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읽는 예배] “예수님의 천국복음 말씀들” (눅6장)  
[영상&읽는 예배] “예수님의 천국복음 말씀들” (눅6장)  
  • 윤사무엘 목사
  • 승인 2023.04.0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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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다음 설교문과 예배자료는 2023년 4월 9일 주일 (부활 주일), 대한예수교장로회 로이교회(인천 송도) 주일예배용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납되는 주일예배를 준비합시다. 4월은 '부활기쁨의 달'로 지키며, 다음 예배 자료를 나눕니다. 샬롬샬롬!!! (로이교회 / 합동)

여호와는 나의 목자(14): “예수님의 천국복음 말씀들” (눅6장)  
                “Jesus’ Preaching of Kingdom of God” (Luke6)

본문: 누가복음 6:1-49
요절: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 6:20) 
주제: 예수님의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며 선포하시다.
교독문: 133번(부활주일1), 예배의 부름: 사 26:19-21
찬송: 165장(통 155장), 163장 (160장 없음), 164장(통 154장)

일자: 2023년 4월 9일 주일 (부활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로이 교회)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 IBS Tower, 11층 11호
      (지하철: 인천1호선 국제업무역, 출구 5번, 좌측 7분 거리 빌딩) 
  [예배시간: 매일새벽기도(월-금) 오전6시, 주일예배 오전 11시, 오후 1:30]

윤사무엘 목사
윤사무엘 목사

오늘은 가장 즐거운 부활주일입니다. 주님의 날(The Lord’s Day)은 항상 부활을 축하하기에 우리가 매번 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이 정신을 기억합시다. 주님께서 성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성토요일에 무덤에서 안식하심으로 구약의 모든 안식일을 완성하시고 안식일 다음날 주일 아침(8일째)에 부활하셔서 새로운 안식일인 “주일날/주의 날”에 예배를 드립니다.

성경에 보면 8일의 의미에 대해 (1) 태어나서 8일 째 할례를 베푸는 날이었고 (2) 대홍수시 구원받은 노아 가족의 숫자 (3) 십계명을 받은 날. (4) 어린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 (5) 부활하신 날 (6) 승천하신 날 (7) 성령(성신)님께서 강림하신 날 (8) 초대교회로부터 세례를 베푸는 날이었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 시간 만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시신이 있던 곳이 부활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실패의 현장이 성공의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골 골짜기가 소망의 문이 되기를 바랍니다(호 2:5), 화재의 현장이 재부흥의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절망의 돌산에서 희망의 조약돌을 찾읍시다. 이것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썩을 것으로 심었으나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었으나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었으나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었으나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기적(고전 5:42-44)이 주님의 부활과 함께 오늘 이 시간에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 누가복음 6장을 강해하며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묵상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 Jesus Is Lord of the Sabbath (눅 6:1-11)
(1)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3)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4) 그가 하나님의 성막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집어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5) 또 말씀하시기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시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a man with a withered rignt hand)이 있는지라(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소송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니(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니(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10) 회중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니 그 손이 회복된지라.(11) 그들이 잔뜩 화가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하니라.

1-2절. 두 번째 첫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행하신 일에 대해 이미 두 번 언급했습니다(눅 4:16, 31). ‘두 번째 첫 안식일’이라는 말은 아마 두 번째로 언급하는 첫 안식일이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은 것을 보면, 그들은 몹시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의 행위를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로 규정하였습니다. 당시 장로들이 규정한 안식법에 의하면 노동과 의식주에 해당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금지사항을 보면 요리(출 16:23), 농사(출 34:21), 불 피우는 것(출 35:3), 나무를 모으는 일(민 15:32), 사업과 상업적인 추구(암 8:5; 사 58:13-14; 렘 17:19-27; 느 10:32; 13:15-22), 짐을 운반함(렘 17:17-19)를 금지합니다. 그 외 안식일에 할 수 없는 활동은 성전의 진설빵 준비(씨 뿌리기, 쟁기질, 수확, 묶기, 타작, 밭 감기, 선택, 갈기, 체질, 반죽, 굽기)와 관련된 기본 작업, 성막의 덮개 및 코하님이 사용하는 예복(양 깎기, 표백, 카딩, 염색, 방적, 재료 늘리기, 두 개의 고리 만들기 — 바느질의 시작, 바늘 실을 꿰기, 짜기, 분리하기, 매듭 묶기, 매듭 풀기, 바느질, 찢기), 동물 가죽에서 양피지 준비 및 쓰기 관련 활동 (덫 놓기 또는 사냥, 도살, 가죽 벗기기, 가죽 경화, 가죽 긁기, 절단 준비를위한 가죽 표시), 쓰기, 지우기, 건설 (건축, 철거), 불꽃 점화 (조명 또는 소화), 운반 (개인 도메인에서 공개 도메인으로,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 금지되는데, 이런 일은 안식일 전에 준비를 끝내야 합니다. 

랍비들이 토라 주위에 울타리를 치는 것, 종이를 찢는 것도 금지했습니다. 또한 안식일에 나무를 오르는 것은 나뭇가지를 부러 뜨리거나 잎을 찢을 수 있기 때문에 금지되어 있습니다. 추가로 금지된 사항은 꽃병에 담수를 추가하는 것 (파종 - 식물 성장을 유발하거나 촉진시키는 모든 활동), 꽃다발 만들기 (뭉치 만들기), 버릇없는 과일에서 좋은 과일을 분리 (감기, 선택, 체질), 부츠나 옷에서 말린 진흙을 닦는 일, 머리카락이나 손톱 자르기 (양털 깎기-사람이나 동물의 외부 덮개 제거), 메이크업 적용 (염색), 땋은 머리 (직조), 혈액 검사 (도살)를 위해 혈액을 채취합니다. 연필을 깎는 것, 페인팅, 타이핑 (쓰기), 우산 열기 또는 스크린 펼치기 (건물), 담배를 피우고 전화를 사용하여 (불을 피우는 것), 전등 끄기 (화재 진압), 시계 또는 시계 설정 또는 감기(마무리) 이 모든 것이 금지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으로 이삭을 비비는 행위는 맷돌질한다고 바리새인들이 비판한 것입니다.

3-5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지적에 대해 대답하시기를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집어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도망치다가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나아가 떡을 요청하였고 아히멜렉은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빵을 다윗의 일행에게 주었습니다(삼상 21:1-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일을 그 사건에 비교하십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는 말씀은 구약의 안식일이 예수님에게서 완성될 것을 암시합니다. 

주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약의 안식일인 주일을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 날을 내 마음대로 산다면, 그 날의 주인은 주님이 아니고 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날의 주인이 주님이시요 주일의 주인도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가 주일을 구별하여 예배의 날로 지키는 것은 복됩니다.

6-11절.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실 때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소송할 이유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고 말씀하시자 그가 일어나 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하십니다. 그들은 묵묵부답입니다. 그분은 회중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순종하자 그의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오른손 마른 병자를 고쳐주심으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일이 옳다는 것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주일에 병환자들을 심방하거나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매우 화를 내면서 예수님을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했습니다. 누가 참으로 안식일을 범한 자인가요? 안식일에 환우를 고쳐주는 선한 일을 하신 예수님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음모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인가요? 

2. 사도들을 택하심 The Twelve Apostles (눅 6:12-16)
(12) 이때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15)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16)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님을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12절.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러 언덕으로 가셔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일곱 샘이 있는 타브가(Tabgah)로 알려진 곳에서 새벽기도를 하시고, 열두 사도들을 택하여 세우시기 전날 밤 이곳에서 밤새도록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중대한 일을 앞두셨을 때 기도하시는 본을 보여주십니다. 집이나 동네는 사람들이 많아 시끄럽고 복잡하지만, 언덕은 조용하므로 기도하기에 적합니다.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곳이면 언덕이든 골방이든 어디든지 좋을 것입니다(마 6:6). 

13-16절. 날이 밝으니,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을 부르셔서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마태와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 하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그리고 예수님을 파는 자가 될 가룟 유다입니다. ‘사도’라는 원어(아포스톨로스 ἀποστόλος)는 ‘보내심을 받은 자(one who is sent)’라는 뜻입니다(요 20:2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신약교회의 기초석이 될 자들입니다(엡 2:20).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지만(고전 3:11)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그분의 죽음의 의미와 모든 구원 교리와 기타 교리들과 종말 예언들은 사도들의 서신들을 통해 증거되었습니다. 마가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원하시는 자들을 불러 세우셨고(13절), 그들로 하여금 주님과 함께 거하며 나아가 전도하게 하셨고 또 그들에게 병고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14, 15절). 열두 제자들 중 ‘예수님을 팔 가룟 유다’가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믿지 않은 자요(요 6:64), 돈을 훔쳐가는 도적이요(요 12:6), 죄씻음을 받지 못한 자이었습니다(요 13:10). 예수님께서는 그를 마귀라고 부르셨고(요 6:70), 마침내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감으로써(요 13:27) 주님을 배신하고, 은 30을 받고 악한 자들에게 주님을 넘겨주었습니다(마 26:15). 

3. 주님의 치유사역 Jesus Ministers to a Great Multitude (눅 6:17-19)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18) 더러운 마귀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얻은지라(19) 온 무리가 예수님을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17절. 예수께서 내려오셔서 평지에 서셨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5-7장을 흔히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라고 부르는데 사실은 산이 아니고 언덕입니다. 갈릴리 호수가 지중해보다 212미터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호수에서 평지(plain)를 올려다 보면 산처럼 높게 보입니다. 그래서 평지수훈(Sermon on the plain)이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지에 서셨는데, 그분의 제자들이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병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이 모여들었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이런 저런 동기로 교회에 나오지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그분에게 배우고 그분의 교훈을 행하며 그분의 인격과 삶을 본받는 참된 제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18-19절. 더러운 마귀(unclean spirits)에게 고난받는 자들도 고침을 얻습니다. 온 무리가 예수님을 만지려고 힘썼는데 왜냐하면 능력이 예수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게 모여온 곳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환우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더러운 마귀들에게 고통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습니다. 그분을 만지는 모든 사람이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환우들을 고쳐주신 것은 그분이 단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합니다. 그분께서 행하신 이런 기적들은 그의 신적 인격에 대한 증거들입니다.

4. 복 있는 자와 화 있는 자 The Beatitudes & Woes (눅 6:20-26)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22)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 조상들이 선지자[대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24) 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25)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대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0-21절. 예수님께서는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와 주린 자와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가난하고 주리고 운다는 것은 물질적, 육신적 의미뿐 아니라, 또한 영적인 의미도 가진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나 육신적으로 가난하고 주리고 울 때 하나님과 자신에 대해 잘 깨닫게 됩니다. 물질적 가난은 영적인 가난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육신적 가난과 슬픔은 그에게 불행이 아니고 오히려 복이 됩니다. 초대 교회에는 어리석은 자, 가난한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6-29,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야고보서 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사람은 영적으로 가난하고 주리고 슬퍼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무의미함, 무가치함, 목적 없음과, 또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과 의(義)와 영생이 없음을 깨닫고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과 의와 영생을 갈망하고 또 자신의 죄들과 죄성을 깨닫고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나오고 하나님의 긍휼을 받고 구주를 찾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그를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언제 가난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받고 주린 자가 배부름을 얻고 우는 자가 웃게 될 것인가요? 가난하고 주리고 우는 자들은 하나님을 깨닫고 그의 긍휼을 구하고 구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게 될 때 천국 백성이 되고 영적으로 배부름과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세의 복은 더욱 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될 때 그들은 영광스런 부활의 몸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 영육의 만족과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2-23절.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 조상들이 선지자[대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제자들에게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미움과 배척과 비난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그를 전한다는 이유 때문에 받는 고난입니다. 악한 사람들은 이유 없이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대적하고, 또 그분의 제자들을 미워하고 배척하고 비난하고 핍박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 때문에 또 성경의 바른 진리 때문에 받는 고난은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복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이 고난당할 때에 기뻐하고 뛰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늘에서 그들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마지막 심판 후에 있을 천국을 말합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제자들에게 상급이 있을 것이며 그 상급은 그들의 행위의 정도에 따라 크기가 다를 것인데, 주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제자들에게는 큰 상이 주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또 제자들이 당하는 고난과 핍박은 그들이 하나님의 참된 종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구약시대에도 참 선지자[대언자]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고난과 핍박을 당했었습니다. 세상은 항상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을 미워하고 배척하고 비난하고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미움과 배척과 비난과 핍박을 당하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런 일이지만, 그것이 주님께서 가신 길이며 하나님의 진실한 선지자[대언자]들과 종들이 간 길이기 때문에 주님의 참된 제자들은 그런 고난을 오히려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24-25절. 예수님께서는 화가 있는 자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이 말씀도 물질적 의미뿐 아니라, 영적 의미도 가진다고 생각됩니다. 물질적으로 부요하고 육신적으로 배부르고 웃는 자는 영적으로도 마음이 높고 스스로 만족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자신의 죄와 부족을 깨닫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와 의(義)를 구하지 않는 부요하고 배부른 자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현세에서 더 이상의 위로를 받을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 날 주리고 애통하며 울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마지막 심판 때 지옥의 판결을 받게 될 때 영원히 아무 위로를 받지 못하며 주리고 애통하며 울게 될 것입니다. 

26절.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대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진리의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진리의 사람은 참된 성도들에게 칭찬을 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사람은 진리의 사람인 표를 잃어버린 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런 자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거짓 선지자[대언자]들에게 이런 칭찬을 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항상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따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를 무시하고 미워하고 비난하고 배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은 의인에게는 위로와 기쁨이 되지만, 악인에게는 고통과 찔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을 동시에 가졌다고 말하였고(고후 6:8), 또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를 버렸고 그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었으나, 오네시보로라는 성도가 그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고 합니다(딤후 1:15-18). 

5. 사랑하라, 대접하라, 자비하라 Love Your Enemies (눅 6:27-36)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에게 선을 베풀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29)네 뺨을 치는 자에게 다른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덧옷도 금하지 말라.(30)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물건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고 하지 말며(31) 사람들이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그들을 대접하라.(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33) 너희가 너희에게 선을 행하는 자에게 선을 행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준 만큼 다시 받으려고 죄인들 빌려 주느니라.(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려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36)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27-28절.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나 듣는 너희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우리의 원수를 대적하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고 우리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고 우리를 모욕하는 자를 모욕하는 것은 일반적 생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이며 악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교훈은 그 일반적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세상에는 무저항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이 있지만, 예수님의 교훈은 그런 생각도 뛰어넘습니다. 구약성경 레위기 19:18에 ‘원수를 갚지 말라’고 명하셨으나,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의 말씀보다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에게 선을 행하고 우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우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29-30절. “네 뺨을 치는 자에게 다른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덧옷도 금하지 말라.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이 말씀은 악한 자를 대적하거나 보복하지 말고, 그에게 끝까지 선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물론 폭력이나 살인, 도적질이나 강도질을 정당한 일로 허용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회적으로는 법이 필요하고 범죄의 처벌도 필요하나, 그때도 가능한 한 사랑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사회에 치안 담당자나 경찰이 불필요하다거나 그런 직업이 부당하다거나, 악을 행하는 자들과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에 대한 처벌을 금한 것이나, 모든 전쟁이 부당하다는 뜻으로 이해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누가복음 22:36에 보면,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검 없는 자는 덧옷을 팔아 사라”고 말씀하심으로 칼의 필요성을 인정하셨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4에서 국가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칼을 가지고 사회의 정의를 시행함을 말하였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의 평안을 위해 범죄자들의 구속과 처벌은 불가피하고 정당하다고 본다. 물론 그 경우에도 범죄자의 인격을 모독하거나 인권을 짓밟지 말고 그를 학대하지 말아야 하며 그에게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기회를 정당하게 주어야 할 것이다. 또, 패권주의적 침략 전쟁이 아니고 정당방위적인 합법적 전쟁은 정당하다고 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인들이 국가의 위정자의 직분에 부름을 받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며 수행하는 것은 합법적이며, 그것을 수행함에 있어서 그들은 각 국가의 건전한 법들에 따라 특히 경건과 의와 평화를 유지해야 하므로 그 목적을 위해 지금 신약 아래서도 정당하고 필요한 경우들에는 합법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고 진술합니다(23:2). 그러나 합법적 전쟁의 경우에도, 우리는 먼저 평화를 제안하고 불가피한 폭격 외에는 자제하고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그에게 보복하지 말라는 주님의 교훈은 특히 개인의 행위에 적용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보복 대신에 양보를 요구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오래 참아야 하며 정당한 권리도 때로는 포기해야 합니다. 사실, 이 세상의 악은 보복을 통해 제거되지 않습니다. 보복은 보복을 불러오고 피는 피를 불러옵니다. 주님께서는 검(칼)을 가지는 자는 다 검(칼)으로 망한다고 하십니다(마 26:52). 우리는 악한 자들을 사랑으로 이겨야 합니다. 로마서 12:17-21은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살며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희생시키셨습니다(롬 5:6-8, 10).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31절. 주님께서는 또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12에 보면, 주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교훈의 결론으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십니다. 황금률(黃金律 the Golden Rule: treating others as one wants to be treated)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다 적용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하고 기도한다면, 우리는 먼저 그분을 최선으로 섬기며 그분의 명령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대인관계에서도, 우리가 남에게서 이해와 사랑과 대접을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그를 이해하고 그를 사랑하고 대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좋은 것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먼저 좋은 것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원리입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고전 13:5) 사랑은 남을 배려하고 먼저 대접하는 것입니다.

32-34절.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너희에게 선을 행하는 자에게 선을 행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만 사랑한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고 하나님과 닮은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변화된 삶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참됨과 가치 있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너희가 어떤 자들에게 받기를 바라며 빌려주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준 만큼 다시 받으려고 죄인들에게 빌려주느니라.” 주님께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려주라”고 가르치십니다. 성도가 남에게 돈을 빌려줄 때 원금을 받는 것은 정당한 일이지만, 이자를 받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성도들 간에는 가급적 장사나 돈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35-36절. “오직 너희는 너희 원수들을 선을 행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려주라. 그리하면 너희 보상이 클 것이요 또 너희가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되리니 그분께서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원수를 사랑하며 남에게 선을 행하며 이자를 바라지 않고 빌려주는 자들에게는 천국에서 상이 클 것입니다. 천국에서의 상은 지상에서 행한 순종과 선행에 따라 차등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에 대한 약속으로 성도의 순종과 선행을 격려하십니다. 또 이런 선한 삶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들에게나 불경건한 자들에게나 골고루 햇빛과 비를 내리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은 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6. 반석위에 집을 세우라 Build Your House on the Rock(눅 6:37-49)
(37)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39)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시각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도랑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43) 변질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변질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기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홍수이 나서 물살이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었기에 능히 흔들지 못하였거니와 (49)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기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물살이 세차게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37-38절.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비판치 말고 정죄치 말라’는 교훈은 어떤 경우에도 판단치 말고 정죄치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안디옥에서 베드로를 판단하고 책망하였고(갈 2:11), 고린도전서에서 교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잘잘못을 판단하여 교훈했습니다. 특히 이단에 관계하여 우리는 진리와 비진리, 의와 불의에 대해 분별하고 판단해야 하고 이단과 불의를 정죄해야 합니다(롬 16:17; 딛 3:10; 요일 4:1; 요이 10; 유 3). 여기서 비판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라는 말씀은 사사로운 비판과 정죄를 금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사로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우선 우리가 남을 비판하고 정죄할 위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순종해야 할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11-12, “서로 비판하지 말라. 형제를 비판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판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더욱이, 우리는 부족한 죄인들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셨고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사사로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씻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죄씻음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 흠과 부족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 속에 있는 흠과 부족은 우리 속에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은 우리는 남의 흠과 점을 볼 것이 아니고 용서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또 남에게 주는 일에 대해 교훈하십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준다’는 말은 남을 구제하고 후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받는 생활보다 주는 생활을 힘써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주는 자에게 이 세상에서 풍성한 보상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상입니다(마 6:3-4). 잠언 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39-40절. 또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시각장애인이 다른 시각장애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도랑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고 하십니다. 이 비유는 무지한 인도자가 무지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그 둘은 다 도랑에 빠질 것입니다. 도랑은 교리적, 윤리적 오류와 그로 인한 낭패를 가리킵니다. 바른 지식이 없이 남을 인도하는 자는 자신도 망하고 남도 망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선생에게서 좋은 것을 배우고 좋은 영향을 받는 자들은 복됩니다. 

41-42절.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티(mote)’는 작은 결함을 비유하고 ‘들보’[통나무 beam]는 큰 결함을 비유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큰 결함은 깨닫지 못하고 남의 작은 결함을 지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먼저 우리 자신의 큰 결함을 깨닫고 그것을 고친 후에 남의 작은 결함에 대해 지적하고 고치게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의 부족을 고친 후에 남의 부족을 지적하고 권면해야 할 것입니다.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낫지만(잠 27:5), 단지 자신의 큰 결함이 없을 경우에 남에게 유익을 줄 것입니다.

43-45절. “변질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변질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나무와 열매의 비유는 사람의 인품과 행위를 가리킵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듯이, 좋은 사람은 좋은 행위를 하고 나쁜 사람은 나쁜 행위를 합니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알듯이, 사람의 인품은 그의 언행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말과 행위에 있어서 거룩함과 선함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46-49절.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기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홍수가 나서 물살이 그 집에 부딪히되 그것이 반석 위에 세워진 까닭에 그 집을 흔들지 못하였거니와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기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믈살이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주님께서는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진대, 우리는 그분의 교훈을 행하려 해야 할 것입니다. 또 그분의 말씀을 행하는 자는 튼튼한 기초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분은 홍수가 나도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홍수는 환난이나 재난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행하지 않는 자는 흙 위에 기초 없이 집을 짓는 자와 같습니다. 그는 환난의 날에 낭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으나 행위 없이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계명 순종의 행위로 증거됩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길이 복된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첫째로 우리는 사사로이 남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맙시다. 우리는 중요한 교리적,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 판단해야 하지만, 사사로이 남을 판단하는 일을 삼가야 합니다. 온전한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남의 부족을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남을 너그러이 용서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선한 행실을 가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남에게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남의 부족과 결함을 지적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부족과 결함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한 행실을 나타내는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주님의 교훈을 순종하여 행함으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교훈을 행하지 않는 자는 흙 위에 기초 없이 집을 짓는 자와 같습니다. 그런 자는 환난의 날에 집이 부서지고 큰 낭패를 당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주님의 교훈을 행하고 실천함으로 그 진실함이 증거되고 또 튼튼한 바위 위에 우리 믿음의 집을 견고하게 건립됩니다. 아멘.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을 환영하며 감사하며 저도 부활하게 하옵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새롭게 되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되게 하시며 애통하고 자비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옵소서. 원수도 사랑하며 남에게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게 하옵소서. 이웃을 판단하지 말고 먼저 용서하며, 내 눈의 들보를 빼내고 이웃의 눈에 있는 티도 빼내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공부를 위한 질문들]
1.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갔을 때 무엇을 먹었느냐? (4절)
2.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이 마른 환우를 고치신 후 비평가에게 물으신 질문?(9절)
3. 예수님께서 사도로 삼으신 열두 제자들을 외우자(14-16절)
4. 복이 있는 사람(4가지 경우)와 화를 당하는 사람(4가지)은? (20-26절)
5.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는지 말해보자(27-36절)
6. 형제를 비판하지 말고 용서하라는 것을 들보와 티 비유로 설명하자(41-42절)
7.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와 불순종하는 자를 비교하라(47-4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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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부활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부활절 기간동안 주님의 겸손과 온유, 순종을 배우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4월 10일 월 찬 159장(통 149장) 막 16 예수님 살아나셨다
    11일 화 찬 160장(통 150장) 마 28 주님의 부활과 지상명제
    12일 수 찬 161장(통 159장) 눅 24 엠마오에서 예루살렘으로
    13일 목 찬 162장(통 151장) 요 20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14일 금 찬 163장(통 160장) 요 21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15일 토 찬 164장(통 154장) 고전 15 부활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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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us06web.zoom.us/j/7049077483?pwd=UzNvdldBM04xMFlWQSswVWxDT3YvQT09,  회의 ID: 704 907 7483 / 암호: 12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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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신학교

◉2023년도 봄학기 개강(2023년 2월 27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종강 2023년 5월 22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2023년 4월10일 월 수업 일정표
   1교시 10:00-11:30 원우회 주관 채플(강사: 정성구박사, “거룩한 꿈을 꾸자” 히 11:24-26)
   점심과 친교 시간 (11:40-1:00)
   2교시 (1:00-2:30)  복음신학(송인성), 종말론(유석근)
   3교시 (2:50-4:20)  무궁신학(이종훈). 테필린(김인자), 논문지도(윤사무엘)
   4교시 (4:30-5:30)  원어강독(윤사무엘)  
◉장소: 수원 향기나는나무 교회(이태환 목사 시무), 본당과 디모데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네이비에 ‘겟세마네신학교’ 검색]
  연락처: 010-3288-2878, 010-9367-7605, 010-9722-4548
◉로이교회 후원계좌: 농협 302 0280 1002 11 YunSam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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