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게 만드는 세상
[나관호목사 칼럼]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게 만드는 세상
  • 나관호
  • 승인 2019.04.0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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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관호목사의 행복발전소 66 ]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에베소서 5:9)
성경은 거짓의 조종자인 ‘거짓의 아비’에 대한 마귀 존재에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억울한 문제를 푼 것도 사람입니다.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에서 '저는 성폭행범의 딸이었습니다' 편이 전파를 탔습니다. 하루아침에 장애인 성폭행 범으로 몰려 실형을 선고받은 아버지. 아버지의 무고를 밝히려는 성폭행 피의자 딸의 제보가 공개됐습니다. 지적 장애인을 성폭행하고 누명을 쓴 아빠의 사건을 추적, 누명을 벗기고 지적 장애인을 성폭행한 진범을 밝힌 딸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방송에서 딸은 성폭행범으로 구속된 아버지의 사건에 의문점을 제기했습니다. ‘PD수첩’이 일반적으로는 고발 프로그램인데 이번에는 ‘부정의 부정’은 긍정인 것처럼, ‘고발을 고발’했으니 ‘질실’을 만든 공식이 되었습니다.    

지방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가족들과 떨어져 있던 아버지를 찾아와 아버지 집 두드리며 “당신이 조카를 성폭행했다”고 항의했습니다. 피해자로 언급된 이는 지적 장애 2급의 만 17세의 미성년자였습니다.

성폭행 피의자 딸이 아버지가 피해자 얼굴도 모른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며 무고를 주장했다. 딸은 생업을 접고 지방으로 내려가 아버지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 그러던 중 이전에도 피해자 고모가 같은 수법으로 신고, 또 다른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지적 장애인의 고모가 조카를 조종해 성폭행 당했다는 거짓말을 만들어 합의금을 받고 고소를 취하한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딸은 피해자라는 지적 장애인을 만나 성폭행한 사람은 따로 있다는 진술을 받아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고모부였습니다.

아버지를 믿고 신뢰한 딸은 무고한 아버지를 살려내기 위해 형사보다도 더 깊게 자료를 모으고, 피해자 녹화내용을 분석하고, 사실 확인서를 받고, 촬영도 하고, 피해자를 만나 설득해 진실을 밝혀냈습니다. 딸의 아버지를 향한 ‘그 사랑’ 앞에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드라마 제목처럼 ‘하나뿐인 내편’ 딸의 고군분투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믿음의 관계와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 무고의 억울함과 장대와 구름이 만나 굴뚝 연기나는 것처럼... © 나관호

여기에서 피해자라고 주장한 지적 장애인 여성의 진술이 ‘모두 진실’로 둔갑한 것은, ‘성인지 감수성’이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과 관련된 사건에서 대부분 적용됩니다.  쉽게 말해 가해자 중심이 아닌 피해자 입장에서 성폭력 사건을 이해하고, 범행 전후 피해자의 행동 등 단편적인 상황만을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해석입니다. 무엇보다 성적 피해자의 진술이 가장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성인지 감수성’은 분명 바른 판단 요소입니다.

그러나 이번 PD수첩 '저는 성폭행범의 딸이었습니다' 편에서 볼 수 있듯이 거짓으로 만들어진 ‘위조 성폭행’을 걸러내는 것에는 실패입니다. 결국은 ‘성인지 감수성’을 바라보고 듣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성인지 감수성’ 자체의 오류가 아니라 사람의 오류입니다. 예를들어 슈퍼컴퓨터의 지식능력을 사람이 넣는 것이기에, 슈퍼컴퓨터도 사람이 기본 수치를 잘못 대입하면 오류는 만들어 내는 것과 같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이 ‘돌 같은 고정관념’과 만나면 오류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 같은 고정관념’이 필요합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딸의 진실을 향한 노력이 없었다면, 그녀는 “너는 성폭행범의 딸이지”라는 ‘주홍글씨’를 평생 대대로 달고 살았을 것입니다. 결국 억울한 문제를 푼 것도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날 수 있다’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속담은 ‘불을 지핀 원인이 있으니 연기가 난다’는 의미의 ‘원인 없는 결과가 있겠느냐’는 뜻의 속담입니다. 그렇지만 원인이 잘못 만들어지면 결과도 잘못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속담이 만들어진 옛날에는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불을 지피면 굴뚝으로 연기가 나오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아궁이가 없어도 이미테이션 굴뚝을 만들고 아래에 전자 시스템을 만들어 연기를 보이게 할 수 있는 기술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신형속담 하나를 더 만들어야 합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게 못 만들냐”

이런 상황과 신형속담을 ‘신앙적인 영적 눈’으로 보면 해석이 됩니다. 성경은 거짓의 조종자인 ‘거짓의 아비’에 대한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한복음 8:44)

거짓의 아비는 처음부터 거짓이요, 끝도 거짓입니다. 다시말하면 원인도 결과도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인생에는 진실과 거짓이 공존합니다. 분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분별 능력 중 하나가 ‘믿음과 신뢰’라는 필터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라는 딸의 신뢰감이 초능력을 발휘하게 한 것입니다.

진실의 중요성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시편 51:6)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시편 145:18)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잠언 12:22)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에베소서 5:9)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아버지를 믿고 누명을 벗게 해준 딸처럼 사는지, ‘물같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사는지,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난다”는 신형속담을 인정하고 사는지. 아니면 모든 것을 반대로 사는지.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NewsJ]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문화평론가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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