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선도 목사 ... 교회의 사람, 기적의 사람
故 김선도 목사 ... 교회의 사람, 기적의 사람
  • 배성하
  • 승인 2022.11.27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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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명 교회 부임해 최대 감리교회로 성장/
“생명이 있는 교회, 성장과 성숙 동시에”/
‘매일 전도’, ‘매일 성경 공부’ 외쳐/

【뉴스제이】 배성하 기자 = 지난 25일 별세한 故 김선도 광림교회 원로목사에 대한 교계의 애도와 추모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광림교회 5대 담임목사로 부임해 이 교회를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로 성장시킨 고인의 삶이 다시 소환되어 회자되고 있다.

故 김선도 목사... 광림교회는 “한국교회에서 그가 걸어온 신앙의 행적과 철학은 큰 도움과 이정표로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광림교회
故 김선도 목사... 광림교회는 “한국교회에서 그가 걸어온 신앙의 행적과 철학은 큰 도움과 이정표로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는 1930년 평안북도 선천 출신으로 6.25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으로 징병됐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를 위해 북한군에서 탈출하며 살려달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고, 지나던 국군에게 발견되어 5분 만에 북한 군복에서 국군 군복으로 갈아 입게 된다. 고인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했던 『5분의 기적』에 나오는 내용이다.

1971년, 김선도 목사가 담임으로 부임할 당시 광림교회는 150명의 작은 교회였다. 교회는 앞마당을 개조해 월세를 받아 겨우 유지했었고, 성도들에게는 비전과 꿈도 보이지 않았다. 김선도 목사는 ‘매일 전도’, ‘매일 성경 공부’를 외치며 하나님의 비전을 선포했고, 그 결과 교회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한국 최초로 ‘총동원 주일’ 행사를 가졌고, 성도들은 긍정적 사고와 적극적 신앙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올랐다. 교회가 급성장하면서 1978년 당시 배나무밭이던 강남 신사동에 새롭게 교회를 건축, 지금의 광림교회가 됐다.

광림교회 20주년 기념관 정초식 장면      ⓒ광림교회

원래 ‘광림’이란 이름은 교회가 광희동과 쌍림동 사이에 위치해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러나 김선도 감독은 성경적 의미를 부여해 ‘광림’(光林)이라 명명했다. ‘호렙산에서 타오르는 불꽃’. 성도 모두가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생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생명이 있는 교회는 성장과 성숙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선교 중심의 복음적 교회만이 불안과 두려움의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김 목사는 은퇴 후에도 사명을 위해 기도의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광림교회는 “장천(杖泉) 김선도 목사는 교회의 사람, 기적의 사람이었다. 코로나로 큰 어려움을 겪는 한국교회에서 그가 걸어온 신앙의 행적과 철학은 큰 도움과 이정표로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한편, 기독교대한감리회(감독회장 이철, 이하 기감)가 25일 별세한 故 김선도 광림교회 원로목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해 줄 것을 정부에 청원했다.

기감은 이날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보낸 청원서에서 고인이 “기독교대한감리회 제21대 감독회장, 세계감리교회협의회 회장, 월드비전 이사장, 기독교TV 공동대표이사, 한기총 명예회장 등을 역임하며 기독교 및 여러 사회기관을 통해 대한민국 발전과 국민정신 함양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며 이같이 청원했다.

기독교계에서는 故 강원용 목사와 故 조용기 목사 등이 국민훈장 무궁화장 서훈자다. 故 김선도 목사는 국민훈장 목련장 서훈자이기도 하다.

국민훈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 공적을 세워 국민의 복지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5등급으로 나누어지는데 1등급 무궁화장, 2등급 모란장, 3등급 동백장, 4등급 목련장, 5등급 석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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