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코로나시대 교회와 목사, 성도가 준비할 신앙자세 ... “자기 부인하고 십자가 지는 ‘비움의 영성’으로 세상 속에서 ‘선한 일’ 나타내어야 한다"
[나관호목사 칼럼] 코로나시대 교회와 목사, 성도가 준비할 신앙자세 ... “자기 부인하고 십자가 지는 ‘비움의 영성’으로 세상 속에서 ‘선한 일’ 나타내어야 한다"
  • 나관호 발행인
  • 승인 2021.03.16 0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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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한국교회에 바란다 《17》

교수목사의 입장에서 한국교회를 살펴보고, 진단(?)하고 나아가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찾고자 합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더 새로워지고, 세상을 향해 성경적 소리를 내고, 귀한 십자가 사랑을 바탕으로 '예수운동'(Jesus Movement)을 전하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모든 글과 생각나눔이 "한국교회 자정운동"의 씨앗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관호 목사 (뉴스제이 발행인)

【뉴스제이】 우리네 현대인의 일상에서 스마트폰은 친구이자, 동료를 넘어 가족처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생물(?)입니다. 어디든 같이 있고, 같이 따라다니고, 같이 행동하고, 같이 생각을 나누고, 같이 살아가는 최적의 동지입니다. 나에게도 필수품이자 인터넷신문 ‘뉴스제이’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최고의 친구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몇 달전, 소식을 끊었습니다. 혼자서 주저리 주저리 연설하듯이 이말 저말을 계속했습니다. 이 친구의 동료인 ‘빅스비’가 가끔 혼자서 몇마디 하는 것은 있었지만, 이 친구 혼자서 연설하둣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터치 해서 달래고, 전원을 꺼서 잠재우려해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화가 났는지 까맣게 얼굴을 만들더니 계속 혼자서 질문하고 답하고 난리부르스를 추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새벽에. 그래서 책상 밑에 숨겨 놓고 혼자서 놀도록 해주었습니다. 힘이 완전히 빠져 탈진하도록 해줬습니다.

그 이후부터 다른 친구인 노트북과 컴퓨터에도 이상신호가 왔습니다. 누군가 도둑놈이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컴퓨터도 초기화해 젊게 만들어 보기도 하고, 비상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책상 밑에서 혼자서 연설하다가 “로그아웃! 빠이 빠이!”하며 잠든 스마트폰 친구를 꺼내 주었습니다. 아마도 도독놈이 들어와 노트북 친구와 더불어 스마트폰 친구의 뒤통수를 내리쳐서 혼비백산했다가 너무 아팠는지 살려달라는 액션을 연설처럼, 종달새처럼 지지배배하며 울부짖었던 것입니다.

원인을 찾아보니 도둑놈이 ‘꼬끼오톡 단체방’으로 스파이를 보내 친구를 공격했든지, 아니면 이 친구가 마음씨가 좋아 ‘꼬끼오톡 단체방’에서 받은 초청에 그대로 응해 너무 우편물이 많이 쌓였는데 비워주지 않아서 그랬는지, 읽다가 그랬는지 혼자서 감당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서서 제일 먼저 스파이를 잡는 ‘스파이 퇴치엡’을 가동시키고, ‘꼬끼오톡 단체방’의 내용들을 지워 폰을 가볍게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노트북과 컴퓨터의 바이러스 검사를 해, 8개의 바이러스를 잡아냈는데, 그 중에는 스파이 바이러스도 2개나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Window10'도 다시 깔고, '초기화'하고 그랬더니 한결 나아졌습니다. 

그때 '깨달음'이 왔습니다. ‘비워야 사는구나’, ‘자기를 부인해야 사는구나’. ‘비우는 것이 스파이 도둑놈을 막는 것이구나’, ‘비운 후에 채우는 것이구나’. ‘좋은 신앙인은 잘 비우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 지는 것이구나’. “비움의 영성”에 대해 깨달았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결국 ‘작음의 영성’, ‘녹아짐의 영성’ 그리고 ‘비움의 영성’은 같이 가는 한레일에 있었습니다. 

(참고기사 : (1) 코로나시대 교회와 목사, 성도가 사는 길 ... "작은 것, 좁은 문, 즉 ‘작음의 영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2) 코로나 시대 교회와 목사, 성도가 새로워지는 길 ... “세상 속에서 ‘녹아짐의 영성’으로 스며 들어가야 한다” )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우리 신앙은 구원받은 후, 성장을 해야 하고, 성장을 위해서는 잘 양육되어야 하고, 그런 다음에 십자가의 능력으로 채워져, 세상에 나아가 ‘선한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디도서 2:11-14)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구원 받은 우리를 하나님은 ‘양육’하십니다. 하나님의 ‘양육’은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도록 하시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도록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육 방식과 목적은 ‘버림과 채움’입니다. 구원 받은 우리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양육된 후에 채워지길 원하십니다. 

성경은 먼저 버리고 다음에 채우라고 가르치십니다. 버린 후에 채워지는 것입니다. 물 한 컵에 독약이 한 방울 떨어져있다면, 거기에다가 100컵 정도의 물을 부으면 어느 정도는 희석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먹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독약 한 방울 들어간 컵의 물을 다 버린 후에 한 번 헹구고 두 번 헹구고, 여러번 헹군 후 그 컵에 물을 채우면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은 많이 채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버려졌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이 성숙되고, 성장했으며 양육되었는지 그 가치를 아는 방법은 ‘얼마나 많이 버렸느냐’를 보면 됩니다.

자기 부인의 비움을 한 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채워짐의 영성’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그 능력의 채워짐을 위해, '비움의 영성'은 구원 받은 자가 성숙되게 양육되는데 필요한 '궁극적인 목적'이 됩니다. 비워진 마음과 영혼에 하나님으로 채워질 때, 십자가로 채워질 때, 받은 은사대로 채워질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쓸 것까지도 풍성히 채우십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립보서 4:19)

‘비움의 영성’으로 양육되어진 후 ‘채워짐의 영성’으로 준비되면, 그 다음 일은 ‘선한 일’을 열심히 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 후,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 일’이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대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선한 일’을 하는 방법이며, 동시에 우리 개개인의 ‘비전’이 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로마서 12:3-8)

로마서 12장 3절로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우리가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른데, 예언과 섬김 그리고 가르침의 은사와 권위, 구제, 다스리는 것 등의 은사가 나옵니다. 그렇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종교 등 모든 영역에서 ‘비움의 영성’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세상 유혹을 이긴 '은사를 따라 양육된 제자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주님의 제자들이 각 영역에서 하나님을 주권자 왕으로 모시고 말씀대로 삶을 살아야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항상 고백하는 "나라가 임하옵시며”의 기도가 구체적으로 이뤄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한 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길의 마무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비움의 영성’입니다. ‘작음의 영성’, ‘녹아짐의 영성’ 그리고 ‘비움의 영성’으로 이어지는 ‘거룩함의 삼위일체’가 ‘선한 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종교 등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힘이며 길입니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나타날 예배에 대한 간절함의 폭발이 핵폭탄 같은 더 큰 영향력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대표 및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조지뮬러영성연구소 소장 / 대중문화 및 교회사 연구교수 / 치매가족 멘토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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