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싼 목사, 십일조 2백만 원 냈다고 해”
“나는 비싼 목사, 십일조 2백만 원 냈다고 해”
  • 뉴스제이
  • 승인 2019.12.19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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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수입(?), 성도들 헌금이기에 민감/
목회자들의 타이들과 명예, 누림과 부요함이/
예수님 덕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내 돈☞ 교회 돈☞하나님 돈" 헌금의 위치 이동로

【뉴스제이】 ‘뉴스제이’ 특집기획 기사, “예수님 태운 나귀, 돈에 대한 회개 필요”라는 글을 보고 전화한다며, 기독정론지 ‘크리스천투데이’에서 갑자기 사라진 기사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나는 비싼 목사, 십일조 2백만 원 냈다고 해”라는 제목의 기사라고 한다.

제목에 놀래, ‘크리스천투데이’ 홈페이지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결과는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요청하신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였다. 신문사측에서 기사를 미승인으로 바꾼 것이다. 당사자 측의 항의나 요청이 있었든지 아니면, 명예훼손에 관한 문제로 사측에서 자발적으로 내렸을 것이다.

제목을 봐서는 인용부호(“ ”)가 있으니, 당사자가 한 말을 편집자가 제목으로 뽑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논란이 될 만한 기사는 기자의 1인칭 일방적인 내용이 아니라, 당사자나 제 3자의 취재 내용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 제목을 보니 기자가 분명 당사자를 만났거나, 통화를 한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충분히 프레임을 잘 만들어 취재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사실 여부일 것이다. 어디까지, 어느 정도가 사실인지가 중요하다. 세부 내용이 정확한 사실이라면 기자로서는 당연히 기사화 할 수 있다. 그러나 근거가 부족하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제목으로 유추하건데, 목사가 십일조를 2백만 원 정도 낸다면 ‘월 2천만 원’의 사례비인데, 중대형교회 목사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중대형교회에서는 사례비, 판공비, 목회활동비, 차량유지비, 사택관리비, 자녀 학비 등등 항목이 많다.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 목회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을 넘어, 스케치도 못해보는 액수의 사례비일 것이다. 

‘뉴스제이’ 특집 기사, “예수님 태운 나귀, 돈에 대한 회개 필요” (http://www.newsjesus.net/news/articleView.html?idxno=913)는 바로 ‘크리스천투데이’의 “저도 많이 타락… 공직 다 사임할 것”이라는 기사를 인용해 한발짝 더 나아 간 글이었다.

예수님의 눈물 성경구절과 돈관련 성경구절
예수님의 눈물 성경구절과 돈관련 성경구절

기독정론지 ‘크리스천투데이’는 “대형교회 목사님이 행사 설교 중 ‘지금 대외적으로 공직이 너무 많아서 연말에 다 사임한다’며, ‘타이틀이 나를 타락시켰다. 어디를 가나, 그 타이틀 때문에 상석에 앉아야 되고, 타락의 지름길’이라고 했다‘라는 고백의 내용을 뉴스로 다루었다.

그러자 기사를 본 교계가 술렁였다. 대형교회 위임목사의 “대외적으로 높은 타이틀을 많이 가지다 보니, 언제나 상석에 앉게 되고, 그 타이틀 때문에 높임 받고 대접만 받다보니, 사역에서 주님의 흔적보다, 자신의 흔적이 남는 것을 발견했다”는 솔직한 고백에 많은 목회자들의 찬사도 있었다.

이번에 사라진 기사 “나는 비싼 목사, 십일조 2백만 원 냈다고 해”는 아마도 목회자의 돈 문제를 지적한 기사로 보인다. 교회의 수입(?)은 성도들의 헌금이기에 더 민감한 것이다, 교회 헌금과 십일조는 부요한 성도의 넉넉한 헌금과 사르밧 과부 같은 가난한 성도의 헌금, 아이들의 콧뭍 묻은 헌금이 공존한다. 헌금은 많고 적음의 문제는 아니다. 헌금은 진심과 헌신, 감사와 노력이 담긴 하나님께 드린 보화다. 그래서 성도들은 헌금의 쓰임새에 대해 민감하다.

언젠가 비슷하 규모의 교회 담임목사 사례비에서 자신의 사례비를 스스로 절반으로 내린 중형교회 목사님이 가르쳐준 헌금에 대한 권면이다. "교인의 돈이 헌금하는 순간, '교회 자산'이 되며 수전하는 순간 '하나님의 돈'이 됩니다. 이 거룩한 물질을 자기 욕심 채우는데 쓰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 돈☞ 교회 돈☞하나님 돈" 이것이 교회 헌금의 위치 이동로입니다." 마음 깊이 새겨야 된다.

그리고 성도들이 목회자를 잘 섬기고자하는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목회자의 사례비가 현실에 비해, 교회상황에 비해 과하게(?) 느껴지는 것에 대한 불만일 것이다. 목회자가 “나도 헌금하고 십일조를 낸다”는 말은 타당성이 부족하다. 그것은 당연한 말이니까. 문제는 과한요구(?)나, 과한대접(?), 과한액수(?)에 대한 의문일 것이다.

“타이틀이 나를 타락시켰다. 연말에 다 사임한다”는 대형교회 목사의 고백과 '뉴스제이'의 특집기사 “예수님 태운 나귀, 돈에 대한 회개 필요”라는 것은 목회자들이 새겨들어야 하고. 실천해야 할 부분이다.

목회자들의 타이들과 명예, 누림과 부요는 예수님 덕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먼저, 하나님께 영광이요, 은혜라는 사실을 잊으면 타락(?)하게 된다. 목회자들은 예수님을 태우고 가는 나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호산나! 호산나!” 호산나 찬송은 나귀를 타신 예수님을 향한 찬송이다. 나귀는 예수님을 태운 영광으로도 만족하다. 주인 예수님이 나귀를 책임져 주신다. 그런데 나귀가 너무 큰 복주머니를 차고, 금줄을 하고 다니면, 나귀 주인 예수님이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 도우며, 검소하게 살라고 우리들에게 하시더니, 나귀에게 복주머니 채우고, 금줄을 만들어 타도 다니시네.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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