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전지적 신앙선배 시점’, 후배들에게 말한다
[나관호목사 칼럼] ‘전지적 신앙선배 시점’, 후배들에게 말한다
  • 나관호
  • 승인 2019.03.04 2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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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목사의 행복발전소 57 ]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태복음 22:39)
하나님을 사랑한다하면서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고, 거짓과 위선으로 대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사이비 믿음, 가짜 신앙입니다.

‘전지적 참견 시점’. 요즘 핫하게 뜨는 예능프로그램입니다. '전지적 참견 시점'은 연예인의 일정에 맞춰 출연 장소로 이동시키고 운전, 식사와 잡심부름을 도맡아야 하는 매니저들의 애로사항을 부각한 프로그램으로 매니저만의 고충과 숨은 사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연예인들도 몰랐던 매니저만의 습관이나 실력을 볼 수 있습니다. 연예인에 가려진 사각지대의 재미를 나타내고 연예인과의 관계를 볼 수 있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전지적 참견 시점’은 ‘전지적 작가 시점’(全知的 作家 視點)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전지적’(全知的)이란 사물과 현상의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의미입니다. 기독교에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 그 ‘전지적’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의 의미 그것입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은 작가가 등장인물의 행동과 태도는 물론 그의 내면세계까지도 분석 설명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입니다. 작가가 소설 속의 인물의 내면세계와 외부세계를 모두 관장하며, 작가의 입장에서 인물의 행동과 심리 상태를 해석하기도 합니다. 소설의 이야기가 작중인물이 아닌 이야기 밖의 서술자에 의해 서술되기 때문에 작중인물은 ‘그’라는 삼인칭 대명사로 지칭됩니다. 그러므로 ‘삼인칭 시점’이라고 지칭되기도 합니다.

‘전지적 참견 시점’은 연예인이나 매니저가 서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소홀히 했던 혹은 정작 미처 몰랐던 사항들에 대해 일일이 직접 참견해서 체험하거나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느끼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알려줍니다. 그에 따라 늘 함께 다니면서 소홀히 했던 사람들이나 매니저, 또는 자신이 평소 좋아했던 음식과 식당들을 하나하나 찾아 직접 다시 관찰해보는 것을 주요 플롯으로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 선물받은 소가죽으로 리폼된 성경책과 '전지적 참견 시점' 포스터 © 나관호

‘전지적 작가 시점’과 ‘전지적 참견 시점’을 신앙적으로 패러디해 ‘전지적 신앙선배 시점’을 만들어 글로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누군가의 선배이고, 또 누군가의 후배입니다. 선배에게 배우고 후배를 가르치게 됩니다. 더 나아가 20여년 전부터 강의를 하다보니 후배이며 동시에 제자들이 많이 있고, 그 제자들의 후배가 있으니 나는 할아버지 선배가 되기도 합니다. 어느 교회를 가든 자동적으로 인사하는 내 강의를 들은 후배 목사와 전도사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 여러 교회에 초청설교를 다니면서 ‘전지적 신앙선배 시점’으로 서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교회를 갔을 때 곧 목사가 될 전도사와 젊은 전도사들이 섬김보다 권위의식을 먼저 배우고 겸손과 예의, 인간미를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인사성도 없고,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고 나이든 성도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니 가관이었습니다.

목회자로서의 싹이 막 움트고 있는 영적인 싹수요, 싸가지들이 바르게 배워야 하는데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저런 것이 전도사라니”, “싹수가 노랗게 바랬네. 싸가지가 없네”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 교회 담임 목사는 다른 사람을 세밀히 살피는 인간미 넘치는 목사인데 그런 것을 배우지 못하고 살아가고 잇다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고민하던 시점에 역전의 용사 원로목사님 한분이 카톡을 보내주셨습니다.

"한번 뿐인 삶 곧 지나가리니 오직 주님을 위해 행한 것만이 영원하리라“

저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제 마음에 남은 것은 주님을 위하여 눈물과 땀, 물심양면으로 헌신한 것만이 영원한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갑니다. 위에 글을 어디에서 일어본 기억이 납니다. 위에 글을 동감합니다. 남은 생애 주님만을 위하여, 은퇴한 교회의 담임목사님과 교회 가족분들, 작은 아들 목회 사역을 저와 소통하고 계신 여러분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저에게 주어진 사역은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저희 부부는 질병으로 인하여 민폐 끼치지 않고, 건강하게 사역하다가 천국에 입성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멘!

오랜시간 목회를 하셨던 원로목사님. 그분은 나에게 선배이시니 그런 분의 결론적인 삶은 ‘겸손의 열매’였습니다. ‘전지적 신앙선배 시점’으로 나에게 겸손과 낮아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도 ‘전지적 신앙선배 시점’으로 후배들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싹수들아! 싸가지들아! 사랑과 섬김과 겸손을 먼저 배우면 좋겠다. 목사나 전도사는 계급이 아니라 직책이야. 하나님과 사람 앞에 종의 자세를 가져야지.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르니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기라는 것이 아니지. 하나님과 사람을 같이 사랑하고 섬기라는 의미의 ‘하나님의 종’이지. 그리고 인간미 있고, 온유한 성품과 에너지 넘치는 인사성을 가지면 좋지. 목이 굳어져 있고, 성도들을 존중하고 막대하지 말아야지. 나라의 주체가 국민이듯 교회의 주체는 성도들이잖아. 잘해라,”

또 다른의 ‘전지적 신앙선배 시점’의 섬김이 나에게 일어났습니다. 선배 목사님이 저녁 식사를 하자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가 며칠 전 맡겼던 성경책의 겉표지를 핸드메이드로 만든 소가죽으로 새롭게 리폼한 성경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내 사랑하고 좋아하는 성경책에 사랑과 섬김 가득한 핸드메이드 리폼 성경은 최고의 행복이었습니다, 그 교회 성도의 작품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도 그렇게 후배들을 섬기고, 그렇게 가르치려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에게 서로 대립이 되는 두 큰 종파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중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을 속셈으로 예수님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냐고 질문을 던졌을 때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7-40)

이 말씀은 가장 기본적인 신앙 자세이며. 신앙과 신학의 기초이고, 신앙생활의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하면서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고, 거짓과 위선으로 대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사이비 믿음, 가짜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믿음과 신앙을 보시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깊이를 보십니다. 믿음 자체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으로 믿음이 보여지게 됩니다.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대표,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문화평론가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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