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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백합 같은 동무’, 부활능력 담겨/ 아리마대 요셉, 가족묘에 예수님 모셔/ 예수님 시신 놓인 장소, 지성소 언약궤/
[영성칼럼] “주님께서 부활하셨네!”...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다”
2021. 03. 31 by 윤사무엘 목사

【뉴스제이】 “주님께서 부활하셨네!”(Jesus Christ is really risen!) 기쁜 소식을 만방에 전합시다. 그리스도인의 지상명제는 땅 끝까지 주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직 성신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뒤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올해 벚꽃은 98년 만에 서울에서 일찍 핀다고 합니다. 이번 부활절에 전국에 벚꽃, 목련, 개나리, 매화, 진달래, 튜립, 등 꽃동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지난해 이어 올해도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국민들에게 봄의 향연은 어김없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상화시인(1901-1943년, 대구 서문로)이 1926년에 <개벽>지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처럼 코로나로 빼앗긴 우리나라에도 봄은 왔습니다. 대구 제일교회 뒷동산에 가보면 “청라언덕”이 있습니다. 지금은 의료선교 박물관이 있는 건물이 북장로교 선교사 스윗즈와 챔니스 선교사 사택이었는데 푸른 담쟁이넝쿨로 뒤덮인 사택이라 있는 곳이라고 ‘청라(靑羅)언덕’이라고 부릅니다. 

1922년 박태준 선생님(1901-1986년)이 마산 창신학교 교사였을 때 “동무생각”이란 가사를 적어준 것을 동료이시던 이은상 선생님(1903-1982년)이 곡을 붙인 것입니다. 박태준 선생님이 계성학교에 다닐 때 청라언덕을 오르내리면서 이웃에 사는 한 여학생(신명학교)에게 애정이 가서 ‘백합 같은 동무’를 봄, 여름, 가을, 겨울 주제로 4절에 담았습니다. 결국 그 여학생은 일본 유학길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당시 일제 강점기여서 “나라 독립”을 생각하며 백합 같은 동무를 한민족으로 승화하여 부르면서 국민 가곡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계절에 주님을 생각하며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라고 ‘백합 같은 동무’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축 부활절. 주님 부활하셨습니다.” -윤사무엘 목사 부부        ⓒ윤사무엘

부활절 날짜를 정하는 것은 AD 325년 니케아 교회 회의에서 정한대로 “춘분 다음에 오는 만월이 지난 첫 주일”입니다. 계산법이 차이(유월절 보름날 The Paschal Full moon)를 산출하는 계산)가 나서 올해 유대인(유대력 5781~5782년)들은 유월절이 3월 28일이고 그 다음날부터 무교절을 지켜 4월 5일까지 무교절입니다. 세계기독교회에서는 올해 부활절을 오늘(4월 4일)로 지킵니다. 

요한복음 20장에 의하면 부활절 첫날 아침 일찍 갈릴리에서 온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부어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3일전에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나서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 총독을 찾아가서 자기가 최근에 구입한 가족묘에 예수님의 시신을 모시고 싶다고 부탁하여 허락받은 묘지(지금 예루살렘 북쪽 문인 다메섹 문에서 200미터 떨어진 '정원무덤' The Garden Tomb)의 위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돌무덤에 와서 입구의 돌이 돌무덤 옆으로 옮겨진 것을 보고 이에 달려가서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인 요한에게 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대제사장 군인들이 주님을 돌무덤에서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하자, 베드로와 요한이 나아가 돌무덤으로 갔습니다. 두 제자들이 같이 달려갔는데 요한이 베드로를 앞질러 달려가서 먼저 돌무덤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몸을 구부려 안을 들여다보고 세마포(a linen)가 놓인 것을 보았으나 아직 들어가지는 아니하였습니다. 그 뒤 시몬 베드로가 그를 따라와서 돌무덤에 들어가 보매 세마포가 놓여 있고 또 그분의 머리 주변에 있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함께 개인 채 한 곳에 따로 놓여 있음을 확인합니다. 그제야 돌무덤에 먼저 왔던 요한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으니 이는 그들이, 그분께서 반드시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어나야 하리라(요 11:26), 하신 성경 기록을 아직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두 제자들이 다시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바깥의 돌무덤에 서서 슬피 울었습니다. 그녀가 슬피 울면서 몸을 구부려 돌무덤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몸이 놓였던 곳에 하나는 머리 쪽에 다른 하나는 발 쪽에 앉은 것을 보게 됩니다. 성막시절 때 지성소 위의 속죄소(Mercy seat)의 좌우편에 그룹의 천사가 날개를 연하여 있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시신 놓인 장소가 바로 지성소의 언약궤와 속죄소(시은좌)인 것을 증거합니다. 

천사들이 그녀에게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슬피 우느냐?” 하니 마리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입구에 누군가 있음을 느낍니다. 마리아는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합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슬피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그녀는 그분을 동산지기로 생각하고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당신이 그분을 여기서 옮기셨거든 그분을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일러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그분을 모셔 가리이다,”하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마리아야,” 하시거늘 그녀가 돌이켜 그분께, “랍보니여(선생님이여),” 예수님께 안기려고 했는지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하라, 하시니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자기가 주님을 보았으며 또 그분께서 자기에게 이것들을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요 20:1-18)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최초의 부활의 증인(witness)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부활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인간적으로 실패와 절망의 장소가 재기와 성공의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믿음으로 마리아는 무덤을 떠나지 않고 주님을 만났듯이, 우리도 이 시간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마리아여” 불러주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각각 부르십니다.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교회 담임 / 겟세마네신학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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