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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와 세 살 때 처음 만나 ... 96년 동안 함께/ 치매를 앓아 건강악화 .... 향년 96세로 천국으로/
美 지미 카터 대통령 영부인, 로잘린 카터 여사 별세
2023. 11. 21 by 케이티 나 & 에쉴리 나

【미국=뉴스제이】 케이티 나 & 에쉴리 나 통신원 =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의 아내인 정신건강, 간병 및 여성권리의 열정적인 옹호자였던 영부인 로잘린 카터(Rosalyn Carter) 여사가 11월 19일 일요일 오후 2시 10분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스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들 앞에서 평화롭게 별세했다. 향년 9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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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와 로잘린 카터는 서로에게 "나는 당신을 최선을 다해 사랑합니다.“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로잘린 카터 여사는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이자 ‘200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지미 카터(Jimmy Carter)와 77년 동안 결혼생활을 해왔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현재 99세다. [참고기사지미 카터 전 대통령, “주님 만날 준비” ]

‘카터센터’(The Carter Center)에 따르면, 96세인 로잘린 카터 여사는 건강 악화와 치매를 앓고 있었다.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이자 ‘200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지미 카터(Jimmy Carter)와 77년 동안 결혼생활을 해왔고 지미 카터 대통령은 현재 99세다. 카터 부부는 4명의 자녀, 11명의 손주, 15명의 증손주를 두었습니다. 그녀는 두 번째로 장수한 영부인이고, 지미 카터는 99세로 미국에서 가장 장수한 대통령이다.

영부인 로잘린 카터 여사가 19일,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스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들 앞에서 평화롭게 별세했다<br>
영부인 로잘린 카터 여사가 19일,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스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들 앞에서 평화롭게 별세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로잘린은 제가 성취한 모든 일에 있어서 동등한 동반자였다. 내가 필요할 때 현명한 지도와 격려를 해 주었다. 로잘린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고 지원한다는 것을 항상 알았다.”라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잭(Jack), 칩(Chip), 제프(Jeff), 에이미(Amy) 등 자녀와 11명의 손주, 14명의 증손주가 있다. 2015년 손자 제러미(제프 카터의 아들)가 사망했다.

아들 칩 카터(Chip Carter)는 “우리 어머니는 사랑이 많은 어머니이자 특별한 영부인이셨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훌륭한 인도주의자이셨다”고 말했다. 

지미 카터와 로잘린 카터는 서로에게 "나는 당신을 최선을 다해 사랑합니다.“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독실한 침례교인인 로잘린 카터는 솔직한 활동가였다. 

“어머니의 봉사와 연민의 삶은 모든 미국인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오늘날 더 나은 정신 건강 관리를 받고 간병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를 몹시 그리워할 것입니다.”

지미 카터와 로잘린 카터는 서로에게 "나는 당신을 최선을 다해 사랑합니다.“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독실한 침례교인인 로잘린 카터는 솔직한 활동가였다. 

로잘린 카터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형제자매들의 양육을 도왔다. 로잘린 여사와 지미 카터 대통령는 평생동안 서로를 알고 있었으며, 로잘린이 신생아이고 지미가 세 살이었을 때 처음 만났다. 그들은 이웃이었고, 간호사인 지미의 어머니는 로잘린이 태어나는 것을 도왔다.

카터 부부는 조지아 농장 생활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등 미국다운 삶을 살았다. 

지미 카터가 미 해군에서 복무했고, 조지아 농장 생활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등 미국다운 삶을 살았다. 카터 부부는 워싱턴 DC에서 대통령과 영부인으로서 살아갈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워싱턴 기자들에 의해 '강철 목련'이라는 별명을 얻은 로잘린은 정치적으로 기민했고 남편의 대통령직에 귀중한 자산이었다. AP통신은 로잘린의 인생 사건을 타임라인에서 그녀가 대선 캠페인에 혁명을 일으킨 '땅콩 여단'을 어떻게 이끌었는지 설명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그녀가 마지막으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플레인스 땅콩 페스티벌 퍼레이드’였다.

로잘린 카터 여사는 대통령 취임식 날, 장갑 리무진을 타는 대신 펜실베이니아 거리를 걷는 등 의지가 강했다. 

로잘린은 남편의 삶과 국가를 대표하는 중요한 목소리를 냈다. 그녀는 미국과 전 세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로잘린 여사의 삶의 방식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증거였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나는 그녀가 미국 국민의 의식과 태도를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레이건 대통령 부부(오른쪽)을 만나고 있는 지미 카터 대통령 부부(왼쪽)

1999년에 로잘린 카터 여사는 ‘대통령 자유 메달’을 수상했다. CBN 뉴스에 따르면, 로잘린 여사는 자신의 대표 정책으로 ‘정신 건강과 노인’을 선택했고, ‘ABC뉴스’에 이렇게 말했다. 

“정신 질환을 신체 질환만큼 솔직하게 고려할 수 있다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공개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도움을 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로잘린 여사는 ‘대통령 정신건강 위원회’의 명예의장으로 1980년 ‘정신건강 시스템법’ 통과의 길을 열었다. 워싱턴 생활을 마친 후, 애틀랜타에 ‘카터센터’를 설립했다. 그녀는 자신이 옹호하는 대의명분을 다루는 두 권의 책, 『자신이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도움』과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 돕기』를 썼다.

'헤비타트' 봉사중인 로잘린 여사

로잘린 카터 여사의 삶은 계속해서 정치계와 각계각층의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고 격려할 것이다. 그녀가 생애 초기에 고난과 축복을 통해 쌓아온 지혜는 인류, 특히 마지막 날을 사는 사람들을 돌보는 열정의 원동력인 것 같다.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그녀의 노력과 충실한 봉사 생활의 영향은 계속해서 미국과 세계에 파급될 것이다.

추모행사와 장례식 일정은 언론에 배포되고 www.rosalynncartertribute.org 에 게시된다. 이 ‘추모 웹사이트’에는 가족의 공식 온라인 조문, 책과 추모 선물 기회는 물론 공식 약력과 다운로드 가능한 사진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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