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훈련은 훈장이 아니다. 겸손이다
성경훈련은 훈장이 아니다. 겸손이다
  • 나관호
  • 승인 2019.05.18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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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한국교회에 바란다 《2》

성장은 인격의 성숙을 말하는 것입니다.
단기적인 성경훈련프로그램에 성품훈련을 포함시켜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 (고린도전서 13:1)

교수목사의 입장에서 한국교회를 살펴보고, 진단(?)하고 나아가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찾고자 합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더 새로워지고, 세상을 향해 성경적 소리를 내고, 귀한 십자가 사랑을 바탕으로 '예수운동'(Jesus Movement)을 전하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모든 글과 생각나눔이"한국교회 자정운동"의 씨앗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뉴스제이】 교회에서 성경 말씀으로 훈련을 받는 프로그램에 헌신하거나, 제자훈련이라는 이름으로 훈련을 받아 성장하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여기서의 ‘성장’은 성경을 많이 알고, 이해하는 지식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삶이 바뀌고, 성경을 따라서 살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훈련을 잘 받은 사람은 변화와 능력으로 살아가는 성숙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훈련의 본질을 잃어버리면 ‘훈련이 훈장이 되어 버립니다.’

교회에서 성경말씀 프로그램의 활성화는 교회의 성장과 내실을 튼튼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훈련프로그램을 이수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거리감입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성경말씀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담임목사가 성경에 대한 깊은 지식과 삶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담임 목사의 의도와는 다르게 지식으로만 진행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나는 훈련 받았는데, 당신은 아니지? 나는 훈련을 받았다니까?”

교회안의 단기적인 성경훈련프로그램과 제자훈련이 진행되면, 자연스럽게 ‘성품훈련’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성장은 인격의 성숙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르게 훈련을 받았다면 겸손과 배려, 부드러움과 인간미가 있어야 합니다. 제자훈련은 어느정도 성품훈련이 포함됩니다. 문제는 단기적인 성경훈련프로그램입니다,

훈련은 훈장이 아닙니다. 겸손입니다.


어느 교회의 일입니다. 성도가 단기적인 성경프로그램 훈련을 받았는데 훈련 후, 장로를 대하는 태도와 나이 지극한 권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장로님! 훈련 안받으셨죠? 권사님! 훈련 받으세요? 호호호”라고 은근히 내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한 교구 부목사에게 먼저 온 전도사가 “목사님! 훈련 받으셔야 합니다. 하하하. 우리 교회는 훈련을 꼭 받아야 인정 받아요”라며 자신의 훈련을 훈장처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훈련이 필요하면 담임 목사가 권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단기적인 성경훈련 프로그램 이수했다고 갑자기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헌신을 배우지만 성품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훈련을 받을수록 겸손해져야 합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제자훈련의 붐(?)이 있었던 때입니다. 나도 제자훈련을 받았고, 성경암송과 정기적인 경경 읽기와 전도훈련도 했고, 성경공부와 단기선교에 헌신했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제자훈련이 진행될수록 가족과 주변 친구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하나 같이 말하는 것이 “많이 변했어? 다른 사람 같아”였습니다. 제자훈련을 받은 다른 친구들도 똑같은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제자훈련은 대부분 성품 훈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프로그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훈련 받는 제자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제자훈련 받을 때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내 친구가 속했던 그룹의 일입니다. 리더가 순종 훈련을 시킨다면서 팀원 한사람에게 말했습니다. 그날은 오전에 눈이 내려 골목길이 질퍽한 날이었습니다. “빵집에 가서 빵을 사오는데. 신발 벗고 맨발로 다녀오세요”

그러자 그 팀원은 망설임 없이 맨발로 나가 빵을 사왔습니다. 좀 극단적이고 이상스럽게 보일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낮아짐의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훈련도 받았습니다. 양말도 겉옷도 넘치는 것은 서로 나누었습니다. 때론 용돈도 나누었습니다. 마치 초대교회처럼. 우리가 받았던 제자훈련 시기에는 그렇게 성품 훈련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훈련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말씀을 따라 사는 ‘거룩한 노예되기’입니다. 교회의 단기적인 말씀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을 받을수록 서로 섬기고, 세워주고, 인정해주면서 자신을 낮출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교회 안에 ‘제자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이 도입된 것은 ‘파라처치’(Para-Church) 즉, 선교단체를 통해서입니다. 선교단체에서 자비량 평신도선교사들을 양성하면서, 예수님이 12제자를 세워 사역하셨던 것을 따라 제자훈련을 했던 것입니다. 신학을 통해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기로 일생을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파라처치에서 신학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신학도 필요하고, 헌신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과거 한때는 교회에서 파라처치와 제자훈련을 받았다는 헌신자들을 리더로 잘 수용하지 못했던 때가 있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에 몸담지 않았고, 신학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편견 때문입니다. 반대로 파라처치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교회 리더십에 대한 순종도가 낮았습니다. 파라처치에서는 누구나 ‘형제, 자매’입니다. 권위를 내려놓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다보니 서로간의 오해와 이해에 대한 차이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것이 극복되었습니다,

파라처치에서의 제자훈련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검증이 되고, 열매도 있는 과정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파라처치에서 훈련 받은 사람들이 목회자가 되면서, 교회 안에 자연스럽게 제자훈련 프로그램이 대입되게 된 것입니다. 한국의 많은 탁월한 목사님들이 파라처치 출신들이 많이 있습니다.

단기적인 성경훈련프로그램과 제자훈련이 교회 안에서 진지하고 성숙하게 이루어져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훈련에 겸손과 사랑이 빠지면 언제나 사달(事端)이 납니다. 특히 단기적인 성경훈련프로그램에 성품훈련을 반드시 포함시켜야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1-3)

어느 교회에서는 단기 성경훈련프로그램을 먼저 이수하고 리더가 된 성도들에게 권위가 부어져. 작은교회 목회자들을 훈련하게 되면서 선을 넘는 권위를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목회자들을 “훈련을 받았느니, 안받았느니” 하면서 자기기준, 자기 교회 기준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담임 목사의 의도는 아니지만 일부 성도들에게 그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목회자가 훈련시키면 좋을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제자들에게 오늘도 겸손과 사랑을 전합니다. 성숙과 성장은 지식을 넘어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성경훈련은 훈장이 아닙니다. 겸손입니다.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대표 및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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