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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관호 목사의 행복발전소 171] 자식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 아버지 모습에서 나에게서 발견하다/
[십자가칼럼] 회초리 드신 이유, 이제야 이해합니다
2022. 04. 16 by 나관호 발행인

【뉴스제이】 내가 두 딸의 아빠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란, 부모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어떤 존재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아버지를 고등학교 때 천국으로 떠나보낸 나로서는 40여년도 넘게 흐른 지금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는 '머릿속에 지우개'가 생기 전 아버지 얘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치매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신 후에는 빛바랜 아버지의 흑백 사진을 같이 꺼내 보곤 합니다.

 아버지와 닮았다     ⓒ나관호

아버지의 빡빡머리 학창시절 모습, 마라톤에 참가하셨던 사진, 이모들과 같이 찍은 사진, 어머니와 포즈 잡고 찍은 사진 등. 빡빡머리 사진은 나의 중학교 시절과 비슷해 웃음이 납니다. 너무 닮았습니다. 어머니의 팽팽한 피부는 세월의 흐름을 알게 하고 나의 백일 사진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내 삶을 사진으로 잘 남겨 주셨습니다. 잔칫상 앞에서 만년필을 집은 내 멋진 돌사진은 추억입니다. 

아버지와 같은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과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왼 가슴에 손수건을 찬 일곱 살 내 사진을 보니 뭉클합니다. 아버지가 찍어주신 사진입니다. 그 사진을 보자 어린 시절 기억이 솔솔 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늦둥이 아들을 데리고 여러 곳을 다니셨습니다. 사진도 많이 찍어 주셨고 친구들을 만날 때도 나를 늘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삼대독자 늦둥이 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훈장과 같았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두 가지 인생과목

소나기가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아이들과 비를 맞으며 슬라이딩도 하고 이곳저곳 뛰어다녔습니다. 비에 젖은 채 서로 보면서 웃고, 덜덜 떨면서도 좋아했습니다. 

잔칫상 앞에서 만년필을 집은 내 멋진 돌사진은 추억입니다.     ⓒ나관호

그렇게 비를 맞고 저녁 때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버지가 회초리를 드셨습니다. 감기 걸리면 큰일이 나는데 비를 너무 맞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다리에 멍이 들도록 회초리를 맞았습니다. 그러던 아버지가 갑자기 나를 안고 우셨습니다. 그 눈물의 의미를 부모가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진, 내 사진을 번갈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가끔 친구들을 다방에서 만나셨습니다. 다방에 들어서면 "아줌마, 나는 크리무 주세요"라고 내가 먼저 말했습니다. 커피 대신 크림을 가득 넣은 특수제작 메뉴는 내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다방은 웃음바다가 됐고, 한의사 아저씨는 용돈을 주시곤 했습니다. 어떤 아저씨는 여러 사탕과 과자가 가득한 '종합선물세트'를 사들고 오시곤 했고, 집에 돌아갈 때는 용돈과 선물이 넘쳐났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아버지가 나를 가르치는 인생 공부가 시작됩니다. 첫 번째 과목은 동네 아이들을 집으로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과자와 사탕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직접 나누어 주는 법이 없었습니다. 내가 직접 나누어 주도록 하셨습니다. 외아들인 내가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하신 아버지의 특별교육이었습니다. 팔촌 주영이는 늘 나보다 많은 과자를 먹었습니다. 

두 번째 과목은 받은 돈을 저금통에 저축하는 것이었다. 이순신 장군 저금통은 동전보다 지폐가 많을 정도로 항상 배불렀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두 가지 사랑과목

나는 어린 시절 존 웨인(John Wayne)의 서부영화를 보면서 골목을 누비며 총싸움 놀이를 했습니다. 당시 조그만 돌을 넣어 쏠 수 있는 권총은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존 웨인이 권총을 사용하고 나서 말안장에 있던 장총 꺼내 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장총을 갖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친구들을 만날 때, 삼대독자 늦둥이 아들은 꼭 데리고 다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훈장과 같았습니다.    ⓒ 나관호

그래서 아버지에게 장총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녁 퇴근 시간에 아버지는 장총을 들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총을 사신 것이 아니라 철물점에 가서 직접 만들어 오신 것입니다. 이때의 기억은 내가 부모로서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알게 한 ‘행복한 추억’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아버지의 인생교육입니다,

어느 날, 내가 축구공과 야구 글러브가 갖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렸습니다. 당시 가죽공과 가죽 글러브는 흔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멀리까지 가셔서 공과 글러브, 방망이와 공까지 즉시 사오셨습니다. 나는 아까워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또 사줄 테니 가지고 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없어졌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흔한 물건이 아니기에 누가 사용하는지 살펴봐야 했습니다.

누렁이를 키우는 초등학교 5학년 형이 내 물건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분명 내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눈썰미가 있어서 한번 본 것은 기억을 잘하는 나였기에 범인을 잡은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더니 "니가 본 것이 아니니, 네 것이라도 그냥 놔두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 앞마당에서 놀면서 기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이 누렁이를 풀어놓는 바람에 개에 물리게 됐습니다. 피가 운동화 가득 차듯이 번졌습니다.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알렸고 놀란 아버지는 나를 업고 병원으로 슈퍼맨처럼 달려가셨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시는 유일한 분으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아들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처럼 생각한 사람은 못 봤으니까.

그때 아버지의 마음은 나의 큰딸이 출생 3달 만에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야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대신 입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것의 팔에 링거가 꽂혀있는 것을 보면서 울었으니까요. 그나마 다른 아이들처럼 머리에 링거가 꽂히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핏줄을 못 찾아 머리에 꽂으려는 간호사와 내가 입씨름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아버지를 닮은 나, 나를 닮은 딸들

추억 속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나를 봅니다. 내 속에 그분의 존재가 남아 있습니다. 아니 판박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시원한 이마, 팔자걸음, 자식 사랑, 그림 솜씨도 닮았습니다. 아버지는 명필 붓글씨를 잘 쓰셨고, 동양화를 잘 그리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식을 무인도에 혼자 사는 존재처럼 만들지 않으려는 가치관은 너무 닮았습니다. 난 아버지의 아들이니까요.

중국 여행 가족사진  ⓒ나관호
중국 여행 가족사진 ⓒ나관호

두 딸들에게서도 나를 발견합니다. 역시 피는 못 속입니다. 아이들도 그림을 잘 그리고 글도 잘 씁니다. 편집능력도 있습니다. 내가 기자생활과 편집장 생활을 했었는데 아이들도 미국 고등학교에서 'YEARBOOK' 편집장으로 당당히 활동했고, 미국 고등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YEARBOOK 편집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여받기도 했습니다. 참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딸들과 중국 여행을 갔을 때 일입니다. 나는 베이징 거리를 걷다가 장애인과 어려운 할머니들을 만나면 작은 돈이라도 드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따라하면서 기뻐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둘째가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몇 년 전 아이티로 선교여행 다녀온 후기였습니다. 그때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려는데, 꼭 도와주고 싶은 아이와 할머니가 있었는데 남은 돈이 없어 도와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을 보며 울었다고 합니다. 아이티를 떠나 왔지만 몇 년 동안 그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가 말했습니다.

 “아빠 보니, 내가 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겠어요. 아빠가 우리 아빠라서 좋아요. 감사합니다.”

귀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섬기는 마음은 부모님이 나에게, 내가 딸들에게 물려준 좋은 마음이었습니다. 섬기는 삶을 사셨던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아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두 분의 피가 내 속에 있습니다. 내 안에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딸아이들 안에 아빠인 내가 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입니다. DNA는 무서울(?) 정도로 정확합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며, 딸아이들을 생각하며 행복한 마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나관호 목사 (뉴스제이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 말씀치유회복사역원 원장 / 치매가족멘토 / 칼럼니스트 / 문화평론가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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