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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초대 장관을 지낸, 최고의 지성/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세워 문화영재 양성/ 맏딸 이민아 목사 잃고, 기독교에 귀의/ 깨달은 생의 진실, “모든 게 선물이었다”/
‘우리 시대의 지성’ 이어령 교수 별세 ...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
2022. 02. 26 by 배성하
우리 시대의 지성 이어령 교수
이어령 교수

【뉴스제이】 배성하 기자 = 문화부 초대 장관(1990~1991)을 지낸 이어령(88)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26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고인의 유족은 “오늘 낮 12시 20분쯤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큰 통증 없이 돌아가셨다”며 “유언은 따로 남기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고 이어령 교수는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표 석학이자 우리 시대 최고 지성으로 불렸다. 노태우 정부 때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이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문학평론)으로 활동했다.

이어령 교수는 서울대 재학 중 만난 강인숙 건국대 명예 교수 사이에 2남 1녀를 뒀다. 강 교수는 “집에 오면 늘 글을 썼고, 몇 년에 한 번은 1년씩 외국에 나가 책 한 권을 써냈다”고 회상했다. 그는 2012년 맏딸 이민아 목사를 암으로 잃었지만, 딸의 권유로 기독교에 귀의했다. “지성의 종착역은 영성(靈性)”이라고 했다.

“하나님도 인간이 너무 고통스러워하면 가엾게 여겨서 잠시 그 자비로운 손으로 만져줄 때가 있다. 배 아플 때 어머니 손은 약손이라고 만져주면 반짝 낫는 것 같지 않나. 그때 나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는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에 대해 “모든 게 선물이었다”고 했다.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

故 이어령 교수는 193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내가 돌상에서 돌잡이로 책을 잡은 걸, 어머니는 두고두고 기뻐하셨다”라며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나는 책을 읽고 상상력을 키우는 인간이 됐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그는 서울대 국문학과 재학 중이던 1956년 비평가로 등단한 뒤 문학을 바탕으로 인문학 전반을 아우른 지성의 필력을 휘두르면서 60여 권의 저서를 냈고, “짧게 말하겠다”면서도 홀로 서너 시간은 족히 쏟아내는 달변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2007년, 일본 도쿄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2007년, 일본 도쿄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어령은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것을 비롯해 10여개가 넘는 직함을 거쳤다. 경기고교 교사,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월간 문학사상 발행인, 조선일보 객원 논설위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이어령은 1956년 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면서 기성 문단을 향해 “무지몽매한 우상을 섬기기 위하여 그렇듯 고가(高價)한 우리 세대의 정신을 제물로 바치던 우울한 시대는 지났다”라고 통렬하게 비판해 신세대 문학의 기수가 됐다. 

이어령은 1982년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펴내 일본 사회의 심층을 분석하면서 일본의 하이쿠와 분재, 쥘 부채 등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축소 지향’이 트랜지스터를 비롯한 소형 상품 생산의 성공 요인이라고 풀이했다. 이어령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을 총괄 기획했다. 개회식 마무리를 침묵 속에 홀로 굴렁쇠를 굴리는 소년의 등장으로 꾸미면서 정적과 여백의 미학을 전 세계에 제시했다.

이어령은 1990년 문화부 장관에 취임한 뒤 국립국어원을 세워 언어 순화의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장관으로서 가장 잘 한 일은 ‘노견(路肩)’이란 행정 용어를 ‘갓길’로 바꾼 것”이라고 자평하길 좋아했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세워 문화 영재 양성의 기반도 닦았다. 

고인은 지난해 10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장례는 5일간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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