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칼럼] ‘암(暗)인생’보다, ‘명(明)인생’ 많은 세상
[십자가 칼럼] ‘암(暗)인생’보다, ‘명(明)인생’ 많은 세상
  • 나관호
  • 승인 2019.05.18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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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목사의 행복발전소 69]
“공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이니라” (잠21:15)
행복하고 아름다우며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인생은 ‘명암’(明暗)이 있는 삶입니다. 내 삶 속에서도 ‘명과 암’이 공존하게 만드는 인생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아는 ‘명(明)인생’과 모르는 ‘암(暗)인생’이기도 합니다.

‘암(暗)인생’에 대해 먼저 말하고 싶습니다. 거의 모든 타인과의 대화와 전화통화를 녹음하는 심리는 무엇일까요? 수년전, 어느 교회 목사를 만나야할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인목사에게 약속이 잡혔다고 말했더니, 그 지인이 꼭 참고해야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나 목사님! 그 목사 만날 때 조심하세요. 항상 대화를 녹음하는 사람입니다,”
“녹음요? 왜요? 뭐하게 녹음을 해요?”
“그 사람 자체가 문제지요. 뭐든 근거를 남기고, 허점을 잡으려는 것 아닐까요?”
“근거요? 허점이요? 참 문제 있는 사람일세!”

그 지인이 말하기를 그 목사와 대화 중 그 사람 손이 오른쪽 주머니로 들어가면, 틀림없이 녹음기를 누르는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열등감이 있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그 목사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고 살고, 자신이 감추고 싶은 것이 많기에 다른 사람을 향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분명 그 사람은 여러 사람에게 그렇게 녹음해 허점을 잡거나 근거로 잡아, 협박(?)이나 허점 암시를 한 후에 이익을 취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서운 사람이지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녹음하는 ‘양아치(?)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화도, 전화도 서로 녹음하면서 담임목사가 들으면 관심을 가질 만한 정보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담임목사에게 가까이 가기 위한 얇은 수를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곁에서 보고 계신다는 믿음이 없는 한심한 사람들입니다.

또다른 ‘암(暗)인생’ 이야기입니다. 어느 중견교회 담임 목사와의 식사 약속을 가면, 그 교회 부교역자들이 어느 때 부터인가 인사성도 없고, 버릇이 없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학교 교수인 나에게 직접 강의를 듣거나, 듣지는 않았어도 제자뻘들인데 버릇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담임 목사와 내 사이를 이간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와의 만남을 방해하는 것이지요.

담임 목사가 나를 더 챙겨주고, 항상 따뜻하고 깊게 대해주는 것을 질투(?)라도 하는 것인지. 그 목사 자체가 다른 사람을 잘 챙겨주고, 섬기기를 잘하는 성품을 가졌습니다. 상대가 더 필요해 보이면 가치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그 좋은 것’을 주는 그런 사람입니다. 놀랄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물론 나에게도 깜짝 선물을 해줘서 너무 고마웠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날, 내가 그 목사에게 받기만 해서 빚을 갚고 싶어 작은 선물을 준비해 갔는데, 마침 다른 손님과의 만남이 길어지는 것 같아 선물을 전달해 달라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훗날 확인해 보니 전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배달 사고가 난 것입니다. ‘나쁜X’이지요

그런 반면, ‘명(明)인생’으로 사는 귀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녹음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인터넷신문 대표가 인터뷰하는 자리에 동석한 적이 있습니다. 보통 인터뷰는 녹음을 하고 풀어서 글을 쓰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그 대표는 녹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나온 기사를 보니 너무 세밀하고, 감동담긴 인터뷰기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녹음을 하지 않는 이유를 내가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인터뷰를 해도 나는 녹음하지 않아요. 생각과 마음에 담아 감성으로 색칠해 곧장 글을 쓰지요. 녹음을 풀어 그대로 받아쓰면 죽은 글처럼 생동감이 없어요. 그런데 생각에 녹음해 마음으로 끄집어내 글을 쓰면 감동이 담기고,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에게 한 수 배웠습니다. 맞습니다. 백번 맞습니다. 녹음을 넘어서면 생명력이 담긴 글이 나오는 것입니다. 귀한 생각이고, 좋은 삶이며, 귀한 사람입니다.

형님이 담임하는 아홉길사랑교회 교역자들과 함께 예수원에서
형님이 담임하는 아홉길사랑교회 교역자들과 함께 예수원에서

자주 가고 싶은 행복한 교회가 있습니다. 형님이 담임하는 교회입니다. 교역자 수련회, 리더들의  영성수련회, 기도원 성령대망회 등등 교회 행사가 있으면 가끔 나를 초청해 주십니다. 식사를 나누며 교제할 자리를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 교회 부교역자들도 가족처럼 너무 친절하고, 나를 존중하고 귀하게 대해줍니다. 형님 목사님이 나를 그렇게 대하니 부교역자들도 더더욱 그렇게 대해주는 것입니다. ‘명(明)인생’으로 사는 귀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글을 쓰면서 가능하면 부정적이고 어두운 이야기보다, 행복하고 아름다우며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인생이란 ‘명암’(明暗)’이 공존하는 것이고, 사람도 살리고 행복전하는 마음을 가진 ‘명(明)사람’과 끌어내리고 이간하며 나누는 기질을 가진 ‘암(暗)사람’이 있는 것이 현실이기에 비교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성경은 ‘암(暗)인생’과 ‘명(明)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 (욥기  28:28)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잠언 15:2)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잠언 15:14)

“악한 꾀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잠언 15:25)

“공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이니라” (잠21:15)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야고보서 4:17)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대표,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문화평론가 / 긍정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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