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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솔로몬의 행각에서 예수님 증거/ 부활하는 도(道) 전함으로 체포됨/ 예루살렘 교회, 교인수가 5천명으로 성장/
[영성칼럼] 핍박과 부흥 그리고 예수 이름의 능력
2022. 03. 23 by 윤사무엘 박사
윤사무엘 박사
윤사무엘 박사

【뉴스제이】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게 되고 뛸 수 있어, 사도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 예배를 드린 사건은 우리에게 항상 큰 감동을 줍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이 기적에 대해 놀라워하고 있을 때 베드로는 솔로몬의 행각에 가서 수많은 성도 앞에서 담대히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그일로 인해 사도들은 공회(산헤드린)에 체포되어 하루를 갇혀 있었고, 이튿날 공회 앞에서 이 사건을 설명하는 기회를 틈타서 이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님을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사도행전 4:1-4)

베드로와 요한이 솔로몬 행각에 모여든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을 때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 즉 성전의 경비를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와서 그들이 회중들에게 예수님을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道)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체포했습니다. 

날이 이미 저물었기 때문에 이들을 이튿날까지 가두었습니다. 그들은 구약교회 지도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싫어하였습니다. 중생치 못한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할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의 직분자라 할지라도 중생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긍휼과 성신님의 역사로만 깨달을 수 있고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전한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핍박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계셨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며(롬 10:17) 듣고 믿어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엡 2:8). 남자의 수가 약 5천명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솔로몬 행각에서의 전도로 많은 사람들이 믿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수가 약 5천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군대에 갈 수 있는 남자(만 20세~60세)만 계수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3~4를 곱해야 합니다. 이날 성도의 수가 약 2만 명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위협을 느꼈을 것입니다. 

유대인 공회가 소집되었습니다. 이 공회를 히브리어로 산헤드린(Sanhedrin)이라고 합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이스라엘의 최고 의결기관입니다. BC 55년 경에 시리아 지역의 총독으로 있었던 가비나우스는 유대 땅을 다섯 지역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마다 공회를 갖게 했습니다. 그 때부터 산헤드린이 이스라엘에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산헤드린이 이스라엘의 최고 의결기관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산헤드린의 구성원은 모두 71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대제사장 의장과 70인 위원들).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노아의 후손에 의해 만들어진 전 세계 모든 족속의 수가 71에 기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칠십인 제자를 세워 각 지역으로 파송하셨습니다(눅 10장). 예수님께서 70명 제자를 따로 세워 복음을 증거케 한 것은 복음이 전 세계 모든 족속에게 증거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숫자가 70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세시대 때 세워졌던 장로의 숫자가 70명이기 때문에(출 24:1) 70명으로 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산헤드린은 ‘대공회’와 ‘공회’가 있는데 예루살렘에 있는 것이 ‘대공회’였으며 지방에 ‘공회’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대공회’에는 대제사장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산헤드린 공의회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사람이 주님의 은혜로 치유 받은 다음날 아침에 소집된 공회에 관원들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관원’이라는 헬라어 원어는 ‘다스리는 자’라는 말로서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심문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사두개파에 속했습니다. 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당시에 시무하는 대제사장은 유대인 공회의 의장이 되었습니다. 

장로들과 서기관들도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들이었으나 바리새파에 속하였습니다. 서기관들은 율법학자들로서 성경의 사본을 보존하고 필사(筆寫)하고 연구하고 해석하는 학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심문할 때처럼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질문을 던집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지 아니면 자신들의 이름으로나 다른 신의 이름으로 하는지 물은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신님이 충만하여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상한 때에 비상한 방법으로 역사하시며 그분의 종들에게 담대함과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장애우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여러분들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십시오. 여러분들이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의 무죄성(無罪性)을 증거하며 더 나아가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합니다(롬 1:4). 베드로는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자주 표현하였습니다(2:22; 3:6; 10:38). 그것은 사람으로 오신 역사적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분께서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독특한 인격 곧 신인(神人)이십니다. 그분은 살아계셔서 지금도 신성(神性)의 영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분의 이름이 능력이 있고 그 이름이 이 앉은뱅이 장애우를 낫게 한 것입니다. 

윤사무엘 박사 (겟세마네신학교 총장 / 겟세마네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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