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저 높은 곳을 향해, 낮은 길 걸어갑니다”
[나관호목사 칼럼] “저 높은 곳을 향해, 낮은 길 걸어갑니다”
  • 나관호
  • 승인 2020.11.03 13: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관호 목사의 행복발전소 120]
겸손한 마음으로 ‘저 낮은 곳'으로/
목사(牧師), ‘군사, 군대’의 의미 지녀/
집사(執事), ‘일사’를, 권사(勸士)는 ‘선비사’/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뉴스제이】 요즘 ‘내 삶의 기쁨’ 중 하나는 성경통독입니다. 수년전만 해도 통독기를 통해서 듣기도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앱으로 성경을 통독하는 기쁨을 누립니다. 거의 24시간 성경통독 앱을 틀어놓고 삽니다. 잠자는 동안에도 성경이 들려오고, 집에 머물 때도 성경통독 소리가 온 집안 가득합니다. 만남이 있어 나가는 차 안에서도, 기다리는 동안 짧은 시간에도 성경이 내 삶을 감싸고 있습니다.

은퇴목사님과의 점심 약속 시간 전에도 성경을 통독했습니다. 시간을 잘못 메모해 1시간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했습니다. 몇 개월 전부터 식사를 대접해 주시겠다고 수십 차례 연락 끝에 이루어진 만남이었습니다. 내가 대접해야 되는데 꼭 목사님이 대접해야 한다는 우선권을 가진 만남을 넘어 내가 사는 신도시에 약속 장소까지 배려하신 귀한 만남이었습니다. 섬김을 받아드리는 것도 섬김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1시간 일찍 도착한 상황이라서 퓨전 한정식 식당이 오픈 되지 않았습니다. 직원은 친절하게 오픈 전까지 커피숍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역시 성경을 통독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다니엘서를 통독했습니다. 혼잡한 뉴스를 보거나 듣는 것 보다 역시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혼과 영과 골수까지 터치하시니 무의식과 심리 속으로도 영혼의 물처럼 말씀이 흘러들어가는 것이지요.   

▲ 내가 사랑하는 성경책..말씀을 실천하리라     © 나관호
▲ 내가 사랑하는 성경책..말씀을 실천하리라 © 나관호

그래서 그런지 꿈도 신령(?)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꿈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나는 그것을 “기도하라”는 마음으로 생각해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며칠 전, 꿈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높은 곳에서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나도 지인목사들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웅성거림의 이유는 “저 낮은 곳으로 뛰어 내려, 그 길로 가야 살아난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서워 뛰어 내리지 못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같은 줄로 몸을 묶고, 뛰어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래로 뛰어 내린 사람들은 전혀 다치지 않고, 오히려 환한 웃음을 지으며 어디론가 가고 있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성경통독은 계속되고 있었고, 나는 하나님 앞에 이 꿈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아하! 천국 가는 길, 승리하는 길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낮은 곳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나의 생각이요, 깨달음입니다. 천국은 하늘에 있으니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는 위치적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날 은퇴목사님이 갑자기 내가 깨닫고 있는 부분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의 대화는 하나님이 나에게 한번 더 확인도장을 찍어주시는 대화였습니다. 은퇴목사님의 태도와 마음에서도 배움을 가집니다. 겸손 없는 헌신, 돈을 따라가는 헌신, 이간질하는 헌신, 거짓 가득한 헌신, 소명 없는 헌신은 ‘높은 곳’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저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이, ‘저 높은 곳을 향해 가는 지름길’입니다. ‘나부터’ 실천할 것입니다,

식당에서도 종업원들을 갑과 을의 관계에서 바라보지 않고, 존중하고, 칭찬하고, 위로해주며 그들을 대했습니다.

“이렇게 손님들 접대하면 선생님들 식사는 언제 하세요?”
“저희들은 3시 넘어 식사합니다.”
“음식 냄새 맡으며 서빙하는 것이 힘들겠어요. 일찍 하시지...”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 재직이 계급이 되어 있습니다. 목사도 “사”자가 붙습니다. 그러나 ‘사’의 의미가 다릅니다. 목사(牧師)의 "사"자는 ‘스승, 군사, 군대, 벼슬아치 등 전문적인 기예를 닦은 사람’을 뜻하는 ‘스승 사’(師)입니다. 검사(檢事)와 판사(判事)의 "사"자는 ‘일, 직업, 재능, 관직, 벼슬 등을 말하는 직책을 말하는 ‘일 사’(事)이고, 변호사(辯護士)의 "사"자는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인 '선비 사'(士)입니다.

교회의 ‘집사’(執事)는 '일 사'(事)를 쓰고, ‘권사’(勸士)는 '선비 사'(士)를 씁니다. 장로(長老)는 ‘나이가 많고 덕이 많은 사람의 존칭’입니다. 그리고 목사(牧師)는 '칠 목'(牧)과 '‘스승 사’(師)를 쓰며, '양을 치며 가르치는 자'입니다. 그리고 '군사, 군대’의 의미를 지닌 ‘영적인 군사’의 의미입니다.

참고로 '선비 사'(士)는 회계사(會計士), 변호사(辯護士), 기능사(技能士), 변리사(辨理士) 등에 사용됩니다. 그리고 '스승 사'(師)는  - 교사(敎師), 목사(牧師), 미용사(美容師), 기사(技師), 의사(醫師)에 사용되고, '일 사'(事)는  판사(判事), 검사(檢事), 집사(執事) 등에 사용됩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직무'에 초점을 맞춘 말입니다.

성경은 겸손한 삶과 낮은 길로 가는 삶에 대해, 모순처럼 보이는 성경의 ‘역설적 가르침’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10-11)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13-14)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12:10)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사도행전 20:35b)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는 위치적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가사를 바꾸고 싶습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낮은 길 걸어갑니다”. 이 고백은 헌신의 위치, 삶의 방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 높은 곳을 행해 가는 길의 이정표는 ‘저 낮은 곳’에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적인 깨달음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집사, 안수집사, 권사, 장로가 되어가면서 그것이 섬김의 자리가 아니라, 계급이요 훈장이 되는 것을 봅니다. 교회 재직이 아랫사람의 위치명으로 전락한다는 것입니다. 일부이지만 재직들의 그런 삶을 보는 것이 현실입니다.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을 섬기기보다, 윗계급 위치에 선 것처럼, 성도들을 그렇게 대하고 설교 중에도 ‘말이 짧아’ 막말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직업이 되어, 먹고 사는 것에 초점이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더 두려운 것은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진땀나는 안타까움입니다.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대표 및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말씀치유회복사역원 원장 /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문화평론가 / 긍정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안보면 후회할 기사
카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