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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설교
【뉴스제이】 다음 설교문은 2023년 9월 3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열네번째 주일) , 대한예수교장로회 로이교회(인천 송도) 주일예배용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납되는 주일예배를 준비합시다. 9월은 '회개의 달'로 지키며, 다음 예배 자료를 나눕니다. 샬롬샬롬!!! (로이교회 / 합동). [참조 :로이교회는 합정동교회(담임 김효성 목사)와 말씀사역을 협력하는 교회로 한국교회를 위해 자료를 함께 기꺼이 공유합니다]
[영상&읽는 예배] “가버나움 지역 전도를 하시는 예수님” (막2장) 
2023. 09. 02 by 윤사무엘 목사

여호와는 나의 목자(35) “가버나움 지역 전도를 하시는 예수님” (막2장) 
                              “Jesus Preaches at Galilee.” (Mark 1)

본문: 마가복음 2:1-28

요절: “그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더 주인이니라” (막 2:28) 
주제: 환우를 고치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주신 주님을 사랑하자
교독문: 5번(시편8편), 예배의 부름: 롬 1:16-17
찬송: 615장(통 없음), 38장(없음), 134장(84장)

일자: 2023년 9월 3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열네번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로이교회, 예장 합동, 평남노회)
  [예배시간: 매일새벽기도(월-금) 오전6시, 주일예배 오전 11시, 오후 1시]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번지, IBS Tower, 11층 11호

윤사무엘 목사
윤사무엘 목사

9월 첫째주일을 맞이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9월은 “회개의 달”로 정합니다. 매월 첫주일은 성찬식을 가집니다. 성경의 카렌다로 9월 14일은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 “창조절/나팔절/새해시작”이며, 24일은 욤 키푸르(Yom Kippur) 대 속죄일이며, 29일은 숙곳(Succoth) 초막절/장막절/추수감사절입니다.

유대인들은 한해가 새로 시작하는 로쉬 하샤나로부터 40일 전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날(1성전은 BC 588년 아브월 9일, 2성전은 AD 70년 아브월 9일)로 예레미야 애가를 읽으면서 금식하고 회개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이 기간에 세례[침례]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침례자]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것도 이 기간입니다. 공생애를 3년 반동안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회개하며 로쉬 하샤나, 욤 키푸르, 숙곳을 맞이합시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마가복음 2장을 강해하며 묵상합니다. 갈릴리에서 전도하시며 천국복음을 전하신 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 중풍병자를 고치시다 Jesus Heals a Paralytic. (막 2:1-12, 마 9:1-8; 눅 5:17-26)
(1) 수일 후에 예수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the word)을 전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눅5:19)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아들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님께서 곧 중심에[심령으로]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마9:5)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침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1-2절.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한센병 환자)를 만지심(합토)으로 고쳐주신 지 몇 일 후에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는데, 그분께서 어느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리자 많은 사람이 소문을 듣고 모여 문 앞에라도 설자리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도(道)[말씀, 복음]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의 가르치는 사역(teaching ministry), 고치시는 사역(healing ministry), 선포하시는 사역(preaching ministry), 모두가 주님의 말씀의 사역입니다(마 4:23, 9:35).

3-4절. 그때 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paralytic)를 침상에 든 상테로 메워 가지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중풍병은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혀 뇌세포의 일부분이 죽음으로 팔이나 다리 등의 기능이 손상되는 질병입니다. 흔히 오른 뇌가 문제가 있으면 왼편이 마비가 되고, 왼편 뇌가 문제가 있으면 오른편이 마비가 되는 병입니다. 오늘날에도 중풍은 완전히 고치기 어려운 무서운 병입니다. 중풍병자는 남의 도움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이 중풍병자를 데려온 사람들은 가버나움에 모인 무리를 인하여 예수님께 가까이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집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그의 누운 침상을 주님 앞으로 달아내렸습니다. 이들 친구들은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 집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그 중풍병자의 누운 침상을 달아내리는 비상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과 열심은 본받을 만했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더라도 이런 친구들의 열성과 지혜를 가지고 한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5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들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Son, thy sins be forgiven thee.” 이 말씀은 죄와 질병이 관련이 있음을 보입니다. 물론, 욥이나 나사로나 바울의 경우와 같이, 어떤 특정한 질병이 어떤 특정한 죄의 결과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중풍병자의 질병은 근원적으로 죄에서 왔던 것입니다. 세상에 죄가 들어온 이후부터 병도 생겼습니다. 요한계시록 21:4에 보면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는 눈물도, 사망도, 애통하는 것도, 곡하는 것도, 어떤 질병이나 아픈 것도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질병의 원인이 그러하다면 죄사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 중풍병자를 “아들아”로 불러주시면서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십니다. 죄사함은 실상 사람의 질병뿐 아니라 모든 불행의 해결책입니다. 우리 가운데 혹 죄로 인해 질병이 있거든 먼저 죄사함부터 받으십시다. 나사로가 죽은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요 11:4)고 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질병도 있음을 기억합시다.

6-8절. 그런데 어떤 서기관들은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주님의 사역 현장에는 꼭 이런 사람들이 있어 비판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정탐하거나 예수님의 일거수 일거투를 살피는 종교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어떤 점에서는 정당하거나 일리가 있습니다. 입법자와 재판자이신 하나님 한 분 외에 죄를 사할 권한이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은 옳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적어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속으로[심령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심에’라는 원어는 ‘그의 영으로’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서기관들이 속으로 품은 생각을 그의 영으로 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계시며 참으로 하나님이십니다.
 
9-12절. 예수님께서는 아예 그들에게 공개적인 질문을 하십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네 침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는 말은 당장 눈에 보이는 명령이니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보다 쉬운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근원적 해결책을 주시고 또 가르치시기 위해 그것보다 더 어려운 말을 택하십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 사역을 공개하신 것입니다. 

죄사함은 인생의 근본 문제의 해결이요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일을 위해 오셨습니다. 구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의 가장 중심은 구원의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준엄하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는 일은 건강한 청년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주님의 말씀을 믿고 100% 순종하니 그 중풍병자는 일어나 곧 자기가 누웠던 침상을 들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사함에 근거하여 그 병자의 중풍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 광경을 처음부터 본 이 자리에 모인 무리들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말하기를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도다.” 우리도 엄밀한 의미에서 영적인 중풍병자들입니다. 어느 부분이 마비된 사람들이나 죄사함을 받고 나면 모든 것이 회복되어 초인적인 능력이 나옵니다. 

사람이 죄사함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말미암습니다. 요한일서 1:7,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받는다는 것입니다. 

2. 레위를 부르시다 Jesus calls Levi. (막 2:13-17, 마 9:9-13; 눅 5:27-32)
(13) 예수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5)그의 집에 앉아[기대어 누워]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기대어 누웠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님을 따름이러라 (16)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세요?” (17)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I came not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 하시니라

13-16절. 예수님께서 다시 갈릴리 호수에 나가시자 무리가 다 나아왔고 모인 무리들을 가르치십니다. 사람들은 그분이 가시는 곳마다 모여들었고, 그분은 사람들이 있는 곳은 어디에서나, 집에서도(2절) 호숫가에서도 기회 있는 대로 말씀을 증거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말씀 사역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죄인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가버나움은 북방 나라의 상인들과 남방 나라의 상인들이 만나 무역을 하던 시장이 있어 큰 국제 세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 레위는 마태복음을 기록한 사도 마태입니다. 그가 세관에 앉아 있다가 주님을 만나서,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사도기 되었습니다(마 9:9-13). 지금도 그렇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종종 한 사람이 둘 이상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레위는 유대식 이름이고, 마태는 헬라식 이름이었습니다. 세무공무원은 부정과 불법이 많은 직업이었고 당시 동료 유대인들로부터 죄인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예수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일행은 레위의 집에 초청받아 들어가 앉아 잡수셨을 때,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것은 그들 중에 예수를 좇는 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라는 말은 전통본문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되어 있습니다. 서기관들은 보통 바리새인들 중에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그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그들은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먹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가 의인이라면 왜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가?” 그들은 이것을 죄인들과의 교제라고 잘못 생각하였습니다. 당시 보통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가지도 않고 함께 식사나누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세리를 이방인처럼 취급했던 당시 분위로 봐서 예수님의 하시는 행동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교제의 차원이 아니고 영혼 구원과 전도의 차원에서 그들과 함께 잡수신 것이었습니다. 

17절. 예수님께서는 그 서기관들의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의사]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하십니다. 전통사본에 있는대로입니다. 현대역에서는 ‘회개 into repentance’라는 단어를 누락시킵니다. 누가복음 5:32는, 예수님께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말씀하셨다고 증거합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나 병원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것들은 병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병자는 고침을 받을 것이나, 건강한 척하는 자는 그 병으로 죽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죄에서 건져내시는 구세주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구세주는 죄인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죄인이 자신의 죄를 깨우침받고 그 죄를 인식하고 그 죄의 씻음받기를 원한다면, 그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핵심은 회개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죄가 인생의 근본 문제요, 죄사함이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그러므로 구세주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주신 가장 놀랍고 감사한 선물이며, 인생에게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보다 더 감사하고 감격적인 사건은 없습니다. 

예수님 영화 장면
예수님 영화 장면

3. 금식 논쟁 A Questioning about Fasting (막 2:18-22, 마 9:14-17; 눅 5:33-39)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전3:1)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18-20절.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바리새인들의 제자들](전통본문)은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말하기를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질문을 합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과 메시아의 오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유대인의 습관을 따라 정기적인 금식(월요일, 수요일)을 하였다고 봅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셨으나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비록 금식하지 않고 있었지만, 참 생명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그분은 자신을 신랑에, 제자들을 혼인집 손님들에 비유하십니다. 혼인집 손님들은 신랑과 함께 있을 때 금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잔치집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순절 기간(47일)에 일곱 번의 주일이 있는데 칠일은 이 기간에서 빠집니다. 매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날이기에 주일날에는 금식해서는 안됩니다. 금식은 비상한 기도, 결사적인 기도의 형태입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에 그들은 금식할 것입니다. 그들은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고 주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하며 이후에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간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높은 산에서 변모하신 후 내려오셔서 한 간질환자를 고쳐주셨을 때, 전통본문에 보면, “이런 유의 것은 기도와 금식으로가 아니고서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십니다(마 17:21). 현대역(개정)에는 이를 “없음”이라고 되어 있는데 개혁자 성경대로 회복해야 합니다. 또 시리아 안디옥 교회는 주님을 섬겨 금식할 때 성령[성신]의 지시를 받아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웠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최초의 선교사로 파송합니다(행 13:1-3). 

21-22절.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이 비유에서, 낡은 옷과 낡은 가죽부대는 율법 아래서의 옛 생활방식을,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새 가죽부대와, 또 암시된 바, 새 옷은 복음 아래서의 새 생활방식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신약 아래서 우리가 어떤 법적 규정에 얽매여서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자유함과 자원함으로 섬겨야 함을 암시합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성신]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므로 율법 제도로부터 벗어났고 자유를 얻었습니다(롬 7:6; 갈 5:1). 

4. 안식일의 주님 Jesus is Lord of the Sabbath (막 2:1-28, 마 12:1-8; 눅 6:1-5)
(23)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가며 이삭을 자르니 (24)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말하되 ”보시오, 그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신23:25) (25)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삼상21:6, 레24:9)”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골2:16)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마12:8)

23-24절. 한 안식일에 예수님께서는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잘랐습니다. 그때는 맥추절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 12:1은 그들이 배가 고파서 이삭을 잘라먹었다고 말합니다. 그때 당시 매우 경건하고 보수적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보시오, 그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남의 밭을 지날 때 이삭을 자른 것은 율법이 허용하는 것이요 죄가 아닙니다(신 23:24-25). 단지 안식일에 행한 그 행위가 문제입니다.  

25-26절. 주님의 대답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Abiathar)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the shewbread)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사무엘상 21장에 보면,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할 때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간 때가 있었습니다. 아비아달은 아히멜렉(Ahimelech)의 아들로서 성경 역사에서 그 부친보다 더 알려져 있으므로 그의 이름을 언급하신 것 같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기던 초기에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몹시 고팠으므로, 제사장은 그들에게 성전의 거룩한 떡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이 일은 구약의 의식법에 저촉되는 듯하나 그 비상한 때에 부득이한 그 일을 하나님께서는 큰 죄로 여기지 않으셨고 다윗과 그 일행들을 용납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안식일에 손으로 이삭을 비비는 행위가 추수법에 저촉되어도 제자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이삭을 잘라먹었겠는가 하고 이해한다면 큰 비난거리가 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27절.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은 사람을 때문에(디아 δι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안식일 계명을 포함한 모든 율법의 참 목적을 나타내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모든 율법은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주신 것이며(신 10:12-13), 안식일 계명도 그러합니다. 안식일은 사람의 육신적 휴식과 영적 성장을 위하여 주신 규례입니다. 출 23:12, “너는 6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7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물론, 사람이 안식일에 자기 마음에 원하는 바를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약의 안식일 계명은 매우 엄격하여 이 계명을 범하는 것은 큰 죄로 여겨졌습니다. 또 안식일에 매매 행위나 육신을 위한 오락은 중지되어야 합니다(느 13:15-17; 사 58:13). 그러나 안식일의 본 정신은 사람을 위하는 데 있고,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믿음의 성장을 위해 중요하며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자들에게는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사 58:14). 실상,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28절. 예수님께서는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Therefore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고 하십니다. 완전한 사람(vere homo)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에도 주인이 되십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는 날도 토요일에서 주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참된 안식과 자유가 있습니다. 골 2:16-17에서,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증거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인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의 복과 자유를 누리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휴식과 예배의 날입니다. 우리는 이 날 오락과 세속적 일을 금하고 교회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안식일의 참 목적을 이해합시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이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지만, 그것은 결국 사람의 유익을 위해 주신 날입니다. 안식일은 회복의 날입니다. 시간의 회복(New Life), 말씀의 회복(Manna), 관계의 회복(Evangelism), 자연의 회복(Peace and Joy)의 날입니다. 안식일 없는 자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고 세속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을 소망합니다. 주일을 성수합시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가을을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로쉬 하샤나, 욤 키푸르, 숙곳(초막절)이 있는 이 달에 자신을 돌아보며, 나라와 민족을 위한 죄를 회개하게 하시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회개를 철저히 하게 하옵소서. 갈릴리에서 천국복음을 전하시며 회개운동을 가르쳐 주신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저희들도 전도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옵소서.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의 부모님, 형제 자녀들, 친족들, 친구들 모두 전도하여 하나님 나라에 함께 입성하도록 도와주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마란 아타. 아멘.

[성경공부를 위한 질문들]
1. 중풍병자의 침상을 들고 온 네 친구들은 어떻게 주님께 접근했나?(4절)
2. 왜 이 환우의 죄사함을 선언하신 후 치유하셨나?(5, 10절)
3. 중풍병자의 치유과정을 지켜본 군중들의 반응은?(12절)
4. 제자로 부름을 받은 레위의 집에서 식사하시면서 하신 말씀은?(17절)
5.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말씀의 뜻은?(22절)
6. 다윗이 제사장만 먹는 진설병을 먹을 수 있도록 허락받은 이유는?(25절)
7.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28절)이라는 말씀을 간단히 나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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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회개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매일 주님의 겸손과 온유, 순종을 배우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9월 4일(월) 찬 280장(통 338) 출 13 첫 번째 유월절, 출애굽
    5일(화) 찬 278장(통 336) 출 14 진퇴양난의 위기, 홍해가 갈라지다 
    6일(수) 찬 279장(통 337) 출 15 모세의 바다의 노래
    7일(목) 찬 283장(통 183) 출 16 매일 일용할 양식 만나, 메추라기
    8일(금) 찬 282장(통 339) 출 17 르비딤 반석에서 물, 여호와닛시
    9일(토) 찬 289장(통 208) 출 18 이드로가 모세를 만나 행정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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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 겟세마네TV & 로이교회의 예약된 Zoom 회의에 귀하를 초대합니다.>

주제: 겟세마네TV & 로이교회 새벽예배 회의실

https://us06web.zoom.us/j/9991131127?pwd=YVFycnhvOEhNSmpiWFZJUTA0N0Rhdz09

회의 ID: 99 9113 1127
암호: 12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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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신학교 Gethsemane Mission Seminary▣

◉ 2023년도 가을학기 개강(2023년 8월 28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30분)
   가을학기 추가모집(2023년 9월 4~11일)
   종강(2023년 11월 27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30분)
◉ 2023년 9월 4일 월 수업일정. 1교시(에스겔), 원우회, 2교시(소선지서 혹 중독치유) 3교시(테루마, 여호와의 절기), 4교시(원어강독 or 성경변증학)
◉장소: 본교 채플실, 네이버에 “겟세마네신학교” 검색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연락처: 032-832-0691, 010-9113-1127
[본 신학교의 신앙노선은 성경이며, 청교도의 신앙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바탕을 두며, 세계 선교를 힘쓰며, 재림하실 예수님을 준비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며,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 진리, 생명임을 믿고, 말씀과 기도로 성화생활하며 구원의 서정을 이루는데 힘쓴다]
     *입학서류: 입학원서(본교 소정)
               신앙간증서(1페이지)
               고등학교 졸업장, 대학 및 대학원 졸업장 및 성적증명(영문)
               박사과정은 논문 개요 제출
               입학금 10만원, 편입생은 30만원, 과태료(등록 늦음) 10만원
               등록금 신학사 100만원, 목회학 석사 120만원, 
                      신학석사 120만원, 박사과정 150만원(장학금 신청
                      가능)
 *등록금납부 은행구좌번호: 농협 3019113112731 겟세마네신학교 한국캠퍼스
               문의: 032-832-0691, 010-9113-1127           

◉로이교회 후원계좌: 농협 302 0280 1002 11 YunSam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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