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딱 좋은 날씨'였다
1919년 3월 1일, '딱 좋은 날씨'였다
  • 나관호
  • 승인 2019.03.0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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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는 서리가 내렸고 오전에 안개가 끼었으며 저녁에는 연무도 있었다.
1919년 3월 1일, 기상관측자료가 있는 도시는 전국 7개 지점이다.

 “대한독립 만세!”
1919년 3월 1일, 인도주의와 민족자결주의에 기초해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천명한 거족적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민족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미리 탑골공원에 모여 있던 학생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거리 행진에 나섰습니다.

1919년 3월 1일, 인도주의와 민족자결주의에 기초해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천명한 거족적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민족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미리 탑골공원에 모여 있던 학생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거리 행진에 나섰다. [사진 = 서울역사박물관 3·1 운동 전시물]
1919년 3월 1일, 인도주의와 민족자결주의에 기초해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천명한 거족적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민족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미리 탑골공원에 모여 있던 학생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거리 행진에 나섰다. [사진 = 서울역사박물관 3·1 운동 전시물]

1919년 3월 1일, 그날의 날씨가 궁금했습니다. 애국자들의 비폭력 운동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날씨도 중요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100년 후, 2019년 3월 1일. 오늘은 제 100주년 3·1절입니다. 오늘 날씨도 맑고, 약간 구름이 있습니다, '그날'도 오늘 날씨 같았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독립 의사를 비폭력 ‘만세운동’으로 세계만방에 알린 날, 기미년 3월 1일. 그 역사적인 날의 날씨를 기상청 기후자료를 통해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919년 3월 1일, 기상관측자료가 있는 도시는 전국 7개 지점이다. 이 날 날씨는 아침 6시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맑았다. 그러나 다음 날인 3월 2일 아침 6시의 운량(雲量)이 서울과 인천을 제외하고 7할에서 10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3월 1일 오후에나 밤에는 구름이 많아졌을 가능성이 있다.

이날 서울의 기상은 최고기온 12.6도, 최저기온 -3.3도로 최근 평년값(1981~2010년)에 비해서 최고기온은 5.3도 높았고, 최저기온은 2.3도 낮았으며, 일교차가 15.9도로 큰 날이었다. 또한, 새벽에는 서리가 내렸고 오전에 안개가 끼었으며 저녁에는 연무도 있었다. 바람은 오전에는 거의 불지 않았고 오후에는 초속 2~3미터로 약하게 불었다. 그러나 강릉에는 아침 6시에 남서풍이 초속 14.2미터로 불어 폭풍현상이 있었고 일중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1919년 3원 1일은 만세운동을 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습니다. 맑고 환하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선선한 온도로 활동하기 좋은 날씨였고, 구름도 적당해 강한 햇빛을 조절해 주었습니다.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대표,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문화평론가)

http://www.km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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