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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뉴스
순종과 나눔 그리고 애통함 
2020. 11. 10 by 이건종

【뉴스제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잠언 8:13)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4)

미얀마 학교에 약품 기증하는 이건종 장로(가운데)

어머님 추도예배를 준비하면서 아버님이 들려주시던 가르침이 생각난다. “무슨 일을 만나도 서로 입장을 바꿔서 보면 일이 된다"라고 하셨다. 맹자의 ‘이루편’(離婁編)에 나오는 ‘역지사지’(易地思之)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말이다. 그 시대 아버님이 맹자 ‘이루편’을 잘 아신 것도 아닌데도 아들에게 경우를 따져주셔서, 그 말씀이 내 머리 속에 담겨져 있었다,

"남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기의 인자함을 돌아보고,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기의 지혜를 돌아보고, 남을 예우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기의 공경하는 태도를 돌아보라“ ”愛人不親反其仁(예인불친반기인) 治人不治反其智(치인불치반기지) 禮人不答反其敬(애인불답반기경)“

맹자의 ‘이루편’과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나오는 고사성어다. ”자기중심의 시각이 아니라 상대의 시각에서 헤아려 보라“는 이 말도 삶의 지혜를 나타낸다.

가수 장사익이 중학교 동창이었는데, 이 친구가 노래를 잘 부는 줄 몰랐다. 그런데 가수가 되었다. 사실은 그시절 나도 ‘노래 잘한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 장사익이 가수가 될만하게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친구 장사익이 가수가 될 만하다. 지금 장사익의 각설이 타령을 들어보니 노래를 잘한다. 그래서 조영남의 각설이 타령도 들어보았다.

대학시절 야유회나 미팅장소. 회식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내 고향 ‘시골의 폼’을 잡고, 도시살던 친구들에게 안지고 싶은 마음에 나도 ‘각설이 타령’을 불렀다. ‘품바 타령’(장타령)이라고도 한다. ‘품바’란 ‘타령의 장단을 맞추고 흥을 돋우는 소리’를 말한다. 

‘두산백과사전을 보면, ‘품바’란 ‘타령의 장단을 맞추고 흥을 돋우는 소리’라 하여 조선 말기까지 '입장고'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후 일제강점기를 거쳐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시절에 이르기까지는 '입으로 뀌는 방귀'라 하여 '입방귀'라는 의미로 일반화되었고, 현재는 장터나 길거리로 돌아다니면서 동냥하는 각설이나 걸인의 대명사로 일반화되었다.

‘품바’란 민초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쌓였던 울분과 억울함, 그리고 그들에 대한 멸시나 학대 등이 한숨으로 뿜어져 나오는 한이 깃든 소리로 여겨진다. 예로부터 가난한 자, 역모에 몰린 자, 소외된 자 등 피지배계급에 있는 자들이 걸인행세를 많이 해왔는데, 그들은 부정으로 치부한 자, 아첨하여 관직에 오른 자, 기회주의자, 매국노 등의 문전에서 “방귀나 처먹어라! 이 더러운 놈들아!”라는 의미로 입방귀를 뀌어 현실에 대한 한과 울분을 표출했다.

또한 ‘품바’란 가진 것 없는 허(虛), 텅 빈 상태인 공(空), 도를 깨달은 상태에서의 겸허함을 의미한다고 하며, 구걸할 때 '품바'라는 소리를 내어 “예, 왔습니다. 한푼 보태주시오. 타령 들어갑니다.” 등의 쑥스러운 말 대신 썼다고들 한다.

또 한자의 '품(稟)'자에서 연유되어 '주다', '받다'의 의미도 있다. 또 다른 의미로 품앗이, 품삯 등에 쓰이는, 일하는 데 드는 수고의 의미인 '품'에서 연유했다고도 한다. ‘품바’에 함축된 의미는 '사랑을 베푼 자만이 희망을 가진다'는 것이며, 타령이 처음 시작할 때와 끝날 때는 반드시 '품바'라는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렸다. (두산백과)

지금 전승되는 ‘각설이타령’은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로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며, ‘2음 1박자 4·4조’로 부른다. 머리·허리·손·발을 흔들며 부르기 때문에 매우 흥겹게 들린다. 내가 부르는 각설이타령 가사를 되새겨 보았다,

얼시구나~~~잘한다. 품바나~~~잘한다 /
작년에 왔던~~~각설이 죽지도 않고 ~~~ 또왔네 /

어허 이놈이 이래도 정승판서 자제로 팔도감사 마다고~~~돈 한푼에 팔려서 각설이로만~~~나섰네 /
저리시구 저리시구~~~잘한다 품바하고~~~잘한다 /
네 선생이 누군지 남보다도 잘한다 / 시전서전을 읽었는지 유식하게도 잘한다 /
논어맹자를 읽었는지 대문대문 잘한다 / 냉수동이나 먹었는지 시연시연 잘한다 /
뜨물통이나 먹었는지 걸직걸직 잘한다 / 기름통이나 먹었는지 미끈미끈 잘한다 /

……(중 략)

“열에 장자나 들고 봐라. 저 건너 장한 숲에 범이나 열마리 들었는데, 장안 포수 다모아 그 범 한마리 못잡고, 총소리만 내는구나“ 

나는 ‘각설이 타령’을 들으면서 세상에서 끝나는 시간되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떠나야 하는 분을 엊그제 보았다. 권력도, 돈도, 명예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으니 우리는 ‘삶과 죽음 앞에서’ 주권자 하나님을 깊이 묵상해야한다.

영국의 방송기자 멜컴 머거리지가 인도 테레사 수녀를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일생을 마무리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다.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살아 있는 몇 시간만이라도 자신이 버림받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멜컴 머거리지 기자가 ‘제 자리 지키기 위해 진실을 외면한 자들’에게 외친 말이 생각난다.

“주님의 심판 외에는 자만과 교만에 빠지기 쉬운 인간 본성을 바로 잡을 어디에도 없다,”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해 보자. 그들이 순종할 때는 하나님과 함께 복을 누렸으나, 죄를 짓고 불순종 할 때는 그 복을 누릴 수 없었다. 그리고 불순종하고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자만과 교만함을 하나님은 심판으로 답하셨다. 

누릴 복은 그의 몫이니 내가 관여할 것은 없다 하시니 감사하다. 청지기의 삶으로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시고 가르침의 기회라는 깨달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내 것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니 내가 누릴 복은 ‘내가 채우는 것’으로 만들어지니, 감사함으로 더 열심히 일하기로 다짐함에 감사하다. 

불평불만은 ‘덕’이 되기보다 ‘독’이 됨을 안다. 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 6:10)라는 이 말씀 앞에서 마음의 평안을 누리니 감사하다. 

우리 모두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 착각이든 오해이든, 그것을 마음에 두어 속상해 하기보다 나누고 베풀며 사는 것이 복된 삶이라 생각하며, 실천하며, 감사할 수 있음에 또 감사해야한다. 그것이 내 것이라 아까워 속 쓰려하기보다 ‘하나님의 것’을 주는 것이라는 믿음이 안정감과 평안함으로 다가 오는 감사함이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 말로만 가득 채우는 지식 보다, ‘아는 만큼’ 행하고 실천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오늘 하루에 감사하자.

[고백] 사랑의 주님!
내가 만드는 역사는 아니지만 내가 보면 역사의 캄캄한 시간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선진들의 기도 덕에 내가 있음을 고백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우리 신앙 공동체가 한마음 되게 하소서. 거룩하고 신실함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케 성령님 인도 하소서. 특별히 지도자들의 금식하며 부르짖는 애통의 소리 들리게 하소서. 주님만 바라봅니다.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ISgRcSjCPvM

 

이건종 장로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장로 / '괜찮은사람들'  러더)
('괜찮은사람들'은  의료선교및 고아원 봉사를 하는 초교파기관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 해외의료선교를 최초로 시도하고 베트남 수재민돕기 시작한 초교파봉사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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