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순수성’과 ‘사랑’이 동기 되는 삶
[나관호목사 칼럼] '순수성’과 ‘사랑’이 동기 되는 삶
  • 나관호
  • 승인 2019.08.26 10: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관호목사의 행복발전소 90]
단편소설『소나기』통해 자기 마음 점검해보기 /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시편 12:6) /
‘순수 영성’으로 회복되고, 또한 ‘순수 영성’을 회복시켜야

【뉴스제이】 바람 불고 비가 오는 며칠 전, 옛날 자료와 어머니의 물품을 정리하다고 중학교 시절 친하게 지낸 여자친구 미O이가 보낸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니의 물품 속에 섞여 보관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가 모아 두신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나에 관계된 것은 뭐든지 귀하게 여기셨으니까요.

그래서 빗소리 들으며 아주 먼 옛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가 오고 어린 시절 추억이 섞이니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가 생각납니다. 나에게도 어린시절 순수한 사랑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쁜 미O이는 중국에 들어가 남편이 하는 큰 의류공장을 경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유년(幼年) 시절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 유년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면서, 그 추억의 영향력 안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마음 한 구석의 액자에 담아 그림처럼 간직하게 됩니다. 특히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순수한 사랑이야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을 그린 황순원의 단편소설『소나기』를 기억합니다. 우리들의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던 순수한 그 사랑이야기 말입니다. 『소나기』는 순수한 소년소녀의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사랑을 목가적 배경 속에서 그려낸 그림 같은 작품입니다.

영화 <소나기> 중에서

‘소나기’라는 제목은 배경적 기능을 알아차리게 하는 동시에 그 가슴 저린 사랑의 순간적 일회성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그 사랑의 순수함을 강조하거나 비극적인 결말에 애석함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의 감정과 소녀의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애잔한 느낌은 모두 독자의 몫에 맞기고 판단 대신 여운으로 남을 뿐입니다.
 
  마음이 답답하신 분이 계십니까?
  사람에게 실망해 마음 아파하는 분이 계십니까?
  순수한 사랑을 찾아 목말라 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순수함이 그려져 있는『소나기』를 읽어 보십시오.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소년은 징검다리에 앉아 물장난을 하는 소녀를 만납니다. 소녀는 세수를 하다 말고 조약돌 하나를 집어 "바보."라고 외치며 하며 소년에게 돌팔매질을 합니다. 그리고는 가을 햇빛 아래 갈밭 속으로 사라집니다. 다음날 개울가로 나와 보았으나 소녀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날부터 소년은 소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에 쌓입니다.

어느 토요일, 소년과 소녀가 개울가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소녀가 비단 조개를 소년에게 보이면서 말을 건넵니다. 송아지를 타고 놀다가 소나기를 만나게 됩니다. 소년과 소녀는 수숫단 속에 들어가 비를 피합니다. 내려오는 길에 물이 불은 도랑을 소년은 소녀를 업고 건넙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를 다시 만났을 때, 소녀가 그날 소나기를 맞아 앓았다는 사실과 아직도 앓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때 소녀는 소년에게 분흥 스웨터 앞자락을 보이며 무슨 물이 묻었다고 말한다. 소나기를 만나 소년이 소녀를 업었을 때 묻은 풀물 자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아침에 땄다는 대추를 한줌 주며 곧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소녀 집이 이사 가기로 한 전날 저녁, 소년은 자리에 누워 소녀에게 전해 주지 못한 호두를 만지고 있는데 마을에 갔던 아버지가 소녀의 죽음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합니다. 소녀가 죽을 때 "자기가 입던 옷을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는 말을 했다는 얘기와 함께.>

영화 <소나기> 중에서

『소나기』속에서 나타나는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마음은 우리들의 영원한 추억입니다. 마치 우리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순수’ ‘사랑’이라는 단어조차도 왜곡되고, 사라져 가는 세상 속에서 『소나기』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던져줍니다. “순수해집시다.”
 
요즘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사람들 속에서 사랑을 마르게 하고 감정적인 인간형으로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잔인한 살인 사건이 쉬임없이 톱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언론과 미디어 그리고 유튜브 세상까지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순수성이 사라졌습니다. 자기 유익만을 위한 배신과 이간질이 정당화되고, 이익을 만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익 되면 삼키고, 이익 없으면 벹어버리는 관계가 사회전번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순수성을 잃어버린 사회의 단면을 보면, 전화 통화를 꼭 녹음하고 녹취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그것을 이용해 유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해석하고, 돈으로 해결하고, 돈으로 관계를 맺고, 돈으로 위치를 나누고, 돈을 따라 만남이 유지되고, 돈으로 사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이 나오는 곳에 줄을 서고, 돈을 푸는 사람의 말만 듣고, 돈이 되는 짓만 합니다. 순수성을 잃은 세상의 전형적인 그림입니다.

소나기가 자주 오는 요즘,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고, 생각하며 순수성을 회복합시다. 자기를 돌아봅시다, 성경은 순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출애굽기 27:20)

“또 순수한 금으로 만든 꽃과 등잔과 부젓가락이며” (역대하 4:21)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시편 12:6)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시편 18:30)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시편 119:140)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빌립보서 1:17)

하나님 앞에 드린 등불의 기름도 순수한 것, 등잔의 재로도 순수한 금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순수합니다, 또한 다툼없이 순수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성경을 가르치십니다. ‘순수 영성’으로 회복되고, 또한 ‘순수 영성’을 회복시켜야 됩니다.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발행인 / 말씀치유회복사역(LHRM) 대표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치매가족 멘토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칼럼니스트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안보면 후회할 기사
카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