다. 의에서 벗에나는 것, 옳은 길(正道)에서 벗어나 탈선하는 것은 죄입니다. 의(義)는 하나님의 명령과 뜻에 일치하는 생각과 행위요, 불의는 그의 명령과 뜻에 어긋나는 생각과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온갖 종류의 불의를 정죄하시고 우리에게 의로운 삶을 원하십니다.

② 음행(fornification)입니다. 개역, 개역개정, 현대역 성경에는 이를 삭제하고 있으나 전통사본에는 나옵니다.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음행이 가득합니다. 음행은 인간 관계의 죄들 중에 심각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종류의 음행과 불결을 미워하시고 우리에게 거룩하고 단정한 삶을 원하십니다.

③ 사악함(wickedness) 혹은 ‘추악’(포네리아 poneria)는 악한 생각, 행동, 습관입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살전 5:22).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④ 탐욕(covetousness)은 돈과 명예와 정욕에 대한 탐심을 말합니다. 탐욕은 이 세상의 것을 더 많이 원하는 마음입니다. 제 10계명에서 탐심을 금하고 있습니다. 탐심은 하나님 대신에 세상을 사모하는 마음이며 그것은 일종의 우상숭배입니다(골 3:5). 성도가 영원한 천국을 참으로 믿고 소망하고 사모한다면 지나가는 이 세상의 것에 대한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사모하는 보화와 우리의 무궁한 기업은 하나님이요 장차 올 천국입니다.
⑤ 악의(maliciousness)입니다. ‘악의’(惡意)가 가득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악한 마음에서 악한 행위들이 나옵니다. 사람은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잠 4:23). 악한 마음을 버리고 선한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시 51:5).

⑥ 시기(full of envy)입니다. 시기심의 근원은 열등감입니다. 열등한 자가 우수한 자에게 품는 증오입니다. 시기는 교만과 함께 싹트고 미움과 더불어 자라서 남과 다투며 남을 죽이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우리는 교만과 시기를 버려야 합니다. 이를 극복하고 오히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남의 성공을 축하해 주며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⑦ 살인(murder)은 제6계명에서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을 존중하며 죽이거나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⑧ 논쟁(debate)인데 꼭 필요한 진리의 싸움이 아닌 모든 다툼과 분쟁을 버려야 합니다. 천국은 의와 진리 안에서 화평한 세계입니다.

⑨ 속임수(deceit)는 안됩니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입니다(Honesty is the best policy.) 거짓말을 한번 시작하면 계속해서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처음에 정직하게 말하고 일을 개선하는 것이 훨씬 이로울 때가 많습니다. Telling the truth is always the best course of action, even when being dishonest would be easier or more useful.

⑩ 적개심(malignity)은 선한 마음의 반대입니다. 분노의 다양한 표현이 적개심입니다. 결국 폭력과 폭행과 폭언을 낳게 합니다.

⑪ 수군수군하는 자(whisperers)인데 이것은 은밀히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남에게 할 말이 있으면 직접 하는 것이 사랑이며,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일에 충실하고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⑫ 뒤에서 헐뜯는 자(backbiters)는 비방하는 자입니다. ‘비방한다’는 말은 공공연히 남을 비난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방은 교만과 시기와 미움 등에서 나옵니다. 사랑은 이웃의 허물을 덮지만, 미움은 이웃에 대한 비난으로 나타납니다. 그리하여 인간관계에 금이 가고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 파괴됩니다. 사랑은 건설하는 덕이요, 미움과 비난은 파괴하는 악입니다.

⑬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haters of God)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데 하나님을 싫어하거나 회피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사람들은 왜 하나님을 미워하는가요? 빛에 속한 자는 빛을 좋아하나 어두움에 속한 자는 빛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요 3:20, 8:12). 악인은 하나님을 미워합니다. 

⑭ 업신여기는 자(despiteful)는 ‘능욕하는 자’ ‘멸시하는 자, 오만불손한 자’인데 남의 생각과 의견을 무시하는 것도 죄입니다.

⑮ 교만한 자(proud). 모든 죄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에서부터 나옵니다(창 3:5). 사탄은 루시엘이었는데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다가 루시퍼가 되어 땅에 추방당합니다(사 14:12-15).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잠 18:10-12).  피조물이 자신을 주인과 왕으로 여기는 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시요 왕이시므로, 교만은 어리석고 무지한 일이요 매우 근본적 죄악이다. 거기서 남을 멸시함과 자랑이 나옵니다.

⑯ 자랑하는 자(boasters)인데 업신, 교만, 자랑은 비슷한 단어입니다. 주님을 자랑해야지 자신을 자랑하는 것도 죄입니다.

⑰ 악한 일을 꾸미는 자(inventors of evil things) 죄인들은 또 악을 도모하며 계획합니다. 이것은 실수의 악이 아니고 의도된 악, 계획된 악입니다. 이것은 실수의 악보다 더 악합니다.
 
⑱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자(disobedient to parents) 사람들은 또 부모를 거역합니다.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되지 않은 많은 자녀들은 부모들을 거역합니다. 이것이 부패된 인간성입니다. 아이들은 엄한 징계와 훈련을 통하지 않고는 도무지 통제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릴 때부터 징계의 매로 아이들을 교육하라고 합니다(잠 23:13-14). 사람의 부패된 인간성은 사랑의 징계를 통해 비로소 조금 제어될 수 있습니다(잠 13:24; 22:15).

⑲ 지각이 없는 자(without understanding) 즉 우매한 자도 죄입니다. 사람들은 우매하여 참 지식도 깨달음도 없습니다. 그들은 행복을 추구하면서 스스로 불행을 가져옵니다. 그들은 많은 지식을 추구하여 얻지만, 참으로 알아야 할 지식, 곧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지금 왜 여기 있으며 무엇을 위해 있는지에 대하여는 모릅니다. 이것이야말로 무지하고 우매한 인생의 모습입니다. 

⑳ 언약을 어기는 자(covenantbrakers)는 죽음으로 다스립니다. ‘배약(背約)하는 자’는 약속을 어기는 자, 불신실한 자입니다. 사람이 약속을 어기는 데는 부득이한 환경적 요인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는 자신의 불성실함과 거짓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약속하고 그 약속을 쉽게 저버립니다. 특히 사람의 불신실함은 시간에 대한 약속과 돈에 대한 약속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신실한 인격, 믿을 만한 인격은 약속을 하는 데도 신중하지만, 약속한 바는 반드시 지키려 합니다. 

(21) 본성의 애정이 없는 자(without natural affection) ‘무정한 자’는 인정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미국 대각성 운동을 시작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에게 자연적인 애정(natural affection)은 경건한 청교도 정신의 사랑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는 인정이 있어 보이지만, 환경이 조금만 악화되면 무정함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자기 유익을 위해 힘센 자는 약한 자의 것을 빼앗고 강대국은 약소국을 침입합니다. 

(22) 화해하기 어려운 자(implacable) 전통본문에 나오는 죄목입니다.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는 자요’라는 말씀입니다. 마음 상하는 일이나 원통한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마음 깊이 오래 간직하고 보복하려 합니다. 이런 마음 때문에 인간관계는 허물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악을 행한 자와도, 그가 사과하면, 언제나, 즉시 화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용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23) 긍휼이 없는 자(unmerciful)도 죄입니다. 사람들은 무자비합니다. 자비와 긍휼은 하나님의 품성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사람들은 이기적(利己的)이게 변하였고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고 남의 것을 교묘히 빼앗습니다. 또 그들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결코 할 수 없을 악을 행하며 또 거칠고 폭력적이고 사악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런 죄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율법과 공의를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양심이 증거하는 바요, 그들의 사회의 법들에 나타나 있는 바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은 사망입니다. 죄인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포함합니다(계 2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만 이런 죄악들을 행할 뿐 아니라 이런 것들을 행하는 자를 옳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더 가증한 뻔뻔함과 완악함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든 죄악들로부터 깨끗이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만 깨끗이 씻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오직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버리기를 결심하고 구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죄사함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방향 전환을 지금 하시기 바랍니다.

윤사무엘 박사 (겟세마네교회 담임 / 겟세마네신학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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