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영화 '벤허' 통해 예수님을 기억하다.
[나관호목사 칼럼] 영화 '벤허' 통해 예수님을 기억하다.
  • 나관호
  • 승인 2019.04.1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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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목사의 행복발전소 7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한복음 19:30)

【뉴스제이】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영화 《벤허》를 갑자기 보게 되었습니다. 러닝타임(running time)이 긴 영화라서 5부로 나누어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화면에는 유다 벤허가 한센병 환자가 된 어머니와 여동생이 격리되어 살고 있는 동굴을 알게 되어 찾아가는 장면이었습니다. 나는 《벤허》를 영화와 TV 그리고 VTR과 인터넷 동영상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시청한 횟수가 거의 15번도 넘습니다. 그래서 앞부분은 보지 않아도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4부 마지막 장면은 친구 메살라와의 전차 경주에서 승리하고, 메살라가 큰 부상으로 누워 있는 병실에서 한센병(문둥병) 환자가 된 어머니와 여동생이 어디에 살아 있는지 묻는 장면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화 《벤허》의 하이라이트인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거룩한 보혈이 빗물과 함께 흘러 내려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은 감독이 세상을 향해 십자가의 능력이 전파되는 것을 그렇게 해석한 것입니다. 그순간 한센병 환자였던 된 어머니와 여동생이 깨끗하게 치료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영화 《벤허》에서 예수님은 항상 얼굴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더 신비스럽습니다.

그 전 장면은 유다 벤허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이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실 때 길가를 따라가는 장면입니다. 따라가던 유다 벤허는 쓰러진 예수님에게 물그릇을 건내려 하지만 군인들에 의해 저지당합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유다 벤허가 자신이 노예로 끌려 갈 때 쓰러진 자기에게 물을 주었던 그 유대 청년임을 알게 되고 놀랩니다. 그렇게 골고다로 가는 길과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예수는 결국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유다 벤허는 발타자르와 함께 이 광경을 보며 ‘무엇 때문에 예수님이 죽는지’ 묻자 발타자르가 대답합니다.

“이것을 위해 세상에 오셨다."
“이렇게 죽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까?”
“이것이 시작이오.”

예수님이 끝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거센 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치며 폭우가 쏟아집니다. 유다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에스더와 함께 근처 동굴에 들어가 비바람을 피하다가 갑작스럽게 한센병이 치유되어 피부가 깨끗해집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계기로 유다 벤허는 깨달음을 얻고, 마침내 자신을 괴롭히던 번뇌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안식을 찾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그 장면 하나를 ‘주목시키기 위해’ 영화 《벤허》의 이야기가 존재한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거룩한 보혈이 빗물과 함께 섞여 물고랑을 만들며 내려가는 그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에 하이라이트입니다. “예수 승리!”

유다 벤허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하신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어.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소서. 사실 그들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옵니다.’ 그 말씀이 나의 손에서 칼을 거두어 가셨어.”

《벤허》는 1907년도에 맨 처음으로 제작되었습니다.《1907년 벤허》는 500달러의 제작비로 몇몇 장면을 재현한 15분 정도의 단편 무성영화였습니다.

그리고 《1925년 벤허》는 레드 니블로 감독에 의해 2번째로 무성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139만 달러라는 당시로는 엄청난 제작비로 만들어져 900만 달러가 넘는 대박을 벌어들였습니다. 전차경주 장면을 비롯해서 촬영할 때 죽은 말이 무려 100마리가 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비슷한 사례가 잇따르자 영화 촬영 때 ’동물학대 방지를 위한 법률‘이 강화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해군과 해적들과의 해전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오대호에 실제 목조 갤리선을 만들어 띄워놓고 촬영했다고 합니다.

서기 26년 로마제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윌리엄 와일러 감독과 벤허 역을 맡은 찰턴 헤스턴 주연의 《1959년 벤허》는 당시에는 천문학적 액수인 1,500만 달러가 투입된 대작이었습니다. 3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11개 부문을 석권한 기록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특히 영화 속 '전차 경주' 장면은 만 5천 명의 출연자들이 4개월간의 연습 끝에 완성한 걸로 알려져, 60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계 명장면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영화 《벤허》는 모든 장면이 하이라이트입니다. 우리가 자주 보았던 작품은 1959년에 만들어진 《1959년 벤허》입니다.

벤허 역은 당시 모든 할리우드 스타들이 탐냈던 역할인데 윌리엄 와일러 감독은 원작에 충실하고자 유대인 남자배우에게 이 역을 맡기고 싶어 했습니다. 그가 점찍어뒀던 배우는 바로 폴 뉴먼이었으나 케스팅 되지 못했습니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은 이전에 이미 《십계》에서 모세를 연기한 적이 있는 찰턴 헤스턴에게 벤허 역을 맡겼고, 찰턴 헤스턴은 《벤허》로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제작을 전부 끝내고 나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은 "하나님, 제가 정녕 이 영화를 만들었단 말입니까!"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영화 《벤허》의 원작은 루 월리스(Lew Wallace, 1827~1905)의 소설 '벤허'입니다. 소설은 웅장한 스토리 속에 예수님의 사랑과 신성을 녹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작가 루 월리스가 사실 반기독교적 인물인 무신론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입니다. 

1827년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태어난 월리스는 작가, 법률가, 장군, 외교관 이 중 어느 칭호에도 손색없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였습니다. 법률을 전공하던 중 멕시코 전쟁에 지원하여 1846~1847년 복무했으며, 남북전쟁 기간에는 육군 소장으로서 북군을 지휘했습니다. 이후 변호사, 뉴멕시코의 주지사, 터키 주재 미국공사 등으로 활동하다 1905년 사망했습니다.

남북전쟁 당시 장군이자 작가였던 월리스는 친구 한 사람과 이렇게 다짐했다고 전해집니다.

“기독교의 신화를 영원히 없애버릴 책을 써서 인류를 그리스도에게 매여 있는 굴레로부터 벗겨주자.”

월리스는 기독교와 예수님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했습니다. 드디어 집필에 들어간 그는 책의 1장에 예수님에 대한 얘기가 허위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러나 2장의 첫 페이지를 쓰다가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라는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월리스는 "당신은 나의 주, 나의 주 하나님"이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기독교와 예수님의 허구성을 알리고자 글을 썼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자기 마음에 싹튼 신앙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 경험이 있은 후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하기 위하여 책을 썼는데, 그 책이 바로 소설 ‘벤허’입니다.

그렇게 탄생된 소설 '벤허'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벤허는 먼지와 피투성이가 된 예수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예수는 눈을 뜨고 자신만이 볼 수 있는 하늘의 그 무엇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그의 입술에서는 어떤 외침이 퍼져 나왔다. 그것은 희열과 승리의 외침이었다.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한복음 19:30)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대표,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문화평론가 / 긍정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세계선교연대 경기북부 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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