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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어머니는 됫박 쌀 가져다 절구통에 찧으시고/ 나는 연한 솔잎 한소쿠리 훝어서 어머니께로.../
[휴먼에세이] 어머니와 한가위
2023. 09. 29 by 심창근 목사

【뉴스제이】 한가위 어린시절 키 작은 몸둥아리를 됫방에 있는 쌀 항아리 속에 꺼꾸로 담그고 박아지로 박박 바닥을 긁어대던 때, 어머니는 그동안 어디다 숨겨놓았는지 한가위 전날이 되면 어김없이 됫박의 쌀을 가져다가 절구통에 찧으신다.

“애야, 뒷산에 가서 갓 나온 솔잎 좀 훑어오렴”

“애야, 뒷산에 가서 갓 나온 솔잎 좀 훑어오렴”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속 우리들의 어머니)

어머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줄달음으로 뒷산에 올라가 작은 소나무에 갓 나온 연두색 나는 연한 솔잎을 한소쿠리 훝어서 어머니께 갔다 드린다.

“아이구 이녀석, 참좋은 솔잎을 따왔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때 솔잎의 풋풋 상큼한 향기가 온 집안에 퍼진다. 잘 찧은 쌀가루로 반죽을 하고 작은상 주위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다.

삶의 무거운 짐으로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끝에선 버선코 같이 예쁜 송편을 빚어 상위에 가지런히 놓는다. 우리도 질세라 자기가 만든 송편을 표시라도 하듯 주먹처럼 뭉친 송편을 어머니가 만드신 예쁜 송편 뒤에 숨긴다.

잠시 후, 구멍 난 질그릇 작은 떡시루에 송편을 담고 준비한 솔잎을 한켜 한켜 엊는다. 부엌에 걸려있는 가마솥에 떡시루를 올려놓고 김이 새지 않도록 반죽으로 테를 메꾸고 마른소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피면 장작 타는 풋풋한 진한 송진향이 부엌에 가득하다.

노량진 안디옥교회에서 2019년 12월에 은퇴 후에도 여전히 선교사로 하나님 앞에 헌신하기 위해 필리핀 네그로스섬에서 선교활동 했던 당시의 모습.        심창근 목사.
노량진 안디옥교회에서 2019년 12월에 은퇴 후에도 여전히 선교사로 하나님 앞에 헌신하기 위해 필리핀 네그로스섬에서 선교활동 했던 당시의 심창근 목사 모습.      ⓒ심창근 목사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갈구하듯 군침으로 목을 적시며 목이 빠지라 기다리던 때, 잘 익은 송편을 소쿠리에 담아 방안으로 들어오시면 ‘와, 햐, 후!’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솔잎의 진한향이 방안가득 퍼진다. 

송편에 붙어있는 솔잎을 한개 한개 뜯어내고 한입 문 송편에서 고향의 냄새. 어머니 냄새, 한가위 냄새가 난다. 

한가위 둥근달은 그날의 둥근달과 여전히 같은 모습인데. 떡방아 찧던 옥토끼는 마실을 갔나 보이지 않고, 그날 떡 방아 찧으시던 어머니는 솔잎의 향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시고, 아내가 시장에서 사온 송편에선 진한 솔잎 향 대신 거친 삶에 지친 아낙네들이 만들어낸 땀냄새가 코를 찌른다.

오늘 한가위, 어머니와 빚던 송편의 솔잎향이 오늘따라 코끝에 찡하게 다가온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심창근 목사(노량진 안디옥교회 은퇴목사/ 아프리카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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