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보는 것, 숨 쉬는 것도 은혜임을 깨닫다
[신앙칼럼] 보는 것, 숨 쉬는 것도 은혜임을 깨닫다
  • 나관호
  • 승인 2019.08.19 11: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고백
주님과 함께 동거동락 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는 것이 믿음

【뉴스제이】 정형외과에서 ‘환자와 물리치료사’의 관계로 만나, 가족처럼 기도와 사랑을 나누는 물리치료사 선생님과 그의 가족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얼마 전, ‘일랑일랑’이라는 꽃이름을 상호로 카페를 개업해 문화사역을 시작했다고 연락을 받고 다녀왔습니다. 황선생님의 매형이 벨기에 사람인데, 벨기에 사람이 벨기에식 와플을 만들어 주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수요일 저녁에는 황선생님이 찬양팀의 기타, 매형이 베이스, 누나가 오르간을 담당하는 수요찬양예배에 참석해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위해 집을 나서기 전, 내가 직접 손으로 만들어 늘 하고 다니는 ‘나무 십자가 목걸이’를 찾는데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십자가 목걸이’가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있어, 걸고 나가지 않으면 허전하고, 마치 지갑이나 안경, 벨트를 하고 나오진 않은 것처럼 어색함을 넘어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찬양예배를 가야하는데 십자가 목걸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분명 걸어 놓는 곳이 있는데....당혹스러웠습니다.

책상 위를 시작으로 여기저기 찾아보았습니다. 있을만한 곳과 평소에 놓았던 자리를 꼼꼼히 살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꼭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가야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5만 번 기도응답의 주인공, 조지 뮬러 목사님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자칭 조지 뮬러 전문가입니다. 그래서 ‘나지 뮬러’라는 별칭도 있습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을 좋아하고 본받고 싶어 그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고, 존경하는 원로목사님이 조지 뮬러에게서 영향을 받아 목회에 적용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조지 뮬러 목사님을 좋아하고 그의 삶을 배워갑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은 열쇠를 잃어 버려 찾아야 할 때도 꼭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 기억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나도 십자가 목걸이를 찾게 해달라고, 보여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 다시 찾는데 바로 책상 앞에서 발견했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며 잠시 어리둥절, 어이없음, 웃음이 겹쳤습니다. 그때 마음에 이런 울림과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보는 것, 보이게 되는 것도 은혜구나. 모든 것이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것이구나. 하나님이 보게 하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구나, 영적인 눈도 하나님이 보이게 하시는 것이고, 못 보게도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구나.”

조지 뮬러 목사님은 열쇠를 잃어 버려 찾아야 할 때도 꼭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 기억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귀한 깨달음이었고,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고백을 하게 하셨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함께하시며,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함께 계시기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17)

주님과 함께 동거동락 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는 것이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는 진리 앞에, 고백 앞에 서는 것이 행복합니다. 나는 ‘내’라는 부분에 내 아름을 넣어 고백하기도 합니다.

“관호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관호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관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관호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관호를 사랑하사 관호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관호의 하나님 여호와가 관호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관호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관호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관호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말씀과 믿음이 만나면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은혜 안에서 믿음 안에서 사는 삶이야말로 최고의 행복이며, 축복입니다.

시편 1편에 나오는 “복 있는 사람”은 응 소유의 개념이 아닙니다, 소유가 많아 복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복을 달라고 가도하는 것이 아니라,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님! 이 아들, 나관호 목사가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아멘” 


나관호 목사 ( 칼럼니스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소장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치매가족 멘토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뉴스제이’ 발행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안보면 후회할 기사
카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