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칼럼] "목사님, ‘얼꽝’만 쓰임 받나요?"
[은혜 칼럼] "목사님, ‘얼꽝’만 쓰임 받나요?"
  • 나관호
  • 승인 2019.05.23 11: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모지상주의 ‘루키즘(’lookism)...새로운 차별 기재로 불평등을 만들어
하나님의 사고는 이원론적이 아닌, "마음만을 보신다"는 일원론적 사고

【뉴스제이】   외모지상주의를 일컫는 루키즘(lookism)이라는 말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 <뉴욕타임스>의 저명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가 "외모주의 '루키즘'이 부상하고 있다"며 그의 칼럼 '온 랭귀지'(On Language)에서 거론한 데서 비롯됐다. 그는 인종·성·종교·이념 등과 함께 인류 역사에 새로운 차별의 기재로 불평등을 만들어낸 원인의 하나로 '외모'를 지목, 처음 사용했으며 용모가 개인 간 우열과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잣대로 부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모가 그 사람의 수준과 실력이다(?)

몇몇 조사기관의 통계를 보면 외모가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는 이른바 '루키즘' 현상이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여성들 사이에도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모가 일생의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68% 정도이고, 대학생과 직장인 여성 중 80%는 외모가 인생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변수라고 답해 "예쁜 여자가 대접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여성들은 외모를 '수준'과 동일시하고 있다.

외모에 대한 생각은 세대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초중고생인 1318세대는 관심을 끌기 위해 나이키 운동화나 키플링 가방, 액세서리 등 소품에 집착한다. 파우더 립그로스는 필수품. 공효진, 김민희 등이 이상적인 스타일이다.

대학생 연령대인 1924세대의 특징은 다양한 경험. 색조제품과 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높고 선글라스와 액세서리에도 자주 손길이 간다. 긴 생머리와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전지현이 이상형으로 꼽혔다. 외모에 대한 관심은 결혼 전후인 2534세대에서 절정을 이룬다. 헬스와 피부관리에 열중하며 목숨을 건 성형수술과 다이어트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모가 곧 돈이요 능력이라고 생각해 외모관리에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시기다.

외모를 부의 상징, 사회적 지위로 믿는 3543세대는 어리게 보이는 것. 기능성 화장품과 기능성 속옷, 찜질방 등을 애용하며 몸매관리에 심혈을 기울인다. 명품패션과 웨이브머리, 보석 등에 애착을 보인다.

영화 '신석기 불루스' 중에서
영화 '신석기 불루스' 중에서

쓰임 받는 사람은 '얼꽝'이다(?)

신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나오자 어느 젊은 학생이 상기되고 진지한 표정으로 상담을 요청해 왔다. 자신이 예뻐서 그런지 여러 남학생들이 자주 귀찮게 한다는 것이다. 대응 방법을 물어왔다.

또 한 가지 고민은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싶은데 하나님께 사용되는 사람을 보면 얼굴이 잘 생긴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평범하거나 주의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쓰임 받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자신은 주위사람들이 예쁘다고 칭찬하고 소위 '얼짱'이라고들 할 정도인데 혹시 하나님께 쓰임 받을 확률이 낮아지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생겼다는 내용이다.

"목사님, 얼꽝만 쓰임 받나요?" 다소 어이없고 엉뚱해 보이는 질문이라 웃음이 먼저 나왔지만 미소로 답했다. 이유는 그 학생의 태도가 너무 진지했고 나름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은 열망에서 나온 질문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왜 그 여학생이 그런 고민을 하게 됐을까? 그것은 우리 사회 속에 들어온 외모의 질로 사람을 평가하려는 가치관이 젊은이들 속에 들어와 고착화되고 있고, 교회 안에 믿음으로, 말씀으로, 기도로…. 이런 신앙적인 삶의 기준이 구호만으로 끝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외모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사람의 기본 성향이요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외모'라는 단어가 가지는 개념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잘 생긴 사람도 덜 생긴 사람도 하나님의 창조물 아닌가. 하나님의 작품은 모두 값(?)이 같은 것이다.

 

 '얼짱'도 '얼꽝'도 아닌 마음

요즘처럼 '외모'라는 단어와 가치관이 인류 역사에 등장한 시대언어가 된 것은 그만큼 '내면'이라는 개념과 말이 축소되었거나 가치를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단에 있어 조심스러운 것은 외모와 내면이 이원론적이 개념으로, 아니면 서로 상반되는 개념으로만 이해될 때 문제라 생각한다. 외모도 중요하고 내면도 중요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외모'가 결정을 내리는 열쇠가 되는 것과 가치의 질과 수준을 판단하는 척도가 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사무엘상 16:7)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사울이 잘 생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버렸다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서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사무엘이 처음 사울을 보았을 때 그의 용모에서 왕의 자태를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울을 버렸다고 말씀하실 때도 그의 외모가 '왕의 용모를 가졌는데'라고 혼자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할 때 용모의 질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셨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 즉 내면, 마음을 보시고 선택하시고 마음이 명품인지 싸구려 물품인지를 보신다.

하나님의 사고는 이원론적이 아니라 "마음만을 보신다"는 일원론적인 사고인 것이다. 그것이 사람과 하나님의 차이점이다. 우리가 외모와 내면을 비교하거나 대비해서 보기 때문에 가치관의 혼란이 생기고 언어의 대립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마음 즉 내면만을 강조하는 가치관을 가진다면 주신 그대로의 모습이 최대의 만족이요,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걸작품이요, 나만의 개성을 가진 창조물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얼짱'도 '얼꽝'도 선택의 기준이 아니다. 오직 '마음'뿐이다.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대표 및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문화평론가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세계선교연대 경기북부 노회장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안보면 후회할 기사
카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