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편지 2] 성 피터교회와 순교자이야기
[선교편지 2] 성 피터교회와 순교자이야기
  • 뉴스제이
  • 승인 2019.07.09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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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우간다 이윤재 선교사
2015년 '미래목회포럼' 대표역임....2018년 12월 한신교회 파송 선교목사
다음세대를 키우는 일에 집중.....교회안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세워
순교자의 피가 흘러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교회

[ 2015년도 ‘미래목회포럼’ 대표를 역임하고, 2018년 말, 아프리카 선교사로 파송된 한신교회 파송 선교목사 이윤재선교사가 보내온 소식을 나눕니다. 선교소식 원문 그대로 ‘뉴스제이’에 올려 은혜 사랑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일 아침 일찍 다섯번째 방문 교회를 향해 길을 떠났다. 쿠미에서 118 킬로 떨어진 알리토에 위치한 교회였다. 이 교회는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는 오포로트 요셉 목사가 시무하는 Church of Uganda 소속의 교회였다. 마침 날씨도 궂고 멀어서 조렘에게 운전을 부탁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처음 출발할 때는 좋았다. 조렘이가 좋은 길을 골라서 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시련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쯤 갔을까? 험한 길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가 와서 움푹 움푹 패인 도로는 우리 일행 다섯명을 태운 차를 수없이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하도 힘들어 '사명'이란 노래를 떠올렸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그렇다. 아직 바다끝은 아니었다. 그저 고인 웅덩이에 바뀌가 빠지면 한참을 고생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두 시간이 넘게 달려 도착한 교회는 예상보다 넓고 큰 교회였다. 교회부지가 80에이커, 거의 만평가까운 교회였다. 거기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교회앞에 펼쳐진 파란 잔디밭은 움푹꺼진 웅덩이를 충분히 잊게 만들었다. 그런데 허름하게 생긴 교회안으로 들어갔을때 나는 깜짝 놀랐다. 글자 그대로 입추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 가득 모여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 아이 할 것없이 한 천여명은 될까? 마치 한참 잘나가던 때의 한국교회 부흥회에 참석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많이 모이면 걱정이 되는 것이 설교다. 도대체 어디에 촛점을 맞춰야 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있다. 그것은 설교를 하나만 준비하지 말고 몇 개 준비해서 상황에 따라 순발력있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주보도 없고 영상도 없지 않은가? 본래는 계3:7-13의 말씀으로 '열린 문'의 제목으로 설교할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문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설교가 진행되면서 설교는 점점 문밖으로 빠져 나갔다. 자꾸 순교 이야기를 하더니 아예 설교는 순교 설교가 되고 말았다. 전혀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한국교회 순교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나님의 교회는 피를 먹고 산다고 했다. 한국교회가 부흥된 것은 순교자들의 피때문이라고 했다. 우간다는 전세계적으로 순교자의 날(6.4)이 있는 유일한 나라로 하나님이 축복하는 나라라고 했다. 조금씩 반응이 나타났는데 마지막에 우리도 주님을 위해 순교하는 신앙을 갖자고 하자 모두 '아미나'(아멘)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고 '아멘'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교인모임에 참석했는데 그들 이야기가 바로 우리 교회가 순교자의 교회라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들의 순교이야기는 마치 우리의 제암리같고 광주사태와 같은 것이었다. 끔직했던 순교의 사건은 2003.6.16에 일어났다. 당시 이 지역에는 숨어 있던 공산당들이 정부의 혼란을 틈타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관공서를 점거하고 교회들을 폐쇄하기 시작했다. 교인들은 주일날 교회왔다가 돌아가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잡혀갔다. 이에 젊은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지키려는 모임이 일어났다. 그들은 강제로 교회문을 닫고 기독교를 핍박하는 공산당에 항거하는 자발적인 기독교인 모임으로 교회를 지키고 예배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The Lord's resistance army'라고 불렀다. 그들은 손에 손에 괭이, 곡갱이등 농기구를 들었지만 처음부터 비폭력으로 일관했다. 그들은 찬송을 부르며 우리는 하나님을 포기할 수 없으며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외쳤다.

그렇게 평화적으로 신앙의 자유를 외친 이들에게 순교의 날이 다가왔다. 6.16, 공산당들이 그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준다며 한 곳에 모이라고 하더니 갑자기 발포를 시작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때 이들이 보인 태도는 놀라운 것이었다. 누구 하나 도망가거나 물러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서로 손을 잡고 무릎을 꿇었다. 얼마후 현장은 피바다가 되었고 순교의 피는 그 땅을 홍곤히 적셨다. 그 수가 365명, 우연히도 일년의 날수와도 같은 수였다. 학살이 일어난 후 쏟아지는 폭우와 공산당의 위협으로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다가 반란이 진압된 얼마후 현장을 찿았을 때 현장은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대부분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그들은 심하게 상해 있었다.

교인들의 비장한 이야기를 들은 나는 차마 현장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장은 교회에서 약 1킬로 떨어진 도로변에 위치해 있었다. 이름은  '오바랑가 순교지'. 거기에 누어 있는 이름 모를 아프리카의 형제들은 저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피를 흘리며 그들의 교회를 지킨 의인들이었다. 나는 그들앞에 솔직히 무릎이라고 꿇고 싶었다. 자랑스런 순교자, 초대교회부터 현재까지 세상의 모든 교회를 지켜온 것은 성도들의 믿음과 순교의 피였다.

다시 돌아와 교회를 올려다 보았다. 이제야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는지 알 것 같았다. 이제야 왜 하나님이 준비한 설교를 시키지 않고 순교이야기를 하게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다. 교회가 부흥되는것은 목회자 때문이 아니었다. 목이 좋아 그런 것도 아니었다. 교회안에 유능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순교의 피때문이었다. 터툴리안의 말처럼 교회에 떨어진 순교의 씨앗때문에 교회 생명 나무는 자라는 것이었다. 이들 교인의 대부분은 순교자의 부모거나 형제거나 친구였다. 그러니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교회는 부흥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음세대를 키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교회안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세우고 최근에는 우리의 유아원에 해당하는 취학전 아이들을 위한 '나사렛학교'를 세우기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재정이 얼마나 열악한지 나무 몇 개를 얼기설기 엮어놓고 그것을 덮어 어린 자녀들을 위한 시설을 지으려고 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내가 수중에 카드가 있었다면 한번에 긁고 싶은 심정이었다.

순교자의 피가 흘러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교회, 목회자라면 이런 교회 한번 해보고 싶지 않은가? 신자라면 이런 교회에서 봉사하고 싶지 않은가? 하나님으로부터 물질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런 교회를 돕고 싶지 않은가? 돌아오는 길도 똑같은 진흙탕길이었지만 그 길을 처음과는 다른 길이었다. 힘들게 갔던 길이 콧노래로 바뀌었다.

그렇다.
오늘 우리 교회의 문제는 다른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순교자가 없다는것이다.
지금 한국교회에 없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거룩한 분노심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스라엘 갈멜산에 가면 칼을 든 엘리야의 동상에 '그때에 엘리야에게 거룩한 분노의 불이 임했다'고 씌여있다.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임해야 하근 것은 엘리야가 가졌던 거룩한 분노의 불이다.
무너져 가고 있는 교회를 향한 거룩한 분노심으로
강남콩같은 붉은 순교의 피로
교회를 무너뜨리는 악한 세력에 대한 목숨건 항거로
일어나야 한다.

아프리카의 한 교회가 그렇게 했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미래목회포럼 대표 김봉준 목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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