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읽는 예배] “시력을 회복하시는 예수님” (요9장)
[영상&읽는 예배] “시력을 회복하시는 예수님” (요9장)
  • 윤사무엘 목사
  • 승인 2022.11.25 0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제이】 다음 설교문과 예배자료는 2022년 11월 27일 주일 (대림절 첫째 주일), 대한예수교장로회 로이교회(인천 송도) 주일예배용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납되는 주일예배를 준비합시다. 11월은 '감사의 달'로 지키며, 다음 예배 자료를 나눕니다. 샬롬샬롬!!! (로이교회(합동) :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 IBS Tower 11층 6호)

하나님께 더 가까이(48): “시력을 회복하시는 예수님” (요9장) 
                  “Jesus, who restored the blind man” (John 9)

본문: 요한복음 9:1-41
요절: “대답하기를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요 9:11)
주제: 실로암에 가서 진흙으로 칠해진 눈을 씻음으로 영적 소경을 치유받자
교독문: 115번(구주강림1), 예배의 부름: 사 40:3-5
찬송: 102장(통 107장), 94장(통 102장), 366장(통 485장)

일자: 2022년 11월 27일 주일 (대림절 첫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로이교회, 구 겟세마네 교회)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 IBS Tower, 11층 11호 
       [예배시간: 매일새벽기도(월-금) 오전6시, 주일예배 오전 10:30]

윤사무엘 목사

오늘은 대림절(待臨節, 혹 대강절, 강림절 Advent) 첫째 주일입니다. 교회력이 새로 시작됩니다. 교회 칼렌더는 대림절에서 시작하여 대림절 직전인 추수감사절까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초림]을 기념하는 성탄절 전 4주간을 대림절로 지킵니다.

오늘 오후 예배시간에 성탄절 튜리를 장식합니다. 올해 성탄절이 주일이기에 11월 27일(대림절 첫째 주일, 진보라색 purple 촛대, 기다림과 소망), 12월 4일(둘째 주일, 옅은 보라색 촛대, 회개와 평화), 12월 11일(세째 주일, 분홍색 pink 촛대, 사랑과 기쁨), 12월 18일(네째 주일, 흰색, 만남과 회복) 이며 대림절 예전 색깔이 보라색입니다. 

휘장이나 설교자의 스톨 색깔도 보라색을 표하게 됩니다. 보라색은 주님을 왕으로 기다리는 강림절과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사순절에 사용합니다.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색깔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탄절 이브와 성탄절(올해 성탄주일)에는 가운데 흰색 큰 초 (Christmas Candle)를 켭니다. 예수님의 초림을 축하하며 기뻐합니다. 

대림절에 중요한 성경 인물은 세례[침례자] 요한입니다. 그는 말라기 4장 5-6절에 예언된 인물로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주님(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며 회개운동을 6개월 동안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세례 요한이 바로 다시 오리라고 예언된 엘리야(불말로 승천)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대언자[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대언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분이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모든 대언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9-14). 세례 요한이 머물고 사역한 장소가 여리고 가까운 요르단강 베다니[감람산 베다니와 다른 장소]라는 곳인데 이곳에서 엘리야가 승천한 곳입니다. 그는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약대 털옷을 입고 이곳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여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며(마란-아타), 주님의 길을 예비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는 제2의 세례요한이 되어야 합니다. 이 대림절 기간에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강조하며 성탄절과 함께 재림절로 지켜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세계 선교를 해야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재림절을 준비하는 제2의 세례요한이 되는 선교를 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요한복음 9장을 강해합니다. 요한복음 8장을 통해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진리가 되심을 선포하며 진리를 알아야 주님의 제자가 되고, 진리로 자유함을 얻는 복음을 배웠습니다.오늘은 영적, 육적 시각장애로부터 벗어나 예수님을 재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1. 시각장애자의 눈을 뜨게 하심 Jesus Heals a Man Born Blind(요 9:1-12)
(1) 예수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시각장애된 사람을 보신지라(2) 제자들이 묻기를 “랍비여 이 사람이 시각장애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그 부모때문 입니까?”(3)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4) 때가 아직 낮이니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7) 말씀하시기를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8)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그가 거지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9)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니 그의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10) 그들이 묻기를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11) 대답하기를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12) 그들이 말하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말하기를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1-3절. 예수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의 주된 사역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시며 잃어버린 혼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만난 시각장애우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름다운 세상, 푸른 하늘과 산과 들, 각양의 동식물들, 특히 사랑하는 가족들을 육안으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자입니다. 이에 제자들이 질문하기를 “랍비여, 이 사람이 시각장애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그 부모 때문입니까?” 보통, 죄와 질병은 연관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죄로 인해 각종 질병들과 불행들을 당합니다. 

신명기 28장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치 않는 죄의 형벌로 여러 가지 질병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시각장애도 언급되어 있습니다(28절). 또 성경은 부모의 죄 때문에 그 자녀가 죽는 경우도 증거합니다. 다윗은 범죄한 후 우리아의 처가 그에게 낳은 아이가 병으로 죽는 일을 당하였습니다(삼하 12장). 두아디라 교회의 여자 이세벨은 죄 때문에 그 자신이 병상에 누울 것이요 그의 자녀가 죽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계 2:22-23). 인간의 불행은 빈번히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고 교훈합니다(약 5:16). 그러나 모든 질병이나 불행이 반드시 죄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닙니다. 코로나 팬데믹이나 유행병이 그런 경우입니다. 

3절에서 주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고침을 받음으로 그를 믿게 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모든 병이 다 직접 어떤 특정한 죄의 결과는 아닙니다. 물론 근원적으로는 세상의 모든 불행이 다 죄에 기인하지만, 모든 불행이 다 직접 어떤 특정한 죄의 결과는 아닙니다. 의인 욥은 많은 재산의 손실, 모든 자녀들의 죽음, 자신의 몸의 치료할 수 없는 질병 등 큰 불행을 당했으나, 그것은 자신의 죄 때문에 받은 재앙은 아니었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 가운데 주어진 고난입니다. 성도들에게는 때때로 그런 고난이 있습니다. 

성도는 그런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게 되고 더 겸손해지고 믿음이 굳세어지고 인격이 더욱 거룩하게 단련됩니다. 그러므로 욥은 고난 중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분께서 아시나니 그분께서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고백합니다(욥 23:10).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당하는 형제들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경에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부처에게 하니 전생의 업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윤회설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열반에 들어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로 가르치십니다(참고. 요 11:4).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는 구원을 얻습니다.  

4-5절.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때가 아직 낮이니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내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일반적으로 여전히 낮은 일하는 때이고 밤은 쉬는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빛으로 오신 자신이 활동하는 때를 낮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분은 살아계시는 동안 하나님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에게는 일할 수 없는 밤이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할 만한 때에 즉 아직 낮이라고 말할 수 있는 때에 시간을 아끼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힘써야 할 것입니다. 미국을 개척한 자들이 서부로 향해 전진할 때(1850~1924년) 많이 부른 찬송이 330장(통 370장)입니다. “어둔밤 쉬 되리니 네 직분지켜서 찬 이슬 맺힐 때에 일찍 일어나 해 돋는 아침부터 힘써서 일하라.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기회 있을 때 부지런히 일합시다. 

6-7절.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 그가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그 소경을 고칠 수 있으셨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그는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그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방법을 사용하신 것은 그 시각장애우에게서 믿음과 순종을 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참 믿음과 순종입니다. 예수님의 방법은 옛날 엘리사 때에 엘리사가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주던 방법과 비슷합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말하였습니다(왕하 5장).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해 말씀으로 나아만의 나병을 치료할 수 있으셨습니다. 또 요단강에 몸을 씻는다 해도 일곱 번이 아니고 한 번 씻어도 깨끗함을 얻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아만에게서 참 믿음과 순종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참 믿음과 순종을 원하십니다. 

이 시각장애우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고 순종했습니다. 그는 그분의 말씀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습니다. 실로암은 이사야 8:6에 나오는 '실로아'와 같은 말입니다. 그가 실로암 못에 가서 씻자 그의 눈은 시력을 회복했습니다. 그의 죽은 시신경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격적인 순간인가요! 

8-12절. 이웃 사람들과 또 전에 그가 시각장애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어떤 이는 그 사람이라 하며 다른 이는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그의 말은 ‘내가 그로라;고 하였다. 그들은 물었다.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그들은 말했다. 그가 어디 있느냐? 그는 말했다. 알지 못하노라.” 본문은 예수님께서 진흙을 이겨 그 소경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셔서 그 시각장애인이 그대로 했더니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두 번이나 증거합니다. 이 기적의 진실성은 이처럼 두 번이나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기록함으로써 더 확실히 증거됩니다. 

2. 유대인들의 불신앙적 변론(요 9:13-34)
(13) 그들이 전에 시각장애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14) 예수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말하기를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16)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기를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서로 쟁론이 되었더니(17) 이에 시각장애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기를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기를 ‘대언자니이다’ 하니(18) 유대인들이 그가 시각장애우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기를 (19)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기를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보시오.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시오 하였더라.(24) 이에 그들이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번째 불러 말하기를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줄 아노라.’(25) 대답하기를 ‘그분이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시각장애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입니다’(26) 그들이 말하기를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기를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28) 그들이 욕하여 말하기를 “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29)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30)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나 당신들이 그분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31) 하나님께서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분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시각장애우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34) 그들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13-16절. 사람들은 전에 시각장애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그는 말했습니다. “그분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니 내가 씻고 보나이다.” 바리새인 중에 어떤 이는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고 말했고 어떤 이는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고 말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습니다. 5장에서도 읽은대로 38년 동안 중풍병으로 고생하던 분이 치유받아 회복되어 침상을 들고 귀가하던 일에 대해 모두 축하하며 감사해야 할 것인데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이날 안식일에 물건을 들게 했다고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참으로 본질은 망각하고 현상만 보고 판단하고 논쟁을 하던 그들의 못된 습관이 여기서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태어나면서 한번도 보지 못한 시각장애가 치유된 것을 감사하고 축하하기 보다는 

또 이날이 안식일에 치유했다고 논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안식일에 7번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1)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 고침(요 5:1-15)
2) 회당에서 귀신 들린 자 고침(막 1:21~28)
3) 베드로 장모의 병 고침(막 1:29~31)
4) 한편 손 마른 자 고침(막 3:1-6)
5) 날 때부터 소경된 자 고침(요 9:1~41)
6) 허리 꼬부라진 여자 고침(눅 13:10-17)
7) 고창 병을 고침(눅 14:1-4)
우리도 안식일에 좋은 일, 구원의 사역, 치유, 생명을 구하는 일에 열심히 하며 회복의 날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시각장애우를 고쳐주신 것이 잘못이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안식일은 죄로 인해 안식을 잃어버린 인생에게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참 안식의 예표이었습니다. 그 시각장애우는 이제까지 참 안식을 모르고 있었고 마음에 늘 슬픔이 있었을 것이나, 병고침을 받음으로 큰 기쁨과 평안을 얻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믿음으로 얻는 죄사함과 구원을 받았습니다. 38절에 보면, “주님, 제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였습니다. 그는 과연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 시각장애우를 고쳐주신 것은 그에게 참 안식을 주신 것입니요 그것은 오히려 안식일에 합당한 일이었습니다. 

17절. 그들은 그 시각장애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그는 대답하기를 “대언자입니다.” 참 대언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서 진리를 말하는 자이며 사람들은 그의 모든 말씀을 다 믿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대언자가 참 대언자이려면, 첫째로 그의 교훈이 모세의 율법에 맞아야 하고, 둘째로 기적을 행하는 표가 있어야 하고, 셋째로 그가 무엇을 예언한다면 그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에 일치하게 교훈하셨고 행하십니다. 또 그는 시각장애우의 눈을 고쳐주셨습니다. 고침받은 그는 예수님에 대해 그가 참 대언자 곧 우리가 그분의 말을 다 믿고 다 지켜야 할 대언자이심을 깨닫고 유대인들에게 그렇게 대답한 것일 것입니다.

18-23절. 유대인들은 그가 시각장애우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취조합니다. “이는 너희 말에 시각장애우로 태어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그의 부모가 대답하기를 “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시각장애우로 태어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시오.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합의했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시오라고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마음은 어둡고 강퍅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시각장애우가 예수님에 의해 고침받은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속에 있었던 불신앙적 선입견은 그들로 하여금 명확한 사실 조차도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불신앙적 편견을 버린다면,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24-25절. 그들은 시각장애 되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말하기를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그가 대답하기를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가지 아는 것은 내가 시각 장애로 있다가 지금 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단정하고 그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참으로 무지한 일입니다. 고후 5:21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For he hath made him to be sin for us, who knew no sin; that we might be made the righteousness of God in him.”에서 밝히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기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가 전가되어 죄인들 대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대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저 유대인들은 어둡고 강퍅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정죄한 것은 전혀 잘못된 것입니다. 

26-29절. 유대교 지도자들이 치유받은 사람에게 묻기를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고 하자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며 도전을 하자 그들은 욕하며 말하기를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이런 대화와 논란은 불필요하며 상식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본질은 피하고 피상적인 질문에 물고 늘어지는 지도자들의 불신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불신앙은 명확한 사실에 대해 계속적인 질문을 하게 하며 의문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러나 그 유식한 불신앙자들은 그 평범한 성도에게 책망의 말을 듣습니다. 그들이 모세를 믿는다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역사상 모세 이후에도 하나님의 진실한 대언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참 대언자들은 그들의 교훈과 인품과 행위에 의해 그 진실성이 증거되었습니다.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참 대언자이신지에 대해 양심적 판단을 해야 하며 그분을 무조건 거절해서는 안됩니다. 

30-34절. 그 사람은 유대인들에게 대답합니다.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분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고침받은 그 사람은 유대인들의 불신앙에 대해 오히려 의아해 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음을 확신하며 증거합니다. 평범한 그의 깨달음과 판단은 유대 지도자들의 생각과 판단보다 더 타당성이 있고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은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고 반항하며 그를 쫓아내어 보냈습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어둡고 부패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그 무지함과 완고함이 제거되고 고쳐질 수 없습니다. 

3. 보는 자와 보지 못하는 자(요 9:35-41)
(35)예수님께서 그들이 치유받은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시면서 물어 보시기를 “네가 인자를 믿느냐?”(36) 대답하기를 “주님 그분이 누구십니까? 제가 믿고자 하나이다”(37)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38) 말하기를 “주님, 제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39)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시각장애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40) 바리새인 중에 예수님과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말하기를 “우리도 시각장애인인가?”(4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시각장애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35-36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장소에서 그를 만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인자[하나님의 아들]를 믿느냐?”하시니 그가 대답하기를 “주님,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제가 믿고자 하나이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한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그 진리를 믿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호 8:12은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이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고침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향해 열린 마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7-38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고 하시자, 그는 “주님, 제가 믿나이다” 하고 절[예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증거하십니다. '절한다'는 원어(프로스퀴네오)는 ‘예배드린다’ ‘경배한다’(worship)는 뜻입니다. 시각장애우를 고쳐주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그분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을 경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신성(神性)을 가지신 분 곧 하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39-41절. 예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시기를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시각장애우가 되게 하려 함이라. 바리새인들 중에 예수님과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말했다. 우리도 시각장애인인가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시각장애우가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심판하러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은 요 3:17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신 말씀과 상충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본문에 예수님께서 심판하러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통해 신자와 불신자, 구원받는 자와 멸망하는 자를 나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분을 믿는 자는 구원과 영생을 얻지만 그분을 믿지 않는 자는 멸망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에게 심판자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심판자가 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시각장애우가 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시각장애우의 눈을 뜨게 해주신 것은 영적 소경인 죄인들의 눈을 뜨게 해주실 것을 암시합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영적 시각장애우들의 눈을 뜨게 해주시기 위함입니다. 고후 4:6은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의 눈을 밝혀 주실 때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특히 스스로 무엇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 스스로 인생의 의미와 목적과 행복을 안다고 생각하는 자들, 그래서 돈을 벌거나 장사나 사업을 하는 데 눈이 밝고 세상의 명예나 권세를 취하는 일에 눈이 밝고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는데 눈이 밝은 자들은 영적인 시각장애우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들은 다 자신들이 죄인임을 보지 못하고 복의 근원이 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영생과 천국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구원은 영안(靈眼)이 열려서 영원하고 복되신 하나님을 알고 자신의 죄악됨과 허무함을 알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믿는 자들이 들어가 누릴 천국과 영생을 아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은 자신이 영적 소경임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고침받아 하나님을 알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천국과 영생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적인 눈, 죄악된 눈은 멀고 영적인 눈은 밝아져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설교를 깨닫고 믿게 하시던(행 16:14) 주님께서는 오늘날도 구원하실 자들의 마음을 여십니다. 

찬송 366장(통 485장)에서
1절 어두운 내눈 밝히사 진리를 보게 하소서 진리의 열쇠 내게 주사 참 빛을 찾게 하소서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눈을 뜨게 하소서 성신이여
2절 막혀진 내 귀 여시사 주님의 귀한 음성을 이 귀로 밝히 들을 때에 내 기쁨 한량 없겠네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귀를 열어 주소서 성신이여
3절 봉해진 내 입 여시사 복음을 널리 전하고 차가운 내 맘 녹여주사 사랑을 하게 하소서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입을 열어 주소서 성신이여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올해 대림절에는 제2의 세례요한이 되어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며 마란아타의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셔서 진리를 보게 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깨닫게 하옵소서. 안식일은 회복의 날로서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날로 주님께 영광돌리는 일만 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공부를 위한 질문들]
1. 나면서부터 시각장애인이 된 사람은 누구의 때문에 장애가 되었나?
2. 예수님께서 시각장애우에게 하신 말씀과 명령은?
3. 이런 일이 안식일에 일어났던 것에 대해 시비하는 이유는?
4. 장애우 부모가 당시 바리새인들에게 답변한 내용은?
5. 장애우가 예수님을 인자로 믿음을 고백한 결과는?
6.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영적 시각장애우이라는 증거는?
7. 우리 자신의 영적인 장애우 모습을 하나씩 살펴보며 반성하자
------------------------------------------------------------
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1) 감사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더 가까이 나아가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는 믿음, 소망, 사랑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금주기도제목
(1) 감사의 달에 나라 사랑으로 매일 24시간을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2) 보혈의 능력으로 무장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가 날마다 부흥하게 하소서!
(3) 하나님께 더 가까이 믿음, 소망, 사랑이 부요롭게 하소서!
11월28일(월) 찬 101장(통106), 235장(통222) 행24장(벨릭스 총독앞에서)
    29일(화) 찬 101장(통106), 235장(통222) 행25장(아그립바 왕앞에서)
    30일(수) 찬 102장(통107), 237장(통226) 행26장(마지막 변명) 
12월 1일(목) 찬 102장(통107), 237장(통226) 행27장(로마로 압송 중 풍랑)
     2일(금) 찬 104장(통104), 239장(통230) 행28장(멜리데 경유 로마도착)
     3일(토) 찬 104장(통104), 239장(통230) 롬1장(그리스도의 복음)
--------------------------------------------------------
◉ 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us06web.zoom.us/j/7049077483?pwd=UzNvdldBM04xMFlWQSswVWxDT3YvQT09,  회의 ID: 704 907 7483 / 암호: 123456

겟세마네신학교

◉2022학년도 가을학기 - 내일(11월 28일) 가을학기 종강일정: 
1교시(10:00-11:30) 고대근동학(윤사무엘), 종강예배(11:40~12:10), 
점심(12:10-13:00), 수원시 관광 및 친교(13:00-15:00), 저녁식사
◉2022학년도 겨울학기 – 12월 1일(목) 오전 10시~오후5시 요한복음 집중강의(박호용 교수) 
◉장소: 수원 향기나는나무 교회(이태환목사 시무), 본당과 디모데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네이비에 ‘겟세마네신학교’ 검색]
  연락처: 010-3288-2878, 010-9367-7605, 010-9722-454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안보면 후회할 기사
카드뉴스