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부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 ... "부활의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을 알고 있나요?"
[나관호목사 칼럼] 부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 ... "부활의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을 알고 있나요?"
  • 나관호
  • 승인 2021.05.1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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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 목사의 행복발전소 156]

그냥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은 '회생'/
부활, ‘영생하는 몸’으로 '변화’되는 것/
예수님 내 안에 계신 것, 테스트(?)하라/

【뉴스제이】 영화와 드라마에서 출중한 실력을 보인 영화배우과 탤런트들에게 상을 주는 《백상예술대상》(百想藝術大賞) 시상식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서 상을 받을 텐데.....”

누구나 상을 받는 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더구나 예술인에게는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니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참고로, 《백상예술대상》과 ‘한국영화인총연합회’가 주최하는 《대종상》(大鐘賞)과 ‘청룡영화제’로 더 불려지는 《청룡영화상》(靑龍映畵賞)은 우리나라 3대 예술인상입니다. 

《백상예술대상》은 ‘일간스포츠’가 주최하는 ‘종합예술상’으로 ‘한국일보’ 창립자 장기영 회장의 ‘호’인 ‘백상’(百想)에서 따온 이름의 상입니다. ‘중앙일보’가 주최사로 행사를 주관gkau, ‘JTBC’ 종편 방송에서 중계권을 가지고 방송하고 있습니다. 

《대종상》은 ‘한국영화인총연합회’가 주최하는 영화인들을 위한 상입니다. 원래, 대한민국 정부차원의 공보부(현 문화관광부) 주관으로 1962년 제1회 시상식이 열린 후, 1992년에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뀌면서 진정한 영화인의 축제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청룡영화상》은 ‘청룡영화제’로 더 불려지는 ‘조선일보’ 주최의 영화인상으로 가장 권위를 가집니다. 한국영화의 진흥을 위하여 1963년 시작되었지만, 1973년 영화법 개정으로 인하여 스크린쿼터제가 도입되어 한때 폐지되었다가, 1990년에 ‘스포츠조선’과 ‘조선일보’의 후원으로 부활했습니다.

백상예술대상, 대종상, 청룡영화상 그리고 아카데미상 트로피

나는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상 받을 그날을 생각하며 '부활'을 꿈꿉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신령한 몸처럼 같은 몸으로 부활해서 기도의 어머니와 나의 최대 후원자셨던 아버지를 만날 생각을 하며 삽니다.

그런데 부활은 그냥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과 야이로의 딸 그리고 나사로도 죽었다가 살아났지만 늙어 다시 죽었습니다. 그들의 ‘살아남’은 ‘회생’이었습니다. 

‘부활’. 그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모든 자가 죽고, 모든 죽은 자는 살아납니다. 훗날 구원 받은 우리 모두는 ‘생명의 부활’로 일어나 면류관으로 상급을 받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은 ‘사망의 부활’로 일어나 심판을 받고, ‘영벌’을 받아 어두운 곳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예수님 같은 ‘부활’은 죽지 않고, 썩지 않는 ‘영생하는 몸’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42-44)

한분 예수님이 어떻게 ‘내 안에, 너 안에, 우리 안에 동시에’ 계실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시다고 고백하고 믿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 성자 하나님으로 존재하십니다. 무소부재(無所不在, Omnipresence),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으신, 어디에나 다 존재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편재성을 예수님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세계는 시공간에 갇힌(?) 세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입으신 변화된 신령한 부활의 몸은 3차원 시공간의 세계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4차원 존재인 시공간을 초월하는 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제자들이 있는 방을 문이 아닌 벽을 공간처럼 뚫고(?) 들어오신 것입니다.(요 20:19)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보다도 더 앞서 가셔서 제자들과 동행하며 20리 정도 같이 걸어 갔지만 두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변해도 그렇지 예수님과 3년동안 동거했는데, 부활하셨으니 비슷한 모습일 것 같은데 왜 못 알아 봤을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마가복음 16:11-14)

당시 제자들과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사람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우리 예수님이 나타나셨어요”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마리아가 신령한 몸을 입으신 예수님의 모습에 최대한 전했을 것입니다. 이러이러 하시다고.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어도, ‘샌들 신고 수염도 약간 기르고 자기들과 비슷한 나이대인 30대 중년(?)의 모습’ 같이 동거하던 그 모습으로 살아나셨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마리아의 말을 듣고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샌들 신고 다니던 시절의 모습이 아닌 몰라볼 정도로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걸어서 갈 때에 예수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20여리를 동행했지 처음에는 몰라 본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드러낸 후에야 알게 되었고 그것을 다른 제자에게 전했지만 그들은 역시 믿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시듯 ‘다른 모양으로’(막 16:12, 눅 24:13-16)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역시 디베랴 강가에서 새벽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제자들은 한번에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내 니라”하실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이 구워주신 생선으로 조반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세상에서 가장 믿기 어려웠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입니다.(고전 15:3) ‘죽으심’이 있었기에 ‘부활’이 있었으니 ‘십자가와 부활’은 동전의 앞뒤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죽으심”은 가장 오해 부분이고, “부활”은 가장 믿기 어려운 진리입니다. [참고기사다큐 영화 “예수와 함께하는 여행” 개봉 ... “토니 에반스 목사와 두 딸의 성지순례 이야기” ]

예수님이 부활 후, 선교명령을 주시고 승천하신 다음에 제자들이 한 일은 ‘부활을 증언’하는 일이었습니다.  

‘부활’. 그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모든 자가 죽고, 모든 죽은 자는 살아납니다......“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고린도후서 13:5)      ⓒ뉴스제이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그 예수님이 ‘주님을 구원자로 영접한’ 우리 모두 안에 살아서 동거동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내 안에 너 안에” 그래서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하고, 귀하게 여겨야 하는 당위성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고린도후서 13:5)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세워진 것이 예수님 돌아가신 후 30년 정도 지난 시점이니, ‘부활의 진리’를 30년 후에도 양육되어 제대로 믿음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인지에 대한 테스트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 개개인 안에 계신 줄을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면 버림받은 자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테스트’(?)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안에 그러니까 나와 너 ’안에’ 예수님이 실제로 들어오셔서 살고 계신 것을 “믿느냐? 안믿느냐?” 우리도 믿음을 테스트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내가 스스로 알고 있나?” 
“믿으십니까? 못 믿으십니까?”,  “믿어지나요? 안믿어지나요?”

나는 아주 잘 믿고, 때론 가슴에 손을 대고 기도도 하고, 우리 예수님을 생각하며 잘 모시고 삽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속에 살아계신 예수님도 찬양하며 살아갑니다. 구원 받은 우리 모두가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안타까운 것은 거짓말을 많이하고, 이간질 잘 하고, 다른 사람을 조종해 또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는 것 아닐까요? 부활의 예수님이 자기 안에 살아 동거하며 살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 속에 살아계신다는 것을 믿고 산다면 그런 ‘못된 짓’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됩니다. 돌이켜야합니다. 

모든 악은 거짓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거짓의 아비는 사단입니다. 사단의 영향력 아래 있으면 회개하는 것이 어려울 것입니다. 사실, 악한 영이 존재하는 것도 우리가 인식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도둑을 대비하듯이. 나는 실제로 회개를 하려고 해도 않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상담한 적이있습니다. 회개는 구원과도 연결되는 것이에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정직하고 거룩하려고 투쟁하고, 넘어지면 ‘회개’하고 십자가 붙들고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내가 스스로 믿고’, 믿음의 행진을 하게 될 것입니다. 임마누엘!!!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중보자 부활하신 예수님의 박수를 받으며 면류관을 쓰게 될 당신을 응원하며....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대표 및 발행인 /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문화평론가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조지뮬러영성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e뉴스제이두나미스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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