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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설교
【뉴스제이】 다음 설교문은 2023년 11월 26일 주일 (대강림절 첫째 주일), 대한예수교장로회 로이교회(인천 송도) 주일예배용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납되는 주일예배를 준비합시다. 11월은 '감사의 달'로 지키며, 다음 예배 자료를 나눕니다. 샬롬샬롬!!! (로이교회 / 합동). [참조 :로이교회는 합정동교회(담임 김효성 목사)와 말씀사역을 협력하는 교회로 한국교회를 위해 자료를 함께 기꺼이 공유합니다]
[읽는 예배]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다” (막14장)
2023. 11. 25 by 윤사무엘 목사

여호와는 나의 목자(47)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다” (막14장) 
                “A Woman anointes at Jesus’s head.” (Mark 14)

본문: 마가복음 14:1-72 
요절: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막 14:3)
주제: 한 여인이 힘을 다하여 주님 몸에 향유를 부어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다  
교독문: 115번(구주강림1), 예배의 부름: 시 23:1-3
찬송: 105장(통 105장), 593장(312장), 211장(346장)

일자: 2023년 11월 26일 주일 (대강림절 첫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로이교회, Loi Presbyterian Church)
  [예배시간: 새벽기도(월-금) 오전6시, 주일예배 오전 11시, 오후 12:30]
  [교회주소: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타워대로 323 (센트로드 빌딩 B동) 3307호, 우편번호: [22007] / 지하철 인천1호 국제업무지구역 1번 출구, 오른쪽에 있는 ‘연수세무서 빌딩’ 다음 건물(Office B)]

윤사무엘 목사
윤사무엘 목사

[오늘(11월 26일) 저는 고향교회인 울산 대현교회 설립 72주년 감사예배에 설교하러 다녀옵니다.[울산광역시 중구 종가5길 25, 울산초교 맞은편.] 우리교회 이번 주일 오전예배는 김두환목사님(협동목사, 인하대교수)께서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막 8:27-38), 오후예배는 오국일장로님께서 “예수님의 머리에 옥합을 붓다” (막 14:3-9) 말씀을 전하십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일(11월 27일)은 겟세마네 신학교 가을학기 종강이며, 이번 주 수요일(11월 29일)은 겟세마네 신학교 개교 35주년 감사 학술대회 및 총동문회 총회로 모입니다. 종로5가 여전도회 회관 2층 강당에서 가지며 오전 10시부터 예배, 10시반부터 강연(박호용교수, 류재이교수, 박신배교수) 및 논찬(윤사무엘교수), 점심식사(학교측에서 대접), 총동문회 모임으로 진행됩니다. 꼭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추수감사주일 다음 주일은 대림절(Advent 대강절, 강림절)로 지킵니다. 오늘은 교회력(Church Calendar)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네 주일을 대림절로 성수합니다. 교회의 달력은 대림절(강림절 Advent)로 시작하여 성탄절(Christmas), 주현절(Epiphany), 사순절(Lent), 부활절(Day of Resurrection), 성령[신]강림절(Pentecost), 맥추감사절(Spring Thanksgiving Day), 추수감사절(Fall Thanksgiving Day)로 일 년을 지냅니다. 대림절(待臨節 Advent)은 ‘강림절’(降臨節) 또는 ‘대강절’(待降節)이라고도 하는데, 그 뜻은 ‘예수님의 초림인 성탄절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영어로 Advent인데 뜻은 “나타나심 Appearance, 오심 Coming”입니다. 성탄절 앞에 있는 네 번의 주일 동안 지킵니다(2020년 11월 29일 ~ 12월 24일).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아기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성탄=성육신)을 기다리는 것과 동시에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러기에 대림절은 이중적 기다림의 절기(Double Waiting of the Lord season)입니다. 대림절의 예전 색깔은 표현하자면 보라색(purple)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교회강단의 휘장이나 설교자의 스톨 색깔도 보라색을 표하게 됩니다. 보라색은 주님을 왕으로 기다리는 강림절과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사순절에 사용합니다.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색깔이라고 합니다. 많은 교회에서는 4개의 대림절 초(the Advent Candles)를 켜는데, 켜는 순서가 있습니다.

① 오늘 첫 번째 초는 보라색 초(purple candle)를 켜는데, 기다림과 소망의 촛불로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촛불입니다. 

② 그리고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은 진보라색 촛불 혹은 옅은 보라 촛불 (two purple candles)을 켜는데, 이 의미는 회개와 평화의 촛불로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도록 서로 다투며 싸우고 분쟁하며 시기했던 우리의 죄악된 모습을 회개하며 평화의 왕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촛불입니다. 

③ 대림절 세 번째 주일은 두 보라색 촛불과 함께 분홍색 촛불(one pink candle)을 켜는데, 이 의미는 사랑과 나눔, 기쁨의 촛불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주위를 돌아보며 어렵고 굶주리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며, 서로 기쁨으로 예수님을 기다리는 촛불입니다. 

④ 마지막 대림절 네 번째 주일은 흰색의 촛불(one white candle)을 켭니다. 이 의미는 만남과 화해, 사랑의 촛불인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과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과 죄 많은 모든 인류와의 만남과 화해, 회복과 그리고 사랑을 의미하는 촛불입니다. 

교회에 따라서 4개 촛대를 둥글게 하고 가운데 흰색으로 된 큰 초(Christmas Candle)를 두어 성탄절 이브 혹 성탄절에 켜기도 합니다. 그래서 5개초로 장식합니다. 강림절(대림절)기간 동안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인 예수님의 탄생을 소망 중에 기다리며 이 기쁜 소식을 만방에 전하는 이 시대의 목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마가복음 14장을 강해합니다. 마지막 주간(Last Week)에 1) 종려주일 2) 월요일은 성전을 청결하게 하심, 무화과나무가 말랐음 3) 화요일 오전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심(변증법 질문과 답변), 오후에는 올리브산에서 종말교훈 하심 4) 수요일은 한 여인이 주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음 5) 목요일은 최후의 만찬, 겟세마네 기도 6) 금요일은 체포, 심문, 재판, 십자가 지심, 속죄제물로 돌아가심 7) 무덤에서 안식하심으로 구약의 모든 안식일을 완성하심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공생애로서의 마지막 주간을 거룩한 주간(Holy Week)이라고 부릅니다. 
 
1.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찾다 The Plot to kill Jesus (막 14:1-2, 마 26:1-5; 눅 22:1-2; 요 11:45-53)
(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1-2절. 마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공생애 속도가 빠르지만, 예수님의 수난과 관련된 막14, 15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서와 누가복음서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의 마지막을 담고 있는 이 부분의 앞뒤에 여러 교훈과 비유들을 많이 담고 있는, 반면 마가복음서는 바로 마지막 주간 사건이 빠르게 전개되어 갑니다. 이런 점에서 마가의 기록은 속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절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고 밝힘으로 수요일 아침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마가, 누가복음에는 "유월절과 무교절"이 같이 나오는데 마태복음에는 유월절만 나온다. 이 두 절기는 연속되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된 것입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유월절, 토요일 저녁부터 무교절, 주일저녁부터 초실절입니다.

유월절(토 파스카 τὸ πάσχα)은 유대력 첫 달인 니산월 14일 오전에는 집 안에서 누룩을 찾아 없애고 오후에는 양을 잡습니다. 그리고 이날 저녁부터 15일 이른 아침까지 한밤중 사이 유월절기로 지냅니다(출12:6-20, 출48, 민9:2-14, 신16:1 참고). 유월절 바로 다음날은 무교절(타 아주마)로 15일부터 21일까지 지속됩니다. 무교절은 τὰ ἄζυμα(타 아주마, 출12:15-20, 23:15, 34:18, 신16:1-8) 누룩을 넣지 않는 비스켓처럼 생긴 빵(unleavened bread)입니다. 유월절은 예루살렘에서 24km 이내에 있는 유대인 성인남자는 의무적으로 예루살렘에 참가해야 하는 오순절, 초막절과 함께 제일 중요한 절기로 지내는 삼대절기입니다. 이틀이 지나면은 유월절 이틀 전에 니산월(4월) 13일(수요일)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월절의 축제기간 동안에 예수님을 처형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사건들을 보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다 Jesus Anointed at Bethany.(막 14:3-9, 마 26:6-13; 요 12:1-8)
(3)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기대어 누워(유대인이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마26:8, 요12:5)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녀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녀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막16:1, 요19:40)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녀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3절. 베다니는 나사로가 살고 있던 마을인데, 이곳에 나환자 였다가 치유함을 받은 시몬의 집에서 식사초대 받아 식사하실 때였습니다. 불청객인 한 여인이 들어와 매우 값진 옥합(ἀλάβαστρον, alabastros)를 가지고 와서 그 속에 담긴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나드(νάρδου)는 히말리야 산맥의 "보탄"과 "네팔의 산중"에서 나는 감송향의 뿌리에서 짜서 나오는 향유로 이스라엘에서 쉽게 구하기 어려운 매우 값지고 귀한 향유입니다.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물려져 가보처럼 취급되어 보통 귀인들이나, 값이 비싸 부자 중에 일부만 가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옥합은 투명한 석고로 된 매우 귀품 있는 흰색 단지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부으니 옥합은 오래 동안 보관되었기 때문에 그 입구가 막혀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옥합은 향유가 사용될 때를 위해서 있었기 때문에 깨뜨린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 일부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전부 사용하기 위해서 깨뜨린 것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잔칫집에서 귀한 손님에게 기름을 부어 주거나(시23:5, 시141:5, 눅7:46) 제사장이나 왕의 취임식 때도 기름을 부었습니다(삼상10:1, 왕하9:6). 일반적으로 이 비싼 옥합을 깨뜨리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이유를 자세히, 여인이나 예수님께 묻지도 않고 성급하게 자신들의 마음대로 해석하고 분을 낸 제자들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란 마태복음 26:8에서는 제자들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마도 마태는 제자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동의한 것으로 보고, 마가는 특정한 제자만, 가롯유다가 더 화를 많이(요12:4) 내면서 그 가치를 금방 계산해 내었습니다. 그 가치는 삼백 데나리온이었습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으므로 오늘날(2023년) 약15만원으로 계산하면 4,500만원이 됩니다.

5-6절, “책망하는지라”(에네브리몬토)는 어근 단어인 “엠브리마오마이”의 뜻은 ‘씩씩거리다’에서 유래합니다. 감정이 섞인 말로 호통을 치면서 꾸짖듯이 말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최선을 다했지만 제자들의 이런 꾸지람에 상당히 당황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녀를 괴롭게 하느냐? 그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7절. 가난한 자들은 이 땅에 언제든지 있습니다(신15:11). 그러므로 도울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도울 수 있지만 십자가를 지셔야 할 예수님께는 그 시간이 촉박해 오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만 있을 뿐입니다.

8절. “힘을 다하여”는 최선을 다하여 "완수하다, 이루다"의 뜻입니다.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는 “내 몸에 향유를 발라 내 장례를 준비하였느니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9절. 이런 연유로 예수님께서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그녀를 기념하리라(in memory of her) 하였습니다. 땅끝까지 선교하면서 가는 곳마다 주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일은 주님께서 내일 모레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미리 장례식을 준비한 일이었음을 기억하고 주님 살아계실 때 옥합을 깨어 최고의 기름을 모두 드립시다. 

예수님 영화 장면
예수님 영화 장면

3, 유다가 배반하다 Judas to Betray Jesus. (막 14:10-마 26:14-16; 눅 22:3-6)
(10)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님을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10-11절. 가룟유다는 재정을 맡을 만큼 주님께 가장 신임을 받은 제자였습니다. ‘가룟’이란 말은 ‘도시’라는 뜻으로 유다만큼 도시 출신의 사람으로 학벌도 있고 상식도 많이 알고 믿음직스러운 청지기였는데 그가 주님을 배반한 일은 너무도 충격적입니다. 11절에 대제사장들이 돈을 줄 약속을 한 것으로 보아 탐욕에 의해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 준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26:15에 이 돈의 액수가 "은 삼십"으로 스가랴 11:12의 성취로 봅니다. 출애굽기 21:32에는 "은 삼십 세겔"은 종이 죽임을 당했을 때 치러야 하는 액수였는데 성인 노예의 가격입니다. 요셉은 팔릴 때 20세겔이었습니다.(17세, 창 37:28). 그분은 메시야요 왕이셨지만 우리의 종 됨을 대신해서 그 몸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4.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시다 The Passover with the Disciples (막 14:12-21, 마 26:17-25; 눅 22:7-14, 21-23; 요 13:21-30)
(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짜오되 “저희들이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3) 예수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5)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연회장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17)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18)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19)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20)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21)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2-16절. 유월절을 예비한 이 집은 정확히 누구의 집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예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예약된 집인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에서 보니 이 댁의 주인인 마가(본서를 기록함)의 어머니가 주님을 선생님(디다스칼로스, ὁ διδάσκαλος)으로 부를 정도로 잘 아는 사이였거나 제자들도 함께 잘 아는 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5절에 보니 이 집의 구조도 미리 설명하시는데 마가의 집의 윗층은 연회장처럼 넓은 홀이 있어 120명은 충분히 들어갈 곳입니다. 우리말로 ‘넓은 다락방 a large upper room’이라 번역함으로 다락방 개념을 가지기 쉬운데 이를 연회장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메가 에스트로메노스 μέγα ἐστρωμένοs). 

17-21절. 예수님께서는 12제자 중에 하나가 배반할 것을 미리 아십니다. 그리고 구약의 시편41:9 "나의 신뢰하는바 내 빵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를 인용하시면서 18절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요한이 좀더 자세히 유다가 어떻게 예수님께 지적을 받았는지 상세히 전합니다. 이것은 요한이 예수께 제일 가까운 곳에 앉아서 그의 말씀을 충분히 들었기 때문입니다(요13:26).

5. 마지막 만찬 Institution of the Lord’s Supper (막 14:22-26, 마 26:26-30; 눅 22:15-20; 고전 11:23-25)
(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 먹으라 take and eat.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올리브[감람]산으로 가니라.

22-23절.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가진 시간은 목요일입니다. 예수님께 십자가의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평소에 매일 저녁식사 후 가진 성경공부 내지 신앙상담 시간인 키두쉬(Kiddush, 랍비와 제자들 사이의 식사를 겸한 모임)를 가졌습니다. 절기 식사를 마친 후 주님은 따로 빵과 포도주를 분배하시면서 성찬식을 제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분이었기에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성찬식 예배가 계속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군병들이 예수님의 다리를 본의 아니게 부러뜨리지 않은 것을 해석할 때 이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요19:36, 출12:46). 예수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성찬식 빵과 잔을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요6:48 이하). 당시에 이 말씀은 너무 이해되지 않는 어려운 말씀이어서 거침돌이 되었습니다(요6:60, 61, 66).

24-25절. “많은 사람을 위하여”는 이사야 53:12에 있는 메시야의 사역과 직책을 말합니다. 주님의 피(보혈, 토 하이마 무 τὸ αἷμά μου)를 “흘리는 바” ἐκχυννόμενον(에크쿤노메논)은 “지금 막 흘리려 하고 있는”이라고 번역해도 됩니 다.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시내산에서 행했던 것처럼(출24:8)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을 맺는 것을 말합니다. “새 언약” καινῆς διαθήκης(카이네스 디아테케스)는 “새 계약, 약속, 증거, 유언”을 뜻합니다. 사도행전 3:25에서 언약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아브라함)에 새운 언약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적고 있습니다(히7:22, 히8:6, 히8:8, 히9:4, 히9:15, 히9:20, 히10:29, 히12:24, 히13:20 참고). 

예수님께서는 신학적인 의미에서 유월절과는 다른 새로운 개념을 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독창적인 것이기에 “새로운” 것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것으로” kainon(카이논)는 질적인 새것을 의미하는 것이며(벧후3:13, 요19:41, 엡2:15, 엡4:24, 계2:17, 계3:12, 계21:1) 시간적인 새것을 의미하는 nevos(네오스)와 다릅니다(마9:17, 막2:22, 눅5:37, 고전5:7, 골3:10).

26절. 찬미하고 유월절 식사에서 마지막(네 번째) 잔을 든 후에 부르는 할렐시편의 후반부(시115-118편)를 부른 것을 말합니다. 힐렐 찬송을 하며 올리브산으로 이동합니다.

6.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예언하시다 Jesus Foretells Peter’s Denial.(막 14:27-, 마 26:31-35; 눅 22:31-34; 요 13:36-38) 
(2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나로 말미암아 실족하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슥13:7).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막16:7)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실족할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마26:33, 눅22:33) (30)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제가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들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27-29절. 주님께서는 스가랴 13:7을 인용하시면서 제자들이 주님께서 체포되실 때 모두 주님을 떠나리라고 예고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갈릴리에서 만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갈릴리는 주님과 제자들의 만남과 사역의 센터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합니다.

30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는”는 말이 마가복음에서만 유일하게 나타납니다. 이로 보아 마가는 베드로에게 직접 이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것입니다.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실수로 한번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부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얼마 있지 않아 있을 일에 대해서 장담하고 나섰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까지도 예언하고 계십니다.

31절.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제가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베드로의 공언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장담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기록에서도 이러한 발언은 감추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태(마26:35)와 마가는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고 추가하였습니다. 베드로가 한 말에 모든 제자들이 동의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7.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다 Jesus Prays in Gethsemane.(막 14:32-42, 마 26:36-46; 눅 22:39-46)
(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제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저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롬8:15, 갈4:6) (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32-33절. 겟세마네 동산은 예루살렘 성전 동쪽에 기드론 계곡 사이로 마주보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올리브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올리브 기름을 짜서 첫 기름은 성전 촛불(Menorah)을 밝히며, 두 번째 기름으로 왕, 제사장, 선지자[예언자, 대언자]를 세울 때 안수기름으로 사용하고, 환우들에게 안수기도 용으로 사용하며, 세 번째 기름으로 먹고, 화장하며, 네 번째 기름으로 윤활유로 사용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의 외진 곳에서 늘 기도하셨습니다.

34절.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는데 이 말씀은 시편 42:5, 11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이곳에 사용된 동사 깨어 있으라 γρηγορεῖτε(그레고레이테)는 막 13: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와 같은 맥락입니다.

35절.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당시의 보통 기도하는 자세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벌리고 기도하는 자세였습니다(눅18:11, 딤전2:8). 땅에 엎드리는 자세는 영적인 고통을 시사하고 있습니다(민16:22).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으면" 또는 "될 수 있는 데로" δυνατά(두나타)이라는 단어를 35절과 36절에서 반복해서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잔을 마시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고뇌를 그렇게 표현한 방법이지 실제로 그렇게 해 달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바로 이어지는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에서 더욱 예수님의 진정한 뜻은 잔을 마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잔을 마실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몇 번을 정확하게 이 고난이 있을 것인가를 예언하시고 이미 충분히 알고 계셨고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37-40절. “시몬아 네가 자느냐?” 졸고 있는 제자들에게 무거운 예수님의 책망이 이어집니다. 특히 조금 전까지 주님의 마시는 잔을 자신도 함께 마시겠다고 큰소리친 베드로에게 떨어졌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이름을 "베드로(반석)"(마3:16)이라고 부르지 아니하시고 원래 이름인 "시몬"이라고 부르십니다. 그가 아직 "베드로"라고 불려질만한 자격이 없음을 의미하며 아직도 세상 속의 사람 "시몬"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있을 수 없더냐 οὐκ ἴσχυσας(우크 이스퀴사스)는 "할 수 없느냐?"입니다. 이 말씀은 변화산상 아래서 무능한 제자들이 병든 소년을 고치지 못하고 쩔쩔맬 때 사용하신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막9:18).그리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권면하시고 다시 기도하시는 처소로 돌아가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이 닥칩니다.

41-42절. “세 번째 오사”는 예수님께서 시험을 세 번 받으신 것처럼(마4:1-11) 종결을 의미하십니다. 베드로는 세 번씩 주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이다 때가 왔도다고 하십니다. 저 멀리 횃불이 보이고 주님을 체포할 예루살렘 성전을 호위하던 군병들이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8. 잡히시다 Betrayal and Arrest of Jesus.(막 14:43-50, 마 26:47-56; 눅 22:47-53; 요 18:2-12)
(43)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    예수님을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분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그가 와서 곧 예수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   그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눅22:52)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사53:7, 단9:26) (50)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니라 (요16:32).

43-44절. 가룟유다가 맨 앞에서서 예수님의 기도처소에 도착하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군인들이 뒤를 따랐습니다. 예수께서 잡히실 때의 직접 검거에 나선 주동자들입니다. 이들 군인들은 잘 훈련된 예루살렘성전을 경비하는 종교경찰관들로 덩치가 큰 사람들로 이루어졌으며 이들은 검과 몽치를 가지고 주님을 체포하러 온 것입니다. 가롯유다는 짜여진 각본대로 예수님께 입을 맞추니(선생님에게는 인사로 입을 맞춘다) 그들이 주님을 체포했습니다.

46-49절. 이에 한 제자가 대제사장의 하인의 귀를 칼로 배어버렸습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당당하십니다. 왜 강도처럼 체포하느냐고 물으신 뒤 너희들이 성전에서 나를 체포하지 않음은 성경을 이루려 함이라고 하십니다(사 53:7).

50절.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합니다. 각자 두려움에 사방으로 흩어졌을 것입니다. 

9. 한 청년이 벗은 몸으로 도망하다 A Young Man Flees Naked.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51절. 한 청년 τις νεανίσκος(티스 네아니스코스) 즉 “십대를 의미하는 청년”인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루살렘에 사는 마가 요한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바로 이 마가복음을 기록한 베드로의 제자이며 바나바의 생질(조카)입니다. 그의 아버지 집에서 만찬을 한 것으로 보았고(막14:14), 그에 그 장소가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되었습니다(행 2:1-4, 12:12).
52절.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아마도 급한 대로 살짝 위장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따라가다 붙잡혔으나 도망갔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멀리 도망갔지만 이 청년은 그래도 도망가지 않고 주님 가까이 따라가다가 체포될 때 옷을 벗은채로 도망갔습니다.

10. 공회 앞에 서시다 Jesus Before the Council. (막 14:53-65, 마 26:57-68; 눅 22:54-55, 63-71; 요 18:13-14, 19-24)
(53) 그들이 예수님을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54) 베드로가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빛]을 쬐더라 (55)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그분을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단6:4, 벧전3:16) (56) 이는 예수님을 쳐서 거짓 증언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님을 쳐서 거짓 증언하여 이르되 (시35:11) (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요2:19) 

(59) 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 (60)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님에게 물어 이르되 “그대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당신을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마26:62) (61)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당신이 찬송 받을 분의 아들 그리스도냐?” (62)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3)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64)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여러분들이 들었도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님을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레24:16) (65) 어떤 사람은 그분에게 침을 뱉으며 그분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대언자[예언자,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53절. 금요일 이른 아침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였습니다. 
이 모임을 산헤드린 공회(Council of Sahnedrin)이라 부르는데 이 공회는 유대교에서 최고의 법정이었으며 사형까지 의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사형의 최고 선고와 처형은 로마 총독의 권한에 있습니다.

54-57절. 갑자기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에 베드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음에는 도망갔지만 아마도 예수님의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멀찌감치 따라왔다가 가야바 대제사장 관저안으로 들어와 불을 쬐는 이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심의가 열리고 있는 대제사장의 집안 뜰까지 들어와서 보고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55절-65절까지 그들의 심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증거들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찾는 증거는 사형에 해당하는 증거입니다. 

58절. 여러 증언들이 있지만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들이 결정적인 증거를 찾은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의 성전을 파괴한다는 내용과 또 그것을 사흘에 짖겠다는 말은 이들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은 사형까지 해당할 수 있는 상당한 내용일 수 있습니다. 

59-60절. 그러나 이것도 서로 의견일치가 되지 않아 죄목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 대제사장이 예수께 이 죄목이 합당하냐고 질문합니다. 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대답지 아니하시고 묵비권을 행사하십니다. 아마도 이 말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한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쓸데없는 빌미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말하지 않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대제사장은 이어서 “당신이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묻습니다.

62절. 주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대제사장은 옷을 찢고 더 이상의 증인을 요구하리요 하며 예수님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시인했기 때문에 이것은 "신성 모독 죄abomination"그것만으로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케 하거나 하나님과 같은 신분으로 말하면 신성 모독죄에 해당하여 사형입니다. 이들은 예수님 체포할 때 아무 죄목도 미리 결정하지 못하고 미리 예수님을 체포하고 나중에 죄목을 억지로 찾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산헤드린의 재판 모든 절차가 불법이었습니다.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11. 베드로가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하다 Peter Denies Jesus. (막 14:66-72, 마 26:69-75; 눅 22:56-62; 요 18:15-18, 25-27)
(66) 베드로는 아랫 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67)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당신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자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어떤 사본에는, ‘마침 닭이 울더라’가 있음] (69)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70)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당신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삿12:6) (71)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여러분들이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마26:34).

66-68절. 베드로는 주님께서 감금당하신 가야바 대제사장 관저의 뜰에 도착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부당한 판결(53-65절)을 그는 다 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여러 가지로 큰 소리를 쳤지만 예수님의 예언의 수순을 밟고 있었습니다.

69절. 한 여종(헤 파이디스케 ἡ παιδίσκη)는 ‘여자 노예, 하녀’로 요한복음에는 ‘문 지키는 여종’(요18:17)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여종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예수님의 당이라고 말합니다.

70-71절. 이에 베드로는 즉각 “부인하였습니다.” ἠρνεῖτο(에르네이트)는 문법적으로 미완료 시제로서 베드로의 지속적인 것임을 시사합니다. 지속적으로 이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조금 후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누가복음에는 "한 시쯤 있다가"(눅22:59)로 기록한 것으로 보아 바로 이어서라기 보다는 약간의 시간이 흘렀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그가 순간적인 반복의 부인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부인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72절. 닭이 두 번 울어 새벽이 되었다는 신호가 들렸습니다. 이때에 베드로는 기억되어 생각하고 ἐπιβαλὼν(에피발론) 즉 ‘생각하기 시작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마가는 단순히 "울더라"로 기록했지만, 마태와 누가는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니라 wept bitterly"고 했습니다. 철저한 회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가복음 14장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이튿 전에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향유를 부어 주님의 장례식을 미리 예비한 헌신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만찬식을 제정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결단의 기도 후 체포되시며, 성금요일 새벽에 산헤드린 법정에서 사형을 받으신 일을 읽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쓴잔에 함께 마실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까?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주님께 드릴 준비가 되어 있나요?

[오늘의 기도]
주님께서 성육신 하신 초림을 기억하며 대림절을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세례요한처럼 우리도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준비를 하게 하옵소서. 주님께 향유를 드린 여인처럼 저희들도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값진 것으로 헌신하게 하옵소서. 저희들이 소중하게 생각한 옥합인 교만, 자존심, 고정관념, 욕심을 다 주님을 위해 깨뜨리게 하시며 가장 값진 사랑, 헌신, 충성, 진실을 저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는 주님께 바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공부를 위한 질문들]
1. 마지막 주간(Last Week, Holy Week)에 일어난 일들을 복습해 보자.
2. 한 여인이 주님께 향유를 부은 사건들을 비교해 보자(마 26:6-13, 막 14:3-9, 눅 7:37-50, 요 12:1-8). 장소, 향유붓는 곳, 동기와 목적 등
3. 값비싼 향유를 허비한다고 생각한 제자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은?(7-9절)
4.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는 과정과 빵과 잔의 의미는? (12-25절)
5.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의 예언과 성취는? (27-31, 66-72절)
6. 겟세마네의 기도에 대해 말해보자 (36절)
7. 예수님의 체포와 심문에 대해 말해보자(43-6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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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감사와 대강절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매일 주님의 겸손과 온유, 순종을 배우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11월27일(월) 찬 105장(통 105장) 민 12 모세의 온유, 처벌받은 미리암
    28일(화) 찬 94장 (통 102장) 민 13 가나안 땅 정탐
    29일(수) 찬 92장  (통 97장) 민 14 백성의 원망, 모세의 중보기도
    30일(목) 찬 93장  (통 93장) 민 15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
12월 1일(금) 찬 95장  (통 82장) 민 16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
     2일(토) 찬 96장  (통 94장) 민 17 아론의 싹난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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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 겟세마네TV & 로이교회의 예약된 Zoom 회의에 귀하를 초대합니다.>
https://us06web.zoom.us/j/9991131127?pwd=YVFycnhvOEhNSmpiWFZJUTA0N0Rhdz09
회의 ID: 99 9113 1127
암호: 12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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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신학교 Gethsemane Mission Seminary
◉ 2023년도 가을학기 종강(2023년 11월 27일 월 오전 10:00 ~ 오후 5:30)
***개교 35주년 학술대회 (2023년 11월 29일 수 오전 10시 ~ 오후 3시) 
    여전도회관(종로5가) 2층 [강사: 윤사무엘, 박호용, 류재이, 박신배]
***신앙 수련회 (2023년 12월 3일 주일 저녁 김포공항에서 제주도로 출발 – 12월 5일 화 저녁 제주에서 출발) 제주도 첫 교회들 탐방, 신앙 수련. 참가 신청은 원우회 총무(이수경전도사, 010-9420-4860에게 하시면 됩니다(25만원)  
◉ 2023년 11월 27일 월 수업(가을학기 13주차)
   1교시(에스겔), 종강예배, 점심 및 친교, 2교시(설교학), 
   3교시(여호와의 절기, 테류마), 4교시(성경변증, 원어성경강독)
◉장소: 본교 채플실, 네이버에 “겟세마네신학교” 검색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향기나는 나무교회]
◉연락처: 032-832-0691, 010-9113-1127
[본 신학교의 신앙노선은 성경이며, 청교도의 신앙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바탕을 두며, 세계 선교를 힘쓰며, 재림하실 예수님을 준비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며,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 진리, 생명임을 믿고, 말씀과 기도로 성화생활하며 구원의 서정을 이루는데 힘쓴다]
◉등록금납부 은행구좌번호: 농협 3019113112731 겟세마네신학교 한국캠퍼스
               문의: 032-832-0691, 010-9113-1127           
◉로이교회 후원계좌: 농협 302 0280 1002 11 YunSam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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