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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학교 교수로 재직. 국제 세미나 주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 동시 역임/
키신저 전 美 국무장관, 100세로 별세 .... 노벨 평화상 수상자
2023. 12. 01 by 케이티 나 & 에쉴리 나

【미국=뉴스제이】 케이티 나 & 에쉴리 나 통신원 = 미국 전 국무장관 헨리 A. 키신저(Henry A. Kissinger) 박사가 향년 100세로 29일 미국 코네티컷주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헨리 A. 키신저(Henry A. Kissinger)박사는 제56대 美 국무장관으로, 존경받는 미국 학자였다.

헨리 A. 키신저(Henry A. Kissinger) 박사는 제56대 美 국무장관으로, 존경받는 미국 학자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를 창설하는 데 도움을 주고 미국의 가장 복잡한 외교 정책 과제를 헤쳐나가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리처드 닉슨과 제럴드 포드) 두 대통령 하에서 세계 정세를 형성했던 키신저가 세상을 떠났다”며 “그는 미국 국제 문제와 정책 형성에 비할 데 없는 지배력을 발휘했던 외교관이지만 그를 절조와 도덕관념이 없다고 보는 비판 세력의 끊임 없는 공격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1923년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태어났다. 교사였던 부모는 유대인이었고, 그의 가족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38년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에 정착했다. 미국에 도착할 당시 그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고, 평생 강한 독일어 억양을 유지했다.

1943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키신저는 그해 미 육군에 징병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1945년에는 방첩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이후 그는 귀향장병 지원법에 따라 하버드대에 입학해 1950년 문학 학사를, 1952년과 1954년 철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워싱턴DC에서 명성을 얻기 전에 이미 하버드대 교직원으로 기반을 마련했다.

닉슨과 포드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이자 국무장관이었다.

1969년 닉슨 당시 대통령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되면서부터 그는 미국 국제관계에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어갔다. 키신저는 1969년 1월부터 1975년까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고, 1973년 9월부터는 국무장관도 겸하게 됐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동시에 지낸 사람은 지금까지도 키신저가 유일하다.

닉슨과 포드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이자 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 박사는 이들 행정부의 가장 중요하고 때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책의 저자이기도 했다.

그는 중국을 서방 세계에 개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냉전 기간 동안 긴장을 완화한 소련과의 긴장 완화의 주요 목소리였습니다. 이는 세계 질서의 신조로서 세력 균형에 대한 그의 믿음을 반영한다.

중국 마오쩌둥과 함께 한 헨리 키신저 장관
중국 마오쩌둥과 함께 한 헨리 키신저 장관

정부에서 근무하기 전에 키신저 박사는 하버드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1952년부터 1969년까지 국제 세미나를 주최했다.

키신저 박사는 수많은 상과 표창을 받았다. 1945년에 그는 공로로 미 육군으로부터 동성훈장을 받았다. 그는 1973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같은 해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갤럽 여론조사에서 그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선정했다. 그는 또한 1977년에 미국 최고의 민간 영예인 대통령 자유 메달을 받았고, 1986년에는 외국 태생 미국 지도자 10명에게 한 차례 수여된 자유 메달을 받았다.

평화, 안정, 번영, 세계 질서가 지속되는 시대의 설계자로서 그는 미국에서 유럽, 중국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의 시민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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