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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설교
【뉴스제이】 다음 설교문은 2023년 10월 15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스무번째 주일), 대한예수교장로회 로이교회(인천 송도) 주일예배용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납되는 주일예배를 준비합시다. 10월은 '게혁의 달'로 지키며, 다음 예배 자료를 나눕니다. 샬롬샬롬!!! (로이교회 / 합동). [참조 :로이교회는 합정동교회(담임 김효성 목사)와 말씀사역을 협력하는 교회로 한국교회를 위해 자료를 함께 기꺼이 공유합니다]
[영상&읽는 예배] “예수님의 칠병이어 기적” (막8장) 
2023. 10. 12 by 윤사무엘 목사

여호와는 나의 목자(41) “예수님의 칠병이어 기적” (막8장) 
                       “Jesus’ Feeding of Seven Thousands Miracle”
(Mark 8)

본문: 마가복음 8:1-38
요절: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그분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매 (막 8:29)
주제: 예수님은 그리스도(메시야)이시라는 믿음의 반석위에 굳게 서자
교독문: 12번(시편19편), 예배의 부름: 갈 2:20-21
찬송: 249장(통 246장), 85장(85장), 96장(94장)

일자: 2023년 10월 15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스무번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로이교회, Loi Presbyterian Church)
  [예배시간: 매일새벽기도(월-금) 오전6시, 주일예배 오전 11시, 오후 1시]
  [교회주소: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타워대로 323 (송도동 송도센트로드 B동)
            33층 7호, 우편번호: 22007, 
   지하철 인천1호 국제업무지구역 2번출구, 오른쪽에 있는 연수세무서 빌딩
   다음 건물(Office B)]

독서의 계절 가을이 깊어만 갑니다. 고 김현승 시인(1913-1975년, 미국의 김선배 목사님의 부친)의 “가을의 기도”가 호남신학대학교 정문 시비에 적혀 있습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구비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윤사무엘 목사

이번 가을은 기도와 사랑과 성숙과 평화의 계절이 되기 원합니다. 지난주 토요일(2023년 10월 7일)은 초막절(Sukkot) 절기의 마지막 날로 유대인에게는 안식일 Shabbat)이었습니다,

이날 새벽 미명(6시)에 가자(Gaza, 이집트와 이스라엘 국경지역, 삼손이 다곤신전 기둥을 넘어뜨려 3000명 죽은 곳)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슬람의 저항 조직인 하마스(Hamas)가 전날 저녁에 가진 유대인 야간 음악회 축제 현장에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급습해서 총기 난사하여 약 260명 사망을 하고, 이스라엘을 향하여 20분 동안 5,000여 발에 해당하는 로켓으로 공격하여 이스라엘의 강력한 방어체제인 아이언돔(Iron Dome 전천후 이동식 방공시스템, 키페트 바르젤 כִּפַּת בַּרְזֶל)을 무력화 시켰으며, 현장에서 150명 인질(외국인, 전가족, 노인, 여성, 아동 포함)을 잡았으며, 보복(retaliation/ revenge)으로 이스라엘은 가자의 팔레스타인 타워를 공격하고, 무장단체의 거점인 이슬람 사원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에 수감되고 있는 하마스계 군인들이 5000명 정도라고 합니다. 포로의 맞교환 제의가 예상됩니다. 현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역이 전시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향해 1300여발 로켓을 발사했으며, 레바논의 헤즈볼라(시아파 이슬람 계열의 정당, 하마스와 교류)와 교전하며, 시리아와도 교전하기 사작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현재(10월 12일 목)까지 파악된 사망자 수가 2100명(하마스 전투요원 1500명, 이스라엘 군인들 수백명, 민간인 피해 수백명), 부상자는 1만 명에 육박하나 이 숫자는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마스는 가자 지구 인근 한 키부츠를 공격하여 100여명의 아동들과 여성들을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1987년 제1차 인티파다(Intipada, 1987-2014년에 일어난 난민촌에 대한 군사작전)가 일어난 때 조직된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수니파 이슬람주의 및 민족주의 정당이자 준군사조직으로,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무장 투쟁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마스의 침공이 몇차례 있어 왔지만 이번 만큼 대규모 공격과 많은 인질을 체포한 경우는 처음이라, 모두 당황하며 공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더 이상 사상자가 나오지 않도록 이스라엘(벤냐민 네타냐후 총리)과 예루살렘, 팔레스타인(마무드 아바스 수반)과 가자 지구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지난 월요일(10월 9일)에는 577주년을 맞이하는 한글날이었습니다.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의 말문에 반포한 날짜가 세종 28년 음력 9월 10일로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로 확정하고 1946년부터 지키고 있습니다. 1446년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글자)을 반포하여 28자의 한글이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글은 중화사상(中華思想 Sinocentricism)이 강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에 의해 무시당하고 언문(諺文), 언서(諺書), 반절(半切), 암클, 아햇글 등으로 천대를 받았으나, 선교사님들에 의해 한글이 재발견되어 오늘에 세상에서 가장 우수하고 과학적인 알파벳이 되었습니다. 빌 게이츠도 최고의 IT언어로 한글을 인정합니다. 

올해 처음 정부의 한글날 행사를 서울이 아닌 충남 세종특별자치시(신행정수도로 2012년부터)에서 가졌습니다. 한글은 유네스코(UNESCO)에서 세계 현존하는 2900문자 가운데 가장 우수한 글자로 인정하여 앞으로 세계가 한글로 공용어를 삼을 것이며, 유엔빌딩 1층에 있는 유네스코에 세종대왕의 동상이 있고, 가장 우수한 문자에게 수여하는 세종상이 제정되어 있습니다. 언어는 문화를 지배하게 되는데, 페르샤 시대의 아람어, 그리스시대의 헬라어, 로마시대의 라틴어, 영미시대의 영어, 그리고 21세기의 동북아시대의 한글이 중심이 되는 문화가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일제가 시작되면서 한글 28자 중 4글자(아래아ㆍ, 옛이응 ㆁ, 여린히흫 ㆆ, 반치음  ᇫ)를 없애버렸는데 일본의 히라가나가 모든 아시아인들이 발음을 표시할 수 있음을 과시하기 위함이라 합니다. 감사하게도 제주도 사람들은 이 네 글자를 지금까지 고수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된지 78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24자로만 사용하는데 이를 복원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김석연 교수(뉴욕 컬럼비아대학교)가 창안한 누리글(옛한글 28기초, 51개 알파벳)로 세계 언어의 어떤 발음과 표기가 가능한데 이 누리글이 앞으로 세계가 사용하게 될 공통언어(Universal Language)가 된 것입니다. 이미 선교사님들이 자국의 알파벳이 없는 종족들에게 누리글로 성경을 번역하여 우리나라에서 인쇄하여 보급하는 누리글선교회[누리글 선교센터]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때를 위해 남겨두신 천손민족이 한글을 사용하는 한국입니다. 한국어가 바로 하늘언어입니다(The Korean Language is the Heavenly Language.). 그래서 미국선교사님들(H. G. Appenseller, 1858-1902, H. Underwood, 元杜尤, 1859-1916, William Davis Reynolds 李訥瑞, 1867-1951)과 캐나다 선교사님(James Gale 奇一, 1863-1937, <한영사전>도 발간)과 몇 명의 한국 신학생 혹 목회자들이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여 1911년에 성경전서를 출판한 성경입니다. 한글이 종교경전 번역에 사용된 첫 사례입니다. 이때부터 한글이 문화글자로 자리잡게 됩니다. 

우리 한글을 세계에 알리는데 공헌하신 분은 미국 선교사 호머 베절릴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년, 미국의 감리교회 선교사, 사학자)입니다. 우리나라에 선교하러 오신 분 가운데 학력이 가장 좋으신 분으로 박사학위가 있습니다. 23세에 한국에 선교사로 오셨는데(1886년) 7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학자이며, 한글 띄어쓰기를 최초로 하신 선교사입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조선은 영어와 근대식 교육을 담당해줄 교사 파견을 미국에 요청했습니다. 1884년 여름, 미국 교육위원장 이튼(John Eaton)은 대학선배인 헐버트의 아버지에게 아들 중 1명을 조선에 교사로 파견하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호머 헐버트는 자원하여 조선에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으로 떠날 준비를 하던 중 1884년 12월 갑신정변으로 인해 계획이 연기되었습니다.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한 후 유니언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던 헐버트는 포기하지 않고 조선과 동아시아에 대해 공부하며 준비를 계속하였습니다. 

조선의 정국이 안정되자 헐버트는 조선에 가기 위해서 1886년에 유니언 신학교에서의 학업을 중단했습니다. 벙커(Bunker), 길모어(Gilmore)와 함께 1886년 7월 5일 제물포에 도착한 호머 헐버트는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이들은 조선 최초의 국립 근대식 학교인 육영공원(育英公院) 교사가 되었고 헐버트는 영어와 지리를 가르쳤습니다. 1888년 3월경부터는 하루 2시간씩 제중원 학당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헐버트는 입국 직후부터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한국어 학습이 필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비로 개인교사를 고용하여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그의 회고록에는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지  4일만에 한글을 읽고 썼으며, 1주일 만에 조선인들이 위대한 문자인 한글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한국어 학습에 매우 적극적이었던 그는 3년 만에 한글로 책을 저술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고종 황제는 육영공원 학생들을 궁으로 불러 영어시험을 치르도록 하였는데, 고종이 영어 문제를 직접 읽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종은 영어를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한글로 발음이 표기된 것을 보고 영어문장을 읽는 모습을 본 헐버트는 별도의 발음기호 없이 직접 영어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의 우수성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헐버트 선교사는 평소 "한글은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 가장 우수한 문자"라면서 어려운 한자 대신 한글애용을 권장했습니다. 그러던 중, 조선 정부에서 재정상의 이유로 육영공원을 축소 운영하게 되자, 헐버트는 1891년에 교사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후 1892년 “한글 The Korean Alphabet”이라는 논문을 시작으로 한글과 한국 문화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1903년 미국 스미스소니언협회 연례 보고서에 한글에 대한 우수성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헐버트는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감리교회의 선교사 파송 준비과정을 마치고 선교사 자격으로 1893년 10월 14일, 다시 조선에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는 감리교 출판부인 삼문출판사의 책임을 맡았으며, 배재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배재학당에서 서재필, 이승만, 주시경 등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최초의 영문 소설 한국어 번역판인 존 번연의 '텬로력뎡'(천로역정)을 출판하였습니다. 그해 8월에 한글 로마자 표기법을 고안하였습니다. 

1896년 4월 서재필, 주시경 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습니다. '독립신문'은 헐버트가 책임자로 있던 삼문출판사에서 인쇄하였습니다. 또한 배재학당에서 가르쳤던 제자 주시경과 함께 한글을 연구하며 띄어쓰기, 마침표, 쉼표를 도입했으며 국문연구소의 필요성을 고종에게 여러 차례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헐버트는 현 동대문교회인 볼드윈 교회를 맡아 담임목회를 하였습니다. 1909년 헐버트는 미국으로 돌아갔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반도는 독립하였고,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듬해인 1949년 7월 29일, 40년 만에 방한하였습니다. 그해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고자 했으나 방한후 1주일 만인 8월 5일에 헐버트는 청량리 위생병원에 입원중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86세의 노구를 이끌고 30 여일이 넘는 여행를 통해 쌓인 여독을 이기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8월 11일에 최초의 외국인 사회장으로 영결식이 거행되었고 오늘날 양화진(楊花津) 외국인 묘지에 묻혔습니다. 이는 그가 생전에 "내가 젊은 시절 사랑했던 한국땅에 묻히고 싶다"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독립장)이 추서됐습니다. 2014년 한글날에는 금관문화훈장도 추서되었습니다. 그의 한국어 이름은 헐벗 또는 흘법(訖法), 허흘법(許訖法), 할보(轄甫), 허할보(許轄甫)였으며, 그는 1886년 아리랑 노래에 서양식 곡조를 붙여 세계적으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1919년에 있었던 3.1운동도 미국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안중근 장군이 존경한 인물인데, 안중근은 일본경찰에게 조사를 받던 1909년 12월 2일에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젊은날 사랑했던 한국땅에 묻히고 싶다"는 평소 고인의 유지에 따라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여러 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런 고인의 뜻을 받든 것입니다. 헐버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민국으로 떠나며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라는 유언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그의 첫째 아들 쉘던은 2살 때 사망하여 이미 양화진에 묻혀 있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 8장을 통해 예수님께서 빵 일곱 개와 두어마리 물고기로 남자 성인만 4000명(약 2만명)을 먹이시고, 제자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제일 북쪽에 위치한 가이사라 빌립보(현재 반야스)에 가셔서 베드로가 주님을 “그리스도(메시야)”로 고백한 일을 묵상하겠습니다.

1. 사천 명을 먹이시다 Jesus Feeds the Four Thousand (막 8:1-10, 마 15:32-39)
(1) 그 무렵에 또 큰 군중이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 내가 군중을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쓰러지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4)   그분의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빵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민 11:21, 요6:7) (5) 그분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빵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6) 그분께서 군중을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빵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마15:39) (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그분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1-3절. 그 무렵에 문자적으로 “그날들에”를 말합니다. 즉 앞의 사건, 귀먹고 어눌한 자를 에바다의 기적으로 고치신 소문이 자자하던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심히 큰 무리가 주님에게로 운집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빵 일곱 개로 약 4천명을 먹이십니다. 이것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입니다. 마가복음 7:31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로 오셨음을 증거하였고, 마태복음 15:29는 마가복음과 같은 사건을 증거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 오셔서 산[언덕]에 올라가 앉으셨고 많은 군중들이 그 앞에 모였고 그분께서 많은 환우들을 고치셨다고 증거합니다. 

항상 예수님의 기적 사건은 군중들을 불쌍히 여기는데서 출발합니다(마9:36, 막6:34).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나” 예수님께서 병 고치는 기적과 말씀 선포하시는 일에 이들은 날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는 것은 그들이 가는 중에 기진 할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중 기근이 심해 농번기에도 수확할 식량이 없어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곤 했습니다. 

4절. 칠병이어(七餠二魚) 기적이 일어난 곳은 광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사흘 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열심이 대단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그들이 길에서 쓰러질지 모르고 집에 가도 먹을 것이 없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영어로 불쌍히 여기다는 compassion은 같은(com) 느낌(passion)을 가지다는 말로 그들의 배고픔을 함께 느끼셨습니다.

4-7절. 주님의 제자들이 걱정하며 주님께 여쭈기를 “이 광야에서 어디서 빵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돈이 있어도 이 많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빵을 구할 제과점도 가게도 시장도 없습니다. 도무지 인간적으로는 대책이 서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빵 몇 개나 있느냐?”고 물으시니, 그들은 “일곱이로소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들이 가진 것은 매우 적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난번 오병이어의 기적때처럼 사람들을 명하여 땅에 질서있게 앉게 하시고, 빵 일곱 개(七餠)를 가지시고 하나님께 감사하시며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빵을 나눌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모두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제자들도 감사와 감격의 마음으로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비록 적은 양이라도 하나님께 축사(감사와 감격)하니 빵을 나누는 동안 계속 그만큼 양이 재생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작은 생선 두어 마리도 재생되어 모두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8-10절. 제자들과 무리들은 다 배불리 먹었고 남은 음식을 일곱 광주리에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 빵을 먹은 사람들은 군대에 나갈 수 있는 남자의 숫자만 약 4천명이었으니 2만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마태복음 15:38은 먹은 사람이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약 4천명’이라고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곧 감사와 감격으로 이 기적에 참여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셔서 달마누다(Dalmanutha)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마태복음 15:39의 전통본문은 그들이 ‘막달라 Magdalene’(뜻은 ‘망대tower’) 지경으로 가셨다고 증거합니다. 막달라는 갈릴리 호수 서쪽 해안 중간지점에 있어 가버나움과 디베랴 사이에 있는 마을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칠병이어의 기적은 영적으로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는 것을 상징합니다(막 10:45). 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6:48, 51, “내가 곧 생명의 빵이로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빵이니 사람이 이 빵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그분은 한 분이시지만, 많은 사람의 죄를 위한 대속물이 되셨고, 그분의 몸은 많은 사람에게 풍성한 생명을 공급하는 몸이 되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기적에 감사하고 감격하며 예배드리는 자들에게 오병이어, 칠병이어의 기적이 계속 일어납니다.

영화 '선택받은 자' 오병이어 기적 장면
영화 '선택받은 자' 오병이어 기적 장면

2.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The Pharisees Demand a Sign (막 8:11-13, 마 12:38-42, 16:1-4, 눅 11:29-32, 12:54-56, 요 7:17)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그분과 논쟁을 시작하며 그분을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적]을 구하거늘 (12)   그분께서 자신의 영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이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11-13절. 바리새인들과 유대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힐난(詰難)하며 그분을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합니다. ‘힐난하다’는 말은 ‘트집을 잡아 비난하다’는 뜻이지만, 그 원어(쉬제테인 συζητεῖν)는 ‘변론하다’는 뜻입니다. 여러 가지로 시험하였는데 그중에 한가지가 표적을 요구합니다. 한국인은 복을, 헬라인은 지혜를, 유대인은 표적을 좋아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님께 표적 shmei'on(세메이온)은 "상징, 기호, 기적"의 뜻으로 이들은 구약에서 있었던 40년간 광야시절에 먹었던 만나(출16장), 기브온에서 태양과 달의 멈춤(수10:12-14), 갈멜산에서 내린 불(왕상18:30-40)과 같은 초자연적이며 우주적인 표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표적 요구는 예수님을 유혹(페이라존테스 πειράζοντες “tempting”)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런 요구에 주님께서는 12절에 마음속에(토우 프뉴머타 τῷ πνεύματι “in his spirit”) "영에, 마음 깊이" 탄식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는 이들의 요구에 절대적인 거부를 분명히 하십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표적은 행하시지 않습니다. 믿음과 기적은 함께 가나, 불신은 기적과 거리가 있습니다. 믿지 않는 곳에는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표적을 구하지 말고 표적보다 귀한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믿는 자에게 표적이 일어납니다. 칠병이어, 오병이어 기적도 믿음으로 감사하며 감격할 때 계속적으로 일어납니다.

주님은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3.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 The Leaven of the Pharisees and Herod (막 8:14-21, 마 16:5-12)
(14) 이제 제자들이 빵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마16:5) (15) 그분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그들이 자기들끼리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우리에게 빵이 없기 때문이라” 하거늘 (17)   예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빵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굳어 있느냐? (막6:52)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느냐?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막8:5, 막6:52) (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14-16절. 제자들이 빵 가져오기를 잊었으므로 배에 빵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경계하여 말씀하십니다.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leaven)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말씀도 하십니다(마 15:6). 그런데 제자들은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빵이 없음이로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빵의 누룩을 생각했으나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헤롯의 교훈을 언급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의 교훈은 외식적이었고, 사두개인들의 교훈은 이성주의적이었고, 헤롯의 교훈은 세속주의적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잘못된 교훈들을 조심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용하신 누룩에 대한 짧은 비유는 보이지 않는 침투력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룩 자체는 성경에서 좋지 않은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고전 5:7에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고 했으며 눅 12:1에서는 "누룩"은 바리새인들의 의식과 연극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마13:33에서 "천국비유 설명"때 누룩을 말씀하신 것은 누룩 자체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누룩의 자라나는 속성을 비유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유대와 헬라에서는 누룩은 부패에 대한 은유였으며 특히 유대 랍비들에게는 악한 욕구와 인간의 나쁜 성향과 성질을 나타냅니다.

오늘 우리도 바른 교훈이 아닌 것들은 다 조심해야 합니다. 요일 4:1,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대언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오늘날 우리는 가톨릭이나 알려진 이단종파들뿐 아니라, 자유주의, 포용주의, 에큐메니칼 교회연합운동, 은사주의, 같은 교회의 세속화 운동을 경계해야 합니다. 

17-21절.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생각과 토의를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 빵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내가 빵 다섯 개를 5천명에게 떼어 줄 때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그들은 “열둘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또 일곱 개를 4천명에게 떼어줄 때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고 하시니, 그들은 “일곱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바구니와 광주리의 차이는 불분명합니다. 영어 성경에는 둘다 basket(바구니)으로 번역합니다. 그분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가지 기적은 모두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이런 기적들은 확실히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합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받고 기도의 응답을 체험합시다. 

4. 벳새다에서 맹인을 고치시다 Jesus Heals a Blind Man at Bethsaida (막 8:22-26, 눅7:21, 요9:1-7)
(22) 그분께서 벳새다에 이르시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그분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거늘 (23) 그분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그가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분께서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 그분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22-23절. 주님의 일행이 벳새다에 도착합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벳새다는 오병이어의 장소입니다(눅 9:10). 벳새다는 베드로와 안드레 및 빌립의 고향인데(요1:44) 사람들이 맹인 한명을 데리고 그분에게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선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었고 예수님께 대한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적 맹인인 죄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열심 있는 성도들의 모범입니다. 이들은 육체적인 욕구만에 관심이 있던 차에 이 맹인[시각장애인]의 회복 사건으로 육체적인 눈과 영안의 눈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맹인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이 환우들을 고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믿음 없는 자들 앞에서는 기적 행하기를 꺼려하셨습니다(막 6:5-6). 그분은 그 맹인의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십니다. 그 맹인은 비록 볼 수 없어도 무엇을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마 그의 눈에 손을 얹으셨을 것입니다. 그런 후, 그는 그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십니다. 

24-26절. 그 맹인은 우러러보며 말하기를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예수님께서 환우들을 고쳐주실 때에는 환우가 보통 즉시 고침을 받았으나 이 경우는 웬일인지 즉시 고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맹인은 사람들이 보이지만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간다고 말합니다. 그의 눈은 시력을 얻었으나 완전치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눈에 다시 안수하셨고 그로 다시 쳐다보게 하십니다. 그 맹인은 완전하게 고침을 받았고 만물을 밝히 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전통본문에 보면, “마을에 들어가지 말고 마을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그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병고침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분께서 두 번 안수하심으로 맹인을 고치신 것은 우리의 영안(靈眼)을 고쳐주시는 일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영안(靈眼)이 있습니다(계 3:18). 우리는 과거에 죄인이었고 영적 소경이었습니다(엡 4:18).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었을 때 우리의 영안(靈眼)이 열리었습니다(고후 4:6). 그러나 마음의 눈의 시력은 단번에 완전케 되지 않고 점진적으로 밝아집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엡 1:17-19에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과 천국 영광의 풍성과 하나님의 능력의 크심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5. 베드로의 고백,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심 Peter Confesses Jesus as the Christ (막 8:27-38, 마 16:13-28; 눅 9:18-27)
(27)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마16:13, 눅9:18) (28)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침례자]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대언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니 

(33)예수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27절. 예수님과 일행들은 가이사라 빌립보(Caesarea Philippi)에 도착하십니다. 이곳은 갈릴리 호수에서 약 40킬로미터 북쪽에 있는 도시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최 북단에 있는 단(Tel Dan) 도시에서 약5킬로미터 떨어진 곳인 요르단강 시작(근원)에 위치합니다. 헐몬산(헤르몬 산 Mount Hermon, 이스라엘 국경안에 있는 산의 높이는 2,224미터, 시리아에 속한 헐몬산의 최고 높이는 2,814미터) 남서 방향의 끝자락으로, 산 정상의 만년설이 녹아 지하로 흐르던 물이 쏟아 나오는 용천(龍泉)에 위치하며 판(Pan, 수풀의 신) 신전이 있습니다. 근처에 훌레 호수 위의 평야와 만나는 고원 지대가 있는데 당시 이 지역의 분봉왕인 헤롯 빌립은 높고 두껍게 성벽을 쌓았고 가이사라(Caesara 로마 황제의 칭호) 티베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가이사라라는 이름을 붙였고, 지중해변에 있는 당시의 행정 수도인 가이사라와 구분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인 빌립보 명칭을 더 붙여서 가이사라 빌립보라 했습니다(마16:13-28; 눅9:18-27). 

지금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반야스 Banias”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판신전이 있는 곳”이란 말인 Panias에서 기원된 말이 P가 B로 변해서 반야스라고 합니다. 헐몬산의 얼음물이 지하에서 뿜어내는 원천(Banias Springs)이어서 물이 매우 차겁습니다. 지난 삼 주전(2023년 9월 13일)에 갔을 때에 밖의 온도는 섭씨 38도 였으나 이 물에 발을 담그니 얼마나 시원한지 차거웠습니다. 주님께서 이곳에 제자들과 수양회(retreat) 오셨던 것입니다. 

28절. 그리고 판신전(반야스) 앞으로 가시면서 길에서 주님을 누구라고 알고 따라다니는지 물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Whom do men say that I am?” 이에 제자들이 대답을 합니다. “침례자 요한”(마 17:11-13, 막 6:16)이라 합니다. 또 다른 제자는 “엘리야”(말 3:1, 4:5, 마 1:14)라고 들었습니다. 또 다른 제자는 “대언자 중 한분”이라고 들었다고 합니다. 

29-30절,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But whom say ye that I am?”물으시니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 Thou art the Christ.”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מָשִׁיח Χριστός)는 신분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anointed one’라는 뜻으로 구약시대에 선지자[대언자], 제사장, 왕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어에 정관사를 ha(הָ)가 붙으면 우리가 기다리는 바로 “그 메시야”(the Christ)입니다. 이 메시야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삼중직 참 선지자, 참 제사장, 참 왕이시다는 신앙고백은 예슈아 함메시아흐(ישׁוה המשׁיה) 즉 예수님은 메시야(그리스도)이시다는 말로 “예수 그리스도 Jesus is the Christ”(히브리어로 ‘예슈아 함마시아흐’)는 최초의 신앙고백입니다. 마 16:16에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드님 the Son of the living God”고 설명하고 있는데, 바로 그분께서 하나님이시다는 간접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오늘날 메시야닉 유대인(Messianic Jews,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는 유대인들)은 예슈아 함마시아흐로 예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아무에게도 소문내지 말 것을 당부하십니다. 

31절.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입장을 왜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앞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을 예언하십니다. 많은 고난이란 단순히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치욕적인 그들의 많은 놀림과 채찍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막10:34, 막14:65, 요18:22).

32-33절. 베드로는 최초의 바른 신앙고백을 예수님께 드렸지만 인간의 생각(사단이 배후조정)으로 예수님을 붙잡고 그분을 꾸짖기(에피티만 ἐπιτιμᾶν) 시작합니다(Peter took him, and began to rebuke him.)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돌이켜 제자들을 보시면서 베드로를 꾸짖어시며(에피스트라페이스 ἐπιστραφεὶς) 이르시되 “사탄아(Σατανᾶ, 사탄의 아람어),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는도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엄밀한 의미에서 베드로를 야단친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서 배후조정하는 사탄에게 꾸짖으신 것입니다. 사탄(Satana)는 사탄(שָׂטָן Satan)의 아람어 방언입니다. 순수 헬라어는 "마귀"(디아볼로스 διάβολος 혹은 다이모니아 δαιμόνια)입니다(요6:70). 이 두 단어에 어떠한 의미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며 동의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며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복음서가 기록된 목적이며 또 사도들이 전한 가장 복음의 요지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예슈아 함마시아흐)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온 세계는 새로워질 것입니다.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으로 시작된 구원은 영화롭게 완성될 것입니다. 그것이 영광의 천국입니다. 

34절. 주님께서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 후 무리와 제자들을 부르시고 교훈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교훈하십니다. 그것은 세 가지 내용이다. 첫째는, 자기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꺾고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그것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사람에게 주신 의무이고 사명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도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처형되시기 전날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마 26:39). 

히 5:8-9는,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기 뜻을 꺾고 하나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사형수의 형틀입니다. 사형수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으로 가서 거기서 그 십자가에 달려 죽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셋째는, 예수님만 따르는 것입니다. 제자는 선생의 교훈을 믿고 그 교훈을 행하며 그분의 본을 따르는 자입니다. 그것이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죽는 자리에 함께 죽어야 합니다.  

35-38절.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는 진실한 제자이며 그분의 구원은 확실할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다 얻는다 할지라도 영생의 구원을 잃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합시다.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그분의 말씀들과 행위들을 통해, 그분의 제자들의 증거를 통해, 특히 신약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확신합시다. 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합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분은 영광을 얻으러 세상에 오지 않으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러 오셨습니다. 그분은 죽음으로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릅시다. 그것은 그분께서 친히 가신 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부정하고 또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릅시다.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과 직분은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신구약성경의 말씀을 다 믿고 그 말씀을 행합시다. 우리는 예수님(예슈아)의 이름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그분의 영광의 재림을 소망합시다. 

[오늘의 기도]
1.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칠병이어 기적을 행하실 때 심정은? (2절)
2. 칠병이어 기적에서 남은 음식을 거두니 몇 바구니 였나? (8절)
3.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구할 때 거절하신 이유는? (12절)
4.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leaven)이란 무엇인가? (15절)
5. 벳새다에서 만난 맹인을 고쳐주신 과정을 말해보자 (23, 25절)
6. 예수님은 누구신가? (29절)
7. 예수님을 따르려면 해야할 세가지는? (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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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성숙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매일 주님의 겸손과 온유, 순종을 배우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10월16일 월 찬 254장(통 186장) 레 9 아론이 제사장 직을 시작하다
    17일(화) 찬 252장(통 184장) 레 10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18일(수) 찬 250장(통 182장) 레 11 먹을 수 있는 짐승의 규례
    19일(목) 찬 257장(통 189장) 레 12 출산 이후의 의식
    20일(금) 찬 258장(통 190장) 레 13 나병(한센병)에 관한 규례
    21일(토) 찬 259장(통 193장) 레 14 나병이 치유된 후의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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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 겟세마네TV & 로이교회의 예약된 Zoom 회의에 귀하를 초대합니다.>
https://us06web.zoom.us/j/9991131127?pwd=YVFycnhvOEhNSmpiWFZJUTA0N0Rhdz09
회의 ID: 99 9113 1127
암호: 12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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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신학교 Gethsemane Mission Seminary

◉ 2023년도 가을학기 개강(2023년 8월 28일 월)
   종강(2023년 11월 27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30분)
   개교 35주년 학술대회 (2023년 11월 29일 수 오전 10시 ~ 오후 3시) 
    여전도회관(종로5가) 2층
◉ 2023년 10월 16일 월 수업(가을학기 7주차)
   1교시(세계교회사), 원우회의, 점심 및 친교, 2교시(설교학), 
   3교시(한국신학), 4교시(성경변증, 원어성경강독)
◉장소: 본교 채플실, 네이버에 “겟세마네신학교” 검색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연락처: 032-832-0691, 010-9113-1127
[본 신학교의 신앙노선은 성경이며, 청교도의 신앙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바탕을 두며, 세계 선교를 힘쓰며, 재림하실 예수님을 준비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며,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 진리, 생명임을 믿고, 말씀과 기도로 성화생활하며 구원의 서정을 이루는데 힘쓴다]
◉등록금납부 은행구좌번호: 농협 3019113112731 겟세마네신학교 한국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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