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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설교
【뉴스제이】 다음 설교문은 2023년 10월 1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열여덟번째 주일, 초막절/추석), 대한예수교장로회 로이교회(인천 송도) 주일예배용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납되는 주일예배를 준비합시다. 10월은 '성숙의 달'로 지키며, 다음 예배 자료를 나눕니다. 샬롬샬롬!!! (로이교회 / 합동). [참조 :로이교회는 합정동교회(담임 김효성 목사)와 말씀사역을 협력하는 교회로 한국교회를 위해 자료를 함께 기꺼이 공유합니다]
[읽는 예배]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 (막6장) 
2023. 09. 29 by 윤사무엘 목사

여호와는 나의 목자(39)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 (막6장) 
         “Jesus’ Feeding of Five Thousands Miracle” (Mark 6)

본문: 마가복음 6:1-56
요절: “예수님께서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다 배불리 먹고” (막 6:41-42)
주제: 오늘날에도 오병이어의 기적이 교회, 가정, 내 개인에 일어나게 하소서
교독문: 106번(감사절2), 예배의 부름: 시 118:1-4
찬송: 587장(통 306), 588장(307), 198장(284장)

일자: 2023년 10월 1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열여덟번째 주일, 초막절/추석)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로이교회, 예장 합동, 평남노회)
  [예배시간: 매일새벽기도(월-금) 오전6시, 주일예배 오전 11시, 오후 1시]
  [교회주소: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타워대로 323(송도동 송도센트로드 B동) 33층 7호, 우편번호: 22007 / 지하철 인천1호 국제업무지구역 2번출구, 오른쪽에 있는 연수세무서 빌딩 다음 건물. 전화:032-832-0691]

윤사무엘 목사

오늘 10월 초하루를 맞이합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이 10월 한달을 “성숙의 달”로 정하고 일년 동안 신앙생활을 성숙과 온전함에 초점을 맞춥시다. 오늘은 월삭주일이어서 성찬식을 가집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가정, 그리고 새로 이사한 우리 로이교회위에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어제(9월 30일)는 성경적으로 초막절/장막절/수장절(Feast of Tabernacle)이면서 우리나라 추석(秋夕)/한가위(8월의 한 가운데 있는 큰날)/중추절(仲秋節Chuseok or Korean Thanksgiving Day)입니다. 추석에는 송편을 먹으며 민속놀이로 널뛰기, 제기차기, 강강술래, 윷놀이, 씨름, 달맞이 등의 놀이를 합니다. 신라의 제3대 왕 유리 이사금 때 벌인 적마경기(績麻競技)에서 비롯하였답니다. 

《삼국사기》에 보면 왕이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반씩 둘로 나누어 왕의 딸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部) 안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무리를 나누어 편을 짜서 가을 음력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큰 부(大部)의 뜰에 모여서 길쌈을 하도록 하여 오후 10시경에 그치는데, 음력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적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진편은 술과 음식을 차려서 이긴 편에게 사례하였답니다. 이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모두 행하는데 그것을 가배(嘉俳)라 하였습니다. 가배의 당시 발음이 이로부터 중세 한국어의 ‘ᄀᆞᄇᆡ’와 지금의 ‘(한)가위’라는 이름이 온 것으로 보입니다. 

또 다른 견해는 고구려의 종교 의식(추수감사제)이자 제천 의식(祭天儀式 - 농사의 풍요를 하나님께 기원하고 곡식을 거둔 뒤 하나님께 감사하는 행사, 부여의 영고迎鼓, 동예의 무천舞天, 신라의팔관회)이며 원시 종합 예술인 매년 10월에 열리던 명절로 하늘에 제사 지내고 또 여러 사람이 가무를 즐겼다 하며, 이를 동맹(東盟) 또는 동명(東明)이라고도 합니다. 즉 한국의 추수감사절입니다. 추석에 먹는 송편은 햅쌀을 소나무 잎을 넣어 만든다고 하여 '송병松餠'이라고 불렸다가 나중에 '송편'이라고 바뀌었답니다. 송편의 유래는 백제 의자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백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반달 모양의 떡을 빚어 먹었다고 하는데, 반달이 보름달로 되기에 발전과 번영의 기원을 담은 떡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월병을 먹습니다. 

지금 중국 항저우에서는 19회 아시아게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1년 연기된 게임인데 45개국 아시아 나라들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응원합시다. 1988년 9월 한국 올림픽 대회시 추석 연휴를 맞이할 때 이스라엘 선수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의 초막절과 같은 명절을 지키는 것을 보며 그때부터 이스라엘이 한국과 퍽 가까워졌습니다.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신 16:13-17). 

오늘날에도 유대인 가정에는 정원, 거실, 사무실 등에 텐트를 치고 나뭇가지, 나뭇잎 등으로 장식하면서 초막절 일주일간 여기에서 지내며 40년 광야교회 시절을 회상하며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천막을 초막 혹은 장막이라 하며, 또 수확한 햇곡식을 거두어 들인다고 수장(ingathering)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초막절 장막절 수장절은 모두 같은 말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 마가복음 6장을 묵상합니다. 갈릴리에서 천국복음을 전하시면서 행하신 기적들 가운데 특히 오병이어 기적과 물위로 걸으신 기적을 살펴봅시다. 

1.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시다 Jesus Rejected at Nazareth.(막 6:1-6, 마 13:53-58; 눅 4:16-30)
(1) 그분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그분의 제자들도 따르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요6:42)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실족한지라. (4)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대언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몇몇 환우들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시고 마을들을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더라(사 59:16).

1-2절. 주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나사렛 고향(눅 4:16)으로 가셨습니다. 가버나움에서 나사렛까지는 50킬로미터로 하루쯤 걸리는 길입니다. 자동차로 운전하면 속력을 많이 낼 수 없어 1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마태복음 2장이 증거하는 대로, 아기 예수는 약 3년 반정도의 이집트의 피난생활(Church of Abu Serga in Old Cairo) 후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와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와서 사셨고, 그래서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을 노쯔리(Notsri 즉 나사렛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또 요한복음 1:45에 보면, 빌립은 나다나엘(=바돌로매, 가나 사람)에게 우리가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를 만났는데 나사렛 예수라고 소개합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17회 ‘나사렛 예수’라고 부릅니다(마 26:71; 막 14:67; 16:6; 눅 4:34; 18:37; 24:19; 요 1:45; 18:5, 7; 19:19; 행 2:22; 3:6; 4:10; 6:14; 10:38; 22:8; 26:9). 고향을 방문하시는 목적은 예수님의 가족을 보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안식일이 되어 주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나사렛 마을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놀라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아는 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가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런 지혜와 능력을 가질 수 있는가 놀랄 뿐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자라신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말함으로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과부일 경우라도 남자(아버지)나 조상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유대의 일반적인 전통인데 "마리아의 아들 ὁ υἱὸς τῆς Μαρίας"이라고 부른 것은 일종의 놀림을 뜻할 수 있습니다.

3절. 나사렛 사람들은,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며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배척한지라”의 헬라어 (ἐσκανδαλίζοντο eskandalizonto 에스칸달리존토)는 "함정에 빠지다, 덫에 걸리다, 죄를 짓게 하다"의 말로(롬11:9, 롬14:13, 갈5:11, 벧전2:18, 렘6:21, 호4:5) 예수님을 육적으로만 알고 신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고향 나사렛의 배척으로 5절에 보면 예수님의 사역이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보다 덜 활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거나 하나님의 일들을 행하실 의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마태복음 13:58에서 말한 것처럼 이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55는,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라고 기록합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 목수’ 혹은 ‘그 목수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또 그들은 예수님의 동생들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의 이름과 또 그의 여동생들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분의 어린 시절을 가지고 판단할 때가 아니고 그분의 가르침과 행위들을 가지고 판단해야 할 때입니다. 그분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이며 야고보와 요세와 유다와 시몬의 형제일지라도 그분의 교훈과 행위가 그분의 신성(神性)을 증거한다면, 그들은 교만과 완고함을 버리고 겸손히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을 인정하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4-6절.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선지자[대언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또 그분은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몇 사람의 환우들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 가운데서는 기적을 행치 않으십니다. 불신이 있는 곳에는 기적도 별로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명은 사람들이 그분을 영접하든지 안 하든지 택한 백성들을 찾아 모든 마을에 이곳저곳 두루 다니며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환경 여건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12제자를 부르신 예수님(영화장면)
12제자를 부르신 예수님(영화장면)

2.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보내시다 Jesus Sends Out the Twelve Apostles. (막 6:7-13, 마 10:1, 5-15, 19:1-14; 눅 9:1-6)
(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영들을 제압하는 권능을 주시고 (8) 그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짐가방이나 돈주머니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10)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 많은 마귀들을 쫓아내며 많은 환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7절. 둘씩 둘씩 보내시며는 마가복음에서만 나타납니다. 열두 제자들이 전도를 위해 둘씩 보냄을 받은 것은 예비적인 일로,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 그들은 본격적 사명을 받게 될 것입니다(마 28:19, 20; 행 1:8). 그들은 얼마 후 성령[성신]님의 능력을 받아 땅끝까지 주님의 부활증인으로 파송될 것입니다(민35:30, 신17:6, 마18:16, 고후13:1), 서로 격려와 도움을 주고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전4:9). 이러한 방법은 후에 선교의 관례가 되었습니다(행13:1-3, 행15:40, 행19:22).

8-9절. 이들에게는 전도[선교]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특별한 훈련이나 곤란을 겪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며, 불필요한 짐과 대규모적인 준비로 여행을 지체해서는 안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전도자의 삶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받는 삶이므로, 복음 전도자는 세상의 걱정 근심을 가급적 초월하며 살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3-4는, “네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22:35-36에 보면, 주님께서는 후에 “내가 너희를 짐가방과 돈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고 물으셨고, 그들이 “없었나이다”고 대답하자, “이제는 짐가방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돈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고 하십니다. 

오늘날 전도자들이 저축이나 보험이 필요 없다고 지나치게 생각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범사에 낭비하지 않고 절약하고 저축하며 사는 것은 모든 성도의 기본적 생활 태도이어야 한다. 아울러 그들에게 마귀를 제어하는 능력(병 고침)을 주시고 보내시기 때문에 그들을 맞이하는 집에서 유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더러운 마귀들을 제압하는 권세를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신분증이었습니다. 오늘날 말씀의 사역자들은 비록 그런 외적인 권세의 표는 없지만, 말씀의 권세의 표를 가집니다. 말씀의 권위와 감동과 결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표입니다. 말씀에 대항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지만, 주님께서는 오늘도 주님의 종들을 말씀의 권세로 붙드시고 사용하십니다. 

10-11절.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유대인들에게는 이교도의 영역을 통과하는 여행을 한 후에는 유대 땅(성지)에 들어오기 전에 신과 옷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는 이방인의 땅을 부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님의 취지는 제자들을 배척하는 것은 이방인의 땅과 같이 부정한 땅으로 간주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먹을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만족하며 살아야 합니다(딤전 6:8).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기 백성과 종들을 굶주리게 하지 않고 필요한 것을 주실 것입니다. 11절 전통사본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가 저 성보다 더 견딜 만하리라”는 말씀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내신 전도자들을 거절하고 배척하는 죄는 유황불비로 소멸되었던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의 죄보다 더 크다는 뜻입니다. 

12-13절. 제자들은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였고 많은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그들이 나가서 한 활동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회개하라고 전파한 것입니다. 세례[침례자] 요한도 회개를 전파하였습니다(막 1:4). 예수님께서도 회개를 전파하셨습니다(막 1:15). 사도 바울도 전도 활동을 할 때 회개를 전파했다고 증거하였습니다(행 20:21). 하나님의 뜻은 회개와 성결과 순종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깨닫고 버려야 합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한 또 하나의 활동은 많은 병자들을 고친 것입니다. 많은 마귀,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습니다. ‘기름을 바르는 것 anointing’은 성령[성신]님의 능력의 활동을 말합니다. 

1-13절 본문은 전도의 중요성을 증거합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모든 마을에 두루 다니며 전도하셨을 뿐 아니라, 그분의 제자들을 둘씩둘씩 마을들로 보내셔서 전도하게 하셨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입니다. 본문은 또 주께서 전도자에게 권세를 주셨음을 증거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전도자들만 보내지 않으시고 성령[성신]님의 능력으로 함께하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전도자들에게 말씀과 성령[성신]님의 권위를 주십니다. 본문은 또 전도자가 세상에 얽매이지 말 것을 교훈합니다. 전도자는 의식주의 문제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오직 전도의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본문은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전도자를 영접해야 할 것을 교훈합니다. 전도자를 영접하는 것은 곧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그분을 거절하고 박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3. 세례 요한의 죽음 The Death of John the Baptist (막 6:14-29, 마 14:1-12; 눅 9:7-9)
(14) (그분의 이름이 널리 퍼졌으므로) 헤롯 왕이 그분에 관하여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침례자]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15) 다른 이들은 “그는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대언자]니 옛 선지자[대언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16) 헤롯은 그것을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19)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20)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21)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22)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기대어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마14:6, 왕상3:5) (23)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에5:3) (24)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침례자]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25)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침례자]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기대어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고후7:10, 단6:14). (27)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 그 머리를 쟁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행8:2)

14-16절. 열두 제자들의 전도를 통해 예수님의 이름이 유대 땅에 더욱 알려졌습니다. 헤롯 분봉 왕은 이를 듣고, “세례[침례자]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이는 이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이가 선지자[대언자]니 옛 선지자[대언자] 중의 하나와 같다고 했으나, 헤롯 분봉왕(마 14:1, 눅 9:7)은 듣고 내가 목 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고 하였습니다. 

이 헤롯은 헤롯 대왕과 마리안느 사이에 출생한 헤롯 안디바스(Antipas, 마 14:1-7, 눅 8:3, 9:7, 13:31, 행 4:27)로서, 아버지 별세후 16세때부터 갈릴리와 베레아를 통치하였습니다(BC 4년-AD 39년). 그는 훗날 로마에서 왕의 신분을 얻으려고 했으나 실패했다고 합니다. 마가복음에서 그를 가리켜 왕이라고 한 것은 당시의 관습에 따른 것이나, 비아냥거리는 표현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요한이 죄없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하며 악몽처럼 그의 일을 거론하는 것입니다. 눅 9:7은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여 했다고 말합니다. 

17-20절. 헤롯 분봉왕이 왜 이렇게 생각한 이유에 대해 지나간 일을 회고합니다. 전에 헤롯은 자기가 형제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이 헤롯에게 형제의 아내를 정욕적으로 취한 것이 옳지 않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헤롯 안디바스는 그의 이복형제인 빌립의 아내와 재혼하였는데 정당한 법 절차를 밟지 아니했던 것 같습니다. 요한은 그것이 옳지 않은 행위라고 지적했던 것입니다. 19절에 헤로디아는 요한을 원수로 여겨(에네이켄 ἐνεῖχεν)[원한을 품고]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해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많은 것을 행하며](전통본문) 달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요한이 전한 말씀을 달게 들었고 그의 교훈을 따라 선한 일들을 많이 행하였던 것 같습니다.

21-29절. 마침 헤롯은 자기 생일에 고위 간부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족들로 더불어 잔치(party)할 때에 헤로디아의 딸[살로메]로 춤을 추게 했는데 헤롯과 및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왕은 그 아이에게 “무엇이든지 너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고 말했고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고(참고. 에스라 5:3, 6, 7:2)  했습니다. 그가 나가서 그 어미[헤로디아]에게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고 묻자, 그 어미는 “세례[침례자]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왕에게 급히 들어가 “세례[침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구하였습니다. 헤롯은 심히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을 인해 그녀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헤롯은 요한 죽이기를 주저했던 것입니다. 그는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베어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아이에게 주었고 아이는 그것을 그 어미에게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요한은 순교를 당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듣고 와서 그의 시신을 가져다가 장례하였습니다.  

우리는 헤롯처럼 살지 말고 세례[침례자] 요한처럼 살다 갑시다. 요한은 제사장직을 버리고 가난하고 거친 환경의 삶을 선택했고 광야에서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생활한 경건한 자로 살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침례]를 전하였고 또 헤롯의 잘못을 지적할 정도로 용기 있는 선지자[대언자]이었습니다. 헤롯도 그가 의롭고 거룩한 사람임을 알았고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혔고 핍박을 받았고 마침내 감옥에 있으면서 쓸쓸하게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 가치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승천한 엘리야(마 11:14) 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엘리야가 승천한 자리[요르단 베다니]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4. 오천 명을 먹이시다 Jesus Feeds the Five Thousand. (막 6:30-44, 마 14:13-21; 눅 9:10-17; 요 6:1-14)
(30) 사도들이 같이 예수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눅9:10) (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마14:13) (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33)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34) 예수님께서 나아오사 많은 사람들을 보시고 그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 이제 낮이 저물어가매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 그들을 보내어 그들이 주변 지역의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그분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 하시거늘 그들이 그분에게 여짜오되 “저희들이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빵을 사다 먹이리이까? (38)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빵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 그분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라” 하시니 (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 그분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빵을 떼어 자기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   그들이 다 먹고 배가 불렀고 (43)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가득 거두었더라. (44) 빵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30-33절. 이 오병이어 기적은 물 위로 걸으신 기적과 함께 네 개의 복음서가 모두 다루고 있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전도여행의 성과를 자세하게 예수님께 고했습니다. 그들이 행한 것은 병고친 일들이며 그들이 가르친 것은 회개하라는 내용입니다(12절). 그들은 단순히 선포한 것이 아니고 가르쳤습니다. 회개가 무엇인지, 왜 회개해야 하는지 성경적으로,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했을 것입니다. 전도는 선포와 더불어 가르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잠시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a desert place)에 가서 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한적한 곳이란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는 갈릴리 호수의 한 해변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위에는 이제 늘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영혼과 몸으로 구성된 존재이며 특히 몸은 음식 섭취와 휴식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육신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몸이 때때로 휴식이 필요함을 아십니다. 그것이 그가 날마다 밤을 주셔서 잠을 자고 쉬게 하시는 이유이며 또 7일에 하루를 휴식의 날로 주시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오고가는 모습을 바라본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시며 자상한 어조로 여러 가지를 가르치셨습니다.

34절 불쌍히 여기사(ἐσπλαγχνίσθη esplagksnisthe 스플랑크니스쎄이)는 "동정을 느끼다, 간절히 열망하다"의 뜻으로 마태복음 9:36에서는 민망히 여기사(compassaion)로 누가복음 15:20에서는 ‘측은히 여겨’로 번역되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은 이들의 육체적인 배고픔을 외면하시기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은 식사할 겨를도 없으셨고 제자들은 방금 전도여행에서 돌아왔고 수많은 사람들은 모여들었는데 해는 기울어 갑니다. 이들을 귀가시키기 전에 먹이시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제자들은 이러한 이들에게 각자 마을로 내려가서 식사를 해결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37절에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이 많은 사람을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한 데나리온은 한 노동자가 받는 일당에 해당)이나 필요했고, 이렇게 많은 빵을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알아본 결과 한 소년이 가지고 있었던 도시락에 고작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었습니다(요6:8-9). 보리빵은 밀가루가 아니라 보리 가루로 만든 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양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39-40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명하여 그 모든 사람들로 무리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혹 백씩 혹 오십씩 떼를 지어 앉았습니다.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마가복음은 주님께서 모인 사람들을 ‘푸른 잔디’(the green grass) 위에 앉게 하셨다고 더 생생하게 증거합니다. 푸른 잔디밭은 그 날 저녁 무리들의 야외식당[친교식탁]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백 명씩, 오십 명씩 질서정연하게 앉히셨고 그래서 그 저녁 그 기적의 빵을 먹은 자들의 수는 쉽게 파악되었습니다. 무리들은 무슨 음식이 나올 것인가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보다 제자들은 어디에서 이 많은 무리를 먹일 음식이 공급될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염려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한치 앞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치 말고 믿고 조용히 그의 하시는 일을 기다리며 기대해야 합니다. 

41절 “축사하시고(율로게세 εὐλόγησε blessed)는 "감사하며 복을 빌었다"의 뜻입니다. 축사하는 빵을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주다(에디두 ἐδίδου)는 계속해서 불어나다는 뜻으로 빵을 떼면 그만큼 생기고 떼면 또 그만큼 생기며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먹고 남을 만큼 빵이 계속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되는 것을 말합니다. 놀라운 일은 음식을 나누고 있는 동안 그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줄어들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사람들, 그리고 아마 그 도시락을 주님께 드렸던 아이는, 너무 감격적인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억 속에서 그날 저녁의 일이 결코 잊혀질 수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52절에도 나오는대로 제자들이 별로 감사도 없었고 감동도 없었습니다.

42-44절. 이날 오후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은 다 그 기적의 빵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육신적 필요를 풍성하게 공급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남은 부스러기를 다 거두라고 하시니 제자들은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이번 추석을 맞이해서 올해에도 오곡백과 풍성하게 하시며 온 가족들 건강하게 지켜 주시고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격하고 감사드립시다.

남은 빵을 거두게 하신 것은 기적의 빵이 오용되지 않게 하시는 뜻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기념하고 더 나아가 어떤 기념물을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남은 빵을 고이 간직하고 숭배하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물을 신성시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상화되면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만 섬기며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빵을 배불리 먹은 사람들은 5천명인데 남자가 군대 나갈 사람의 숫자라면 약 2만~3만명 되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4:21은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고 증거합니다(왕상 17:8-16; 왕하 4:1-7; 42-44).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 오늘도 이곳에서 이 시간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40년간 광야교회 시절 하늘의 만나를 내려주신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입니다. 빵이 육신의 생명을 위해 필수적이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무궁한 생명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요 6:51에서 그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빵이니 사람이 이 빵을 먹으면 무궁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의와 무궁한 생명을 주십니다. 

5. 바다 위로 걸으시다 Jesus Walks on the Water. (막 6:45-52, 마 14:22-33; 요 6:15-21)
(45) 그분께서 즉시 자기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사람들을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마14:22, 요6:17) (46)   그들을 보내신 뒤에 기도하러 언덕으로 가시니라 (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그분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49) 제자들이 그분께서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영인 줄로 생각하여 소리 지르니 (50) 이는 그들이 다 그분을 보고 불안해 하였기 때문이라. 즉시 그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Be of good cheer).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51) 그들에게 가서 배에 오르시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52) 이는 그들이 마음이 굳어져서 빵의 기적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45-48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자신은 기도하러 한적한 곳(언덕, 타브가 Tabgha ”일곱 샘“)으로 가셨습니다. 밤 사경(새벽 1-3시)에 기도하시던 곳에서 제자들이 바다 가운데서 폭풍을 만나 어려움을 당하신 것을 아시고 바로 갈릴리 호수 위를 걸어 그들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이미 막4:35에 보면 말씀으로 풍랑을 잠잠케 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 깊은 밤, 그 바다 중간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을 제자들에게 그는 친히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는 오늘날도 세상의 풍랑 속에서 분투하는 성도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그들을 도우시고 위로하십니다.

49-51절. 제자들은 그분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영(spirit)인가 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다 예수님을 보고 놀라 두려워 떨었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에도 감사가 없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도 다른 영으로 착각했습니다. 감사와 감격이 부족하면 우리의 심령이 이렇게 메말라버립니다. 예수께서는 곧 그들에게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마 9:2, 22, 14:27, 행 27:22, 25) 그분께서 제자들의 배에 올라타니 바람은 그쳤습니다. 제자들은 마음에 심히 놀랐고 ‘의아해 하였습니다’(전통본문).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신 것은 그분께서 하나님이심을 보이신 사건입니다.

52절. 주님께서 왜 이런 기적을 행하셨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심히 놀란 것은 그들이 주님께서 어제 오후 빵 떼시던 일을 보고도 감사치 아니했고 감동이 없고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신 것은 그분께서 물 위로 걸어오심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다면 그분께서 물 위로 걸어오심을 그렇게 놀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4:33에 보면, 배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하나님]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적 영광을 깨달았습니다.

6. 게네사렛에서 병자들을 고치시다 Jesus Heals the Sick in Gennesaret. (막 6:53-56, 마 14:34-36)
(53) 그들이 건너가서 게네사렛 땅에 들어가 해변에 도착하여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니 즉시 그들이 그분이신 줄을 알고 (55)   그 주변의 온 지역을 두루 뛰어다니며 그분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들을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56) 그분께서 마을이나 도시나 촌이나 어디에 계시든지 병든 자들을 거리에 두고 그분께 간청하여 그들이 다만 그분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온전하게 되니라.
  
53-56절. 게네사렛 땅에도 예수님의 소문은 퍼졌고 많은 환우들이 나아왔습니다. 게네사렛 땅은 게네사렛과 가버나움을 포함한 넓은 지역을 일컫는 명칭입니다. 침대를 메고 나온 사람들 그분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것 같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병 고침은 사람들의 믿음과 예수님의 능력이 합해져서 온전함을 얻었습니다(에소존토 ἐσῴζοντο “made whole”). 주님과 합토(hapto ‘touch’)가 되면 어떤 병마든 물러나고 건강을 회복합니다. 온전함이란 “구원하다. 보호하다, 완전하게 만들다”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 생활을 본받읍시다. 그분은 밤늦게 많은 사람들을 돌려보내신 후 홀로 산에 남아 기도하셨습니다. 또 새벽에도(막 1:35), 밤에도, 또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눅 6:12). 오병이어를 가지고 축사하셨습니다. 기도는 능력의 통로이며 승리의 길입니다. 또 우리는 주님의 긍휼을 잊지 맙시다. 주님께서는 바람이 거스르므로 괴로이 노를 젓는 제자들을 외면치 않으셨고 많은 환우들이 자기에게 접근하여 옷가에라도 손을 대기를 원하는 것을 거절치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아는 눈을 가집시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주님께 감사와 큰 영광을 돌립시다. 이 추석(초막절)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동안 잊어버린 감사를 다 드립시다. 풍랑 이는 바다 위로 걸어서 오시는 주님, 많은 병자들을 다 고치시는 주님,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며, 바로 하나님이십니다(요 20:28).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즐겁고 뜻깊은 추석을 주시며 성경적으로 초막절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초막절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풍성히 공급받게 하옵소서(요 7:37-38). 보리빵 다섯과 두 마리 물고기로 수만명을 먹여주신 주님, 오늘도 저희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게 하시며, 주님과 합토의 역사가 일어나 모든 병마가 물러나고, 풍랑과 바람이 거센 인생풍파 중에 오셔서 모든 풍랑을 잔잔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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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성숙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매일 주님의 겸손과 온유, 순종을 배우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10월 2일(월) 찬 575장(통 302) 출 37 언약궤를 만들다
      3일(화) 찬 559장(통 305) 출 38 번제단, 놋 물두멍, 울타리 만들다
      4일(수) 찬 393장(통 447) 출 39 제사장의 옷, 흉패를 짜다, 
      5일(목) 찬 388장(통 441) 출 40 성막 완성, 쉐키나, 구름기둥, 불기둥
      6일(금) 찬 384장(통 434) 레  1 번제에 대한 규례
      7일(토) 찬 383장(통 433) 레  2 소제에 대한 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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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 겟세마네TV & 로이교회의 예약된 Zoom 회의에 귀하를 초대합니다.>
https://us06web.zoom.us/j/9991131127?pwd=YVFycnhvOEhNSmpiWFZJUTA0N0Rhdz09
회의 ID: 99 9113 1127
암호: 12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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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신학교 Gethsemane Mission Seminary

◉ 2023년도 가을학기 개강(2023년 8월 28일 월)
   종강(2023년 11월 27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30분)
◉ 2023년 10월 2일 월 휴강 (정부의 대체 공휴일)
◉장소: 본교 채플실, 네이버에 “겟세마네신학교” 검색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연락처: 032-832-0691, 010-9113-1127
[본 신학교의 신앙노선은 성경이며, 청교도의 신앙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바탕을 두며, 세계 선교를 힘쓰며, 재림하실 예수님을 준비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며,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 진리, 생명임을 믿고, 말씀과 기도로 성화생활하며 구원의 서정을 이루는데 힘쓴다]
◉등록금납부 은행구좌번호: 농협 3019113112731 겟세마네신학교 한국캠퍼스
               문의: 032-832-0691, 010-9113-1127           
◉로이교회 후원계좌: 농협 302 0280 1002 11 YunSam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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