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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다음 설교문과 예배자료는 2022년 2월 20일 주일 (주현절 후 아홉번째 주일) 대한예수교장로회 겟세마네교회(인천 송도) 주일예배용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납되는 주일예배를 준비합시다. 2월은 '경건의 달'로 지키며, 다음 예배 자료를 나눕니다. 샬롬샬롬!!!
[읽는 예배] “소망의 하나님” (롬15장) ...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022. 02. 17 by 윤사무엘 목사

하나님께 더 가까이(8): “소망의 하나님” (롬15장) 
                               God of hope

본문: 로마서 15:1~33
요절: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주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로부터 기쁨과 평강을 얻어 이웃에게 나누자
교독문: 87번(계 21장), 예배의 부름: 호 2:14-15
찬송: 546장(통 399장), 488장(통 539장), 490장(통 542장)

일자: 2022년 2월 20일 주일 (주현절 후 아홉번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교회) 

윤사무엘 목사
윤사무엘 목사

오늘부터 예배 장소를 황앤씨로펌(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 !BS타워 11층 6호(지하철, 인천1호 국제업무지구역 출구 5번, 매주일 예배. 오전 10시 30분)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이 장소를 허락하신 황우여 장로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로마서 15장을 강해하겠습니다. 본장은 바울의 앞으로 전도사역을 밝히면서 소망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는 아시아 전도와 그리스 전도는 마무리 하고 이제 서쪽 끝인 스페인(서바나) 선교를 계획하면서 로마 교회가 이를 후원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1. 소망의 하나님(롬 15:1-13)
(1) 우리 강한 자들이 마땅히 연약한 자들의 약함을 담당하고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 (2) 우리 가운데 각 사람은 선을 위하여 자기 이웃을 기쁘게 하고 덕을 세우자. (3)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기록된 바 "주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임하였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이는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소망을 지니게 하려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서 서로 같은 생각을 갖게 하사 (6) 한 생각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길 원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우리를 받아들이신 것같이 너희도 서로를 받아들이라. 

(8) 이제 내가 말하노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할례의 일꾼이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확고히 하시고 (9)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인하여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니, 기록된 바와 같이 "이로 인하여 내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주님께 자백하고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라고 하였느니라. (10) 또 다시 말하되 "너희 이방인들아, 그 분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다시 "너희 모든 이방인들아, 주님을 찬양하라.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분을 찬양하라." 하였느니라. (12) 또 다시 이사야가 말하기를 "이새의 뿌리, 곧 이방인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이방인들이 그분에게 소망을 두리라."고 하였느니라. (13) 이제 소망의 하나님께서 너희를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믿음 안에서 충만케 하시어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2절. “우리 강한 자들이 마땅히 연약한 자들의 약함을 담당하고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 우리 가운데 각 사람은 선을 위하여 자기 이웃을 기쁘게 하고 덕을 세우자.” 이 말씀은 14장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마지막 권면으로 이어집니다. ‘강한 자’는 믿음과 지식이 있는 자를 말하고, ‘연약한 자’는 믿음과 지식이 부족하고 마음이 약한 자를 말합니다. ‘연약한 자의 약함’은 마음의 의심과 거리낌, 불안과 근심과 걱정, 잘못된 생각 등을 가리킬 것입니다. 교회에는 믿음과 진리 지식이 부족한 자들이 있기 때문에, 믿음과 지식이 있는 자는 부족한 자를 비난하거나 너무 몰아붙이지 말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고 그를 품어주고 감싸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웃의 유익을 위해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또 이것이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3절.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기록된 바 ‘주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임하였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비방을 받으셨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왜 그러하셨는가요? 그분은 친히 말씀하신 대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살지 않으셨고 다른 이들을 위해 사셨습니다. 그분의 발자취는 우리에게 본이 됩니다. 

4절.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이는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소망을 지니게 하려 함이니라.” 15장의 키워드인 ‘소망’(elpis)가 등장합니다. 다윗왕은 사람들에게 비방받는 것을 체험하였고 그것은 메시아께서 당하실 고난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일들을 성경에 기록하신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함입니다. 성경은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게 하는데 일차적 목적이 있지만, 그것은 또한 구원얻은 우리에게 인내와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고난의 긴 세월을 통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들을 조급하게 행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고난의 현실 속에서 성경의 교훈을 통해 하나님의 인내와 위로를 얻고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천국과 부활과 영생,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소망의 중요한 내용들입니다. 

5-7절.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서 서로 같은 생각을 갖게 하사 한 생각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길 원하노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우리를 받아들이신 것같이 너희도 서로를 받아들이라.” 하나님께서는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며 인내를 교훈하시는 분이십니다. 또 그분은 평강의 하나님이시며 고난의 세상을 사는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내심과 위로로 힘을 내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서로 뜻을 같이하고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고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사랑은 서로 생각과 마음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서로 받는 것이며 상대에게 선을 베풀고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치는 단지 외형적 일치가 아니고, 생각과 사상의 일치이어야 합니다. 교인들의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는 것이 진정한 일치입니다(고전 1:10).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와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만 가능한 일치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여러 면에서 부족한 죄인들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납하셔서 구원하심과 같이, 우리도 약점들을 가진 형제들을 용납하고 서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단을 용납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는 어떤 비본질적인 문제들이나 지엽적 문제들에 있어서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을 용납해야 합니다.

8-12절. “이제 내가 말하노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할례의 일꾼이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확고히 하시고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인하여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니, 기록된 바와 같이 ‘이로 인하여 내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주님께 자백하고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라고 하였느니라. 또 다시 말하되 ‘너희 이방인들아, 그 분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또 다시 ‘너희 모든 이방인들아, 주님을 찬양하라.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분을 찬양하라.’ 하였느니라. 또 다시 이사야가 말하기를 ‘이새의 뿌리, 곧 이방인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이방인들이 그분에게 소망을 두리라.’고 하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으셨으나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견고케 하시고 특히 할례 없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증거하기 위해 할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방인들은 할례 없는 자 즉 하나님의 언약에서 제외된 자들, 정죄된 자들이었으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입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구속(救贖)함을 얻었고 죄 용서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받으신 바가 되었습니다.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는 그리스도께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듯이, 우리도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낮추고 오래 참고 서로 용납해야 하며, 사상과 고백에 있어서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12절은 이사야 11:1과 이사야 11:10을 인용하면서 “열방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리라”는 말씀이 13절과 연결됩니다.

13절. “이제 소망의 하나님께서 너희를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믿음 안에서 충만케 하시어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소망을 주십니다. 소망의 하나님께서 천국과 부활과 영생,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약속하십니다. 성도는 미래의 것을 소망할 뿐만 아니라, 현재 믿음 안에서 풍성한 기쁨과 평강을 누립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바로 이런 복을 주시기 위해 성신님을 위로자와 격려자로 우리 속에 보내주셨습니다. 믿음과 기쁨과 평강과 소망의 충만--이것이 성도의 정상적 삶의 모습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는 카프카스의 바위에 묶인 채 낮이면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이면 회복되는 형벌을 당하였습니다. 제우스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명하여 흙으로 여신을 닮은 여자를 빚게 하여 탄생한 처녀를 판도라(Pandora)로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리고 여러 신들에게 자신의 가장 고귀한 것을 선물하게 하였습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는 아름다움과 함께 교태와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을 주었고, 아테나는 방직 기술을 가르쳤으며, 헤르메스는 재치와 마음을 숨기는 법, 설득력 있는 말솜씨 등을 선사하였습니다. 이로써 ‘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이라는 뜻의 판도라가 탄생한 것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신들이 판도라에게 갖가지 나쁜 성질만 주고는 외모만 매혹적이고 아름답게 꾸몄다고 합니다. 제우스는 판도라의 탄생을 축하하며 상자를 주면서,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경고를 주었습니다. 판도라는 신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와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카프카스로 형벌을 받으러 끌려가기 전에 동생에게 제우스가 주는 선물을 받지 말라고 당부한 적이 있으 나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에페메테우스는 판도라의 미모에 반하여 형의 당부를 저버리고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판도라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제우스가 준 상자를 열어보니, 상자 안에는 온갖 욕심, 질투, 시기 그리고 각종 질병 등이 상자에서 빠져나갔습니다. 놀란 판도라가 황급히 뚜껑을 닫았기에 희망은 빠져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인간은 이전에는 겪지 않았던 고통을 영원히 떨쳐 버릴 수 없게 되었으나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간직하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판도라의 상자’는 인류의 불행과 희망의 시작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유명합니다. 평화로웠던 세상은 금세 험악해졌습니다. 결국 상자 안에 있던 악은 다 빠져나가고 희망만이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안에 남아 있는 것이 한 줄기의 희망이란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롬 5:3~5에서는 소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 소망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졌기 때문이라.” 예수님은 오직 우리의 미래요 희망이요 구원이심을 믿는 자에게는 밝은 미래가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마음 문, 두드리시는 예수님

찬송 42장(통 11장) 4절 가사에 “떨면서 바치는 이 작은 예물도 주님은 귀하게 받으시리 어둔밤 지나고 새아침 맞으니 믿음과 소망을 늘 주시리” 95장(통 82장) 5절에 “나의 진정 사모하는 예수님 음성조차도 반갑고 나의 생명과 나의 참 소망은 오직 주 예수 뿐일세” 488장(통 539장) 1절에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이 아주 없도다.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484장(통 533장) 1절 “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주없이 모든 일 헛되어라. 밤이나 낮이나 주님 생각 잘때나 깰 때 함께 하소서.” 4절 “영원한 주님 내 승리의 주 하늘의 기쁨을 주옵소서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만유의 주여 소망되소서” 

욥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며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But he knoweth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th tried me, I shall come forth as gold.” (욥 23:10)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을 떠나기 전에 그의 모든 소유를 친지들에게 몽땅 나누어 주었습니다. 한 친구가 ‘대왕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으십니까 ?’라고 묻자 ‘남기고 말고요. 나는 내 소망을 남겼습니다’라고 했답니다. 얼마나 멋진 대답입니까 ? 소망을 품는 사람은 밤중에 걷지 않고 새벽에 걷습니다. 일몰을 향해 걷지 않고 일출을 향해 걸어 나갑니다. 발명의 왕 에디슨이 예순 일곱 살에 화재를 만나 재산을 태웠을 적에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이제 겨우 시작인 걸 뭐’ 

현제명(玄濟明, 1902~1960)선생님이 작곡 작시한 “희망의 나라로”는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힘을 주었던 곡입니다. 60년대와 70년대 초까지 KBS라디오에서 아침방송 혹은 정오뉴스 전후에 테너 이인범 교수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자주 들었습니다. 힘찬 테너의 목소리는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우리나라가 혼돈과 절망의 상태에 있을 때 이 고난의 바다를 헤치고 희망의 나라를 건설하자는 노래라고 기억됩니다. 1절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산천 경개좋고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 (후렴) 돛을 달아라 부는 바람 맞아 물결 넘어 앞에 나가자 자유 평등평화 행복 가득찬 곳 희망의 나라로. 2절 지나가고 환한 새벽온다 종을 크게 울려라, 멀리 보이나니 푸른 들이로다 희망의 나라로” 인간은 누구나 앞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시간의 제약성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기대를 거는 것은 꿈이요, 현재의 불만족을 미래에 만족으로 채워보자는 것이 이상(vision)이요, 현실생활에 활력소를 제공하며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 대망(ambition)일 것입니다. 이제 세계가 다시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볼 뿐입니다. 

오 헨리(O Henry, 1862~1910)의 <마지막 잎새 The Last Leaf>에서 화가 지망생 소녀 수(Sue)와 존시(Johnsy)는 예술가 마을인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에서 공동생활을 합니다. 몸이 약한 존시는 폐렴(pneumonia)에 걸리고 곧 죽을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수는 존시에게 끊임없는 격려로 용기를 주지만 존시의 부정적인 말 때문에 자꾸만 힘들어합니다. 존시는 창문 밖에서 보이는 담쟁이 잎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담쟁이 잎이 다 떨어지면 자기도 죽을 거라는 몹쓸 생각을 합니다. 수는 이웃집 베어먼(Behrman) 할아버지에게 존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날 밤 폭풍우가 매섭게 몰아쳤지만 옆집 담쟁이 덩굴의 잎사귀 하나만은 끝까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걸 보면서 존시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반성하고 삶에 대한 의지를 찾게 됩니다. 그 뒤 존시가 완전히 회복되자, 수는 베어먼 영감이 절망에 빠진 존시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밤새도록 폭풍우를 맞으며 담쟁이 잎을 그리다가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그녀는 이것을 베어먼의 "걸작"이라고 표현합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나(키에르케골), 소망은 새생명의 출발입니다.

롬 15:1-13은 첫째로, 우리는 연약한 자들을 품고 그들의 약점을 감싸주고 담당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고 이웃을 기쁘게 하고 그에게 선을 베풀고 유익을 주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 받읍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같은 이방인들,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었던 자들, 죄 가운데서 방황했던 자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연약한 교우들을 사랑하며 서로 포용합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내와 안위로 소망을 굳게 가집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참된 믿음 안에서 기쁨과 평강의 충만함을 누리며 또 성신님의 능력으로 소망의 확고함을 가집시다. 우리는 천국을 소망하고 부활과 영생을 소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합시다.

2. 평강의 하나님(롬 15:14-33) 
(14) 나의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 관하여 내 스스로 확신하기로는 너희도 선으로 충만하고 모든 지식으로 가득 차서 서로를 권고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니라.
(15) 그러나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어떤 부분은 아주 담대하게 썼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인하여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 함이라. (16) 이는 나로 이방인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복음을 수행하게 하심으로써 이방인들을 제물로 드리는 일이 성신님으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수 있도록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속한 일에 자랑하는 것이 있느니라.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시려고 나를 통하여 말과 행위와 표적과 이적과 또 하나님의 영의 능력으로 이룩하신 것 이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겠노라. (19)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쿰 근방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전파하였노라. 

(20) 또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한 곳에서만 복음을 전파하려고 노력하였으니, 이는 다른 사람의 기초 위에다 짓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와 같이 "그분에 관한 소식을 접하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닫게 되리라."고 하였느니라. (22) 이로 인하여 내가 너희에게 가려던 것이 여러 번 방해를 받았느니라.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더이상 없고, 또 수년 동안 너희에게 가고 싶은 큰 소원이 있었으니 (24) 스페인으로 갈 때에 너희에게로 가겠노라. 이는 내가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싶고, 우선 너희와 잠시 교제로 기쁨을 나눈 후에 너희의 전송을 받아 그 곳으로 보내어지기를 바람이니라. (25) 그러나 이제 내가 성도들을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케도니아와 아카야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얼마를 기부하였음이니라. (27) 그들은 진실로 기뻐하였으며 또한 저들에게 빚진 자니, 이는 이방인들이 저들의 영적인 것에 참여하였으면 물질적인 것으로 저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함이라.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리라. (29) 내가 너희에게 갈 때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충만한 복으로 갈 것을 확신하노라. (30) 형제들아,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너희의 기도로 나와 함께 분투하되 (31) 나로 유대에 있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구출되게 하며 또 예루살렘을 위한 나의 섬김이 성도들에게 받아들여지도록 하고 (32) 또 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더불어 새 힘을 얻도록 기도하라. (33) 이제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바라노라. 아멘.

14-15절. “나의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 관하여 내 스스로 확신하기로는 너희도 선으로 충만하고 모든 지식으로 가득 차서 서로를 권고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니라. 그러나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어떤 부분은 아주 담대하게 썼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인하여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을 “나의 형제들아” 하고 겸손하게 부릅니다. 마태복음 23:8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한분이니 곧 그리스도시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고 하십니다.  

바울은 또 그들이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 즉 복음과 진리의 지식이 차서 서로 권할 수 있는 자들임을 확신합니다. 요한일서 2장에서 우리 속에 성신님의 기름 부음이 있고 그가 우리를 가르치시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가르칠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말합니다(요일 2:20, 21, 27). 바울은 그들이 복음에 대해 이미 믿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에게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도의 직무를 받은 은혜를 인해 담대히 몇 마디 썼다고 겸손하게 표현합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배웠을지라도 아는 것을 다시 복습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서로 권면하고 또 권면을 듣고 받아야 할 것입니다. 

16-18절. “이는 나로 이방인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복음을 수행하게 하심으로써 이방인들을 제물로 드리는 일이 성신님으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수 있도록 하심이라. 그러므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속한 일에 자랑하는 것이 있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시려고 나를 통하여 말과 행위와 표적과 이적과 또 하나님의 영의 능력으로 이룩하신 것 이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겠노라.” 16절에서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지만(벧전 2:5, 9)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특히 자신을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또 이 전도의 일은 성신님 안에서 거룩하게 되는 일입니다. 전도는 성령의 사역이며 구원도 성신님의 사역입니다. 17-18절에서 바울의 전도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의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또 그 목적은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로마서 1:5,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분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로마서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믿음은 마음의 순종이며 참으로 믿은 자들은 하나님의 교훈에 순종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전도 사역에 성신님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바울을 통하여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과 성신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말로만 전파되지 않고 성신님의 능력으로 확증된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날도 성신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또 그 말씀과 더불어 활동하십니다. 외형적인 기적들은 교회 안에서 오래 전에 사라졌을지라도 사람들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기적적 변화의 역사는 교회 역사상 계속되어 왔습니다. 

19-21절.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쿰 근방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전파하였노라. 또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한 곳에서만 복음을 전파하려고 노력하였으니, 이는 다른 사람의 기초 위에다 짓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 바와 같이 ‘그분에 관한 소식을 접하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닫게 되리라.’고 하였느니라.” 일루리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북서쪽 해안 지방이며 그 서쪽 바다 너머에 로마가 있었습니다. 시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을 받아 전도 활동을 시작했던 바울은 소아시아는 물론,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 또 그 지방의 북서쪽 해안에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충만히 전파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이 이미 들어간 지역은 피하고 복음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곳을 찾아 개척 전도에 힘썼습니다. 바울의 전도의 열심과 개척 정신은 오늘날 모든 전도자에게 본이 됩니다. 교회는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하고 특히 복음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곳들에 전도자들을 파송해야 합니다. 

22-24절. “이로 인하여 내가 너희에게 가려던 것이 여러 번 방해를 받았느니라.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더이상 없고, 또 수년 동안 너희에게 가고 싶은 큰 소원이 있었으니 스페인으로 갈 때에 너희에게로 가겠노라. 이는 내가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싶고, 우선 너희와 잠시 교제로 기쁨을 나눈 후에 너희의 전송을 받아 그 곳으로 보내어지기를 바람이니라.” 사도바울은 로마로 가려고 소원하였지만, 그의 소원은 여러 번 좌절되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여러 번 막힐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소원이 성경적이고 우리의 이성의 건전한 판단에 따른 것일진대, 낙심치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그의 처한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자기의 일을 등한히 하며 다른 큰일만을 꿈꾸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일이 맡겨질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최선을 다하는 동안에도 줄곧 로마로 가려는 소원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의 미래의 전도 계획은 로마를 거쳐 당시의 세계의 서쪽 끝인 스페인(서바나)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기도제목이었고 그의 사명의 계획이었습니다. 로마의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며 힘을 얻고 그들의 후원으로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25-27절. “그러나 이제 내가 성도들을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케도니아와 아카야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얼마를 기부하였음이니라. 그들은 진실로 기뻐하였으며 또한 저들에게 빚진 자니, 이는 이방인들이 저들의 영적인 것에 참여하였으면 물질적인 것으로 저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함이라.” 바울에게는 전도가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헌금도 중요하였습니다. 그것은 선한 열매가 귀합니다. 성도의 구제헌금은 그의 믿음과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말뿐 아니라, 시간과 수고와 돈도 포함할 것입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교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 돕기를 원하였습니다. 실상 이방인 교회는 유대인 교회에 빚진 자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통해 구원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 교회가 어려울 때 이방인 교회가 물질로 그들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28-29절.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리라. 내가 너희에게 갈 때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충만한 복으로 갈 것을 확신하노라.”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성도들의 구제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는 그들의 사랑의 열매인 구제헌금을 예루살렘 교인들에게 전달하고 성도들의 사랑을 확증한 후 로마를 지나 스페인으로 가려고 계획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로마 교인들에게 충만한 축복, 곧 말씀의 축복을 가지고 갈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29절에 개혁자들의 성경(킹제임스)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충만입니다. “복음의”를 보충하시기 바랍니다.

30-33절. “형제들아,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님의 사랑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너희의 기도로 나와 함께 분투하되 나로 유대에 있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구출되게 하며 또 예루살렘을 위한 나의 섬김이 성도들에게 받아들여지도록 하고 또 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더불어 새 힘을 얻도록 기도하라. 이제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바라노라. 아멘.” 로마의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또 성신님의 사랑을 힘입어 기도를 권면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이 그와 힘을 같이하여 그를 위해 기도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바울은 특히 자신을 위해 기도를 요청합니다.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의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부족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요청한 기도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유대의 순종치 않는 자들로부터 구원해주시기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루살렘 교인들에게 구제헌금을 전달함으로 그들을 섬기는 일이 그들에게 받음직하게 되기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그들에게 나아가게 하시기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로마로 가기를 원한 바울의 소원은 몇 번 좌절되었으나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져 그들과 교제하며 며칠 편히 쉬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끝으로 평강의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시며 참된 평안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16에서도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망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소망을 바라보며 생명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때마다 일마다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 490장(통 542장)
1절 주여 지난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
2절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될 때 내게 소망을 조셨으며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하게 보이도다
3절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후)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치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전쟁과 테러와 전염병과 사고의 소식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바라보게 하시고 소망의 주님안에서 기쁨과 평강을 주옵소서. 절망과 불신과 고통을 넘어 주님의 평화속에서 날마다 승리하게 하옵소서. 오늘부터 새로운 예배장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황앤씨로펌과 항상 함께 하옵소서. 2022학년도 봄학기를 시작하는 겟세마네 신학교를 축복하시며 교수님들과 재학생들, 동문들과 후원교회들에게 주님의 살롬으로 풍성히 채워주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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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1) 경건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는 믿음, 소망, 사랑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2월21일(월) 찬 94장(통 102장), 371장(통 353) 겔17장(독수리와 포도나무)
   22일(화) 찬 94장(통 102장), 371장(통 353) 겔18장(아들의 의)
   23일(수) 찬 93장(통  93장), 322장(통 357) 겔19장(애가) 
   24일(목) 찬 93장(통  93장), 322장(통 357) 겔20장(유다의 멸망예고)
   25일(금) 찬 90장(통  98장), 321장(통 351) 겔21장(여호와의 칼)
   26일(토) 찬 90장(통  98장), 321장(통 351) 겔22장(벌 받을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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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신학교 봄학기 수업(내일)
 ***수업일정: 1교시(10:00-11:30), 기도회(11:40-12:00), 점심(12-1시), 
             2교시(13:00-14:30), 3교시(14:40-16:00), 4교시(16:00-17:00)
2월 21일. 월. 1. 성경신학(윤사무엘) 2. 한국신학(유석근) 3. 테필린(김인자, 학석사반); 조직신학(박우희, 박사반), 4. 성경고사(오선화); 세미나(윤사무엘)
◉장소: 수원향기로운나무 교회(이태환목사 시무), 디모데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연락처: 010-9113-1127, 010-4907-7483. 010-7307-3589

◉편입학구비서류: 입학원서(본교소정), 고교졸업 이후 모든 학교 졸업증명 및 성적증명(영문), 신앙간증문, 여권 사진페이지 사본, 명함판 사진2매, 입학전형료 10만원, 편입학비 30만원, 학비(학기당 학사 100만, 석사 120만, 박사과정 150만), 졸업장을 미국학교 원할 때 학사비 별도. 농협 302-0280-1002-11
◉특전: 
     1) 본교 졸업자는 학사협정으로 미국 신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2) 교역자 석사(M.Div) 졸업자는 목사 안수, 선교사 파송 받을 수 있다.
     3) 1년 3학기 공부를 할 수 있다(계절 학기)
     4) 장학금 신청할 수 있다(부부, 작은 교회 목회자, 목회자 가족) 
학기: 학사 8학기, 석사: M.Div 6학기, Th.M. 4학기, MCC 혹 MCE 4학기, 박사: D.Min.  D.C.C. , D.C.E. 5학기, D.Miss 6학기, Th.D. 7학기, Ph.D. (Th.D. 후 2학기) <계절 학기를 1년에 한 차례 개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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